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가을이 깊어 갑니다.
풍요롭고 결실의 뜨락에 흥이 겨워야 할 이즘에
뜻하지 않은 태풍(매미)의 난리에 온 산하가 심한 아픔을 겪고 있다니,
인정머리 없는 내 가슴도 아프답니다.
그대,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즐거워야 할 추석이 여름내 그칠 줄 모르던 빗줄기에
모든 게 어설퍼 반갑지 않을 것 같았는데,
고향 오가는 길이 붐비는 걸 보니
그래도 가족의 소중함과 추석이 갖는 커다란 의미를 되새기게 하더군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요...
나 또한 고향의 품과 부모형제가 있는 시골집(익산 용동면)에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더 작아지신 것 같은 어머니가 제일 먼저 반겨 주시고
점점 아버지를 닮은 것 같은 형님들이 웃음으로 맞아 주는 내가 태어난 집.
철부지 시절 부모님 품을 떠나
명절 때 부풀어 내려가던 마음과는 사뭇 다른 것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지요?
그래도 세상의 풍파를 녹여 주는 곳은 뭐니 해도
고향의 울타리요, 내가 자란 들판이 최고인 듯 싶었습니다.
모든 근심걱정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곳은
언제나 어머니 언저리였으니까요...
추석 전날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솔잎을 따서 깨끗이 씻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조카들은 만두처럼 빚었음)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우며 보냈습니다.
참,
"나는 송편을 먹지 않으니 빚지 않겠다"던 작은 형님이
막내동생의 딸내미(조카딸)의 재롱과 함께 송편 반죽을 했던 것은
정말이지 획기적인 사건이었답니다.
알죠?
제사/차례상 차림은 해도 형님들은 이런 일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사실...
★★★만월(滿月)
파고드는 그리움처럼
안개 속에서 추석 달을 보다가
그대도 소원을 빌어 보았는지,
거기에 비친 그대 모습을 보다가
까닭없는 눈물에
왜 담배 맛은 싱거운 건지,
한참을 서성이다가
그렇게 안개 속에서 달은 차갑고
그대에게 가는 길
또 잃었네.
가만히 부서지던 황금 달빛아래
송편 빚던 그대의 곱던 손가락
반달로 앓던 나의 견비통(肩臂痛)도 잠재우던,
소쩍새 울던 가난한 고향 마당
담 넘어가던 동세(同壻)들의 웃음소리
못내 그리워서 기웃댔는가
둥근 달 속에 어리던 그대 얼굴...
(2002년 추석에)
느즈막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우리 면(面)을 돌았습니다.
6년 동안 뛰놀던 국민학교(초등학교)와,
그 학교엔 어느 비가 와도 나무 밑은 젖지 않는
두 그루의 낙우송(메타세콰이어?)이 있습니다.
어릴 때 동무네 집에 그냥 다녀왔던 길을
이번엔 [동창 카페]에 올리려 푸르름만 넘실대는
들판의 길들을 따라서 찬찬히 다녀 보았습니다.
그저 시골스런 이름들,
흥왕/와동/돈다산/신왕/화배/고창/양촌/화실/연화/신화/창목/용성/구산/대조/두무
마을들의 사진을 찍으며 예전엔
고무신 찔벅거리며 서로 비켜나지 못하게 좁았던 논둑길이,
차도 비켜나게 넓어진 길을 구르면서 다닐 수 있다는 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강산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산도 없는 고장-그래도 소풍도 다녔던 작은 산은
애계, 왕릉(王陵)보다도 작게 보여 버리니
세월의 묘술은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가
나의 욕심만 세파에 찌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잠시 살았던 곳이
한두 해만 안 가 봐도 길이 바뀌고,
동네 형태도 재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어느 순간 나의 생(生) 한 토막을 베어내듯
사방도 알 수 없이 순식간에 변하기 마련인데,
고향은 어느 마을로 향하든 가는 길은 사라지지 않았고
도심처럼 동네 형태도 바뀌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낮고 초라했던(그러나 포근했었던) 집들이 새로 지어지고
보이지 않던 꽃들도 텃세부리고 있더이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다녀오고,
몸이 불편한 작은아버지도 뵙고 왔습니다.
동네 청년회의 풍물놀이도 못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결국 보름달도 보지 못하고
그대의 안녕과 가을의 풍요를 비는 달맞이도 못했습니다.
그 때부터 태풍 [매미]가 이 땅을 슬픔으로 몰고 갔었나 봅니다.
지역적 특성으로 위력을 실감할 수 없었던 태풍...
그대,
내가 항상 말했던 걸 기억하나요?
우리 고장은 무엇하나 빼어난 것
예를 들어 명승지나, 높은 산, 계곡, 특산농산물은 없지만
평범한 평야에 순박한 사람들만 모여 순리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의 고장이라고...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비바람만 조금 심란했을 뿐
우리 고장은 어느 한 곳 피해주지 않았답니다.
뉴스로 보는 남녘과 다른 고장의 처참함이 안타까웠습니다.
부산의 지기(知己)는 별일없느냐는 핸드폰 메일을 날렸더니
해수욕장이 사라지고 나무들이 쓰러졌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만
올 추석도 그렇게 아무런 탈이 없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대, 나의 이야기만 주절거렸습니다.
그대도 올 추석 잘 지내고 외로움의 무게 조금 덜어냈는지요?
추석이 지나고 나니
조석(朝夕)으로 조금 쌀쌀해진 느낌이며,
여느 해와 다름없이 창 밑에선 귀뚜리의 세레나데는
깊은 담배연기만 폐부로 아침안개처럼 깔립니다.
그대, 뜨거운 날들은 이제 갔나 봅니다.
어디선가 해묵은 사연 태우는 연기가 스며 오고
긴 그림자 우수에 젖어 술맛을 돋우며 흔들립니다.
생각이 고이고, 시간도 익나 봅니다.
세월이 환란(患亂)스러워도 그대에게 가는 맘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름날 땡볕의 그림자는 희멀건 하니 성가시기만 했는데
가을의 그림자들은 왜 이리도 무겁게 끌어당기는 겁니까?
그 그림자 뒤로 웃는 그대가 늘 보고싶습니다.
그대,
늘 하는 말-용기 잃지 마십시오.
시간은 모든 걸 다시 사랑하게 하고, 넉넉해지고,
자연재앙에 아팠던 마음들도 부드럽게 만들 테니까요.
비로 시작되어 비로 끝이 날 것 같은 상심의 가을이
한편으론 센티해지고 차분해지는 건,
무릇 익어가는 알곡들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순리와
모든 생명들은 나이들면 철이 드는 이치겠지요?
이 가을,
험난한 시간을 딛고 또 의젓하게 다가온 계절은
많은 생각을 키우며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이 밤 또다시 비 내립니다.
빗물에 젖는 가로등이 쓸쓸하다못해 측은합니다.
여름내 축축하던 가로등,
옛날 헤어지기 싫어 가로등 그림자 뒤에
숨어들던 그 때 기억하지요?
비가 오는 날은 한적해서 좋았던 가로등 밑의 우산 속...
아련한 향수의 가로등이 마를 날 없이
또 빗줄기에 굽어진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밤입니다.
이젠 비가 밉네요.
그대,
세상 탓, 자연 탓을 말고 우리 섭리(攝理)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싶습니다.
나는 언제나 지친 그대 퇴근길의 가로등이 되어있을 테니까요.
★★★거미줄
그대,
하루종일 짜 둔 그물
치렁치렁 펼쳐도 되겠습니까?
이제 나도
그대가 좋아하는 꽃등 켜 들고
집으로 오는 길 후미진 곳에
아슴한 가로등으로 서 있겠습니다.
서서히 술에 젖은 어둠 비틀비틀
골목에 유행가 몇 가락 고단한 저녁,
그대의 생(生) 어디쯤에 투망하면
이슬처럼 티끌없는 진실 하나 포획할 수 있을까
지샌 밤 또로록, 눈물겨운 구슬 몇 말
술 깨면 도로 잊혀지는 얼굴인데
가슴에 고일새 없이 멀어지는 사람아!
(2003/09/05 서울)
첫댓글 용동에서 지내면서 새삼스럽게 너무도 작은 고장이구나. 올라 갈 산도 보물도 유적도 하나 없지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보내는 곳 그 곳이 작지만 큰 우리의 고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