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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사지에서 바라본 모산재 바위능선 -
남해바다 소매물도를 향해 핸들을 움켜진 손이
단성을 지날무렵 흐릿한 날씨탓에 스르르 풀린다
이런 날씨라면 가본들
그동안 비워논 욕심을 채울 수 있을까..
갑작스런 변심이
때 이른 황매산을 찾게한다
나도 내 마음 모르겠다
일주일 내내 소매물도 풍광만을 마음속에 새겨 왔는데..
훗날을 기약하며 되돌린 마음 서운하기 그지없고
축제전야의 고요가 그리워서..
치장되지 않은 황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파서..
그리 찾아 가노라고 이유아닌 변명을 대며
지척인 황매산 모산재에 스며든다
예상했던 대로 주차장은 썰렁하고
구름사이 언뜻 보이던 푸른하늘 마저
점점히 쟂빛 구름으로 메워져 간다
모산재 암봉을 제대로 즐기려면 봄볕이 비춰야 하는데..
어차피 꼬여버린 실타래 여기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산객이 별로 없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위안 삼으며
영암사지 암자터에 이른다
고개 젖혀 바라본 모산재 암봉능선
치켜세운 암벽위에
하늘을 찌를듯한 기암괴석들이 우글댄다
새순 돋은 소나무에 푸르름이 완연하고
상큼한 솔향이 암봉을 휘감아 피어 오르니 걸음이 가볍다
어느세 몸은 땀으로 멱을 감는다
봄볕에 흘리는 땀은 보약이 따로 없다고 누군가 말했었지
오늘도 보약 두어재는 거져 먹는거라 여기니
두 다리에 힘이 실린다
노년기 화강암은 표면이 거칠어 척척 달라붙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부스러진 돌가루 때문에 미끄러질 위험도 적지않아
한걸음 뗄적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 황포돛대바위-
쉬며 보며 황소걸음 내딛어 철계단을 통과하여
넑직한 황포돛대바위 암반에 여유롭게 올라선다
좌측으로 순결바위 단애가 호사스런 열두폭 병풍을 드리우고
발아래 놓인 대기호수가 올망졸망 아름답게 담겨지는 곳
모산재 최고의 명소인 황포돛대바위
곤룡포 황금돛 달아 가희산야를 호령하며
금방이라도 육중한 암군을 이끌고
질풍노도(疾風怒濤)속을 헤처나갈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 순결바위 능선 -
먼저 오른 아내도 황포돛 그늘에 앉아 다리쉼을 한다
잠시 머물러 가기엔 펼쳐진 비경이 아깝고
올라온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싶어
오랜시간 머무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데서 흘러온 바람인지..
가슴속 깊은곳에서 춘풍이 일자
주름진 황포돛이 활짝 펴지며
서서히 꿈틀거린다
난 이제 큼직한 조타기를 잡고서
그리운 추억의 항해를 시작한다
바람처럼 흔적없이 사라진 기억들
수많은 산과 함께하며 각인된 그리운 시간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추억들을 아로 새기며
모산재 봄날 정오는 그렇게 또 다른 추억이 되어
내 가슴속에 각인된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르는 행렬에서
웃음꽃이 터지자 산정은 떠들썩 해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 산행
정겨운 사람들과 뒤섞여 절경에 취하노라면
행자가 걷는 만행의 길도 아니오
어찌 샘솟는 기쁨을 묵언으로 화답할 수 있을까
다소 시끄러워도 귀에 거슬리지 않아 좋다
무지개터에 올라 부암산과 감암산 누룩덤 조망을 위해
단애를 따르는 호젖한 샛길로 접어든다
기암과 단애가 능선을 따라 즐비하다
암봉과 어우러진 소나무도 절경의 조연을 자처하니
저들이 엮어낸 조화로움이 과히 환상이다
건너편 부암산과 감암산 누룩덤 경치도
이곳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
아! 바로 이곳이 황매의 진경이구나
황홀경에 취한 시선을 쉽게 거두기 어려워
또 다시 오랜시간 머무르게 된다
- 황매산 철쭉능선 -
잠시 모산재 정상에 들러 유부초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곧바로 천황재로 향한다
갑작스레 이 산정을 택했던 이유중의 하나
비워진 황매평전 그 황량함과 축제 전야의 고요함이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철쭉이 수놓을 화려한 축제의 서막 앞에서
난 황매의 진정함을 보고 싶었다
- 황매평전과 천황봉 -
드러난 모습의 이면에는 감춰진 무언가가 존재한다
보여진 모습이 화사할수록
숨겨진 이면은 누추하고 남루하기 쉬운 것
메마르고 헐벗은 황매평전은 짐작했던 대로
막 내린 무대와 비워진 객석 같았다
누런 초지와 앙상한 철쭉가지
그 사이로 텅빈 길이 쓸쓸하다
다시금 배우와 관객이 등장하기 까지
무대와 객석은 잊혀져 초라할 것이다
천황재에서 걸음을 돌려 모산재에 다시선다
떠들석 하던 산정은 인기척 없이
정상비만 덩그러니 남아 너른 산정
긴 그림자를 긋는다
잠시라도 머물러 있다면 쓸쓸함이 사무칠 것 같아
우리도 황급히 순결바위 능선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매무세 가다듬고 조용히 우릴 반기는
순결바위능선
먼저 깍아지른 황포돛대바위가 전모를 보여준다
탄성이 절로 터진다
그 품에 안기어 뜨겁게 달궜던 가슴이 채 식기도 전에
이젠 온몸을 불태워 사르려 하는지
황포돛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마음은 한없이 타오른다
그 뜨거운 열정 빌려
황매가 조각한 환희들을
온전히 가슴에 담아가며
느린 발걸음 아껴 떼기를 다짐하고
나와 아내만의 시공으로 보듬은
순결바위능선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재차 확인해 본다
- 순결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황포돛대바위 -
질기고 억척스런 생명 앞에서 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탐복하며 고뇌하고..
유장하게 흐르는 황매주능 쳐다보며
그리움 하나 떠올려 감흥에 젖어도 보고
소 잔등과 같이 믿음직한 암봉 어루만지며
등 기대 시름놓고
만장반석에 앉아 두 다리 쭉 뻗어 편안히 쉬어도 보고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흥으로..
느낌으로..
침묵으로 걸어
순결바위 앞에 선다
얼룩진 양심이 파르르 떨려오지만
눈을 들어 돌이켜 바라보니
참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랜친구 처럼 다정스런 길이다
- 순결바위 -
아직은 황매를 찾을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여
그 날
황매가 불타오르는 그날에 다시서면
눈물겹게 아름답지 않겠는가
어서빨리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산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