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마왕이랑 다른 악령등도 물리적인 현상을 보일 수 있지만,
그 힘을 이용하여, 지상계의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짓을 강요하거나 협박하거나 한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사칭하여,
죄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족쇄를 채워 농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에 모순이 많아
심안이 열려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영역에 감싸여 마왕에게 지배되거나
동물령에게 지배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부분이 미치광이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이처럼 지옥령에게 지배되어 버리면
우선 육체적으로 부조화가 되어 온몸이 무겁고,
밤이 되면 원기를 찾고, 낮이 되면 얼빠진 사람처럼 되어 버린다.
그것은 낮에는 인간이 활동하고
영역의 진동이 흐트러져 있기 때문에,
그들도 가까이 접근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지옥령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조용해져 있을 때
부조화한 자들의 육체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항상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람이 빙의되면
대부분 인격이 바뀌어 버린다.
그러나 유계, 영계, 신계의 주민들이 육체를 지배해도 고통은 없다.
그것은 신의 빛이기 때문이며,
인간은 신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신계의 상단계부터,
상단계 빛의 대지도령(보살)이 있는 조화된 세계가 있고,
그곳에 있는 자들은, 마음을 깨닫고 있는 자들이다.
베드로, 안드레아(안드레), 바울이나 미륵, 만튜리아, 캇챠나 등의
모든 보살이 있는 곳이다.
마음은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차
지상계, 천상계의 중생을 구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는 자신이라고 깨닫고,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자들로,
신과 표리일체인, 상상단계 빛의 대지도령이 있다.
예수, 모세, 고타마 붓다가 그 대표적인 대지도령이다.
여래라고도 말하고 있다.
후광의 양이 다른 보살과 천사들보다 크다.
여래는 집착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몸에 걸치고 있는 것도 검소하고,
모든 것에 깨달음을 얻고 있다.
이 현상계도 천상계, 실재계도 그 사람들이
신(神)의 명(命)에 의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는 대부분 아가샤系 그룹의 사람들이 많다.
다른 천체와의 교섭도,
이 그룹의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 빛의 천사가 담당하고 있다.
여래계(如來界)에는 우주전체의 모든 현상을
곧바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그것은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놓치지 않는 정묘한 것이다.
그곳의 자연은 아름답게 살아있다.
광명의 세계이다.
그리고 천상계에는
이 지상계에 존재하고 있는 일체의 물질이 정비되어 있으며,
장래 지상계에서 완성되는 것까지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천상계에서도,
개개의 생명으로서의 존재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죽어서 잠시 동안은,
의식불명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지만,
곧 죽음을 깨닫고 사후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깨닫고 있는 자들은,
일단 천상계의 수용소에 들어가,
인생의 반성기간을 거쳐서,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에 의해 가야 할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 부처는 윤회로부터 해탈하고 있는가? 〗
이 질문자는 불교를 전문으로 배운 지
60년이나 되는 베테랑으로 대학에서는 인도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깨달은 사람은 윤회에서 해탈하고 있다고 불전에 쓰여 있는데,
여래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라는 단적이지만 어려운 질문을 해 왔다.
물론 나같은 불교의 초보자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현상계의 만물은, 모두가 윤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여래라고 해서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죽음으로 육체와 헤어지기 때문에,
육체야말로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분명히 육체는 타버리면 3홉의 재가 되고,
어떤 것은 이산화탄소나 인(P) 등으로 분해되며
언젠가는 대자연계로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무(無)”라거나 “공(空)”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에서 보면
형태는 변해도 공중으로 돌아간 물질, 땅으로 바뀐 물질을 합하면
다시 같은 질량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형태로서 볼 수 있는 육체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육체선조야말로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육체선조는 육체주(肉體舟)의 제공자이지만
혼(魂)의 제공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혼의 중심인 마음은
부모와 자식이라 할지라도
별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불변인 것은
우리의 육체주(肉體舟)의 질량과 똑같이,
혼(魂)도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여래는 실재계 “공”의 세계도,
이 현상계 “색”의 세계도 자유자재로 갈 수 있고,
생(生)과 사(死)는
육체주의 환승이라는 것을 물론 알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사카의 가려고 할 때
자동차를 타고, 역에서 전차로 갈아타고,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 교토를 지나 오사카까지 가서,
또 국철로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어떤 자는 비행기로 가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고 있는 “나”는
교통편을 여러 번 바꾸지만 본인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래는 저 세상도 이 세상도
자유롭게 보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 있어도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일 것이다.
생(生)과 사(死)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윤회에서 해탈하고 있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자연의 법칙대로,
비록 여래(如來)라 할지라도
실재계와 현상계의 윤회는 반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