공무원 연금이 나에게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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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명예롭게 나 자신을 마무리할 수 있는 絶對斑指(The one ring)級의 실체적 조건이다.
- 어느 여성 분이 완경(일명: 폐경)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남자로부터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글을 본 기분이다.
- 공무원 연금, 크지는 않다는 느낌이지만 마치 18c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를 보는 기분이다.
- 소귀족으로 작지만 귀족티가 나는 아담한 집과 나름의 평생 연금, 군장교 시에도 몸종이 따른 신분.
- 그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유럽이 자랑하는 인류의 지성적 성인이 되었다. 수학과 철학에서 인류지식의 지축을 업그레이드.
- 여성 분에서의 완경!!! 얼마나 기쁠까 말이다.
- 이제 마을 속 길거리의 넝마인이 되어도, 밤 이슬 숲 속의 노숙인이 되어도, 포르쉐를 몰아도 이제 나이기만 하면 된다.
- 인간을 위한 사랑의 소망을 꿈꾸다가도 신의 허락을 받기까지가 나에겐 벅차다.
- 공직자로서의 정년자이면 그가 어떤 지위와 계급이든 그 할 일은 다한 셈이다.
- 정년자는 무조건 존경 받아 마땅하다. 아무도 모르는 상처를 그는 안고 있다.
- 마음의 근육을 높이다가도 마음의 그 상처만 만나면 여전히 길이 흔들린다.
- 공무원연금!!! 헤겔과 비스마르크가 생각난다. 절대다수의 하층민의 땅을 범하지 않을려고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 그리고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난 또 하나의 별도의 하층민과 타협을 했다. 이 타협은 국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라고.
- 바로 신과 같은 국가이성이다. 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나 아무도 모른다.
- 헤겔과 비스마르크 & 바이마르 공화국. 나에겐 너무나 부러운 조합이다.
- 하층민의 땅을 보호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하층민과 타협을 했다. 타협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그가 타협을 해 주다니!!!
- 포르쉐을 천 대가 아니라 만 대를 몰아도 좋으니 타협을!!!
- 타협은 빛과 같아서 그 빛이 사라지자마자 아무도 모른다. 구조적으로 알 수가 없다.
- 대한민국 역사에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이승만의 농지개혁이다. 150%를 5년간 나누어 갚으면 그 이름을 토지대장에 올려라.
- 이승만의 위대성: 농민들이여! 돈을 주고 땅을 사라. 그러면 나중에 그 누구도 그 땅을 약탈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팔지 않는 한.
<다음 내용은 탈 주제이므로 필요자만 탐독 요망>
^^ 덕분에 나의 증조부님은 토지를 국가에 헌납 당하고 나의 할아버지 3형제는 할 수 없이 사업가로 변신. 한 분만 나름 성공하고 다른 두 분은 별로. 종가토지는 농지개혁대상에서 제외되어 여전히 그대로 잘 가꾸고 있다. 어릴 적에 몇 번 갔는데 대나무 숲과 우거진 숲 속의 시냇물 사이로 다소 넓은 농토와 물이 졸졸 흐르는 수로. 그 수로에 물뱀이 거슬러 헤엄을 치고```. 이 시대는 조선말기의 여운으로 나의 증조부 신분 정도의 집안만 조금 잘 살았다. 나머진 모조리 농노신분 수준이었다. 신분구별 예외없이 평균수명도 40 이전으로 짧았다.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을에 콜레라(호열자)가 발생하면 온 마을이 공포에 휩싸인 나의 어린 시절을.
<보다 중요한 내용>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공무원연금으로 여생을 꾸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박한 마지노 노선이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매달 봉급에서 일정부분이상 국가에 기여금으로 낸 결과이다. 정년시까지 절대 찾지 못한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부업을 가질 수 없다. 부업시엔 바로 징계해임. 찬란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든 시민들이 부를 향유할 수 있게 보루로 생활한 자가 바로 직업공무원들이다. 마치 큰 공장의 기능공 역할의 The skill worker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무식한 자라도 부지런하거나, 남에게 고개 숙이면서 장사만 잘 하면 대부호가 될 수 있다. 생활보호대상자도 평균수명이 80을 넘고 있다. 증거? 요양병원에 가 봐라. 국가혜택으로 편안하게 계신다. 나 역시 비록 그 땅은 국가의 명으로 다른 분들의 소유가 되었지만 따지고보면 나의 증조부님보다 국가의 노력으로 훨씬 더 안전하게 이웃과 더불어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덕교사출신이기 때문에 도덕가의 반열(班列)에 올라서 있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35년 6개월의 실근무경력과 2년 10개월의 군필 등으로 남들이 알든모르든, 인정하든않든 도덕적 학식을 갖춘 도덕가의 안목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학자의 계열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적 독립을 종신적으로 가졌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까지 독립적 여유와 정신적 자유를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도덕가가 아니면 이 대한민국에서 누구를 도덕가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며, 나 말고도 많은 공무원연금분들이 자기의 전공과 주특기를 살려 전공분야의 장인(匠人, maestro)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교직자들은 확고한 자기 영역이 있으므로 그에 따른 노후의 결실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누릴 수가 있으며 그 영역의 심도를 현역들과는 다른 부문까지 심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힘차게 활동할 수 있는 여생(餘生)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선배들을 보면 대개 무명인으로 전락하여 자기의 고귀한 실력을 사장시키는 것을 수 없이 보아왔다.
이는 체력이 달려서 그런 것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독립적 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정년 후에 독립적 장을 못 열어 소일거리자로 전락한 많은 선배들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간혹 시골 밭일을 하는 경우도 보지만 이는 결코 권장할 일이 아니다. 자랑스럽게 떠들더라도 힘 빠지는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이는 결코 엘리트 자유인들의 자랑거리인 망중한(忙中閑)이 아니다. 자신에 주어진 자유인의 반열을 허무하게 버리는 꼴이다. 능력부족으로 자유인의 반열에 오른 자신의 입지를 그냥 버리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