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불패(東方不敗)
최용현(수필가)
1990년, 중국 최고의 무협작가 김용의 동명(同名) 소설을 대폭 수정하여 영화화한 ‘소오강호(笑傲江湖)’가 개봉되어 무협영화의 최고봉이라는 평을 들으며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92년에 나온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東方不敗)’는 이 영화의 속편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장안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소오강호’부터 살펴보자. 소오(笑傲)는 비웃는다는 뜻이고, 강호(江湖)는 어지러운 속세를 의미하는 것이니, 소오강호는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명나라 황궁의 서고(書庫)에 자객이 침입하여 최고의 무공비록인 규화보전(葵花寶典)을 훔쳐간다. 동파 실력자인 환관 창공은 내부자의 소행으로 판단하여 심복 구양전(장학우 扮)을 시켜 최근에 사직하고 낙향한 서파 금위무사의 집을 포위한다.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 扮)이 사부 악불군의 명을 받아 사부의 딸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금위무사의 집을 찾아오고, 창공은 좌냉선이라는 악명 높은 무림고수를 고용한다. 좌냉선은 금위무사와 그의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하는데, 금위무사는 죽기 전에 영호충에게 규화보전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규화보전을 차지하기 위해 창공과 악불군이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이지만, 정작 규화보전은 구양전의 손에 들어간다. 악불군의 파렴치한 전력(前歷)을 알게 된 영호충은 그가 규화보전 때문에 또다시 사제들을 핍박하자, 새로 익힌 독고구검으로 그를 응징하고 그의 딸과 함께 길을 떠난다.
‘동방불패’에서는 전편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주요 인물들도 그대로 나오는데, 배우들은 묘족 여전사 남봉황(원결영 扮)만 빼고 모두 새 얼굴로 바뀐다. 아마도 ‘동방불패’가 전편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리라.
영호충(이연걸 扮)은 강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그 여인이 동방불패(임청하 扮)인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전편 말미에서 규화보전을 손에 넣은 구양전이 스스로 거세(去勢)하고 치열하게 무공을 익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올랐으나 외모가 여성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무위(武威)로 강호를 평정한 동방불패는 묘족들이 믿는 일월신교의 교주 임아행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사무라이들과 손잡고 황제의 자리까지 차지하려는 야심을 키워가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숨긴 채 영호충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으니….
영호충은 그 여인을 찾아갔다가, 문 앞에서 저지하는 무사들과 싸우게 된다. 그러다가 동방불패에게 혈도를 찍혀 정신을 잃은 채 지하 감옥에 갇히고 만다. 정신이 든 영호충은 그곳에서 쇠사슬에 묶여있는 흡성대법의 대가 임아행을 발견하고 함께 탈출한다.
영호충이 밤에 또 찾아오자, 동방불패는 함께 있던 애첩을 자신으로 변장시켜 그와 동침케 한다. 그 사이 동방불패 일당의 습격을 받은 화산파 문도(門徒)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이에 격분한 영호충은 기력을 회복한 임아행과 채찍의 고수인 그의 딸 임단주(관지림 扮) 등과 함께 동방불패의 거점으로 쳐들어간다.
이때, 영호충은 그 여인이 동방불패라는 것을 알게 되고, 차마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는 동방불패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옥탑이 무너지면서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영호충은 날아가 동방불패를 안아든다. 그리고 ‘어젯밤 나와 동침한 여자가 당신이 맞소?’ 하고 묻는다. 동방불패는 ‘말해주지 않겠어. 평생 나를 생각하며 후회해.’ 하며 영호충을 밀쳐내고 추락하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자신의 이름대로 ‘해가 동쪽에서 뜨는 한 패하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해하던 동방불패.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무공을 지니고도 한 남자에 대한 연정 때문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동방불패. 이 여인을 연기한 만 38세 임청하의 농익은 미모가 당시 중년남자들의 가슴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영화 중간쯤에, 무림계를 은퇴하는 두 원로가 영호충과 함께 탄 배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소오강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좌냉선의 기습으로 한 원로가 중상을 입자, 두 원로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악기를 영호충에게 넘겨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滄海一聲笑滔滔兩岸潮 창해의 도도한 파도가 해안을 때리며 한바탕 웃는구나.
浮沈隨浪只記今朝 물결 따라 흘러오다가 오늘도 아침을 맞이하네.
滄天笑紛紛世上滔 푸른 하늘이 미소로 어지러운 세상을 내려다보네.
誰負誰剩出天知曉 이기고 지는 것은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다네.
江山笑煙雨遙 강과 산들이 웃으면서 안개비를 맞는구나.
濤浪濤盡紅塵俗事知多少 격랑이 일었다 가라앉으니 세상은 여전히 번잡하구나.
淸風笑竟惹寂寥 맑은 바람에 미소 지으니 불현듯 외로움이 밀려오네.
豪情還潛一襟晩照 사나이 가슴에 다시 저무는 저녁노을이 머무네.
蒼生笑不再寂寥 세상 만물이 웃고 있으니 다시는 외롭지 않을 것이네.
豪情仍在癡癡笑笑 사나이 그렇게 어리석어도 호탕하게 웃으며 살아가리라.
이 곡은 영화 ‘소오강호’와 ‘동방불패’에서 각각 서너 번씩 나온다. 가사는 약간 감상적이지만 가락은 호방하면서도 기개(氣槪)가 넘친다. 무협영화 주제곡에 이토록 매료되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곡은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이 노래 가락을 흥얼거렸으니까.
‘소오강호’가 규화보전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동방불패’는 무림고수들의 현란한 무예에 남녀주인공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절묘하게 버무렸다고 할 수 있다. ‘동방불패’의 화려한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진 ‘동방불패2’는 왕조현의 빼어난 미모 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방불패 역의 임청하는 중성 적 매력으로
남심과 여심 모두를 사로잡았다고 할수 있지요
지금은 고운 할머니 모습이지만.. 리즈 시절엔
그 중성적 매력에 모두들 좋아했었다는... ㅎㅎ
한때.. 장국영이 임청하를 짝사랑 했다고 하던데...
규화보전을 손에 넣고 스스로 거세하고 치열하게 무공을 익혀서 여인이 되었으니
동방불패가 중성적 매력을 풍기는 건 당연한 듯...
실제로 임청하에겐 묘한 중성적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죽은 장국영이 2년 연상인 임청하를 좋아했군요.
임청하.한때는 속으로 무쟈게 사랑했던 여배우중의 한사람입니다.약간옆으로 눈매를 치뜨면 나를 홀겨보는것인지? 좋아하는것인지? 감을 못잡을정도로 설레였던 그 눈매랍니다 아하~ 이글을 쓰는지금도 그 미소를 머금은 야릇한 눈매가 떠오르네요.얼마전에 다시한번 영화를 봤는데 그때는 그눈매 가 사라져아쉬웠습니다. 소호강호 노래.지금도흥얼거릴정도로 멜로디가 아주 친숙합니다.무림의 비정함을 이노래로 따스하게 만들었다해도 과언이아닐정도로 힘있고 슬프고 모든감정이 함축되어있는노래라고 생각합니다.글 잘보았습니다.지금외국에 나와있어 자주 못들어와서 죄송하구요.^^
임청하는 저와 동갑내기 여배우죠. 묘한 중성적 매력을 지닌...
소오강호 노래는 워낙 박력있고 경쾌하면서도 묘한 슬픔이 배어있죠.
누구나 한번만 들으면 그 멜로디를 잊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어요.
언제 귀국하시어 시간날 때 쇠주라도 한 잔 나누었으면 싶네요. 리치맨, 수기리 님 등과...
@월산처사 이제사 답장 드립니다.11월초에 들어가니 그때 연락드리겠습니다.ㅎㅎ
@영도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회원님 ^^
네 반갑습니다.
정말 그때 무협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합니다....멋진 글 감사합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아련하네요
그러신가요
반갑습니다 회원님 ^^
네 반갑습니다.
임청화 나이를 먹어는되도 여전히 미인이시대요
네, 원판이 워낙 뛰어나니까...
동방불패 이때 임청하를 보고 매력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랬었죠. 임청하 팬이 엄청 많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