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고 눕는 행동거지에 뜻을 산같이 하라 / 일우 종수(一愚 宗壽, 1918~1985)
古今大智人 고금대지인 念念知幻身 염염지환신 知幻便離幻 지환변리환 堂堂現本身 당당현본신 七十人間事 칠십인간사 一場春夢間 일장춘몽간 汝曹參此理 여조참차리 坐臥志如山 좌와지여산
고금의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 생각에 이 몸이 환신인줄 안다. 환(幻)인줄 알아 환을 여의면 당당히 본신이 드러남이라 칠십 인간사가 한바탕 봄꿈이니 너희들은 이 이치를 잘 알아 앉고 눕는 행동거지에 뜻을 산과 같이 하라.
[註] 변(便) : 문득 변, 편할 편, 소식 편, 오줌. 똥 변 . 참(參) : 간여할 참, 석(三) 삼.
♣ 종수 스님은 1918년 경북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에서 부친 달성 서씨 공삼, 모친 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꿈에 노스님이 바랑을 메고 들어 왔다하니 숙세의 연이라 했다. 속명은 경진(敬鎭)이다.
17세 되던 해 1935년 대구 파계사로 출가하여 벽담(碧潭)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불명은 ‘종수’이며 ‘일우’는 법호이다.
♣ 금강산 마하연에서 만공 스님을, 오대산에서 한암스님을 친견하고 1942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영명(永明)율사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고, 자운 성우 율사로 부터 계맥을 전수받았다. 이후 스님은 전국의 선원에서 안거정진했다.
"중노릇하려고 절에 들어왔으니 너는 네 중노릇을 잘하고 나는 내 중노릇을 잘하면 된다"
종수 스님은 한국 근대불교사에 길이 남을 율맥(律脈)이다. 그는 경전 공부를 할 때나 참선을 할 때도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아 별명이 '돌부처'였다. 이처럼 그는 중노릇에 있어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1947년 봉암사 결사에 참여 했으며 조계종 전계대화상, 파계사 주지, 고운사 주지, 원로의원등을 역임했다. 1956년 세수 67세, 법랍 50세로 입적했다.
♣ 생전에 상좌가 “스님, 어찌하면 중노릇 잘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여자와 돈에 원수지면 된다.” “나태심이 일어날 때는 어찌하면 됩니까?” “네 깎은 머리를 쓰다듬어 보거라. 네 머리 깎을 때의 그 첫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다.” - 출처(참고) : 불교신문 / 이진두의 고승전 - ,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 불교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