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나이 고사카와 우오즈는 그냥 산에 오르고 사랑할 뿐이다. 대학서클에서 죽이 맞던 두 사람은 대학졸업 뒤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어 간간이 함께 등산하는 관계가 된다. 신년 휴가를 맞아 마에호타카 산을 함께 등반했다가 정상 직전에서 선등하던 고사카가 추락해 사망하고 우오즈는 혼자서 살아 돌아온다. 자일이 끊겼느냐, 둘 중 누군가 잘랐느냐 시비가 일고 당시 보급 초기였던 나일론 자일의 성능이 도마에 오르면서 주인공은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다. 지루한 자일 이야기는 주인공이 죽은 친구가 사랑했던 유부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팽팽해지고 친구의 여동생이 그에게 청혼하면서 정점에 이른다. 두 여인 사이에서 해답을 얻으려는 듯 주인공은 산으로 향하고 대답 대신 낙석에 맞아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산에서 죽는다. /한겨레
p184
우오즈는 혼자서 역전 광장을 걸었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엇다. 사람들도 끊임없이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오즈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우오즈를 보았다면, 열차가 떠날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태평스러운 등산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우오즈는 32년의 생애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고독 속에 자신을 가두어놓고 있었다. 우오즈는 생각했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알린다 해도 고사카의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왜 그런 눈 덮힌 높은 산으로 들어갔느냐.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한밤중에 일어나 자일을 몸에 감고 그런 암벽을 올라가려고 했느냐, 위험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느냐.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마에호타카 동벽을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을 올라가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것이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의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눈과 바위와 의지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그 일을 해내려고 했어. 춤을 추는 대신, 노름을 하는 대신, 영화를 보는 대신, 우리는 눈 덮인 암벽을 올라가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고사카는 떨어졌어! 그 섬뜩한 생각과 함께 우오즈는 걸음을 멈추었다.
p612
"우오즈 교타는 왜 조난을 당했는가? 그건 우오즈 자신이 직접 메모에 적어두었습니다. 나는 아까 전화로 들었을 뿐이어서 정확히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는 건 보류하겠지만, 이제 곧 여러분도 읽게 될 겁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건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우오즈는 왜 죽었는가?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건 우오즈씨가 용감한 등산였기 때문입니다. 용감한 등산가라는 작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두 죽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죽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죽을 확률이 높은 장소를 일부러 찾아가는 거니까, 죽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우오즈는 이번에 설사 무사했더라도, 지금 갖고 있는 용감성을 잃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죽었을 겁니다. 죽음이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자연이 인간을 거부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기술과 의지를 무기 삼아 싸움을 거는 겁니다.그건 확실히 인간이 인간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훌류한 일이에요. 옛날부터 인류는 언제나 그런식으로 자연을 정복해왔습니다. 과학도 문화도 그런 식으로 행복을 쟁취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등산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항상 죽음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우오즈 교타가 완전한 회사원이 되었다면,설사 산에 갔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산을 사랑하고 즐겼을 뿐, 모험은 피했을 테니까요. (중략)"
"등산이란 그렇게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근대적 스포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말에 반대합니다. 등산의 본질은 결코 스포츠가 아니에요. 인간이 히말라야를 정복한 건 스포츠가 아닙니다. 스포츠여서는 안 됩니다. 애당초 등산을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의 원인이에요.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건 등산을 스포츠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이에요. 안 그렇습니까? 모든 스포츠에는 규칙이란 게 있습니다. 등산이 스포츠라면 등산에도 규칙을 만들라 이겁니다. 규칙이 생기면 조난이 조금은 줄어들겠지요. 규칙이 없는 스포츠가 있대서야 말이 됩니까?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스포츠에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이 있습니다. 그런데 등산에는 그게 없어요. 아마추어가 한두 번 산에 올라가면 모두 프로가 된 것처럼 우쭐거립니다. 프로란 우오즈 교타 같은 등산가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프로인 우오즈 조차도 죽었잖습니까?"
도키와는 연설인지 울부짖음인지 알 수 없는 장광설을 '바보 같은 자식!'이란 말을 끝으로 마무리지었다.
저는 올 겨울 팀원들과 토왕폭 빙벽 완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지난번 노적봉에 올라 토왕폭을 보니 정말 길더군요. 살짝 두려워졌습니다. 총 길이는 350m 이고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누어 등반합니다. 개인 장비도 부족하고 아직 빙벽 연수도 짧아 다음 해로 미룰까 싶기도 한데 그 다음해엔 팀의 대선배인 유재원 선배가 올랐던 알프스 준봉 중 하나를 오를 계획이라 그전에 빡세게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저 마음만 먹고 모든 진행은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오늘 조금 한가할 듯 싶어 [미자]를 뜯어 고치려 합니다. ^^
첫댓글 빙벽이 소설로써 뛰어난가 하는 점은 읽어봐야 알겠지만, 색칠 해 놓은 부분으로 봐서 산에 오르는 행위를 이해하는 관점은 탁월하군요.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일은 나쁘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등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는 우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마에호타카 동벽을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을 올라가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것이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의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눈과 바위와 의지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그 일을 해내려고 했어. 춤을 추는 대신, 노름을 하는 대신, 영화를 보는 대신, 우리는 눈 덮인 **을 올라가려고 했던 거야.> 요게 참 맘에 듭니다. 나 같은 부류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동기'를 잘 설명해 주고 있어요. ^^
긴 글 읽느라 혼났습니다. ~~ 요즘은 긴글이 시로~~^ㅋㅋ '좋아서' 하는 짓이고 인간은 누구나 지 좋아 하는 짓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 죽음을 두려워 않는 클라이머의 열정과 애정의 삼각관계를 비벼 넣느라 작가가 꽤 수고한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미자 얼굴 그 정도면 되 수술 하려면 돈도 들고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라곤 없는 이 지역에 사는 분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지만
키므진님의 독후감이 명품입니다^^
등반에 대한 생각은 이해가 갈 듯 하네.
진이의 '빙벽'을 기대해도 되겠지?
제가 '빙벽' 을 소개한 건, 단지 산을 소재로 한 희귀한(?) 소설이었다는 것.^^ 아, 또 있군요. 소설의 첫 장면. 해거름녘에 산에서 내려와 도시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하나둘 켜지는 불빛과 네온사인, 그런 도시의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그 단상과 묘사가 인상적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