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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十四回 荀林父縱屬亡師 孟侏儒託優悟主
제54회: 순림보가 부하를 풀어놓아 군사를 잃고, 광대 우맹이 초장왕을 깨우치다.
話說,晉景公即位三年,聞楚王親自伐鄭,謀欲救之。乃拜荀林父為中軍元帥,先穀副之;士會為上軍元帥,郤克副之;趙朔為下軍元帥,欒書副之。趙括趙嬰齊為中軍大夫,鞏朔韓穿為上軍大夫,荀首趙同為下軍大夫,韓厥為司馬。更有部將魏錡、趙旃、荀罃、逢伯、鮑癸等數十員,起兵車共六百乘,以夏六月自絳州進發。到黃河口,前哨探得鄭城被楚久困,待救不至,已出降於楚,楚兵亦將北歸矣。荀林父召諸將商議行止。士會曰:「救之不及,戰楚無名;不如班師,以俟再舉。」林父善之,遂命諸將班師。
한편, 진경공(晉頃公)은 즉위 3년에 초장왕이 친히 정나라를 친다는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구원하려고 했다. 이에 순림보를 중군 원수로 삼고, 선곡을 부원수로 삼았으며, 사회를 상군 원수로 하고 극극(郤克)을 부원수로 했고, 조삭을 하군 원수로 하고 난서(欒書)를 부원수로 했다. 조괄(趙括), 조영제(趙嬰齊)는 중군 대부에, 공삭(鞏朔), 한천(韓穿)은 상군 대부에, 순수(荀首), 조동(趙同)은 하군 대부로, 한궐(韓厥)은 사마로 임명했다. 그 밖에 위기(魏錡), 조전(趙旃), 순앵(荀罃), 봉백(逢伯), 포계(鮑癸) 등 10여 명은 부장(部將)이 되어, 전차 600대를 동원하여 그해 여름 6월에 강주(絳州)를 출발하여 황하구(黃河口)에 도착했다. 정탐병이 탐지하여, 정나라 도성이 초나라의 공격에 오래 시달리다가 기다리던 구원군이 당도하지 않아 이미 초나라 군대에 항복하고, 초나라 군사들도 또한 장차 북쪽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라고 했다. 순림보가 여러 장수를 불러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상의했다. 사회가 말하기를, “정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나 미치지 못했으니 초나라와 싸울 명분이 없습니다. 군사를 돌려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순림보가 좋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여러 장수에게 회군할 것을 명령했다.
中軍一員上將,挺身出曰:「不可,不可!晉能伯諸侯者,以其能扶傾救難故也。今鄭待救不至,不得已而降楚,我若挫楚,鄭必歸晉。今棄鄭而逃楚,小國何恃之有?晉不復能伯諸侯矣!元帥必欲班師,小將情願自率本部前進。」荀林父視之,乃中軍副將先穀,字彘子。林父曰:「楚王親在軍中,兵強將廣,汝偏師獨濟,如以肉投餒虎,何益於事?」先穀咆哮大叫曰:「我若不往,使人謂堂堂晉國,沒一個敢戰之人,豈不可恥?此行雖死於陣前,猶不失志氣。」說罷,竟出營門,遇趙同趙括兄弟,告以:「元帥畏楚班師,我將獨濟。」
중군의 한 상장이 나와서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진(晉)나라가 능히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제후국이 기울면 붙들어주고 어려울 때 구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나라가 구원병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부득이 초나라에 항복하였는데, 우리가 만약 초나라를 좌절시킨다면 정나라는 틀림없이 진(晉)나라 편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정나라를 버리고 초나라 군사를 피해 도망친다면 작은 나라들이 어찌 우리를 믿겠습니까? 그러면 진(晉)나라는 다시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원수께서 반드시 군사를 돌리고자 한다면 소장만이라도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겠습니다.” 했다. 순림보가 보니 중군 부원수 선곡(先穀)으로 자가 체자(彘子)였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초왕이 직접 군중에 있고, 군사들은 강하고 장수들이 많은데 그대가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혼자 건너간다는 것은 마치 고기를 굶주린 호랑이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소?” 했다. 선곡이 울부짖으며 크게 외치기를, “내가 만약 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당당한 진(晉)나라에 용감하게 싸울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할 것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가서 비록 진영 앞에서 죽더라도 저는 뜻을 꺾을 수 없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 마침내 영문 밖으로 나가다가 조동과 조괄 형제를 만나 고하기를, “원수가 초나라 군사들을 두려워하여 회군하려고 하니, 나 혼자만이라도 황하를 건너가 싸우겠소.” 했다.
同括曰:「大丈夫正當如此。我弟兄願率本部相從。」三人不秉將令,引軍濟河。荀首不見了趙同,軍士報道:「已隨先將軍去迎楚軍矣。」荀首大驚,告於司馬韓厥。韓厥特造中軍,來見荀林父,曰:「元帥不聞彘子之濟河乎?如遇楚師,必敗。子總中軍,而彘子喪師,咎專在子。將若之何?」林父悚然問計。韓厥曰:「事已至此,不如三軍俱進。如其捷,子有功矣。萬一不捷,六人均分其責,不猶愈於專罪乎?」林父下拜曰:「子言是也。」遂傳令三軍並濟,立營於敖鄗二山之間。先穀喜曰:「固知元帥不能違吾之言也。」
조동과 조괄이 말하기를, “대장부라면 이같이 바르고 옳아야 합니다. 우리 형제도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뒤를 따르겠습니다.” 했다. 세 사람이 원수의 명령을 듣지 않고 휘하 군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넜다. 순수(荀首)가 조동이 보이지 않아 물으니, 군사가 보고하기를, “이미 선곡 장군을 따라 초나라 군사와 싸우러 갔습니다.” 했다. 순수가 크게 놀라 사마 한궐에게 고하자 한궐이 중군으로 달려가 순림보를 만나 말하기를, “원수께서 체자(선곡)가 황하를 건넜다는 것을 모릅니까? 만약 초나라 군사를 만나면 틀림없이 패할 것입니다. 원수께서 중군을 총지휘하는데, 체자가 군사를 잃으면 그 허물이 원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장차 어찌할 것입니까?” 했다. 순림보가 깜짝 놀라 대책을 물었다. 한궐이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삼군을 모두 전진시키는 게 낫습니다. 만약에 이기게 되면 원수의 공이 될 것이며, 이기지 못하더라도 여섯 사람의 대장들이 그 책임을 나누어서 질 것이니, 혼자서 죄책을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하니, 순림보가 아래로 내려와서 절을 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소.” 하고, 마침내 삼군에 명령을 내려 황하를 건너서, 오(敖)와 호(鄗) 두 산 사이에 진영을 세웠다. 선곡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본디 원수가 내 말을 어기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했다.
話分兩頭。且說,鄭襄公探知晉兵眾盛,恐一旦戰勝,將討鄭從楚之罪,乃集群臣計議。大夫皇戍進曰:「臣請為君使於晉軍,勸之戰楚。晉勝則從晉,楚勝則從楚,擇強而事,何患焉?」鄭伯善其謀,遂使皇戍往晉軍中,致鄭伯之命曰:「寡君待上國之救,如望時雨,以社稷之將危,偷安於楚,聊以救亡,非敢背晉也。楚師勝鄭而驕,且久出疲敝,晉若擊之,敝邑願為後繼。」先穀曰:「敗楚服鄭,在此一舉矣。」欒書曰:「鄭人反覆,其言未可信也。」趙同趙括曰:「屬國助戰,此機不可失。彘子之言是也。」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정양공은 진(晉)나라의 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아침에 진(晉)나라 군사가 이겨서 정나라가 초나라에 항복한 죄를 추궁할까 두려웠다. 이에 여러 신하를 모아 대책을 의논하니, 대부 황수(皇戍)가 나와 말하기를, “신이 주군을 위해 진(晉)나라 군영에 사신으로 가서 초나라와 싸우도록 권하겠습니다. 진(晉)나라가 이기면 진(晉)나라를 따르고, 초나라가 이기면 초나라를 따르면 될 것입니다. 강한 나라를 택하여 섬기면 그뿐일 텐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했다. 정양공이 그 계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즉시 황수를 사자로 삼아 진(晉)나라 군영으로 보내어, 정양공의 명이라고 하여 전하기를, “저희 주군께서는 상국의 구원병을 마치 가뭄에 단비를 바라듯 기다리다가,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서 잠시 초나라에 항복하여 나라의 패망을 면한 것이지 감히 진(晉)나라를 배반하겠습니까? 초나라 군사가 정나라를 이겨 교만해졌고 또한 오래 나와 있어서 피로에 지쳐 있습니다. 만약 진(晉)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정나라도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니, 선곡이 말하기를, “초나라를 패퇴시키고 정나라를 복속시키는 것은 이 한 번의 싸움에 달려 있습니다.” 했다. 난서가 말하기를, “정나라는 이랬다저랬다 하니 그들의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하니, 조동과 조괄이 말하기를, “속국이 싸움을 돕겠다고 하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체자(선곡)의 말이 옳습니다.” 했다.
遂不由林父之命,同先穀竟與皇戍定戰楚之約。誰知鄭襄公又別遣使往楚軍中,亦勸楚王與晉交戰,是兩邊挑鬥,坐觀成敗的意思。孫叔敖慮晉兵之盛,言於楚王曰:「晉人無決戰之意,不如請成,請而不獲,然後交兵,則曲在晉矣。」莊王以為然。使蔡鳩居往晉請罷戰修和。荀林父喜曰:「此兩國之福也!」先穀對蔡鳩居罵曰:「汝奪我屬國,又以和局緩我,便是我元帥肯和,我先穀決不肯,務要殺得你片甲不回,方見我先穀手段!快去報與楚君,教他早早逃走,饒他性命!」蔡鳩居被罵一場,抱頭而竄。
마침내 순림보의 명을 거치지도 않고 조동과 조괄은 선곡과 함께 황수에게 초나라와 싸우겠다는 약속을 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정양공이 또 별도의 사자를 초나라 군영에 보내어, 역시 초장왕을 권하여 진(晉)나라와 싸움을 부추겨서, 양쪽이 서로 싸우게 하고 앉아서 성패를 보려고 한 것을. 손숙오가 진(晉)나라 군사의 수가 매우 많음을 걱정하여 초장왕에게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사가 우리와 결전할 뜻이 없으니, 화친을 청하는 게 좋겠습니다. 청해서 응하지 않은 연후에 교전하면 전쟁의 책임은 진(晉)나라 쪽에 있습니다.” 하니, 초장왕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채구거(蔡鳩居)를 사자로 진(晉)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전쟁을 피하고 화친을 맺자고 청했다. 순림보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두 나라의 복이오!” 했다. 선곡이 채구거에게 욕하기를, “너희들이 우리의 속국을 빼앗아간 후에 다시 화친하여 우리를 누그러뜨리니, 우리 원수께서는 화친에 동의하겠지만 나 선곡은 결코 동의하지 않고, 너희들 군사들을 한 사람도 살려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곧 나 선곡의 솜씨를 볼 것이다. 빨리 돌아가 초장왕에게 보고하여 빨리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하라고 해라!” 했다. 채구거가 욕을 먹고 머리를 싸고 달아났다.
將出營門,又遇趙同趙括兄弟,以劍指之曰:「汝若再來,先教你吃我一劍!」鳩居出了晉營,又遇晉將趙旃,彎弓向之,說道:「你是我箭頭之肉,少不得早晚擒到!煩你傳話,只教你蠻王仔細!」鳩居回轉本寨,奏知莊王。莊王大怒,問眾將:「誰人敢去挑戰?」大將樂伯應聲而出曰:「臣願往!」樂伯乘單車,許伯為御,攝叔為車右,許伯驅車如風,逕逼晉壘。樂伯故意代御執轡,使許伯下車飾馬正鞅,以示閒暇。有遊兵十餘人過之,樂伯不慌不忙,一箭發去,射倒一人;攝叔跳下車,又隻手生擒一人,飛身上車,餘兵發聲喊都走。
채구거가 영문에서 나오다가 다시 조동과 조괄 형제를 만나니, 그들이 칼을 잡고 채구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네가 만약 다시 오면 이 칼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했다. 채구거가 진(晉)나라 군영을 나오는데, 또 진나라 장수 조전(趙旃)을 만나니, 그가 활을 당겨 겨누면서 말하기를, “너는 내 화살로 쏘아죽일 고기라, 조만간 너를 잡을 것이다. 너는 내 말을 너희 만왕(蠻王)에게 확실히 전해라!” 했다. 채구거가 초나라의 본채에 돌아와서 초장왕에게 아뢰니 초장왕이 대로하여 여러 장수에게 묻기를, “누가 용감히 나가서 싸움을 돋우겠는가?” 하니, 대장 낙백이 응답하여 나오며 말하기를, “원컨대 신이 가겠습니다.” 했다. 낙백이 전차에 올라 허백(許伯)을 어자(御者)로, 섭숙(攝叔)을 차우(車右)로 삼으니, 허백이 전차를 바람같이 몰아 진(晉)나라 군 보루로 달려갔다. 낙백이 일부러 대신 고삐를 잡고 허백에게 전차에서 내려 말의 장식과 가슴걸이를 바로잡게 하여 한가한 척했다. 그때 유격병 10여 명이 지나가자 낙백이 침착하게 화살을 쏘아 한 명을 거꾸러뜨렸다. 섭숙이 펄쩍 뛰어 전차에서 내려 한 손으로 한 명을 사로잡고, 몸을 날려 전차를 타니, 나머지 진나라 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모두 달아났다.
許伯仍為御,望本營而馳。晉軍知楚將挑戰殺人,分為三路追趕將來。鮑癸居中,左有逢寧,右有逢蓋。樂伯大喝曰:「吾左射馬,右射人,射錯了,就算我輸!」乃將彫弓挽滿,左一箭,右一箭,忙忙射去,有分有寸,不差一些。左邊連射倒三四匹馬,馬倒,車遂不能行動。右邊逢蓋面門亦中一箭,軍士被箭傷者甚多。左右二路追兵,俱不能進。只有鮑癸緊緊隨後,看看趕著。樂伯只存下一箭了。搭上弓靶,欲射鮑癸,想道:「我這箭若不中,必遭來將之手。」正轉念間,車馳馬驟之際,趕出一頭麋來,在樂伯面前經過。樂伯心下轉變,一箭望麋射去,剛剛的直貫麋心。
허백이 말고삐를 건네받아 진(晉)나라 군의 본영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진나라 군은 초나라 장수가 싸움을 돋우어 사람을 죽인 것을 알고, 세 갈래로 나누어 추격해 왔다. 포계(鮑癸)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봉녕(逢寧)이, 오른쪽에는 봉개(逢盖)가 있었다. 낙백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왼쪽으로 말을 쏘고 오른쪽으로 사람을 쏘겠다. 화살이 빗나가면 내가 진 것이다.” 하고, 이에 조궁(雕弓)을 잡아 힘껏 당겨 왼쪽과 오른쪽으로 한 발씩 바삐 쏘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나라 군의 말과 병사를 맞추었다. 낙백이 왼쪽으로 연달아 쏘아서 서너 마리 말을 쓰러뜨리니, 전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의 봉개(逢盖)가 얼굴에 화살을 맞았고, 화살을 맞은 군사들이 아주 많았다. 좌우 양쪽의 추격병이 모두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다만 포계(鮑癸)가 바짝 뒤쫓아왔다. 낙백에게는 단지 한 개의 화살이 남아 있었다. 그가 화살을 활에 메어 포계(鮑癸)를 향하여 쏘려고 하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 화살로 만약 맞추지 못하면 틀림없이 그의 손에 당할 것이다.” 하고, 정신을 가다듬을 때 전차가 달리는 소리에 사슴 한 마리가 달려 나와 낙백 앞을 지나갔다. 낙백이 마음을 바꾸어 남은 화살 한 대를 고라니를 향해 쏘니, 화살은 곧바로 고라니의 심장을 뚫었다.
乃使攝叔下車取麋,以獻鮑癸曰:「願充從者之膳。」鮑癸見樂伯矢無虛發,心中正在驚懼,因其獻麋,遂假意嘆曰:「楚將有禮,我不可犯也!」麾左右迴車。樂伯徐行而返。有詩為證:「單車挑戰騁豪雄,車似雷轟馬似龍。神箭將軍誰不怕?追軍縮首去如風。」晉將魏錡知鮑癸放走了樂伯,心中大怒曰:「楚來挑戰,晉國獨無一人敢出軍前,恐被楚人所笑也。小將亦願以單車,探楚之強弱。」趙旃曰:「小將願同魏將軍走遭。」林父曰:「楚來求和,然後挑戰。子若至楚軍,也將和議開談,方是答禮。」魏錡答曰:「小將便去請和。」趙旃先送魏錡登車,謂魏錡曰:「將軍報鳩居之使,我報樂伯,各任其事可也。」
이에 섭숙을 시켜 수레에서 내려 고라니를 가져다가 포계(鮑癸)에게 바치게 하며 말하기를, “원컨대 뒤따르는 자들에게 주시오.” 했다. 포계가 보니 낙백의 화살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던 차에 사슴을 바치니 마침내 일부러 말하기를, “초나라 장수가 예의가 있으니 내가 범할 수가 없구나!” 하고, 좌우 군사를 거느리고 전차를 돌려 돌아갔다. 낙백도 천천히 돌아왔다. 이것을 시로 증명하여 이르기를, “전차 한 대로 싸움을 걸고 적장을 맞이했으니, 전차는 우레 같고 말은 용과 같았다. 귀신 같은 활 솜씨의 장군을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뒤쫓던 군사들은 머리를 움츠리고 바람같이 달아났네.” 했다. 진(晉)나라 장수 위기(魏錡)는 포계가 낙백을 놓아준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대로하여 말하기를, “초나라 장수가 도전해 왔는데 진나라 진영에서는 한 사람도 감히 진영 앞에 나가지 않았으니, 아마도 초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소장이 역시 전차 한 대로 초나라 군사들의 강약을 살펴보겠소.” 하니, 조전(趙旃)이 말하기를, “소장도 위장군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초나라가 화친을 청한 후에 싸움을 걸어왔소. 그대가 만약 초나라 진영에 이르면 장차 화의를 말해 보시오. 그래야만 답례가 되는 것이오.” 하니, 위기가 대답하기를, “소장이 가서 화의를 청해 보겠습니다.” 했다. 조전이 전차에 오른 위기를 먼저 보내면서 위기에게 말하기를, “장군은 채구거에게 답례를 하고, 저는 낙백에게 보복을 하여, 각기 일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卻說,上軍元帥士會,聞趙魏二將討差往楚,慌忙來見荀林父,欲止其行。比到中軍,二將已去矣。士會私謂林父曰:「魏錡趙旃,自恃先世之功,不得重用,每懷怨望之心。況血氣方剛,不知進退,此行必觸楚怒。倘楚兵猝然乘我,何以禦之?」時副將郤克亦來言:「楚意難測,不可不備。」先穀大叫曰:「旦晚廝殺,何以備為!」荀林父不能決。士會退謂郤克曰:「荀伯木偶耳!我等宜自為計。」乃使郤克約會上軍大夫鞏朔韓穿,各率本部兵,分作三處,伏於敖山之前。中軍大夫趙嬰齊,亦慮晉師之敗,預遣人具舟於黃河之口。
한편, 상군 원수 사회(士會)는 조전과 위기 두 장수가 초나라 진영에 앙갚음을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황망히 순림보를 만나 그들이 가는 것을 저지하려 했다. 중군에 도착했으나 두 장수는 이미 가 버렸다. 사회가 순림보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위기와 조전은 선대의 공이 높음을 믿고 있는데 중용되지 않아서 항상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혈기가 방장한 자들이라 나아가고 물러서는 때를 모릅니다. 이번에 가면 틀림없이 초나라의 분노를 살 것입니다. 만약에 초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우리를 덮친다면 어떻게 막을 것입니까?” 했다. 그때 상군 부원수 극극도 와서 말하기를, “초나라의 전략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니, 선곡이 크게 외치기를, “조만간 적을 무찌를 것인데 무슨 준비를 한다는 말이오!” 했다, 순림보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사회가 물러 나오면서 극극에게 말하기를, “순림부는 나무 인형일 따름이오.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계책을 세워야겠소.” 하고, 사회는 즉시 극극을 시켜 상군 대부 공삭과 한천을 불러 모아서 약속하기를, 각각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삼대로 나누어 오산(敖山) 앞에 매복하기로 했다. 중군 대부 조영제도 역시 진(晉)나라 군사가 패배할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사람을 보내 황하구에 배를 갖추어 놓게 했다.
話分兩頭。再說,魏錡一心忌荀林父為將,欲敗其名,在林父面前只說請和,到楚軍中,竟自請戰而還。楚將潘黨知蔡鳩居出使晉營,受了晉將辱罵,今日魏錡到此,正好報仇。忙趨入中軍,魏錡已自出營去了,乃策馬追之。魏錡行及大澤,見追將甚緊,方欲對敵;忽見澤中有麋六頭,因想起楚將戰麋之事,彎起弓來,也射倒一麋,使御者獻於潘黨曰:「前承樂將軍賜膳,敬以相報。」潘黨笑曰:「彼欲我描舊樣耳!我若追之,顯得我楚人無禮。」亦命御者迴車而返。魏錡還營,詭說:「楚王不准講和,定要交鋒,決一勝負。」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위기(魏錡)는 한마음으로 순림보가 중군 원수가 된 것을 질투하여 그 명예를 떨어뜨리고자, 순림보의 면전에서는 강화를 청하겠다고 했지만, 초나라 진영에 가서는 끝내 싸움을 청하고 돌아오려고 했다. 초장 반당(潘唐)은 채구거가 진(晉)나라 군영에 사절로 가서 진나라 장수들로부터 모욕을 당한 사실을 알았다. 오늘 위기가 온 것을 보고 원수를 갚을 기회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중군 막사로 들어갔으나, 그때 위기는 이미 초군 진영의 영문을 나간 후였다. 반당이 말을 채찍질하여 추격했다. 위기가 큰 늪지에 이르렀을 때 추격하는 장수가 바짝 따라오는 것을 보고 싸우려고 했다. 갑자기 늪 가운데에서 사슴 여섯 마리를 보고, 위기는 지난번에 초나라 장수가 사슴을 잡아서 선물했던 일을 상기하여 활을 당겨 사슴 한 마리를 쏘아 쓰러뜨려서, 마부를 시켜 사슴을 반당에게 바치게 하면서 말하기를, “지난번 낙백 장군이 준 선물을 받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하니, 반당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우리의 흉내를 내는구나! 내가 만약 더 추격한다면 우리 초나라 사람들이 무례한 것을 드러낼 것이다.” 하고, 반당도 역시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 위기가 진영으로 돌아와서 거짓말로 말하기를, “초장왕이 강화를 승인하지 않고 싸워서 승부를 내자고 했습니다.” 했다.
荀林父問:「趙旃何在?」魏錡曰:「我先行,彼在後,未曾相值。」林父曰:「楚既不准和,趙將軍必然吃虧。」乃使荀罃率軘車二十乘,步卒千五百人,往迎趙旃。卻說,趙旃夜至楚軍,布席於軍門之外,車中取酒,坐而飲之。命隨從二十餘人,效楚語,四下巡綽,得其軍號,混入營中。有兵士覺其偽,盤詰之;其人拔刀傷兵士。營中亂嚷起來,舉火搜賊,被獲一十餘人。其餘逃出,見趙旃尚安坐席上,扶之起,登車,覓御人,已沒於楚軍矣。天色漸明,趙旃親自執轡鞭馬,馬餓不能馳。楚莊王聞營中有賊遁去,自駕戎輅,引兵追趕,其行甚速。
순림보가 묻기를, “조전은 어디에 있는가?” 하니, 위기가 말하기를, “내가 앞서가고 그는 뒤에 왔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했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초나라가 이미 강화를 거부했으니 조전은 틀림없이 낭패를 당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이에 순림보는 순앵(荀罃)에게 전차 20대와 보졸 1500명을 거느리고 조전을 구해 오라고 했다. 한편, 조전은 밤에 초나라 진영에 이르러 군영 문밖에 전차 안에 숨겨두었던 술병을 꺼내 앉아서 술을 마셨다. 수하 군사 20여 명에게 초나라 말을 흉내 내어 사방을 순찰하는 척하며 군호를 알아내어 초군 진영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어떤 초나라 병사가 거짓임을 눈치채고 그들을 캐물었다. 진나라 군사가 칼을 뽑아 초군에 대항하자 초나라 진영은 발칵 뒤집혀서, 횃불을 들고 침입자들을 수색하여, 10여 명을 붙잡았다. 나머지 진나라 군사는 도망쳐 나와, 조전이 그때까지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부축하여 수레에 태운 후 마부를 찾았으나, 그 마부는 이미 초나라 군사에게 붙잡힌 후였다. 하늘이 점점 밝아 오자 조전이 친히 말의 고삐를 잡고 채찍질했으나 말들은 굶어서 달릴 수가 없었다. 초장왕은 자기 진영 안에 적군이 잠입하였다가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고, 친히 전차에 올라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했다. 초장왕 전차의 속도는 아주 빨랐다.
趙旃恐為所及,棄其車,奔入萬松林內,為楚將屈蕩所見,亦下車逐之。趙旃將甲裳掛於小小松樹之上,輕身走脫。屈蕩取甲裳並車馬,以獻莊王。方欲回轅,望見單車風馳而至,視之,乃潘黨也。黨指北向車塵,謂楚王曰:「晉師大至矣!」這車塵卻是荀林父遣軘車,迎接趙旃者。潘黨遠遠望見,誤認以為大軍,未免輕事重報,嚇得莊王面如土色。忽聽得南方鼓角喧天,為首一員大臣,領著一隊車馬飛到。這員大臣是誰?乃是令尹孫叔敖。莊王心下稍安,問:「相國何以知晉軍之至,而來救寡人?」
조전이 따라 잡힐까 두려워서 전차를 버리고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달아났다. 초나라 장수 굴탕(屈蕩)이 그것을 보고 역시 수레에서 내려 뒤쫓았다. 조전은 자기의 갑상(甲裳 ; 슬갑)을 작은 소나무에 걸어 놓고 가벼운 몸으로 달아났다. 굴탕이 갑상과 전차를 거두어서 돌아와 초장왕에게 바쳤다. 초장왕이 전차를 돌리려는데 바라보니 전차 한 대가 바람같이 달려와 이르렀는데, 반당이 타고 있었다. 반당이 북쪽에서 일어나는 전차 먼지를 가리키며 초왕에게 말하기를, “진(晉)나라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했다. 이 전차 먼지는 순림보가 조전을 구하기 위해 보낸 20대의 전차가 일으킨 것이었다. 반당이 멀리서 보고 대군이라고 오인하여, 가벼운 일을 큰일이라고 보고했다. 초장왕이 깜짝 놀라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갑자기 남쪽에서 하늘을 진동시키는 북과 뿔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맨 앞에 한 사람의 대신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나는 듯이 이르렀다. 이 대신은 누구인가? 그는 영윤 손숙오였다. 초장왕이 가슴을 조금 진정시키며 묻기를, “상국께서는 어떻게 진나라 군사들이 진격해 오는 줄 알고 과인을 구하러 오십니까?” 했다.
孫叔敖對曰:「臣不知也。但恐君王輕進,誤入晉軍,臣先來救駕,隨後三軍俱至矣。」莊王北向再看時,見塵頭不高,曰:「非大軍也。」孫叔敖對曰:「《兵法》有云:『寧可我迫人,莫使人迫我。』諸將既已到齊,吾王可傳令,只顧殺向前去。若挫其中軍,餘二軍皆不能存紮矣。」莊王果然傳令:使公子嬰齊同副將蔡鳩居,以左軍攻晉上軍;公子側同副將工尹齊,以右軍攻晉下軍;自引中軍兩廣之眾,直擣荀林父大營。莊王親自援桴擊鼓。眾軍一齊擂鼓,鼓聲如雷,車馳馬驟,步卒隨著車馬,飛奔前行。
손숙오가 대답하기를, “신은 몰랐습니다. 다만 대왕께서 너무 경솔하게 전진하여 잘못 진(晉)나라 군사들의 함정에 빠질까 두려워서 신이 먼저 와서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뒤따라 삼군이 모두 이를 것입니다.” 했다. 초장왕이 북쪽을 향해 다시 보니 먼지가 높지 않아서, 말하기를, “대군이 아니다.” 하니, 손숙오가 대답하기를, “병법에 이르기를 ‘아군이 적군을 쫓을지언정 적군에게 쫓겨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장수가 이미 도착하였으니 대왕께서는 명령을 내려 오로지 앞으로만 진격하라고 하십시오. 만약에 적의 중군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나머지 상하 2군은 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초장왕이 과연 명령을 내려서 공자 영제에게는 부장 채구거와 함께 좌군을 이끌고 진나라의 상군을, 공자 측에게는 부장 공윤제와 함께 우군을 이끌고 진나라의 하군을 각각 공격하도록 하고, 자신은 중군과 양광의 군사들을 이끌고 곧바로 순림보의 본영을 덮치려고 했다. 초장왕이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쳤다. 여러 부대가 일제히 북을 치니 북소리가 마치 우레와 같았다. 전차와 말들이 달리고 보졸들이 전차와 말을 따라 나는 듯이 진격했다.
晉軍全沒准備。荀林父聞鼓聲,纔欲探聽,楚軍漫山遍野,已佈滿於營外,真是出其不意了。林父倉忙無計,傳令並力混戰。楚兵人人耀武,個個揚威,分明似海嘯山崩,天摧地塌。晉兵如久夢乍回,大醉方醒,還不知東西南北。「沒心人遇有心人」,怎生抵敵得過?一時魚奔鳥散,被楚兵砍瓜切菜,亂殺一回,殺得四分五裂,七零八碎。荀罃乘著軘車,迎不著趙旃,卻撞著楚將熊負羈,兩下交鋒。楚兵大至,寡不敵眾,步卒奔散,荀罃所乘左驂,中箭先倒,遂為熊負羈所擒。
진(晉)나라 군사들은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순림보가 북소리를 듣고 그제야 탐지해 보니, 초나라 군사가 산과 들에 가득 퍼져서 이미 진나라 진영 밖으로 포진한 다음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온 것이었다. 순림보는 황급하여 아무런 계책이 없어 힘을 다하여 싸우라고 명령했다. 초나라 병사들은 저마다 무용을 뽐내고 위세를 떨치며 마치 파도가 소리치고 산이 무너지듯,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듯했다. 진(晉)나라 군사들은 마치 오랫동안의 꿈속에서 잠시 돌아오거나, 술에 크게 취했다가 막 깨어난 듯, 동서남북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싸울 마음이 없는 군사가 투지에 불타는 군사를 만난 것’ 같아서, 어떻게 적을 막을 것인가? 일시에 달아나는 고기 떼나 흩어지는 새 떼가 되어, 초나라 병사들에게 오이나 채소가 토막 나듯이 어지럽게 살해되어, 사분오열하고 열 가운에 일여덟이 깨어지고 말았다. 순앵은 전차를 타고 조전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초나라 장수 웅부기(熊負羈)를 만나, 두 사람이 교전을 했으나, 초나라의 대군이 몰려오자 중과부족으로 보졸이 흩어져 달아나고, 순앵은 전차의 왼쪽 곁말을 타고 달아나다가 화살에 맞아 넘어져 마침내 웅부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再說,晉將逢伯,引其二子逢寧逢蓋,共載一小車,正在逃奔。恰好趙旃脫身走到,兩趾俱裂,看見前面有乘車者,大叫:「車中何人?望乞挈帶!」逢伯認得是趙旃聲音,吩咐二子:「速速馳去,勿得反顧。」二子不解其父之意,回頭看之,趙旃即呼曰:「逢君可載我!」二子謂父曰:「趙叟在後相呼。」逢伯大怒曰:「汝既見趙叟,合當讓載也!」叱二子下車,以轡授趙旃,使登車同載而去。逢寧逢蓋失車,遂死於亂軍之中。荀林父同韓厥,從後營登車,引著敗殘軍卒,取路山右,沿河而走,棄下車馬器仗無算。
한편, 진(晉)나라 장수 봉백(逢伯)은 그의 두 아들 봉녕(逢寧)과 봉개(逢蓋)와 함께 작은 전차를 타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조전이 발가락이 모두 찢어진 채 도망치며 앞에 지나가는 전차를 쳐다보고 큰소리로 외치기를, “전차 안에는 누가 탔는가? 나를 태워 달라!” 했다. 봉백이 그것이 조전의 목소리인 줄 알고 두 아들에게 분부하기를, “뒤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라!” 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못 알아듣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조전이 즉시 고함치기를, “봉군은 나를 태워 달라!” 했다. 두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조씨 어른이 뒤에서 부릅니다.” 하니, 봉백이 화를 크게 내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조씨 어른을 이미 봤으니 양보하고 태우는 것이 합당하다!”하고, 두 아들을 꾸짖어 수레에서 내리게 하고 고삐를 조전에게 건네어, 전차에 오르게 하여 함께 타고 갔다. 봉녕과 봉개는 전차의 자리를 잃고, 마침내 난군 중에서 죽었다. 순림보는 한궐과 함께 후진을 따라 전차에 올라 패잔병들을 이끌고 산 오른쪽 길을 택하여 황하 가를 따라 달아났다. 진나라 군사가 버리고 간 전차와 말과 병장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先穀自後趕上,額中一箭,鮮血淋漓,扯戰袍裹之。林父指曰:「敢戰者亦如是乎?」行至河口,趙括亦到,訴稱其兄趙嬰齊,私下預備船隻,先自濟河:「不通我每得知,是何道理?」林父曰:「死生之際,何暇相聞也?」趙括恨恨不已,自此與嬰齊有隙。林父曰:「我兵不能復戰矣!目前之計,濟河為急。」乃命先穀往河下招集船隻。那船俱四散安泊,一時不能取齊。正擾攘之際,沿河無數人馬,紛紛來到。林父視之,乃是下軍正副將趙朔欒書,被楚將公子側襲敗,驅率殘兵,亦取此路而來。兩軍一齊在岸,那一個不要渡河的?船數一發少了。
선곡이 뒤에 따라오는데, 얼굴에 화살을 맞아 피를 뚝뚝 흘리며 전포를 찢어 감싸고 있었다. 순림보가 그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용감하게 싸우자던 자도 이같이 되었소?” 했다. 일행이 하구(河口)에 이르니, 조괄도 역시 도착하여 이르기를, 그의 형 조영제가 몰래 준비해 둔 배를 타고 먼저 황하를 건너갔다면서,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았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했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어느 겨를에 서로 알리겠는가?” 했다. 조괄이 원망해 마지않아 이때부터 조영제와 틈이 벌어졌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우리 군사로는 다시 싸울 수 없다. 당장의 계책은 황하를 건너는 것이 급하다.” 하고, 이에 선곡에게 명하여 황하의 하류 쪽으로 가서 배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그러나 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정박해 있어서 한꺼번에 모을 수가 없었다. 선곡이 배를 모으느라 어수선한 사이에 황하 연안에 많은 인마가 어지럽게 몰려들었다. 순림보가 보니 그들은 하군 원수 조삭과 부원수 난서가 초나라 장수 공자 측(公子側)에게 습격당한 패잔병들을 이끌고 역시 이 길로 온 것이었다. 양군이 일제히 강변에 도착하니 어떻게 한 부대라도 건널 수 있겠는가? 배의 수효는 한 번에 건너기엔 부족했다.
南向一望,塵頭又起,林父恐楚兵乘勝窮追,乃擊鼓出令曰:「先濟河者有賞!」兩軍奪舟,自相爭殺。及至船上人滿了,後來者攀附不絕,連船覆水,又壞了三十餘艘。先穀在舟中喝令軍士:「但在攀舷扯槳的,用刀亂砍其手。」各船俱效之。手指砍落舟中,如飛花片片,數掬不盡,皆投河中。岸上哭聲震響,山谷俱應,天昏地慘,日色無光。史臣有詩云:「舟翻巨浪連帆倒,人逐洪波帶血流。可憐數萬山西卒,半喪黃河作水囚!」後面塵頭又起,乃是荀首、趙同、魏錡、逢伯、鮑癸……一班敗將,陸續逃至。荀首已登舟,不見其子荀罃,使人於岸呼之。有小軍看見荀罃被楚所獲,報知荀首。
멀리 남쪽에서 먼지가 다시 일어나자, 순림보는 혹시나 초나라 군대가 승세를 타고 추격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여 북을 쳐서 명령하기를, “먼저 황하를 건너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 하니, 진나라 양군의 군사들이 배를 빼앗으려고 서로 싸워 죽였다. 배 위에 오른 사람들이 가득 하자 뒤에 온 사람이 계속해서 기어올라 붙어서 배가 뒤집혔다. 게다가 부서진 배들이 30여 척이었다. 선곡이 배 안에서 군사들에게 호령하기를, “뱃전에 기어올라 삿대를 잡아당기는 자들은 칼로 그 손을 베어라.” 하니, 다른 배들도 모두 따라 했다. 손가락이 잘려 배 안에 떨어지니 마치 조각조각 꽃잎이 날리듯 했다. 몇몇은 배를 잡지 못해 모두 황하 물속에 떨어졌다. 강가의 통곡 소리가 진동하고 산과 계곡도 모두 울렸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도 처참하여 태양도 빛을 잃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배가 큰 물결에 뒤집히고 돛대는 쓰러지니, 군사들은 피를 흘리며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가련하다! 수만 명의 태항산 서쪽에서 온 군졸들이여! 그중에서 반이 황하에서 수중고혼이 되었구나.” 했다. 진(晉)나라 군사 후방에서 먼지가 또 일어나더니, 이에 순수(荀首), 조동(趙同), 위기(魏錡), 봉백(逢伯), 포계(鮑癸) 등 여러 패장이 계속해서 도망쳐서 도착했다. 순수가 이미 배에 올랐으나, 그의 아들 순앵이 보이지 않자 사람을 시켜 언덕에 올라가 부르게 했다. 순앵이 초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힌 것을 보았다고 어린 군졸이 순수에게 알렸다.
荀首曰:「吾子既失,吾不可以空返。」乃重復上岸,整車欲行。荀林父阻之曰:「罃已陷楚,往亦無益。」荀首曰:「得他人之子,猶可換回吾子也。」魏錡素與荀罃相厚,亦願同行。荀首甚喜。聚起荀氏家兵,尚有數百人。更兼他平昔恤民愛士,大得軍心,故下軍之眾,在岸者無不樂從,即已在舟中者,聞說下軍荀大夫欲入楚軍尋小將軍,亦皆上岸相從,願效死力。此時一股銳氣,比著全軍初下寨時,反覺強旺。荀首在晉,亦算是數一數二的射手,多帶良箭,撞入楚軍。
순수가 말하기를, “내 아들을 잃고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고, 다시 강가 언덕으로 올라와 전차를 정비해 쳐들어가려고 했다. 순림보가 그를 가로막으며 말하기를, “순앵은 이미 초나라에 사로잡혔으니 가봐야 아무 이득이 없소.” 하니, 순수가 말하기를, “남의 아들을 얻어서 내 아들과 교환할 수 있을 것이오.” 했다. 위기가 평소에 순앵과 서로 친해서 또한 같이 가겠다고 자원했다. 순수가 매우 기뻐했다. 순수가 순씨의 가병들을 모이게 하니 그 수효가 수백 명이었다. 또한 그는 평소에 백성들을 보살피고 선비들을 사랑하여 군사들의 인심을 크게 얻고 있었다. 그래서 강안에 있던 하군의 군사들이 즐겨 따르겠다고 했다. 이미 배를 타고 있던 군사들도 하군 대부 순수가 작은 장군 순앵을 구하러 초나라 진영으로 쳐들어간다고 하자, 그들 역시 모두 강안에 올라 순수를 따라가 사력을 다하여 돕고자 했다. 이때 한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일어나, 전군이 처음에 영채를 세울 때의 강하고 왕성한 기세로 돌아갔다. 순수는 진(晉)나라에서도 일 이등을 다투는 명궁이어서, 좋은 화살을 많이 가지고 초나라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遇著老將連尹襄老,正在掠取遺車棄仗,不意晉兵猝至,不作准備,被荀首一箭射去,恰穿其頰,倒於車上。公子穀臣看見襄老中箭,馳車來救。魏錡就迎住廝殺。荀首從旁覷定,又復一箭,中其右腕。穀臣負痛拔箭,被魏錡乘勢將穀臣活捉過來,並載襄老之屍。荀首曰:「有此二物,可以贖吾子矣!楚師強甚,不可當也。」乃策馬急馳。比及楚軍知覺,欲追之,已無及矣。且說,公子嬰齊來攻上軍。士會預料有事,探信最早,先已結陣,且戰且走。嬰齊追及敖山之下,忽聞砲聲大震,一軍殺出,當頭一員大將在車中高叫:「鞏朔在此,等候多時矣!」
그때 마침 노장 연윤(連尹) 양로(襄老)가 진(晉)나라 군사가 버리고 간 전차와 무기를 수습하고 있을 때 뜻밖에 진나라 군사들이 몰려들자,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가 순수가 쏜 화살이 그의 뺨을 꿰뚫려 전차 위에 넘어졌다. 공자 곡신(公子穀臣)이 양로가 화살에 맞는 것을 보고 그를 구하려고 전차를 몰아 달려 나왔다. 위기가 그를 맞아 싸웠다. 순수가 옆에서 노리고 다시 화살 한 대를 쏴서 그의 오른쪽 팔을 맞추었다. 곡신이 아픔을 참고 화살을 뽑는 사이에 위기가 승세를 타고 달려들어 곡신을 사로잡아 양로의 시신과 함께 수레에 태웠다. 순수가 말하기를, “이 둘이면 내 아들과 바꿀 수 있겠다. 초나라 군사들이 아주 강해서 당해 낼 수가 없다.” 하고, 말을 채찍질하여 급히 달렸다. 초나라 군사들이 알고 그 뒤를 추격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그들을 쫓을 수 없었다. 한편, 초나라의 좌군을 이끌던 공자 영제는 진(晉)나라 상군을 공격했으나, 사회는 미리 일이 있을 것을 헤아리고 일찍이 초군의 정세를 탐지하여 이미 진영을 연결하여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후퇴했다. 공자 영제가 오산(敖山)의 아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포성이 진동하더니 한 떼의 군마들이 뛰어나오는데, 앞선 대장이 전차 위에서 외치기를, “공삭(鞏朔)이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했다.
嬰齊倒吃了一驚。鞏朔接住嬰齊廝殺,約鬥二十餘合,不敢戀戰,保著士會,徐徐而走。嬰齊不捨,再復追來,前面砲聲又起,韓穿起兵來到。偏將蔡鳩居出車迎敵,方欲交鋒,山凹裏砲聲又震,旗旆如雲,大將郤克引兵又至。嬰齊見埋伏甚眾,恐墮晉計,鳴金退師。士會點查將士,並不曾傷折一個人,遂依敖山之險,結成七個小寨,連絡如七星,楚不敢逼。直到楚兵盡退,方纔整旆而還。此是後話。再說,荀首兵轉河口,林父大兵尚未濟盡,必甚驚皇。卻喜得趙嬰齊渡過北岸,打發空船南來接應。
공자 영제가 깜짝 놀랐다. 공삭이 영제와 맞붙어 싸운 지 20여 합에 싸울 마음이 없어져, 사회를 보호하면서 서서히 달아났다. 영제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추격했다. 전면에서 다시 포성이 울리더니 이번에는 한천(韓穿)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왔다. 편장 채구거가 전차를 몰아 적을 맞이하여 바야흐로 창끝을 맞대려는 순간, 오산의 움푹 파인 곳에서 포성이 진동하면서 기치(旗幟)가 마치 구름처럼 일어났다. 대장 극극(郤克)이 군마를 이끌고 이르렀다. 영제가 매복한 군사들이 아주 많음을 보고 그들의 계략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징을 울려 군사들을 물렸다. 사회가 군사들을 점검하니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마침내 오산의 험한 지세를 의지하여 7개의 작은 영채를 세우게 하고 각 영채를 북두칠성처럼 연결하니 초나라 군사가 감히 닥치지 못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다 물러간 뒤에 비로소 깃발을 정리하여 돌아갔다.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한편, 순수가 군사를 돌려 하구에 이르니, 순림보의 대군은 아직도 황하를 다 건너지 못하여 매우 당혹해하고 있다가, 조영제가 북쭉 언덕으로 건너가서 빈 배를 남쪽으로 돌려보내자 매우 기뻐하였다.
時天已昏黑,楚軍已至邲城。伍參請速追晉師。莊王曰:「楚自城濮失利,貽羞社稷,此一戰可雪前恥矣。晉楚終當講和,何必多殺?」乃下令安營。晉軍乘夜濟河,紛紛擾擾,直亂到天明方止。史臣論荀林父智不能料敵,才不能御將,不進不退,以至此敗,遂使中原伯氣,盡歸於楚,豈不傷哉!有詩云:「閫外元戎無地天,如何裨將敢撓權?舟中掬指真堪痛,縱渡黃河也靦然!」鄭襄公知楚師得勝,親自至邲城勞軍。迎楚王至於衡雍,僭居王宮,大設筵席慶賀。潘黨請收晉屍,築為「京觀」,以彰武功於萬世。
이미 날이 저물자, 초나라의 군사들은 필성(邲城)에 이르렀다. 오삼이 빨리 진(晉)나라 군사를 추격하자고 청하자, 장왕이 말하기를, “초나라가 성복의 싸움에서 패한 이래로 사직에 치욕을 남겼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의 싸움으로 전날의 수치를 씻었다. 진나라와 초나라는 결국 강화를 맺어야 할 것인데 하필 많은 사람을 죽이겠는가?” 하고, 즉시 명령을 내려 영채를 세워 쉬게 했다. 진(晉)나라 군사들은 밤을 타 황하를 건너려고 아주 소란스러웠다. 이 소란은 날이 밝아 오자 비로소 그쳤다. 사관이 논하기를, 순림보는 지혜가 모자라 적을 헤아리지도 못했고, 재능이 부족해서 장수들을 통제하지도 못해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여 이런 패배에 이르렀으니, 중원의 패권을 모두 초나라로 돌아가게 하여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했다. 시를 지어 이르기를, “왕성 밖에서의 원수는 천지간에 전권을 쥐는데, 어찌하여 비장이 원수의 권한을 흔들었는가? 배 안에서 손가락들을 집었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로다! 비록 황하를 건넜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했다. 정양공은 초나라가 이긴 것을 알고, 친히 필성으로 찾아가서 초나라 군사들을 위로했다. 초장왕을 영접하여 형옹(衡雍)으로 가서 왕궁(주왕의 이궁)에 거처하게 하고 크게 잔치를 베풀어 축하했다. 반당이 진(晉)나라 군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경관(京觀)을 쌓아 만세에 무공을 빛낼 것을 청하였다.
莊王曰:「晉非有罪可討,寡人幸而勝之,何武功之足稱耶?」命軍士隨在掩埋遺骨,為文祭祀河神,奏凱而還。論功行賞,嘉伍參之謀,用為大夫。伍舉、伍奢、伍尚、伍員即其後也。令尹孫叔敖嘆曰:「勝晉大功,出自嬖人,吾當愧死矣!」遂鬱鬱成疾。話分兩頭。卻說,荀林父引敗兵還見景公,景公欲斬林父。群臣力保曰:「林父先朝大臣,雖有喪師之罪,皆是先穀故違軍令,所以致敗。主公但斬先穀,以戒將來足矣。昔楚殺得臣而文公喜,秦留孟明而襄公懼。望主公赦林父之罪,使圖後效。」景公從其言,遂斬先穀,復林父原職。命六卿治兵練將,為異日報仇之舉。此周定王十年事也。
초장왕이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이 죄가 있어서 토벌된 것이 아니라 과인에게 행운이 있어서 이겼다. 무슨 무공을 세웠다고 자랑하겠는가?” 하고, 군사들에게 명하여 유골을 매장해 주고, 제문을 써서 황하의 신에게 제사지낸 후 개선하여 돌아갔다. 논공행상을 하여, 오삼의 계책을 가상히 여겨 대부로 임명했다. 오거(伍擧), 오사(伍奢) 부자와 오상(伍尙), 오원(伍員) 형제는 그의 후손이다. 영윤 손숙오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진(晉)나라와 싸워 이긴 큰 공이 총신에게서 나왔으니, 나는 참으로 부끄러워 죽겠구나!” 하고, 마침내 답답하여 울화병이 들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순림보가 패잔병을 이끌고 돌아와 진경공을 알현하니, 진경공이 순림보를 참수하려고 했다. 여러 신하가 힘써 보호하여 말하기를, “순림보는 선조의 대신입니다. 비록 군사를 잃은 죄를 지었으나 모두 선곡이 군령을 어겼기 때문에 패전하게 되었습니다. 주공께서 다만 선곡을 참하시는 것으로 장래를 경계함이 족할 것입니다. 옛날 초나라가 성득신을 죽이니 진문공께서 기뻐하셨고, 진(秦)나라가 맹명시를 살려두자 진양공이 두려워하셨습니다. 주공께서 순림보의 죄를 용서하시어 후에 공을 세우도록 도모하십시오.” 했다. 진경공이 그 말에 따라 마침내 선곡을 참수하고, 다시 순림보를 원래 직책에 복직시켰다.육경에게 명하여 군사와 장수들을 훈련하여, 후일 초나라에 원수를 갚도록 했다. 이때가 주정왕 10년(기원전 596년)의 일이었다.
定王十二年春三月,楚令尹孫叔敖病篤,囑其子孫安曰:「吾有遺表一通,死後為我達於楚王。楚王若封汝官爵,汝不可受。汝碌碌庸才,非經濟之具,不可濫廁冠裳也。若封汝以大邑,汝當固辭。辭之不得,則可以寢邱為請。此地瘠薄,非人所欲,庶幾可延後世之祿耳。」言畢遂卒。孫安取遺表呈上,楚莊王啟而讀之,表曰:「臣以罪廢之餘,蒙君王拔之相位,數年以來,愧乏大功,有負重任。今賴君王之靈,獲死牖下,臣之幸矣!臣止一子,不肖,不足以玷冠裳。臣之從子薳憑,頗有才能,可任一職。晉號世伯,雖偶敗績,不可輕視。民苦戰鬥已久,惟息兵安民為上。「人之將死,其言也善。」願王察之!」
주정왕 12년 봄 3월에, 초나라 영윤 손숙오가 병이 위독하여 그 아들 손안(孫安)에게 당부하기를, “내가 표문 한 통을 남길 것이니, 내가 죽고 나서 대왕에게 전해라. 초장왕이 만약 너에게 관작을 주면 너는 받아서는 안 된다. 너는 재주가 평범한 사람이라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건질 만한 인재가 못 된다. 그러니 지위를 차지하여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짓을 하지 말아라. 만약 너를 큰 읍에 봉하면 너는 마땅히 굳이 사양해야 한다. 네가 사양해도 봉하려 하면 침구(寢邱)의 땅을 청해라. 그 땅은 척박하여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내지 않을 곳이라 거의 후세에 이르도록 봉록을 받을 것이다.” 했다. 말이 끝나자 손숙오는 죽었다. 손안이 손숙오의 유표를 바치자 초장왕이 열어서 읽었다. 표에 이르기를, “신은 죄를 짓고 버려진 사람이었는데도 대왕께서 재상의 자리에 발탁해 주는 은혜를 입었으나, 여러 해 동안 부끄럽게도 큰 공을 세우지 못하고 중임을 져버렸습니다. 지금 대왕의 보살핌을 입어 집안의 창문 아래에서 죽게 되니 신으로서는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신은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변변치 못하여 벼슬을 감당할 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신의 조카 원빙(薳憑)은 제법 재능이 있어 한 자리를 맡길 만합니다. 진(晉)나라는 대대로 방백의 자리를 유지해 오다가 비록 우연히 싸움에서 졌으나,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은 오랜 싸움으로 고통스러워하니, 오직 병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사람이 장차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하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살펴주십시오.” 했다.
莊王讀罷,嘆曰:「孫叔死不忘國,寡人無福,天奪我良臣也!」即命駕往視其殮,撫棺痛哭,從行者莫不垂淚。次日,以公子嬰齊為令尹。召薳憑為箴尹,是為薳氏。莊王欲以孫安為工正,安守遺命,力辭不拜,退耕於野。莊王所寵優人孟侏儒,謂之優孟,身不滿五尺,平日以滑稽調笑,取歡左右。一日出郊,見孫安砍下柴薪,自負而歸。優孟迎而問曰:「公子何自勞苦負薪?」孫安曰:「父為相數年,一錢不入私門,死後家無餘財,吾安得不負薪乎?」優孟嘆曰:「公子勉之,王行且召子矣!」乃制孫叔敖衣冠劍履一具,並習其生前言動,摹擬三日,無一不肖,宛如叔敖之再生也。
초장왕이 읽기를 마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손숙오가 죽으면서도 나라를 잊지 않았구나. 과인이 복이 없어 하늘이 나에게서 좋은 신하를 빼앗아갔구나!” 했다. 즉시 어가를 타고 손숙오의 집으로 가서 그 관을 어루만지면서 통곡했다. 초장왕을 따라갔던 측근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음날, 초장왕은 공자 영제를 영윤으로 삼고, 원빙(薳憑)을 불러 잠윤(箴尹)으로 삼았다. 그가 원씨(薳氏)의 시조가 되었다. 초장왕이 손안을 공정(工正 ; 공사와 공업 담당)을 삼으려 했으나 손안이 유명을 지켜 굳이 사양하고 초야에 돌아가 밭을 갈아 살았다. 초장왕에게는 총애하는 배우 맹주유(孟侏儒)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우맹(優孟)이라고 불렀다. 우맹은 키가 다섯 자가 되지 않았으나 평소에 익살을 부려 웃겨서 좌우를 즐겁게 했다. 하루는 우맹이 교외에 나가 손안이 땔감을 베어 스스로 지고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맹이 손안을 알아보고 묻기를,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고생스럽게 나뭇짐을 지십니까?” 하니, 손안이 말하기를, “부친께서 여러 해 동안 재상을 지냈으나 한 푼도 집안에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집안에 남은 재물이 없으니 내가 어찌 나뭇짐을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우맹이 한탄하며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수고하십시오. 대왕께서 장차 그대를 부르실 것입니다.” 했다. 이에 우맹이 손숙오의 의관, 칼, 신발 등 일체를 장만하여 손숙오의 생전의 언동을 연습하고, 사흘을 흉내 내니 비슷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마치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것 같이 되었다.
值莊王宴於宮中,召群優為戲。優孟先使他優扮為楚王,為思慕叔敖之狀,自己扮叔敖登場。楚王一見,大驚曰:「孫叔無恙乎?寡人思卿至切,可仍來輔相寡人也。」優孟對曰:「臣非真叔敖,偶似之耳。」楚王曰:「寡人思叔敖不得見,見似叔敖者,亦足少慰寡人之思,卿勿辭,可即就相位。」優孟對曰:「王果用臣,於臣甚願。但家有老妻,頗能通達世情,容歸與老妻商議,方敢奉詔。」乃下場,復上曰:「臣適與老妻議之,老妻勸臣勿就。」楚王問曰:「何故?」優孟對曰:「老妻有村歌勸臣,臣請歌之!」
마침 이때 초장왕이 궁중에서 연회를 열고 여러 배우를 불러 놀이를 하게 했다. 우맹이 먼저 다른 배우를 초장왕으로 분장하게 하여 손숙오를 사모하는 역할을 맡긴 후에, 자기는 손숙오로 분장하고 무대에 등장하였다. 초장왕이 한번 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손숙오는 별고 없습니까? 과인은 경을 너무 절실하게 사모했습니다. 와서 과인을 도와주시오.” 하니, 우맹이 대답하기를, “신은 진짜 손숙오가 아니라 손숙오로 분장한 배우일 뿐입니다.” 했다. 초장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손숙오를 그리워했으나 다시 볼 수 없었는데, 손숙오와 비슷한 사람을 보니 과인에게 조금 위로가 되는구나! 경은 사양하지 말고 영윤의 자리에 취임하여라.” 하니, 우맹이 대답하기를, “대왕께서 과연 신을 쓰시고자 하신다면 신도 매우 원하는 바입니다. 다만 집에 늙은 아내가 있는데 제법 세상 물정에 능통합니다. 돌아가서 늙은 아내와 상의하게 해 주신다면 비로소 감히 명을 받들겠습니다.” 했다. 우맹이 즉시 무대에서 내려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올라와서 말하기를, “신이 집에 가서 늙은 아내와 상의를 했는데 늙은 아내가 신에게 벼슬을 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했다. 초장왕이 묻기를, “무엇 때문인가?” 하니, 우맹이 대답하기를, “제 아내가 촌 노래를 불러주며 신에게 벼슬을 살지 말라고 권하였는데 청컨대 제가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했다.
遂歌曰:「貪吏不可為而可為,廉吏可為而不可為。貪吏不可為者,污且卑;而可為者,子孫乘堅而策肥。廉吏可為者,高且潔;而不可為者,子孫衣單而食缺。君不見楚之令尹孫叔敖,生前私殖無分毫,一朝身沒家凌替,子孫丐食棲蓬蒿。勸君勿學孫叔敖,君王不念前功勞!」莊王在席上見優孟問答,宛似叔敖,心中已是悽然;及聞優孟歌畢,不覺潸然淚下曰:「孫叔之功,寡人不敢忘也!」即命優孟往召孫安。孫安敝衣草屨而至,拜見莊王。莊王曰:「子窮困至此乎?」優孟從旁答曰:「不窮困,不見前令尹之賢。」
우맹이 즉시 노래 부르기를, “탐관오리들은 하면 안 되는 일을 골라서 하고, 청백리는 해야 할 일밖에는 하지 않네. 탐관오리들이 하는 일이란 더럽고 비열하고, 하는 짓들은 자손들을 호사스럽게 살게 하는 것이네. 청백리가 하는 일은 높고도 깨끗해서, 몹쓸 짓을 하지 않아서 자손들은 헐벗고 굶주리네. 그대들은 초나라 영윤 손숙오를 보지 못했는가? 생전에 사사로이 재산을 늘린 바 없더니, 하루아침에 그가 죽어 집안이 망했네. 그 자손은 걸식하며 쑥대밭에서 산다네.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손숙오를 본받지 말아라. 군왕도 옛 신하의 공로를 생각하지 않는다네.” 했다. 초장왕이 자리에 앉아서 우맹의 문답을 보니 흡사 손숙오와 같아서 마음속에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우맹이 노래를 끝내자 초장왕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기를, “손숙오의 공을 과인이 어찌 잊겠는가?” 하고, 즉시 우맹에게 손안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손안이 낡은 옷에 짚신을 신고 이르러 초장왕에게 절하고 뵈니, 초장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곤궁함이 어찌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했다. 우맹이 옆에서 대답하기를, “어찌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영윤 손숙오의 청렴결백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했다.
莊王曰:「孫安不願就職,當封以萬家之邑。」安固辭。莊王曰:「寡人主意已定,卿不可卻。」孫安奏曰:「君王倘念先臣尺寸之勞,給臣衣食,願得封寢邱,臣願足矣。」莊王曰:「寢邱瘠惡之土,卿何利焉?」孫安曰:「先臣有遺命,非此不敢受也。」莊王乃從之。後人以寢邱非善地,無人爭奪,遂為孫氏世守。此乃孫叔敖先見之明。史臣有詩單道優孟之事。詩曰:「清官遑計子孫貧,身死褒崇賴主君;不是侏儒能諷諫,莊王安肯念先臣?」
초장왕이 말하기를, “손안이 벼슬 살기를 원치 않았으나, 이제 마땅히 만호의 읍에 봉하겠다.” 하니, 손안이 굳이 사양했다, 초장왕이 말하기를, “과인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경은 절대 물리치지 말라!” 했다. 손안이 아뢰기를, “군왕께서 만일 저의 부친이 세운 조그마한 한 공을 생각하시어 신에게 생활기반을 주려고 하신다면, 원컨대 침구(寢邱)의 땅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하니, 초장왕이 말하기를, “침구의 땅은 척박하여 경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했다. 손안이 말하기를, “선친께서 유언으로 명하기를, 그 땅이 아니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니, 초장왕은 이에 따랐다. 뒷사람들이 침구는 좋은 땅이 아니라고 아무도 빼앗지 않아서 마침내 손씨가 대대로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손숙오의 선경지명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우맹의 일을 말했는데, 시에 이르기를, “청백리가 한가하게 자식들의 가난을 신경 쓰겠는가? 죽고 나서 표창하여 높이는 건 군주에게 매었을 뿐! 맹주유가 능히 그 일을 풍자하여 간하지 않았다면, 초장왕이 어찌 죽은 신하를 생각이나 했겠는가?” 했다.
卻說,晉臣荀林父,聞孫叔敖新故,知楚兵不能驟出。乃請師伐鄭,大掠鄭郊,揚兵而還。諸將請遂圍鄭,林父曰:「圍之未可遽克,萬一楚救忽至,是求敵也,姑使鄭人懼而自謀耳。」鄭襄公果大懼,遣使謀之於楚,且以其弟公子張,換公子去疾回鄭,共理國事。莊王曰:「鄭苟有信,豈在質乎?」乃悉遣之,因大集群臣計議。
한편, 진(晉)나라의 순림보는 손숙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 군사가 갑자기 출병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이에 진경공에게 청하여 군사들을 일으켜 정나라로 쳐들어가 교외를 크게 노략질했다.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돌아가려고 하니, 여러 장수가 정나라 도성을 포위하기를 청했다. 순림보가 말하기를, “정나라 도성을 포위해도 금방 이길 수는 없소. 만일 초나라의 구원병이 갑자기 들이닥친다면 이것은 적을 부르는 셈이오. 잠시 정나라 사람을 두렵게 했다가 그들이 스스로 계책을 만들게 할 뿐이오” 했다. 정양공이 과연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대책을 강구했다. 또 한편으로 정양공은 그 아우 공자 장(公子張)을 공자 거질과 바꾸어 귀국시켜, 함께 국정을 다스리려고 했다. 초장왕이 말하기를, “정나라가 진실로 신의가 있는데 어찌 인질이 필요하겠는가?” 하고, 모두를 보내주고, 인하여 여러 신하를 모아 대책을 의논했다.
不知所議何事,且看下回分解。
의논한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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