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리라 oJmologevw(3670, 호몰로게오) 선포하다, 선언하다 [계3:5]
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 선포하다, 선언하다, 찬미하다, 칭찬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
동사 호몰로게오는 소포클레스와 헤로도투스에서부터 나타나며, 헬라어 문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법률과 종교 분야에서 중요한 용어이다. 호몰로게오는 호모(동일한 것, 유사한 것)와 레고(말하다), 또는 로고스(말, 연설)의 합성어이며, 따라서 '동일한 것을 말하다', '말에 동의하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a) '그 말에 동의하다'(Hdt.,Ⅰ,142,4), '같은 언어를 말하다, 그의 확언을 받아들이다, 책임을 인정하다, 죄를 고백하다'(Soph.Phil.에서부터).
(b) '영수증을 확인하다'(pap에서 때때로).
(c) '제안에 동의하다'(Hdt.,Thuc.), '제안에 따르다'.
(d) '소원에 동의하다, 약속하다'.(참조: O.Michel).
이 단어(와 이 어군의 단어들)에는 법정적인 의미가 현저하게 함축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진술(말)에 동의하고 어떤 사항을 인정하거나 고백하고(예: 재판관 앞에서의 자기 죄에 대한 인정이나 고백), 어떤 일에 대해 동의하고(예: 다른 사람의소원에 대한 동의) 또한 약속한다. 이 동의는 법정적 또는 법적 계약(서)로서 서약, 약속 또는 고백 행위로 표현한다.
이 단어들의 종교적 용법은 이 단어들을 협정(조약)이나 법정 언어로 사용한 용법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어떤 맹세(호몰로게오)로서 자신을 구속하는 사람은 신(神)과의 조약 관계에 들어 간다. 그래서 이 개념은 법정에서의 과실에 대한 엄숙한 고백을 뜻하는 개념에서 신께 대한 죄의 고백을 뜻하는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루디아(Lydia) 와 프리기아(Phrygia)의 속죄에 대한 비문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특히 동양의 이교들에서 사용되었다. 현대 헬라어에서 이 개념은 제사장에게 하는 신성한 고백을 의미하게 되었다. 곧 엑소몰로게오마이는 '나는 고백을 한다'는 뜻이며, 엑소몰로게오(ejxomologevw, 1843)는 '나는 고백을 듣는다'는 뜻이다(참조: D.Furst).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호몰로게오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야다(3034: 찬양하다, 욥 40:14[9]), 나다르(5087: 서원하다, 렘 44:25[51:25]), 샤바(7650: 맹세하다, 겔 16:8)의 역어로 각각 한번씩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오경, 지혜서 18:13에서 하나님의 자손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집회서 4:26에서 잘못을 '고백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호몰로게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그 중에 l0회는 요한복음에 나온다. 이 용법은 일반 헬라어의 기본 의미로 시작하여 70인역본의 의미를 경유하여 그 후기의 저술에서 나타난 의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a) 호몰로게오는 '언명하다, 약속하다, 시인(인정)하다, (엄숙히)공언하다,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마 14:7에서 헤롯은 의붓딸에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맹세의 약속을 했다: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이 경우에 공언하는 것은 약속이나 맹세와 동일한 것이다. 호몰로게오에는 말하는 자를 그의 말에 묶는(구속하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
행 7:17에도 비슷한 용법이 나온다. 곧 아브라함에게 한 공언 또는 약속은 의무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 1:20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자가 아님을 언명 또는 공언하였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여기에서 호몰로게오는 복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공개적인 엄숙한 선언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범주에 속한다(요 1:7 요 1:15 요 1:19).
히 11:13은 아마 고백(confessing)과 공언(avowing)에 대한 일반 헬라어 용법을 가장 잘 이해한 것 같다. 약속의 땅 입구에서 족장들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들이 땅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선언 및 증거, 곧 공개적으로 한 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신중하게 호몰로게오를 사용함으로 두 가지 해석을 모두 허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b) 히 13:15의 호몰로게오는 '찬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 문맥은 교회에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 것을 요구한다. 곧 예수님의 중재를 통하여 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찬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c) 호몰로게오는 '고백하다, 공개적으로 고백하다, 공적으로 진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일 1:9에서 호몰로게오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언명 또는 공언을 하는 자는 어떤 사실과 직면한다. 그는 그 사실을 감추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는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특정한 죄들을 고백한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정직하게 자신의 과실을 깨닫고 공언할 때 그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롬 10:9 - 롬 10:10(참조:신 30:14)에 의하면, 믿음과 고백은 연결되어 있다(참조: 고후 4:13). 고백과 선포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에는 종말론적인 책임이 따르며(참조: 고후 4:14), 종말론적인 구원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고백 형식이 롬 10:9 이면에 놓여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행 23:8 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고백도 종말론적 양상을 나타낸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했으나 바리새인들은 오는 세상과 관계된 종말론진리에 대한 그들의 교리적 고백으로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반대했다.
참된 믿음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은 하나님의 성육신한 아들에 대한 공적 고백이다(요일 4:2 참조:요 1:14).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 고백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2:28 요일 4:15). 이것은 예를 들어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그노시스파와 같은 이단적 운동을 정면으로 반대하여 있는 참된 기독론의 표적이다(요일 4:2 이하; 요일 4:15 참조: 요일 2:22).
요한이 고백에 대하여 기록할 때 결코 고립된 교훈을 의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산출하는 완전한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신학의 주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이다. 사람이 자신의 고백에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지지하고 그 사실에 자신의 생을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시금석 곧 영혼을 시험하는 표적이 된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공공연하게 고백하는 자는 회당에서 추방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요 9:22 요 12:42). 또한 요한은 교회에 명하기를 교회의 모임에서 참 고백과 거짓 고백을 구별하라고 하였다(요일 4:1 이하).
딛 1:16도 역시 이단적인 고백에 대한 공격이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이 고백-아마도 그노시스파의 더 높은 지식을 주장하는 고백과 이것을 추구하는 자의 생활은 서로 모순되므로 그 고백이 거짓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딤전 6:12에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선한 증거는 제자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마 10:32 참조: 딤전 6:13). 이러한 고백은 공적이며 (딤전 6:12), 구속력이 있고(딤전 6:12-13), 결정적인 것이다(마 10:32). 교회 또는 개인 신자는 죄의 용서에 대하여 응답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을 공적으로 고백함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 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으로 인정되고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는 증언을 하는 것이다. 신자는 자신의 믿음의 "고백에서"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 곧 자신의 존재와 모든 것을 예수님이 행하신 바를 통한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R.Bultmann). 믿음의 행위로 서의 이러한 고백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관련된다.
(d) 호몰로게오는 법적인 의미에서 '진술하다', '증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호몰로게오의 법적인 용법은 아마도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호몰로게오는 눅 12:8과 병행구 마 10:32에서 사용되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예수님은 자기를 시인 곧 고백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고백하면 자기도 종말론적인 증인으로서 아버지 앞에서 그것을 확증할 것이다고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인간의 행동과 심판자 곧 증인의 말씀의 일치이다.
부인은 항상 예수님께 대한 배반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이 고백은 종말론적인 면이 특히 강조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편에 서거나 또는 예수님과 관계를 끊거나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행동을 하실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계 3:5 참조:마 12:32 이하; 막 8:34). 신자는 예수님과 교제 관계에 너무 완전하게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람들 앞에서의 그의 고백, 예를 들어 박해 시기 동안에 인간 법정 앞에서 고백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는 고백과 같이 간주된다.
이러한 문맥에서 고백은 사람이 말하는 것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생애에서 보여지게 되는 순종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전적인 순종이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 즉 사람이 구원에 대한 자기의 이해와 지식으로 만족하는 곳에서 이것은 부인과 동등한 것이 된다.
마 7:23에서 보면, 이러한 고백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심판 때에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공언하실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 호몰로게오는 종말론적 증거, 또는 심판에 의한 거부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을 나타낸다. (참조: O.Michel; D.Fu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