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장날
대은이는 내가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제주도 소주인 ‘한라산 맑은거’를 내놓았다. 그것을 전라북도 부안에서 가져왔다는 김 조가리를 안주 삼아 입에 털어넣었다. 오늘은 10월 23일, 구례 장날이어서 나나 대은이 둘 다 소풍길 앞둔 아이들처럼 조금 조급해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 전날 밤 시 57편을 묶어 출판사로 송고하고 온 길이어서 왠지 모를 허탈감에다가 후련함이 뒤섞여서 몸과 마음이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구례장에 들어서니 잘 익은 단감과 대봉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온통 붉은 빛깔이었다. 거기다가 아침부터 한잔씩 걸친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붉은 빛이 더 붉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일전을 지나니 어물전, 어물전을 지나니 채소전, 채소전을 지나니 약초전…. 올핸 한 번 먹어 보지도 못한 자연산 송이버섯도 눈에 띄었다. 다른 이들도 우리처럼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딱히 장에 내다 팔 것이나 장에 와서 살 것도 없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장에 나온다. 농촌에서의 천연덕스러운 삶에도 힘겨움이 왜 없겠는가. 벼는 탈곡해서 길가에 말려야 하고 저물 땐 거두었다가 다음날 또 말리기를 2,3일 거듭해야 한다. 전기건조기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대농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중소농들은 그런 데 들어가는 비용도 아껴야 하므로 순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든 농부들은 트럭이 있는 마을 젊은이들한테 아쉬운 소리 해 가면서 정미소까지 나락 포대를 옮겨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도 장날이면 모처럼 읍내 행차를 해서 다른 면에 사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시름을 달래보기도 하는 것이다.
대은이와 나는 가야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T자 대형의 테이블 조합에 한 예닐곱 명 앉으면 꽉 차버리는 주점이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중반이나 됐을 초로의 농부들이었다. 자리가 협소해도 비집듯 들어가 앉으면 싫지 않은 표정으로 옆으로 자리를 비껴주는 게 구례사람들이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역시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한 나는 술집에서 자리다툼 때문에 턱없이 싸움질을 벌이던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구례에서는 지금껏 그런 문제로 누군가와 얼굴 붉힐 일이 전혀 없었다. 구례에 온 지 3년. 나 스스로도 구례의 지리산과 섬진강에 동화되고 또 그 산과 그 강에 의해 정화되는 것이리라.
막걸리 한잔 마시고 다시 장에 나서 본다. 온갖 생선, 채소, 약초, 철물, 옷이나 신발 같은 공산품들이 그냥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그 물건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서 당분간 호주머니가 두둑해졌으면 좋겠다. 또한 장 보러 나온 사람들도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생활이 좀 편리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겨울마다 찾아오는 수족냉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추차를 장복할 생각으로 말린 대추 파는 곳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대은이는 어디론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지 한참이나 되었다. 저 버릇을 어떻게 고쳐 놓을까.
첫댓글 구례장까지 가서 싸리비샀는데, 비질 할때마다 싸리가 빠져서 결국 못쓰고 띵겨붐.ㅠ
마데 인 차이나가 다 그러죠 뭐
@송태웅 시집나오면 꼭 사보고 싶습니다. 안내문 하실꺼쥬?
빗자루는 울 아부지가 예술작품 버금가게 잘 만드셔서 (싸리 빗자루, 댑싸리 빗자루, 수수 빗자루, 갈대 빗자루 등)
그 빗자루를 얻어간 사람들은 아까버서 쓰지 못하고 벼름팍에 걸어두고 치다 보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ㅎㅎ
@수연 방빗자루로 좋은거하나와 베란다 청소할때 쓸꺼도 하나가 필요합니다. 수연님 아빠 폰 번호좀 부탁합니다. 010-5601-2009로 문자부탁혀요.
하이고, 울 아부지는 저 세상에 옮겨 가신지 이십년이 넘었구만요. ^^
@땅바닥 예, 그렇게 할 겁니다
벼르고 별러온 23구례장날, 뜻밖의 꼬심을 당하여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려 시월 지리섬진행은 물 건너 가버린.
먼저 머지않아 시집이 나온다하니 이 얼마나 축하할 일인가
그라고
말없이 사라진다고 하는 데 고것이 버릇이 아니고 다 너를 위한 것이니라
어찌 술을 마구 멕여 친구를 구하겠는냐
술꾼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만취를 먼저 간파하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너같은 주책앞에는 피하는게 상책이니라
참나, 꿈보다 해몽이 더 좋구나
대은과 태웅, 한참 숨어 있다가 장날에야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큰 곰들...ㅋㅋ
표현 쥑임.ㅋㅋㅋ
@땅바닥 곰은 나여...클 태, 곰 웅..
시집과 술과 장날과 친구..그리고 구례가 이렇게 아름답게 낙서장을 수놓습니다그려....
ㅎㅎ
잘 됏구먼 내기루 했구먼 시집^^ 내것두 마감하믄 한 잔 허이
그려...
시집 받아보고 싶어요
저두 구례 장날 가끔 어슬렁거려요
수구레국밥 먹으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