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탄력성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드리는 경고:
인생의 탈로(Derailment)
인생의 6부 능선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하다. 누구나 인정한다. 고난을 버텨내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며, 좌절의 더미 위에 성취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쌓아온 근력은 부정할 수 없는 실재다. 문제는 그 근력이 어떤 근력인지다.
6부 능선에 이르기까지 근력으로 만들어지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안티프래질러티(Antifragility)는 겉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고난 앞에서 버텨내는 모습은 동일해 보인다.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행위도 같다. 그러나 그 일어섬의 이유가 다르고, 그 근력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회복탄력성의 근력은 넘어지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힘이다. 안티프래질러티의 근력은 존재목적(Existential Purpose)이라는 힘줄 위에서 차이와 반복을 통해 방향을 가지고 축적된 힘이다. 6부 능선까지 이 두 근력의 차이는 결과의 차이로 드러나지 않는다. 둘 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성공적으로 능선을 오른다. 둘 다 성공처럼 보인다. 함정은 7부 능선을 넘어 8부능선을 넘어 마지막 고지에 이르는 여정에 숨겨져 있다.
6부 능선에 도달한 리더는 이미 충분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 이 근력의 결과로 사회적 인정, 조직 내 권력, 축적된 재산, 견고한 평판도 손 안에 들어와 있다. 이들은 재력, 권력, 명예로 자신의 편안한 오두막을 짖고 이 오두막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인지는 그들을 지탱하는 근력이 무슨 근력인지가 결정한다.
충분한 성공을 이룬 리더들에게 은밀하게 찾아오는 착각이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와 권력과 재산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것이 곧 자신이 약속한 존재목적을 완수하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더 많이'가 '더 나은 방향'을 대체하는 순간, 근력은 이미 방향을 잃고 철로를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한다. 철로를 벗어나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탈로(Derailment)다.
탈로는 무능한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강해진 사람,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 찾아온다. 탈로한 사람들은 능력이 부족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근력을 만든 존재목적을 잊었기 때문에 무너진다. 방향을 잃은 근력은 강해질수록 더 위험해진다. 눈 먼 골리앗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무서운 파괴를 일으킨다. 한창 매스컴 등에서 날리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추락한 리더는 모두 회복탄력성의 근력을 가진 리더들이다.
¤ 7부 능선에서 기다리는 파멸의 여신:
세이렌
그리스 신화에 세이렌(Siren)이라는 존재가 있다. 바위틈에 숨어 고혹적인 노래로 항해자들을 유혹하여 배를 침몰시키는 여신이다. 세이렌의 노래는 아름답다. 저항하기 어렵다. 수많은 배가 그 노래에 홀려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았다. 오늘날 우리가 경보음을 '사이렌(siren)'이라 부르는 어원도 여기서 왔다. 스타벅스의 로고가 세이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커피 한 잔으로 사람의 영혼을 붙잡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고, 세이렌이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7부 능선을 오른 리더 앞에 나타나는 세이렌은 권력의 얼굴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물의 목소리로, 때로는 인기의 향기로, 때로는 더 큰 명성의 빛으로 다가온다. 이것들 자체가 도파민 중독을 일으킬 정도로 자극적이다. 문제는 이들 세이렌이 존재목적의 자리를 차지할 때다. 세이렌의 노래는 언제나 같다. '지금 이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여정의 완성이다.' 이 노래에 영혼이 홀리면 방향을 잃고, 탈로는 그렇게 시작된다.
캠벨(Joseph Campbell)이 분석한 영웅 서사 3막 구조에서, 1막의 가출과 2막의 고난 여정을 완수한 사람이 3막의 마지막 여정인 귀환의 여정까지를 완수한 사람은 3~7%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돌아올 근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3막의 귀환 여정, 즉 자신이 고난 끝에 찾아낸 존재목적의 밀알을 고향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돌아가는 마지막 여정에서 세이렌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는 데 10년이 걸린 것도, 2단계의 전쟁은 근력의 문제였지만 3단계의 귀환은 세이렌을 이기는 탈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 오디세우스와 오르페우스
세이렌의 유혹이 가득한 협곡을 통과한 두 사람과 그들이 사용한 차별적 전략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오디세우스의 전략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항로에 세이렌이 있음을 미리 알고 선원들의 귀를 막고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어 통과했다. 유혹의 존재를 직시하고,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의 기둥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전략이었다. 이것이 안티프래질러티를 가진 리더가 구축하는 가치의 울타리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 그 선언이 돛대가 된다.
두 번째는 오르페우스의 전략이다. 황금 양털을 찾아 항해한 시인 오르페우스는 세이렌의 협곡 앞에서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세이렌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고 더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세이렌이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압도되어 스스로 침묵했다. 오르페우스의 전략은 단순한 억제가 아니다. 존재목적이라는 플롯으로 구성된 삶의 서사가 어떤 유혹보다 더 강한 인력(引力)으로 작동할 때, 리더는 세이렌을 굴복시키는 시인이 된다. 성경에서 욥이 오디세우스의 전략으로 사탄의 유혹을 견뎌냈다면, 다윗은 시편의 찬송이라는 오르페우스의 전략으로 세이렌을 압도했다.
두 전략의 공통 전제가 있다. 모두 회복탄력성의 근력이 아니라 안티프래질러티의 근력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가치의 울타리는 존재목적이라는 힘줄이 있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존재목적의 플롯이 삶에 깊이 새겨진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 회복탄력성의 근력을 가진 사람은 돛대가 없다. 세이렌의 노래보다 더 깊은 서사도 없다. 그 순간 세이렌의 협곡은 그를 삼킨다.
회복탄력성이 배반하는 방식은 교묘하다. 그것은 리더를 7부 능선까지 충실히 섬긴다. 고난 앞에서 버티게 하고, 실패 앞에서 일으켜 세운다. 그 섬김이 너무 충실하기 때문에 리더는 회복탄력성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그런데 7부 능선을 넘어서는 순간, 회복탄력성은 그 신뢰를 이용해 리더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배반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구분을 빌리면, 회복탄력성은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를 향한 근력이다.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힘, 실패로부터 복원되는 힘. 그러나 7부 능선 이후가 요구하는 것은 '~를 향한 자유(Freedom for)'다. 자신의 존재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힘. 회복탄력성은 이 전환에 응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남게 해준 알고리즘, 즉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더 강하게 붙들도록 리더를 과거에 묶는다. 강해질수록 더 깊이 과거에 갇히는 아이러니가 회복탄력성의 최후 배반이다.
어느 정도 성공하고 추락하는 모든 리더는 회복탄력성의 근력으로 성공해서 결국 세이렌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너무 강해서 무너진 사람들이다. 회복탄력성의 근력을 안티프래질러티의 근력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충분한 성공을 존재목적의 완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탈로했다. 탈로는 실패가 아니다. 탈로는 방향을 잃은 성공의 이름이다.
¤ 9부 능선을 완주하는 사람들
9부 능선을 완주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근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근력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끝까지 잊지 않고 이 방향으로 근력을 유지한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안티프래질리티의 근력은 세이렌의 협곡 앞에서 돛대에 자신을 묶는 힘이 있다. 더 나아가 세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힘도 있다. 존재목적으로 정렬된 안티프래질러티의 근력은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가지고 강하다.
빛이 무작위로 흩어지면 아무 힘도 내지 못하지만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쇠를 뚫는 레이저 빔이 되듯, 존재목적으로 정렬된 근력만이 세이렌의 협곡을 통과하고 마지막 귀환의 여정을 완수한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과 안티프래질러티를 가진 사람의 차이는 결국 힘줄의 방향, 즉 존재목적의 유무에서 결정된다.
초뷰카(Hyper-VUCA) 세상에서 진성리더(Authentic Leader)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회복탄력성을 길러 어떻게 더 강하게 버틸 것인가'가 아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한 근력을 만들고 있는가'의 질문을 8부 능선에서 멈추고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리더만이 탈로를 피하고, 세이렌의 협곡을 건너, 존재목적이 약속한 고향으로 돌아온다.
회복탄력성은 우리를 6부 능선까지 충실히 섬긴다. 그러나 7부, 8부, 마지막 9부 능선에서 세이렌이 나타날 때, 회복탄력성은 우리를 반드시 배반한다. 그 배반을 막는 유일한 방패는 존재목적이라는 힘줄 위에 차이와 반복으로 쌓아온 안티프래질러티(Antifragility)의 근력이다. 이것이 초뷰카 시대에 인간이 길러야 할 진정한 존재우위(Existential Advantage)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명예교수 윤정구
홈페이지: http://nlearner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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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per vuca
초부카(Hyper-VUCA)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극도로 심화된 현대 사회를 뜻하며, 과거의 방식이나 경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의미합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실물 거래의 결합 등으로 위기가 상시화되어, 경쟁보다는 협력과 가상 실험을 통한 빠른 시행착오가 생존 전략으로 요구됩니다.
¤ 핵심 개념 및 특징
VUCA의 심화: 기존의 예측 불가능한 사회를 나타내는 용어(VUCA)를 넘어, 위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상태.
위기의 상시화: 디지털 전환 등으로 인해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예측이 불가능하여 위기가 일상적인 상수(constant)로 작용.
¤ 대응 전략: 단순한 경쟁이 아닌 협력(Collaboration), 지혜, 가상 실험 등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
교육/경영: 전공과 교양의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적 사고와 조직적인 위기 관리 능력이 요구됨.
초부카 시대는 대학 교육의 혁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리더십 변화 등을 촉구하는 새로운 경영 환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