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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20210425
성령과 거듭남
요 3:1-16
두 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하늘에 달이 떠 있는데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여자 친구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서 “자기 저기 좀 봐.” 남자 친구가 하는 말 “자기 손가락 길다.” “매니큐어 오늘 예쁘다.”
흔히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말하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때 좋은 일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볼 줄 아는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때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빠져 살지 말고 그 어려움이 가리키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 가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달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까? “라인홀드 니버”는 이 가치를 “궁극가치” “하나님의 나라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이분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라이홀드 니버는 궁극적인 가치를 설명하면서 이 세상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가치, 구체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 권세의 가치, 명예의 가치, 무엇이 나를 재미있게 할 수 있
을 것인가? 무엇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인가? 이런 가치들에 빠져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 궁극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인 가치에 빠져있던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성큼 뛰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공동체 안에 리더가 된다는 것,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야 되느냐? 그 중간에 정의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정의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정의의 가치를 보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되어서도 현실 가치, 구체적인 가치만을 얘기한다는지, 구체적인 가치에 빠져서 정의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리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시각 장애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회를 얻어서 개안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붕대를 풀고 저녁시간에 조금
씩 시력이 회복되면서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영롱한 달빛들을 보았습니다.
새벽에 병원 화단에 가득 피어있는 꽃들을 보았습니다. 활기차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엄마 품에 달려가 말합니다. “엄마, 내가 이 아름다운 세상에, 이처럼 멋진 세상에 산다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았어요?”
“엄마가 진작 말해 주었지. 네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오늘 주시는 말씀 가운데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에 보지 못한 새로운 영롱한 아름다운 꽃밭을 보기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려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숨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윌리엄 폴 영이라고 하는 분이 “오두막”이란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는 영화를 보고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그럽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맥”은 가족 여행 중 사랑스런 막내딸이 연쇄 살인마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해를 당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사랑하는 딸이 살해 당하였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힘들겠습니까?
분노와 절망, 날로 깊어만 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고통스런 이 순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라는 질문을 토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파파”라는 분으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게 됩니다. “맥, 오랜만이다. 보고 싶다. 다음 주말 내가 오두막에 있을 테니 날 만나고 싶으면 오두막으로 오렴.”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맥”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몸으로 딸을 잃은 그 오두막을 찾아갑니다. 오두막에서 맥은 무척 몸집이 큰 흑인 여성 - 파파를 만납니다. 친어머니처럼 파파는 맥을 맞이합니다.
파파는 맥을 살인마의 흔적이 있는 그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딸을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 이해해 줍니다. 파파는 자신의 외아들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 외아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겁니다.
죄없이 죽어갈 때 얼마나 아팠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몸이 찢겨질 때에 내 마음이 구멍이 나고 그가 못 박힐 때에 내 손은 찢겨져 자신의 손도 함께 찢겨졌다고 못자국난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인마를 용서하자고 맥을 달랩니다.
그 다음에 맥 앞에 나타난 예수는 중동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는 맥이 자신의 아픔 그리고 끔찍한 고통에 빠져들자 자신의 고통을 보고 살면 고통을 이길 수 없고 고통은 점점 커져 간다고 말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 깊은 상처로 더욱더 얼룩진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용서만이 사는 길이요 영생의 길임을 가르쳐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을 상징하는 빛나는 얼굴을 가진 “사라유”가 찾아옵니다. 사라유는 맥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도합니다. 그 정원엔 아름다운 꽃들도 있었지만 온갖 지저분하고 잡초들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이 정원은 맥의 마음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꽃밭이기를 원하시지 잡초로 우거진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맥 나와 함께 잡초를 정리할까? 잡초를 함께 정리하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정원은 아름다운 꽃밭으로 정리되어집니다.
그리고 맥에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네가 딸을 잃어버리는 고통 가운데도 네 곁에 있었다. 네가 아파하는 지금도 늘 네 곁에 함께 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맥은 세분 하나님과의 만남, 신비로운 대화와 치유 경험을 통해서 딸을 죽인 그 불쌍한 영혼 살인마를 용서하게 됩니다. 잡초동산 오두막이 어느덧 꽃동산으로 바뀌어집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안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갑니다. 그곳에 부끄러운 비밀을 숨겨놓고 살아가는 사이에 어느새 잡초동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조차도 보여줄 수 없는 은밀한 죄악들, 깊은 상처들, 말하기 조차 부끄러운 분노들을 덮어 놓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하나님에게 조차도 숨기고 싶던 더러운 오두막에 하나님이 먼저 와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그곳으로 초대해서 “얘야 나와 함께 정리하지 않겠니. 이것 정리하고 나면 천국이 펼쳐질텐데, 더러운 억새풀들을 제거하고 나면 하나님이 내게 보여준 꽃동산이 펼쳐질텐데”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딸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이 상처는 저자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겪어온 폭행, 성추행, 왕따, 외도, 자살충동, 투자실패로 인한 극한의 빈곤경험, 절망... 인생여정에서 겪는 모든 고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오두막에서 자신의 고통, 분노, 죄책감, 절망과 영혼이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움과 함께 묶여 있는 사람, 원수와 함께 마음이 묶여 있는 사람, 죄와 묶여 있는 사람, 심지어 사탄과 혼이 묶여져서 행복해야 될 오두막 정원이 잡초로 얼룩져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가 깊을수록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 아파하시는 상처난 하나님의 손, 예수님의 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합니다. 너의 고통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라. 원수를 놓아 주어라. 상처와 분노에 매여 있지 말고 풀어 주어라. 오늘도 너의 오두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구약 성경의 가장 위대한 구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의 배경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니고데모는 파파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사라유가 있는 동산 오두막으로 한밤 중 찾아갑니다. 니고데모는 돈이 많은 사람, 권세가 있었고 깊은 학문이 있었던 도덕적으로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영생의 문제 궁극가치를 논하기 위해서 찾아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뜬금없는 얘기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영혼을 꿰뚫어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거듭나지 아니하면 궁극가치, 하나님의 나라 가치, 하나님의 나라 자체를 볼 수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니고데모는 더욱 엉뚱한 얘기를 합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단 말입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핵심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3:5-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지금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만나고 계신 이 곳은 감람산 기슭이었습니다. 밤이어서 높이 솟아 있는 달이 구름사이로 지나갑니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밖을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여, 바람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구름이 지나가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지 않소.”
“성령님의 일도 이처럼 신비한 것입니다.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 가치를 얻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성령의 바람처럼 와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홀연히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가슴에 안고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오셨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답니다.
성령님이 오셔야 하나님이 우리 파파 아버지 되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이유없이 죄 없이 죽으신 것이 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가 받은 세례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공인의 순서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므로 오늘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이고 지구가 열 번 깨졌다 다시 세워진다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또 다른 성경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내 인생의 구세주란 사실이 믿어지셨습니까?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데 조금도 의심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것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까? 성령님이 오셔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까? 여러분의 오두막에 성령님이 함께 사십니까?성령님은 내 인생 오두막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1장 2절 “하나님의 영”이란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어떤 영이란 뜻이 아닙니다. The Sprit of God. 하나님. 성령님이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 오두막에 오셔서 내 인생의 오두막이 잡초로 얼룩져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 잡초 덩어리를 천국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상처는 치유될 것입니다. 분노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질병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불행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옥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곳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로 임하게 되는 것을 성령님 우리로 하여금 경험토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내 마음의 정원에 보내주신 그 성령님은 보혜사라 말합니다.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치유자입니다. 영적인 치유와 문제의 아픔들을 진정으로 고쳐주실 분은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이 세상의 위로는 순간적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위로자가 되십니다.
인간은 상담을 한다고 하지만 온전한 상담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내 인생의 상담자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인생의 문제를 상담해 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며,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믿어집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있든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 내가 실수하여 쓰러져 넘어져 있을 때에도 그곳에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맥이 자신의 딸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이 순간에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가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아파하시면서 내 등 뒤에서 나를 부르며 따라오고 계시는 그 분. 이 사실을 두고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할 때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인격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한 번에 찾아와서 위로, 한 번의 치료, 한 번의 상담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와 함께 기뻐하길 원하십니다. 내가 승리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내가 하나님을 떠날 때에 나 때문에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내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위해 선한 계획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성령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성령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과 친밀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분은 불이십니다. 내 영혼 잡초를 불태워 소멸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물이십니다. 얼룩진 상처들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바람이십니다. 온갖 먼지, 쓰레기들을 일순간에 날려버리시는 분이십니다. 내 믿음이 흔들거리지 않도록 도장을 찍어서 너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영원토록 구원을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확증해 주시는 도장같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사역을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거듭나게 나게 하시는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인 거듭남, 중생의 선물을 허락해 주십니다.
스타인 백이란 화가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교회와 교인들에게 파는 직업적 화가였습니다.
어느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스타인백의 집에 부모와 함께 온 한 아이가 화실에 들어왔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저분은 왜 저렇게 나무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어요?”
“응, 이분은 예수님이란 분이야. 하나님의 아들이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거란다.” 철없는 아들이 말합니다.
“그럼 나 죄 때문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럼 아저씨의 죄 때문에 돌아 가신다구요?”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린아이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 때문에요? 아저씨의 죄 때문에요?”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두손 들고 항복했습니다.
“오 주여, 수없는 당신을 그림으로 그렸지만 당신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그리면서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당신이 행하셨던 교훈과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그림으로 그렸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내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내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을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나의 모든 그림은 이제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림 앞에서 엄청난 회개와 거듭남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이 없이 그림을 그리면 성경에 일어났던 그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늘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면 오늘 듣는 말씀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일어난 메시지들이, 가치들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교훈과 천국에 대한 비전은 내 꿈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은 그분이 피를 흘리심은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과 승천은 나의 부활이요 내가 주님 앞에 들리움 받을 것을 확증해 주시는 사건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의 상처의 오두막이 천국으로 바뀌어 지게 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잡초 동산이 변하여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변화된는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을 환영하십시다. 성령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십시다.
오늘 다시 한번 성령님이 내 마음 중심에 오시도록 마음 문을 활짝 여십시다. 세상에서는 숨길 수 있었습니다. 덮을 수 있었습니다. 감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추지 마십시다. 보여드리십시다. 모든 것을 그분에게 열어 보여드리십시다. 오셔서 그분이 잡초를 제거해 주시고 그분이 나를 기다렸던 그 곳에서 나를 반겨 맞아 새로운 세계로, 새하늘과 새땅에 영광스런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이 견고한 자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고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키고 성령께서 내주 하셔서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하시며, 우리의 인생이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늘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심으로 행복하고 평강이 충만하여 늘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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