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이 머물다 가는 마을 남선화 달님이 내려다 본다 농익은 홍시가 풀숲에 "툭 " 떨어진다. 깜짝 놀란 들쥐가 부리나케 달아나고 잎담배 말아 물고 외삼촌이 마실 나간다. 달빛이 하도 밝아 동튼 줄 착각한 어린참새가 초가지붕 볏짚 사이로 삐죽 고개 내밀고 곰방대 허리춤에 찬 외할배도 마실 나간다. 가을걷이 끝난 농부들이 찾아든 문간채에 화투 치는 소리가 들리고 외가집 아랫방에는 성급하게도 화롯불에 콩 볶는 소리가 튄다. 여름내 비바람 막아 낸 빛바랜 창호지 구멍 뚫린 틈사이로 달님이 훔쳐본다. 엄마대신 화야를 잠재우던 옥이언니가 까만 고무줄 치마 입고 삽작으로 줄행랑 치고 선잠 자다 깨어 난 화야가 언니 찾아 밤길 나설 때, 달님도 따라 나선다. 갓이은 초가지붕에 달빛이 익어 집집이 노란 콩시루떡 덮은 마실에 눈망울에 잔뜩 겁먹은 화야가 돌담 사이로 "타박타박" 발자국 소리 남기며
언니의 체취를 찾아 이집 저집 기웃거린다. 소녀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오는 분순이네 아랫방 옥이언니의 웃음소리도 섞여있다. 화야는 삽작에 쪼그리고 앉아 하마나 나올까 따뜻한 온기 스며 나오는 창호지 문을 바라보며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언니를 기다린다. 찬바람에 저고리 옷깃 여미며 오돌오돌 떨다가 웅크린채 잠이 들고 달님은 화야를 지키느라 가던 길 멈춘다. 한참후에야 삐 끄덕 창호지 문이 열리고 깔깔거리며 소녀들이 쏟아져 나온다. 삽작에서 잠든 화야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화야가 화들짝 잠을 깬다. 깜짝놀란 소녀들은 밉살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민망해 진 옥이 언니는 "너는 나 시집 갈때도 따라 올래? " 하면서 머리를 쥐어 박는다.
몇번 쥐어 박히 긴 했어도 화야는 따뜻한 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 온다.
뚫어진 창호지 틈사이로 달님이 미소짓고
네다리를 동개 동개 포개어서 꼭 껴안고 잠든 두소녀 옆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세상모르고 코를 곤다. 달빛구경 나온 아기 참새가 처마 밑에 굴러 떨어지고 애닮게 울어대는 울음 소리를 들은 마실 다녀 오시던 외할아버지 , 어린참새를 품고 따뜻한 아래방으로 들어 가는 달님이 넉넉하게 웃음지으며 머물다 가는 마을 내고향 구천동네.
술래잡기 고요한 마을 달님이 졸다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잠이 깬다. 휘청휘청 술레가 다닌다 하나 , 둘 , 셋,넷, 다섯! 여기 저기 숨어 있는 아이들을 미리 찾아 낸 달님, 황초집에 숨은 두 아이는 두손 꼭 잡은채 쌕쌕거리고. 담벼락 밑에 숨은 가시나는 지나는 취객의 오줌 세례를 받고도 차마 민망하여 숨죽이고 있더니 쏜살같이 우물로 달려가 물 한두레박 덮어 쓰는데 우물곁에 숨은 사내아이는 키득 키득 웃음을 참는다 술래가 찾아 다닌다. 여기 "삐죽" 저기 "삐죽" 천지가 숨소리 죽이고 달님도 숨소리 죽인다. 문득 두려운 세상! 모두 어디에 있는가 검은 뭉텅이 여기 저기 유령처럼 앉아있고, 행여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상여집 근처에 숨을리는 없고, 도회지에서 온 무섬 많은 술래는 그 자리에서만 "빙글빙글" 조급한 아이들, 미리 얼굴 내밀다 와락 잽히고 오줌 덮어 쓴 가시나이는 새옷 갈아 입고 부랴 부랴 왔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무들아! 누구네 집 사랑방에 모였는지, 이집 저집 기웃대는 가시나이 눈앞에는 도회지에서 온 하얀얼굴 머스마가 아른거리고 서러운 눈물방울 별똥처럼 떨어지는데 웃다가 배꼽빠진 달님 구름속에 숨는다. 옥수수 서리 남선화 "뿌지지직" 정적을 깨고 들려 오는 소리! 졸던 달님이 흠칫 잠을깬다. 뒷산 솔태언덕에 숨어든 야밤의 서리꾼들! 한명,
두명,
세명!
연초록 통통한 옥수수가 달빛에 드러나자 손빠른 도적떼에 가차없이 꺾여지고 아이뺏긴 옥수수대 비참한 몰골로 서있다. "뿌지지직" 옥수수 꺾는 소리에 첫번째 무덤이 잠을깬다. 고랑마다 누비는 무적함대 여물지도 못한채 꺾여지는 옥수수 "뿌지직" 두번째 무덤이 잠을깬다. 한여름에도 등골이 오삭한 솔태언덕 누군가 지켜 보는 것 같다. 옥수수 한짐 지고 비탈길로 줄행랑 치는데 세번째 무덤이 두리번 거린다 귀밝은 누렁이 솔태언덕을 향해 "컹컹" 짖고 선잠 깨어 심통 난 달님, 구름속에 숨어 버리자 칠흑같은 어둠속에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무릎에 상처 난 머스마는 절룩거리며 달리고 치마입은 가시내는 가시넝쿨에 종아리 긁혀도 혼비백산 달린다 목숨건 사투, 달밤의 옥수수서리는 허기진 아이들의 밤참이었고 화투로 승부를 겨룬 패배자의 악몽이었다. 팔자 늘어진 승자는 피감자 숫가락으로 빡빡 긁어 껍질 벗기고 밤일나간 패거리 기다리며 아궁이 불 지피는데 또다시 개짖는 소리 식은땀 흘리며 부얶으로 들어오는 패자들 ! 언제부터 그렇게도 죽이 잘 맞았는지
벗긴 껍질은 두엄속에 흔적을 감추고 "떨그럭 떨그럭" 그 북새통에도 고된 농사일에 세상 모르고 주무시는 외아제의 코고는 소리가 안스럽다. 어느새 뚝딱 ! 따끈 따끈한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낡은 대소쿠리에 수북하다. 화투치고 팔뚝 때리던 순수시대를 마감하고 옥수수 서리로 완전 범죄 한 초록별 아이들의 전설을 안고 달님도 쉬어가는 내고향 구천동네 오늘도 그 달님 머물다 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