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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꼭 피해야 할 것들 중에서
지나친 오지랖과 참견인데 누구나 이 두 가지에서 자유로이 벗어날 수 없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나만 잘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
살다 보니 나만 잘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 그것도 결코 쉬운 게 아니다.
2부 후기는:문경에서-예천-의성-상주-구미-김천-성주-합천까지
대목재로 힘들게 올라와 쉴 시간도 없이 내려가니 어디서 많이 본듯한 분이 앞에서 올라오시는데 추산 대장님 내외분이 "밥 사주겠노라"며 동로면에서 3km가량 올라오셨다
해빠질듯한 시간에 반가워도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한때는 클럽의 수많은 산행대장님들 중 단연 최고의 산행대장이셨는데 대간, 정맥팀을 진행하면서 대원분들께 올 100점을 받은 분으로 그때 고생했던 여파로 지금은 산행은 거의 그만두신듯하다.
깊은 산 중턱 외진 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반가운데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깊은 산골만큼이나 깊은 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다.
연주패옥 천하 명당터인데 말(馬)이란 녀석의 뒷발차기에 다 망처 버렸다는 이야기
말(馬) 무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귀화한 명지관(明地官) 두사충(杜思忠)이 조선의 문신(文臣)인 약포 정탁 대감에게 큰 은혜를 입게 되어 보답으로 정탁 선생이 살아 있을 때 묏자리를 잡아 주려고 그 위치를 알려 놓았다 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연주패옥(連珠佩玉:구슬을 잇고 구슬을 찼다)이다.
얼마 후 정탁선생의 아들이 그 위치를 아는 구종(驅從)과 함께 이곳에 와서 구종이 손으로 연주패옥을 가리키는 순간 말(馬)이 구종을 차서 죽게 하니 정탁선생의 아들이 화가 나서 말을 죽여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약포 정탁선생께서는 이순신장군을 살리기 하기 위해 선조께 "신구차 상소문"을 올린 분으로 정탁선생께서 없었으면 조선은 왜구에 의해 나라를 잃었다고 봐도 될것 같다.
이곳에 서서 사방팔방 산 뿐인 곳을 둘러보며 명당터인 연주패옥 자리가 어딘가 둘러보니 저짝이 아닌가 생각 든다
백두대간 벌재아래 문경시 동로면에 들어와 두 분께 맛있는 거 사드릴까 했지만 고깃집은 문을 닫았고 중국집만 문을 열었다.
하는 수 없이 중국집에 앉아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다가 두 분도 안동 집으로 가야 하니 오래 있을 수 없어 일어선다.
앞장서서 가시는 추산대장님과 아름다운 부인
훗날 모임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두 분은 안동으로 가시고 저는 동로면 간송리까지 2km를 더 가서 잠자리를 찾는다
마을 앞 버스 승강장
아주 럭셔리한 곳으로 이 정도면 하룻밤 보내기 적당하다.
155km 지점에서
원앙금침은 아니지만 좁은 승강장에 신방 차리듯 잠자리 준비하고 핫팩 2개 넣고 누워있으니 승강장 뒤로 내성천 지류인 금천(金川)의 얼음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 좋고, 간간이 들리는 부엉이 소리까지 자연 속에 귀 기울이며 자는 게 얼마나 좋은지...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없으면 겨울밤이 익어가는 소리뿐이다.
내일은 용문산(770m)을 넘어 용문에 들어야 하니 이쯤에서 자고 새벽 2시 무렵에 일어나 길 떠날 채비 한다.
용문산을 가장 빠르게 넘어가기 위해 동로면 간송마을을 지나 안성골 계곡 안으로 들어와 무작정 산정으로 올라야 하는데 예전에 문경 동로면에서 예천땅 용궁으로 넘어갔을 고갯길인듯 보여진다
골짜기 따라 한참 올라오니 그 옛날 주막집이나 젊은 청상과부가 살았을 곳이 이어지나 길은 어디에도 없다
이 새벽에 자연을 느끼기 가장 좋은 방법
그러나 다른 이에게는 결코 권하는 산행 방법은 아니다
그 길에 물론 길 같은 건 없다.
하늘에 가끔 별만 보일뿐 너무 조용한데 지나가는 발걸음에 죽은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계곡을 울리고, 배낭이 크고 옆으로 삐져나온 깔판 때문에 칡이나 잔가지가 위에서 잡고 옆에서 붙들고 늘어진다
계곡을 한참 올라 중턱의 작은 바위를 의자 삼아 걸터앉아 있으니 종이처럼 얇은 껍질의 자작나무가 여럿 보인다.
자작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강렬한 햇볕을 이기기 위해
또 척박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갑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다.
깊은 계곡에 잠시 렌턴을 끄고 앉아 있으니 너무 고요하고 귀신이라도 나올듯하고
한기가 느껴져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고 용문산 산마루에 거의 다 올라오니 절벽이 앞을 막는데 야간이라 눈에 뵈는 게 없어 조심해서 네발로 기어오른다.
자칫하다가 낭떠러지로 굴러 골로 갈 것 같고
등줄기에 식은땀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 능선에 도착하니 북풍에 잠시 뜨거웠던 몸도 금방 한기(寒氣)를 느낀다
능선에 올라와 조금 진행하니 비실이 선배님 시그널이 반기고
준희 선배님 시그널도 반기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양평 용문에서 이곳까지 용의 비늘을 지나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용의 심장에 도착한다
잠시 바람 불지않는 곳을 찾아 낙엽 위에 누워있다가 등골은 시리고 발이 걷자 하니 그래서 걷고 또 걷는다
계곡으로 올라오며 고생 고생했더니 시간이 지체되어 새벽 예불시간이 끝났다.
용의 심장인 예천 용문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장전에 윤장대를 모신절인데 1984년도 5월 화재 때 대부분 전각(展閣)이 불타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다행히 보광명전에 모셔진 보물 목조아미타좌상과 윤장대 한쌍은 화마(火魔)로부터 지켜져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인 보광명전의 목조 아미타좌상
스님들께서 새벽예불을 마치시고 텅 빈 대웅전에 들어와 클럽의 안전산행 감사와 26년도 안전산행을 기원드린후 잠시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와
윤장대(輪裝臺)
보광명전 옆 건물 대장전에 들러 팔각형안에 불교경전을 넣어둔 곳이 보이고 대장전의 부처님께 인사드린다
윤장대는 중생들이 불교경전을 접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한문(漢文)을 몰라 팔각형의 윤장대속에 많은 경전을 보관하여 윤장대를 돌리면 그 속의 경전을 여러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해서 중생들이 윤장대를 돌렸다고 한다.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쯤이라 하며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아 더 오래 있지못하고 산아래로 내려간다
소백산 용문사 일주문
예전에는 이곳 일대가 모두 소백산 자락이었던 모양이다
일주문을 벗어나며 혹시나 용문면에 가면 아침 먹을 곳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용문면으로 향한다.
사찰에 국보와 보물이 있으니 일주문도 커야 했는지
기존의 작은 일주문 아래 새로 만든 일주문이 서 있는데 일주문 우측 산에는 9대 임금인 성종의 비(妃)였으며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태실이 있는 곳이다.
*폐비 윤씨는 성종의 얼굴을 할퀴어 폐비가 되었고
그의 아들 연산군은 죽은 어미로 인해 폐위가 되었다
새벽에 용문산으로 올라오며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옛 중전마마의 태실은 훗날로 미루고 밥 잘하는 집 찾아 용문면으로 신나는 발걸음 이어간다.
길을 걸으며 역사성과 함께 감수성이 꼭 필요하지만 몸이 움츠려지는 새벽에 돌아가신 중전마마보다 밥풀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강원도에서 경상도 내륙땅으로 들어오니 날씨는 많이 포근해졌지만 그래도 영하 7도의 날씨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식전 댓바람부터 용문면에 들어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문면 한 바퀴 쭉 둘러보았으나 일찍 문을 열어놓은 식당은 없고 점빵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간다.
용의 심장을지나 용의 비늘길은 계속이어지는데 예천군 유천면 방향으로 걸어가며
해는 천천히 떠오르고 해가 떠오르면 왠지 모르게 포근함을 느낀다.
길을 걷다보면 가끔 옆에서 차가 서며 어디까지 가는지 몰라도 태워주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지금처럼 운전자 분이 창문을 열고 어디까지 가느냐? 묻는다.
그래서 어디까지 간다고 하니 아침 식사는 했느냐! 고 말씀하시는데 아직 식전이라고 말씀드리니 "자기 집이 요 근처에 있다"며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왠지 아침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을 뒤로하고 아저씨 따라나선다.
아저씨 집이 인근에 있어 따라왔더니
팔도"남자라면" 하나를 끓여주시는데 물이 조금 많은 듯하다.
라면에 물이 많던 적던 그것보다 배가 고팠던 참에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며 라면을 끓여주신 분께 감사 인사 드리며 다시 길을 나선다.
국사지맥길에 지나가는 길이며 바로 앞 정면에는 예천 공군 비행장이 있는데 비행기 소리 참 대단하다.
예전에 강원도 영월 공군 사격장을 몰래 지나갈 때 A ㅡ10 선더볼트 전투기 사격할 때 아주 죽는 줄 알았는데
평택 공군 비행장 인근이나 예천 공군 비행장, 대구 공군 비행장은 당최 적응이 안 된다.
누군가 그런다.
배방장은 노숙자라고 사진으로 보니 노숙자하고는 다르게 생겼는데 노숙자라고 부르니 노숙자인듯하다
예천 공군 비행장 옆길 지나
예천군 지보면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지간하면 강력한 북풍과 함께 눈이라도 좀 왔으면좋겠다만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발원해 봉화. 예천을 거쳐 흘러온 모래강인 내성천
영주시 무섬마을에서 삼강주막까지 47km가량으로
모래강을 뛰어가는 재미도 좋은데 올해도 그런 재미를 다시 한번 더 느껴볼지
비가 제법 많이 내려 인근 농가에 가서 검은색 비닐 좀 얻어 배낭을 감싸고 우의를 걸치니 그나마 조금 따뜻한 기운이 돈다.
문수지맥 만촌고개
비는 왔지만 발바닥에 열기 때문에 가끔 슬리퍼로 바꿔 신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낙동강을 건너고 그다음에는 고향 의성 땅이다.
낙동강 너머로 보이는 산은 의성군 다인면 비봉산인데 의성에는 처음과 끝에 각각의 비봉산이 서 있다. 저곳 비봉산 아래에는 작년 고찰 대곡사가 있는데 안 가보신 분들은 한 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와 의성땅에 들어오니 경기도 양평에서 정확히 200킬로 지점에 도착해 있으며 앞으로 남은 거리는 249킬로 남아 있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을 귄역별로 나누면 백두대간,낙동정맥,낙남정맥 줄기에서 흐르는 모두 1,187개의 하천이 있고 그중에 낙동강 수계는 779개다
낙동정맥 동쪽의 형산강, 태화강, 영덕오십천, 회야강, 서낙동강수계, 낙동강 동해와, 낙동강 남해 수계로 나눌 수 있겠다
경북 의성 땅에서 경상북도 상주 땅으로 넘어가기 위해 열심히 가는데 해는 조금만 남아있고 인근 하천에서 썩은 냄새가 많이난다.
하천을 유심히 보니 얉은 바닥은이 보이지 않고 돼지 축사에서 흘러온 건지 모르겠으나 더러운 물이 유입되어 시궁창 하수구 냄새가 심하게 난다.
가야 할 길과 하천
깊지 않은 하천임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러운 시궁창 물빛을 하고 있다.
이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곳에 구미, 대구, 부산 시민이 시궁창물로 밥 해 먹고 양치하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궁창 물이라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갱상도 특유의 슬로건으로 서로가 골고루 나누어 마신다면 못 마실 것도 없겠다 생각이 든다. 조금씩 다 같이 나누어 마셔보자.
대한민국의 하천길을 그렇게 걸었음에도 이런 시궁창에서 썩는듯한 물은 처음이니 어쩌다 고향에서 이런 물 향기를 맡아보는지
시간 되면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드디어 호랭이도 무서워한다는 곶감나라 상주시 중동면 땅이다.
오늘은 낙동강을 건너 지난번에 국토 종주할 때 한번 가봤던 민박집에 가서 자야 할 것 같아 미리 전화를 드려 예약을 해놓고.
낙동강을 건너는 중동교이다.
다리 폭이 좁고 갓길이 없어 조심해야 하는데 특히 야간에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양쪽에서 차가 오고 가고 할 때는 어디 피할 데도 없는 외통수길이다.
그래서 랜턴을 밝게 해 번쩍번쩍 차가 오면 앞에 사람이 간다고 흔들면 대부분의 차들은 속도를 늦춰주며 사람이 먼저 가게 서행해 준다.
들꽃 향기 민박집에 들어와
오늘 처음으로 쌀 구경했으며 주인 내,외분과 이야기 나누다가 내일도 새벽에 나가야 해서 방으로 들어온다.
이곳까지 212km 저점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 자전거족들이 찾지 않아 큰방에 홀로 들어와 물고기 헤엄치듯 놀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음료수 한 명과 핫팩 2개 그리고 상주 곶감 10여 개를 먹어보라면서 갖다 주시며
하루 종일 개 떨듯 했을 것이라며 방 온도를 30도로 맞춰주신다.
방바닥에는 지난밤에 축축해졌던 침낭과 옷들을 모두 널어놓고 말린다.
민박집 마당 풍경
아주머니께서 새벽 2시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극구 사양하며 좀 더 일찍 일어나 밖을 나온다.
차갑지만 새벽 공기 한번 좋다
2시에서 4시 무렵에 어김없이 동네 똥강아지들이 모두 일어나 야단이다.
이 녀석들은 잠도 없는지 시끄럽게 떠들고 시골집의 수탉은 정확하게 4시 되면 일어나 울기 시작하는데 길을 걷다가 간혹 시계를 보지 않아도 닭이 울면 새벽 4시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경상북도 상주 땅과 구미시를 연결하는 고갯길인데 지나가는 길에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편안하게 지나올 수 있었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구미시 옥성면사무소다.
5시 50분
불 켜진 옥성면 뭐 하는지 몰라도 이 시간에 문을 열어 놓았는데 배낭을 벗어놓고 가서 커피라도 1잔 얻어 마시고 올까 싶다가도 꼬락서니가 이러니 커피는 마음뿐이다.
옥성 자연 휴양림 안으로 들어와
굽이 굽이 돌아가는 길을 찾아 고개 마루를 넘어 선산읍으로 향한다.
지름길로 올라가다 보니 길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래도 한 발이라도 조금 더 빨리 올라가면 집에 가는 시간도 단 일초라도 빨라질 것 같다.
우 형제, 좌 신산을 이어주는 갈등고개에 올라와
25년 12월 30일 일출이 올라오고
임도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산길로 내려간다.
아침은 영자네 돼지국밥집에서 따뜻하게 한 끼 먹는데 오늘 저녁에 도착할 성주군 벽진면까지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억지로 먹는다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감천길 따라서 김천시 신도시까지 이어간다.
구미시 선산읍에서 김천으로 향하는 59번 지방도 옆길 따라 이동하는데 차량 통행은 많으나 갓길이 조금 넓어 진행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고.
영하 6도 정도의 아침
혹시나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탈까 하여 싸매고
김천으로 가는 59번 지방 도로 차량 이동이 많이 없었어 진행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으며
행정구역상 구미시 땅을 지나고 김천시 땅에 들어왔다.
안내판에는 가야산까지 64킬로 지점을 알리니 내일 점심때까지 가야산 언저리를 지날 것 같다.
감천이 흐르고 그 뒤로 보이는 산은 구미시의 진산이라는 금오산이고
가야 할 농로길
길을 걸으며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잠잘때까지 걷고 그리고 자고
또 걷고
감천이 흐르고
감천은 멀리 수도산 서봉에서 흘러온 물로써 모래가 흐르는 하천인데 어찌보면 내성천보다 더 맑게 흐른다.
김천시 율곡동과 우측으로 율곡천이 흐르고
잠시 동안 율곡천 따라 올라간다.
나라의 보배이며 기둥인 꼬마 손님들께서 하천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확인하러 오셨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몸을 움츠린 채 펭귄처럼 꼬물 고물 걸어간다.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로 20km 떨어진 거리의 목적지 검색하고 걷기 표시하면 걷기 좋은 길로 이렇게 표시해 준다.
60km 이상 걸을때는 오후 1시까지 무조건 40km는 걸어야 하며
시작부터 3일째 되는날 그사이에 그님이 찾아오시는데 절대 찾아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 님이 발바닥에 자리를 잡으면 끝날때까지 고통의 연속이니 3일만 조심하면 되고
단,하루에 30정도 걸으면 물집은 생기지 않으니 30만 걷고자한다면 물집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름이 산너머 표적지로 날아가는 듯
별미령 올라가는 길에
여름이라면 물집이 여러 개 생겨겠지만 겨울이라 날씨가 추워 물집은 생기지 않았으나
가끔 이렇게 발바닥을 식혀줘야 발이 편안하고
별미령까지 양말을 벗고 슬리퍼만 신고 진행하니 발이 시원하다 못해 얼얼하다
별미령 오름길을 올라와
이곳은 김천땅이고
별미령에서 오늘 8시간 만에 처음 배낭을 벗어 놓고 쉬며
참외나라 성주군 벽진에 들어와
성주는 노란 참외이며 참외는 곧 성주를 대표한다.
노란 참외란 녀석은 전국 백화점, 마트, 시장을 점령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도로 가장자리까지 점령하고 팔리니 지역 농산물로써 다른 지역의 농산물과 비교가 안 되는 그야말로 대적불가의 농산물이다.
그리고 우측의 용암리 깊은 골은 어느 김 씨 문파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때는 무작정 몇백 년 거슬러 조선 세조 계유정난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만고의 충신이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지켰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가 있었으나 근래에 한 분 더 추가되어 사칠신(死七臣)으로 추가되었던 김문기 선생이 포함되었는데 그분들의 후손이 살아남아 이곳 성주군 벽진면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본관이 김녕 김 씨로 알려졌으나 후대에 들어 경주 김 씨라고 하는데 어떤 문파가 맞는지 김녕 김 씨와 경주 김 씨 문파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그때는 숨죽이고 살았던 시기라 서로 아니라고...그리고 모른 척했지만 지금은 만고의 충신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집안사람이지...
봉학저수지
저녁에 어디서 노숙할지 찾으며 진행하는데
비닐 농막은 대부분 참외 농사를 짓기에 자칫하면 열리지도 않은 참외밭 물어줄 일이 생길 것 같아
벽진면에서 성주읍 방향으로 1,5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모텔로 찾아간다.
벽진면에 들어와 수입산 소고기 2인분 게눈 감추듯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소고기 육회도 조금 주문한다
먹으니 살 것 같고 오늘은 275km 지점에서 마무리한다.
새벽 2시 무렵에 일어나 다시 찾아온 벽진면
조용한 새벽길에 노랗게 익은 달빛이 조금 있으면 서산으로 넘어갈 것 같다,
성주군 대가면을 지나고
영하 8도 정도
913번 지방도 장고개에서 본 성주읍 모습
걷다 보면 옆에 아무도 없어 외롭다.
그렇다고 외롭다 말하지 마라.
새벅시간에 전화로 편하게 말할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호령고개를 지나며
잠시 승강장 의자에 누웠다가 간다
성주땅에는 대부분 참외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만 보인다.
수륜면을 지나 59번 성주가야산로 따라 진행
가야산 아래 성주 법수사지
신라 애장왕 때 세워진 화엄 사찰의 하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되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텅 빈 사지(寺地)에 삼층 석탑과 발굴 때 모아 쌓아둔 기와 파편들만 있을 뿐이다
25년도 마지막 일출
찬란한 아침 태양이 좋은데
지난 여름 부산ㅡ서울 왕복할 때는 왜 그리도 더웠는지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금당지와 주춧돌이 남아있고
읽어보시고
300km 지점에서
배는 고프고 전날 저녁에 사 왔던 소고기 육회로 아침식사를 하고
가야산 올라 해인사로 가려다가 해빠질것 같아 가야산은 오르지 않고 도로 따라 해인사로 향한다.
가야산이 곁에 있고
대장경 테마파크 앞에 무거운 보따리 던져두고 해인사로 향한다
부처님은 사카족(석가)의 왕자로 태어나 일찍부터 생로병사에 관심이 커 궁(宮)을 버리고 세상밖으로 자꾸 나가려 하자 부왕께서 어떻게 하던 왕자를 붙들어 놓으려 이웃나라에서 가장 이쁜 공주님과 결혼시켰다
왕자께서 "그럼 1년만 살아보자"며 살았는데 두 분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난다
왕자께서 집을 떠나 세상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아기가 태어나 발목을 잡으니 아기 이름을 "라훌라"로 지었다고 한다
라훌라는 장애물이라 뜻이고 사카는 석가를 뜻한다.
남자는 자고로 집 밖에서 세상을 봐야 직성이 풀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걸어야 할 것 같다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지나면 국사당(가야산신)이 있나 온다.
가야산신(山神)인 정견모주께서는 하늘의 신(神) 이비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으니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고령군 일대의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경남 김해 인근의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다른 사찰에는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이 있지만 해인사에는 일주문을 지나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길인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에 국사당이 존재하니 지나는 길에 찾아보기 바라고...
대적광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12 교구 본사인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802년) 때 신림(神林)의 제자였던 순응(順應)이 중국으로 수도를 떠났다가 몇 년 뒤 귀국하여 절을 세우다 순응이 죽자 이정(利貞)이 그 뒤를 이어 창건한다
법보 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佛寶) 사찰인 통도사와 승보(僧寶) 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로써 해인사는 화엄종(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서 배워 전파함)의 근본 도량이며, 민족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그리고 해인사는 경남 인근으로 172개의 말사 절과 부속 암자 12개를 거느리는 큰 절집인데 멀리 지리산 대원사까지 해인사 말사의 절이다
대적광전
연화세계의 대정적인이라는 뜻의 대적광전(大寂光殿) 화엄종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곳이며
대적광전에는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클럽의 안전 산행 기원드리는 시간
때마침 10시 30분 사시예불시간이라 스님의 불경소리에 맞춰 절하고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인 팔만대장경(81,352매)이 모셔진 장경판전
80년 동안 8차례나 몽고가 침입했으며 전체 인구 4분의 1이 죽었고 7년 뒤 몽골의 침략을 부추기던 최씨 무신정권의 암살로 전쟁은 끝이 난다
몽고의 침략을 불심(佛心)으로 맞서기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불사의 힘으로 16년 동안 연인원 50만 명이 만들어 지금까지 760년을 보관 중이다.
1,398년까지 강화도의 선원사에 있던 것을 서울 시청 맞은편 용산 지천사로 운반하였고, 문경새재, 고령 개경포를 거쳐 그해 가을에 해인사로 이사했는데 두 개의 건물인 수다라장과(법보전), 사간 판전에 보관 중이다.
대장경은 선조들의 억척스러운 고집이며 최고의 유산이며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방대한 장경이 모셔진 곳이다
대장경은 8만 1,352매, 길게 줄지어 놓으면 60km 전체 글자 52,727,000만자 중 오타는 158 자라고 하니,직접 부처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웅장한 장경 판전에는 8만 4천 가지 법문이 기록되어 있다.
책으로 만들면 6천8백2권이며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 하루 한 권을 읽는다 해도 18년 정도 걸릴 만큼 방대한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곳 합천에서 가까운 대구 팔공산 아래 부인사가 있는데 고려 때는 무신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승려들의 본거지였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을 보관한 장소였으나 고려 고종 때인 1232년 몽골 침입 때 부인사와 함께 모두 불타버렸다.
대장경은 2차,3차에 걸친 여, 몽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고려인들의 절박하고 간절했던 염원과 마음
몽고의 침략을 불심으로 맞서기 위해 제작된 판전은 남해 관음포 인근에서 1236년-1251년 16년간 연인원 50만 명이 동원되어 만든 국책 사업이었다
해인사 인근으로 소나무가 건제하지만 경주 국립공원 남산지구의 삼릉인근으로 소나무 제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많았는데
삼릉이나 남산의 소나무가 어찌 될지
해인사 범종소리를 끝으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나가 남해 용문으로 향한다.
가야면-59번 지방도로-가산초등학교 앞-매화천-이천천 건너-청현교-청현리-청현 3리 길-신평경로당-묘산면ㅡ화양마을 소나무ㅡ박소신도비-창촌마을 오기 전 가산마을에서 마령재로 진행
조금 복잡한 길이지만 방향을 두문산을 돌아가는 묘산면 화양리마을의 천년기념물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길을 잡는다
가야면 사촌리 도로가에 서있는 석장승으로 하천 대장군이라 쓰여있고 맞은편에는 하원 대장군이라 쓰여있다.
하원여장군
도로 아래에 한쌍이 서 있었고 도로 따라 올라오니 또 한쌍이 마주 보며 서있다
두문산과 비계산 방향
비계산과 작은 가야산이 보이고 그 뒤에서 흘러온 숭산천을 건너가며
가야면 청현리 마을에서 본 가야산 방향
광주 대구 고속도로가 보이고 저곳 아래로 진행
만사형통을 알리는 표시
가야면 신평리 마을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을 지나
마을 안길을 계속 올라 고개 넘으면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가 나오는데 인근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으로
그중에 천년 기념물인 화양리 소나무가 있는 곳이다
두문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보이고
합천군 묘산면 땅으로 들어온다
화양리 나곡마을의 500년 소나무로 천년기념물이다
높이 17m 둘레 6m 마치 구룡(九龍)이 서로 몸을 비틀며 승천하는 모습으로 가까이서 보면 대단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붓다께서 마야부인의 몸을 빌어 태어나서 하신 말씀이다.
마치 구룡(九龍)이 서로 얼기설기 붙어 하늘로 승천할 당찬 기세이며 잔가지는 아래로 사방팔방으로 퍼져있고 웅장한 자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이 길을 지나는 이 가 있다면 꼭 한 번 찾아가 보시면 아주 좋을 듯하다
마지막 3부는 다시

첫댓글 방장님의 정성이 저희에게 꼭 올것같습니다~고행길 기도길 방장님 추위속에서 고생하셨습니다 ~^^
생일상도 차려주시고 후원금까지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치고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랫만에 방장님 후기 읽어보네요 반은 나중에 읽어야겠어요 긴걸음 수고하셨어요 항상 제일추울때 더울때 날씨는 상관없이 다니시는 체력이 부럽습니다 항상 응원 드립니다
글이 길어서 읽기 불편하죠
자료용이니 편안하게 보시고 올 한해도 즐달하시기 바랍니다
천년 고찰 대곡사을 필두로 천연 기념물 소나무로 2부에서도 끝을 맺지 못하는 길고긴 걸음에 ~~~~~ ♡♡
이런들 저런들 수고하셨습니다.
건강 잘챙기시고 ~~~♡♡
걸음이 길어지니 찾아볼곳도 많습니다
먼길 찾아주셨어 감사드리고 조만간에 뵙기로 하겠습니다.
길 따라 지도 보며 방장님 지나신 길과 마을을 봅니다. 때로는 마을로~ 때로는 쓸쓸한 임도로~ ㅋㅋ 방장님 컨셉! 길가다 다들 먹여주시는지? 일부러 행색을 그렇게 하시는 지요?ㅋㅋ 농담입니다. 오래돼 보이는 배낭을 보며 고수의 느낌이 납니다. 작년에 대간 때문에 산 배낭 방장님 배낭처럼 멋진게 돼어야 할 텐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