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53)
자유
꿈속의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슬픔도 기쁨도
새벽까지 지켜야 할
보물도
나이도 이름도
승리도 패배도 없었다.
적들이 나를 모략하고
내 친구 베드로가 나를 모른다 하여
나는 화살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났다.
잠이 든 여자에게
이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나은 곳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원래 있던 곳에는 고통이 없었다.
계절도 태양도 달도 피도 시간의 녹청도
칼로 찌르듯 아프지 않았다.
곡간이 넘쳐나지 않았지만
배고픔을 몰랐다.
나는 술취한 듯이 소리쳤다―
“아버지의 나라여! 내 아버지의 나라여!”
하지만 나는 입에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을 물고 있을 뿐,
엉겅퀴의 솜털 같은 실은 내 호흡에 맞춰
붙었다 떨어지고 붙었다 떨어지고―
그건 거미줄에 불과하다,
해변의 밀물에 불과하다.
꿈속의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돌아왔다.
등 뒤에는 다시 벽이 있고
나는 다시 행상이 되어
목청을 높이고
귀를 세우고
부름에 응답하며 다녀야 한다.
나는 돌덩어리와
한 줌의 도구를 지니고
버려진 옷 같은
의지를 도로 거둬들이고
습관의 기지개를 펴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가리라
눈물도 포옹도 없이
밤배를 타고 가리라
아무도 나를 쫓는 이 없이
빨간 등대가 힐끗거리지도 않고
해변에서 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1889-1957),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이루카 옮김, 아티초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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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바람’을 뜻하는 미스트랄을 필명으로 삼고 있는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1945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최초였고, 여성 작가로는 다섯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이름을 들으면 거의 모두가 생소하게 들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제가 이 시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김현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가 발간한 책(『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21세기북스, 2019)에서였습니다. 이 책에서 김현균 교수는 ‘붐 세대’라고 일컫기도 하는 “유럽문학이 침체기를 맞은 1960년대에 갑자기 ‘붐’을 이루며 등장한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세대”(6쪽) 중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네 시인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1부에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1945년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는 칠레의 여성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다.”(35쪽)라고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있는데, 아니 어쩌면 시인의 이름은 더 일찍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보를 펼치니 1920년에 테무코 고등학교에서 교사 겸 교장으로 재직할 때 이곳에서 당시 열여섯 살의 파블로 네루다를 만났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무렵 키가 큰 여자가 테무코에 나타났다. 긴 치마에 굽 낮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칠레의 최남단 마가야네스 지방에서 여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교장 선생님이었다. 이름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었다. 미스트랄은 발등까지 덮는 긴 치마를 입고 우리 마을을 지나다녔다. 나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 소개로 대면하고 보니 마음씨가 참 고운 사람이었다. 원주민의 피를 물려받은 구릿빛 얼굴은 아름다운 아라우카 항아리 같았다. 온화한 웃음을 머금을 때는 새하얀 이가 반짝거렸는데 그러면 방 전체가 환해졌다.”(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라』, 박병규 옮김, 민음사, 2008, 37쪽) 그러니까 이 자서전에서 시인의 이름을 들은 거지요. 한데 이러고 보니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이름은 훨씬 더 전에 들었을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또 문득 듭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이 책이 아닌 다른 판본의 자서전을 파블로 네루다가 어떤 시인인지 잘 모르던 20대쯤에 읽었던 기억이 또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름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알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시인이고, 무려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고 해도 정작 시인의 시를 읽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냥 지나가는 한 줄 문학사에 불과했겠지요. 하니 듣고는 바로 흘렸겠지요. 배제했겠지요. “적들이 나를 모략하고/내 친구 베드로가 나를 모른다 하여/나는 화살이 닿지 않는/먼 곳으로 떠났다./잠이 든 여자에게/이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나은 곳처럼/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시인의 연보와 생애사를 들으니 시인은 조국인 칠레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있었던 듯합니다. 시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명성을 생각하면 쉬 유추할 수 있기도 한데, 1926년 조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던 시인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고인이 된 이후였고, 시인이 온전히 명성을 되찾은 건 피노체트 독재 정권 아래에서 조작된 이미지로 이용되다가 군부 독재 정권이 끝난 후인 2019년에 촉발되었던 반정부 시위에서 다시 소환되면서였습니다. “꿈속의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돌아왔다.”면서 “나는 다시 행상이 되어” “부름에 응답하며”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하나 늘 “거미줄”과 “해변의 밀물에 불과”했다고 하는 자조 섞인 시인의 꿈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아립니다. 이제라도 시인의 삶이 온전하게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쓰면서 ‘배제’를 주제어로 삼아 시인의 생애에 대한 글을 한참 쓰다가 다 지웠는데요, 또 문득 드는 생각이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시 한 편이 아니라 시집 한 권을 다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시집은 한국에서 발간되는 시인의 첫 번역시집입니다. “미스트랄이 칠레 화폐 5천 페소에 새겨진 인물이라는 사실, 1996년 박경리 작가가 미스트랄 문학메달을 수상했다는 소식, 2010년 칠레의 광산 사고에서 생환한 광부들이 미스트랄과 네루다의 시를 낭송하며 버텼다는 후일담”(옮긴이의 해설 일부)을 이 시집을 권하는 이유로 덧붙여 봅니다. (20240703)
첫댓글 여성 작가로는 다섯 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네루다가 열여섯 살에 만나뵌 칠레의 교장 선생님 시인, 망명 생활을 한 의인 - 미스트랄의 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미스트랄 시집을 소장하고 싶어졌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