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청말띠 해 |
|
갑오년(청말띠) 황금의 시기 |
한국의 말이 행운을 부르는 친숙한 동물이라면, 몽골에서의 말은 초원과 설원을 달리는 유목민족의 기백을 상징했다.
몽골에 가면 전세계에 유일하게 말 중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野生馬)를 볼 수 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후스타이(Hustai) 자연보호구역에 서식하고 있는 타키(Takhi)가 그 주인공이다. 길들여 지지 않는 야생마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사육말과 교배도 불가능하다. 이 야생마는 1960년대 자연상태에서 멸종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독일환경단체에서 성금을 모아 전세계 동물원에 흩어져 있던 타키 7마리를 모아 그 씨앗을 몽골에 보내 야생마가 복원됐다. 야생마 타키를 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2009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곳을 방문해 야생마 복원사업을 격려했다.
2014년은 갑오년(甲午年) 말띠 해다. 갑자(甲子)년에서 시작하는 60간지(干支)로는 31번째에 해당한다. 60간지의 절반이 지나고 다시 남은 절반을 디디는 첫 해라고 해서 역학계에선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갑오에서 갑(甲)은 숲이나 큰 나무를 상징하고 오(午)는 말을 뜻한다. 색깔로 갑은 푸른 색을 의미해 갑오는 ‘푸른 말(靑馬)’을 상징한다고 본다.
말의 상징은 무엇보다 박력과 강인한 생동감이다. 예로부터 소를 탄다는 것은 세사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지 않는 것을 의미했지만 말을 탄다는 것은 권력과 권위의 아이콘으로 비쳐졌다. 청마는 특히 높은 기상을 가진 활력이 넘치는 동물로 꼽힌다. 그래서 갑오년은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갑오에 강한 에너지가 개인 활동과 국가의 명운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국사에서도 갑오년은 에너지가 분출하는 한 해 였다. 120년 전인 1894년 갑오년 봄에는 ‘갑오농민전쟁’이 발발했고 여름에는 김홍집 내각이 갑오개혁을 단행했다. 신분제를 폐지하고 노비 매매를 금지 했으며 공식적으로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는 반상제를 폐지하는 등 조선 최대의 개혁이 바로 1894년에 있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전란으로 이끌었던 청일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234년 갑오년에는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골 제국 기마대가 고려를 침입하면서 기나긴 대몽항쟁이 시작됐다. 조선 효종 때인 1654년 갑오년에는 청나라에서 러시아 정벌을 위해 조선에 포수들을 요청, 나선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서구에서는 1774년 갑오년에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인 제1차 대륙회의가 열렸고 1834년 영국은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재미있는 것은 갑오년에 원자력발전 등 에너지 이슈와 관련된 일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1834년 독일의 기술자 모리츠 헤르만 야코비가 최초의 전기 모터를 개발했으며 1954년 갑오년에는 미국에서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만들었다. 소련은 같은 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스크바 근교에 세웠고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했다.
포니·갤로퍼·에쿠우스
세시풍속에서도 말은 치성의 대상이었다. 음력 정월 첫 ‘말날’ 상오일(上午日)은 말에게 제사를 지내고 숭상하는 날이었다.
말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현대에도 여전하다. 승용차 브랜드를 보면 ‘포니(조랑말)’ ‘갤로퍼(질주하는 말)’ ‘에쿠우스(말을 뜻하는 라틴어)’가 있다. 말표 신발과 구두약까지 있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는 말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왕을 받들고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았는데, 한 우물가에 신비한 기운을 가진 흰 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 말이 절한 곳을 살피니 자주빛 알이 있었고 그 알에서 나온 이가 혁거세왕이다.
‘말띠의 저주’ 일본 미신
건국 신화에서부터 일상의 삶과 죽음까지, 말은 어떤 십이지(十二支) 동물보다 다양한 상징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죽은 이(死者)의 영혼을 태워 저승으로 이끄는 인도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상여 장식이나 무덤 안팎의 장식물 등에도 많이 등장했다. 청동기 시대 말 머리뼈에서 부터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곤마도(滾馬圖)’와 유하마도(柳下馬圖) 등 말 관련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 천마총에서 출토된 국보 제207호 천마도, 라스코 동굴벽화 등에 등장하는 말의 모습을 통해 세계 각 지역의 말 관련 문화를 볼 수 있다.
말의 해, 천간(天干)의 갑(甲)이 청색을 의미한다고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청(靑)말띠’로 불린다. 말띠 여성은 기질이 세다는 속설 때문에 말띠해에는 출산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해에 불과하다. 과거 말띠해엔 어김없이 출산율이 떨어졌다. 인구 그래프를 뒤흔드는 이 말띠 속설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말띠 속설은 일본에서 수입된 미신이다. 반일(反日)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왜색(倭色)미신 때문에 출산율이 출렁거린다니 아이러니다.
우리나라 민속에는 ‘백말띠’ ‘청말띠’를 따지며 금기시했다는 어떤 흔적도 없다고 한다. 다른 것을 볼 필요도 없이 조선시대 왕비 중에 말띠 여성이 적잖았다. 성종의 후비 정현왕후(임오생 1462년), 인조비 인열왕후(갑오생 1594년), 효종비 인선왕후(무오생 1618년), 현종비 명성왕후(임오생 1642년)가 모두 말띠였다. 말띠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속설이 있었다면 조선왕실이 ‘말띠 왕비’를 간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띠 동물에 색깔을 입혀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그 해의 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역사 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 말띠 속설은 우리민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역학자들 역시 말띠라는 것만으로 여자의 운명을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명리학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도 말띠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말띠 금기의 기원은 일본에서 생겨난 ‘적(赤)말띠의 저주’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적말띠의 저주란 붉은 말을 상징하는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을 불운의 상징으로 간주해 차별하는 일본사회 저변의 속설을 말한다. 예컨데 병오년이었던 1966년 일본에서는 유래없는 출산율 감소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의 일본 교포사회에서도 그해 출산율이 2~3%씩 격감할 정도였다. 당시 한창 베이비붐 중이었던 한국에서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급감하는 기현상이 일어났었다. ‘말띠해 한국사회 출산율 및 성별선호’라는 논문에서는 “일본의 적말띠 속설은 한국에서 말띠, 특히 백말띠(경오년)에 대한 저주로 변모했다.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적말띠 여성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가 공교롭게도 백말띠해(1930년)였고 그것이 백말띠 속설이 생겨난 계기가 아닌가 풀이된다.
그런데 ‘띠 미신’은 왜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는 미신의 ‘자기실현’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06년 적말띠 여성들은 대체로 가난한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적말띠라는 낙인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불행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적말띠의 팔자에 대한 미신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다.
하루 천리달린 ‘한혈마’
‘말띠여성 팔자’와는 관계없이 우리나라에서 사주를 볼 때 말띠에다가 말시(時)에 난 사람은 매우 정력적이고 이성도 많이 따르며 활동범위가 넓다고 본다. 이는 양 기운이 정점에 오른 정오(正午)를 동물로 표현하면 말(馬)이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물 가운데서도 말을 가장 양 기운이 강한 동물로 생각했다.
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좋고 정력적인 말이 한혈마(汗血馬)이다. 한(汗)은 ‘땀’이다. 한혈마는 달릴 때 피땀을 흘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로 피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선홍색으로 붉기 때문에, 땀을 흘리면 옆에서 보기에 피땀처럼 보일 뿐이다.
한혈마라면 말 중에서는 최고의 명마로 꼽혔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한혈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여포가 타다가 나중에 관우가 타게 된 적토마(赤兎馬)도 한혈마 계통에 들어간다. 한혈마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서역(중앙아시아)이 그 원산지였다.
옛날 전쟁은 말이 얼마나 오래 달리고 힘이 좋은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났다. 기마병이 승부를 좌우했다. 현대의 경마장에서도 승부의 관건을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고 한다. ‘말이 70퍼센트이고 기수가 30퍼센트’라는 얘기다. 갑오년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馬不停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정진해야 된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변방 노인이 기르던 말로 인해 길흉화복이 바뀐것 처럼 인간 만사도 길흉을 예단할 수는 없다. 변화가 많을 것이라는 청말띠 해를 맞아 새삼 새옹지마의 철학을 생각하게 된다.
힘차게 달리는 한해 되세요
K.H.
첫댓글 나도 청말띠는 처음들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