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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
“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 2002년 1월쯤인가 보다. BC 카드 회사가 TV를 통해 한 연예인을 등장시켜 신년 광고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하얀 눈이 빨간 지붕과 전나무를 온통 뒤덮은 들판을 배경으로 빨간 옷, 빨간 벙어리장갑, 하얀 목도리 차림의 탤런트 김정은 양이 눈사람 옆에서 특유의 눈웃음으로 방실거리며 외쳤던 말이다. 그로부터 2, 3년이 흐른 후, 한 일간지가 언어로 표현된 한국인의 의식을 조사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은 “ 부자 되세요.”이며 2위를 차지한 것은 “ 행복하세요.”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자신을 보고 부자가 되라고 격려해 주니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고 그렇게 빌어 주는 상대방의 착한 마음까지도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그 말이 1위를 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이 실타래처럼 엉클어지면서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말이나 글 속에는 그 말을 하거나 글을 쓴 사람과, 시대와, 사회가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행복하세요.”는 그나마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듯한데 “부자 되세요.”는 물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냄새가 물씬 난다. “부자 되세요.”라니, 언제부터 우리 한국 사람들이 부를 가장 가치 있게 보고 추구하기에 혈안이 되었던가? 얼마나 못 살기에 말이라도 부자 되기를 염원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하는 걸까. 음식에 걸신들려 마구 먹는 모습이나 부자가 못되어 안달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절대 다수의 한국인이 돈독이 바짝 올라 배금주의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오인되는 이 인사말, 외국인이 보았을 때 자칫 한국인의 국민성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이 창피한 인사말을 그대로 보고 있기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쥐꼬리만 한 남산골샌님의 정신으로 현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면 이 말이 역시 역겹게 들릴 것임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한다. 돈이 가진 힘, 무척 세다. 산을 무너뜨려 아파트를 세우니 강산이 변한다. 보통 사람이 귀인으로 둔갑한다. 절대적인 노(No)를 굴욕적인 예스(Yes)로 전환시켜 마음까지 녹인다. 가시밭길에서 탄탄대로로 바뀌니 인생길이 달라진다. 지옥을 떠나 극락에서 노니 신선의 경지이다. 천덕구니에서 수전노로 많이들 변하니 사람이 달라진다. 돈이 가진 자유, 너무 많다. 갖고 싶으면 다 잡을 수 있고, 금실로 수놓은 옷도 입어 볼 수 있다. 하늘나라 복숭아를 빼고는 다 먹어 볼 수 있다. 하늘에 닿을 높은 집도 지을 수 있다. 이 지구 끝까지 가 볼 수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수단 가치에 머물어야 할 돈이 이제는 목적가치로 추구하는 풍조가 만연해져 버렸다. 나의 주변에도 이미 굉장한 부자인데도 부의 축적 그 자체를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느라 신경 쓰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돈은 여우다. 요괴다. 악마다. 물질이 점점 판을 치는 바람에 정신이 게걸음을 친다. 돈이 말을 자주 하는 바람에 진리가 입을 다물고 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살인도 마다한다.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부모를 내다 버리고,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자식을 죽여 버린다. 유산을 가로채거나 나누어 먹기에 형제애가 무너져 내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이 잘 사는 꼴은 못 봐 주겠다며 불을 질러버리며, 돈 되는 일이면 의리도, 인격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 이래저래 돈이 원수다. 원수는 없애버려야 한다. 돈을 없애버리면 사랑도 지속되고, 형제간의 정도 살아나고, 인정도 생기고, 의리도 이어지고, 인격도 부활하게 되어 사람답게 살게 될 터인데 화근이 되는 돈을 왜 탐내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높은 산을 정복하면 반드시 내려온다. 그런데 욕망의 산을 올라가서는 아예 내려올 줄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나물 먹고 물마시며 무병장수하였지만 현대인은 고기 먹고 보약 마시면서도 만병급사하고 있으니 실로 이상한 조화이지 않은가. 돈, 많아도 소용없다. 이고 가지 못한다. 땅, 많아도 소용없다. 지고 가지 못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내, 남 없이 이고 가려고 지고 가려고 허덕인다. 재화(財貨)라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너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쉬우나 너무 없으면 비굴해져서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품위 유지비, 체면 유지비라는 희한한 단어로 돈을 탐내는 구실도 생겨나지 않았던가.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은 “황금은 시금석으로 시험하고 사람은 황금으로 시험한다.”고 말했다. 돈을 보고 무덤덤한 사람이 있을까? 돈으로 테스트해서 합격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웬만큼 단속을 하지 않으면 빗장 지른 문이 소리 없이 열릴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치 윤리, 경제 윤리, 사회 윤리라고 윤리를 들먹이면서 정작 돈에도 윤리가 뒤따름을 망각하는 이가 많다. 정당하게 깨끗하게 버는 것과, 가치 있고 바람직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을 외면한다. 오죽하면 ‘돈 세탁’, ‘검은 돈’이란 희한한 낱말이 생겨났는가. 검게 마련하고 검게 썼으니 검은 돈이고 또한 세탁도 필요한 모양이다. 하얀 마음으로 하얗게 벌어서 하얀 돈으로 하얀 삶을 지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수의 사람들의 부정 축재와 명분 없는 용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분노와, 좌절과, 배신감과, 상대적 빈곤감을 안겨 주고 있으니 이게 어디 보통 죄악이겠는가. 나는 그놈의 로또 복권을 미워한다. 그 취지는 이해하되, 그 제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성하게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운이 좋으면 하루 종일 돈 나무를 쳐다만 보아도 돈이 입 안으로 떨어지는 그런 횡재가 어디에 또 있을까? 적게 먹고 가는 똥 누던 일상생활의 리듬을 깨뜨려 가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느라 몽롱한 눈빛으로 사는 생활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걱정이 된다. 나는 가난한 생활인이다. 백화점에서 예쁜 색깔의 옷을 보면 카드를 내밀어 사고 싶다. 그 놈의 돈 탓이다. 생선가게에서 식탁에 올릴 찌개거리로 민어나 조기를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동태를 잡는다. 그 놈의 돈 탓이다. 좋은 집을 보면 언제나 저런 집에 살아보나 하고 한숨이 나온다. 그놈의 돈 탓이다. 아서라. 돈을 마음대로 부리는 주인은 될지 못할지언정 돈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서야 되겠는가. 도리질로 마음을 바로잡아 채찍질로 후려치고 담금질로 굳혀야겠다. 네덜란드 태생의 그림책 작가인 레오 리오니( Leo Lionoi 1910-1999)는 ‘현대의 이솝’으로 불린다. 그는 ‘물고기는 물고기야’에서 분수껏 사는 것을 강조하였다. 숲 언저리 연못에 피라미와 올챙이가 친하게 살고 있었다. 피라미는 자기와 올챙이가 똑같은 물고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올챙이는 밤사이에 뒷다리가 자라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피라미에게 “ 개구리는 개구리이고 물고기는 물고기야”하며 말한다. 그러나 피라미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앞다리가 생긴 개구리에 이어 피라미도 어엿한 물고기가 되었다. 어느 날 네 발 달린 개구리는 연못 밖에 뛰어나가서 세상에서 보고 온 새와, 젖소,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물속에서만 산 물고기는 그 희한한 세상을 보려고 어느 날 풀 위로 튀어 오른다. 숨도 쉬지 못하고 파닥거리면서 다 죽게 된 물고기를 개구리가 데리고 오자 햇살이 가득 비쳐든 물속이 가장 멋진 세상이란 것을 물고기는 그 때서야 깨닫고 개구리에게 말한다. “ 그래, 고마워. 네 말이 맞아. 물고기는 역시 물고기야.” 사람들은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난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살고 있다. 나의 존재, 가치, 사명에 대해 고뇌하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자기를 긍정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만족하게 되는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물고기 같은 시행착오나 착각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를 사색하여 분수를 알아 만족한다면 참으로 한 세상을 뜻있게 살다가 갈 수가 있을 것 같다. “분수껏 살아라.”는 웰빙에 대한 욕망을 우산처럼 접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이해하고 가장 자기다운 삶을 노래하는 것이다. 빌려 입은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삶이 아니라 맞춤옷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을 구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마치 구도의 경지만큼이나 지족(知足)을 추구하였다. 만족이야말로 진정 최대의 부(富)이다. 가난한 자는 적게 소유한 자가 아니다. 진짜배기로 가난한 자는 소망이 소유보다 더 큰 자이다. 또다시 소유하고자 늘 꿈꾸다 보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행복감을 맛볼 수 없다. 이 지구상에는 65억의 행복관이 있다. 그 기준이 어떻든 행복이라는 것은 만족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하다. 지족을 아는 것이 바로 만족감을 얻는 첩경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잘 터득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에는 한 때 “밥 먹었느냐?”, “진지 잡수셨습니까?”하고 상대방 끼니 걱정으로 인사를 주고받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 겨우 밥을 먹고 살 만해지니 “ 부자 되세요.”라는 탐욕어린 인사말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잘 살게 되면 다음에는 무슨 인사말이 나올까? 돈이 많아 너무너무 편리해진 세상이라서, 끝없이 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사세요.”가 아니라“영원히 사세요.”라는 인사말이 나오지 않을까? 결국은 근사한 인사말을 하나 만들어 보기로 작정했다. “만족하며 사세요.” 라고 하면 “건방지다.”라고 말할 것 같다. “사람답게 사세요?” 이건 “감히 충고한다.”라고 할 것 같다. “보람되게 사세요?” 가치 지향적이지만 다소 설교적이다. “멋지게 사세요?” 이상적이지만 풍류적으로 해석되기 쉽다. 이제 텔레비전 전파가 아닌 타임머신으로, 내 글을 읽을 독자에게 제2의 김정은이 되어 인사말을 하나 던져 보련다. 정말로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귀때기를 맞을 것 같다. “여-러-분~ ! 모-두 분수껏 사 -세요~. 꼭~이요. 부자 되세요가 아 ~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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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맘이 편한 부자가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요. 맘 편하세요 감사합니다
성경에 '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마음이 가난한 자",참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자신이 부자 스럽게 살고 있다면 부자가 아닐까 하오. 인사말의 유행어 인데 넘 퇴색된 말 같지요? 순수함이 없는 부자 되세요 라는 말 같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도 행동도 우리 태평천하님은 부자로 살고 계시지요. 늘 웃는 모습,유머가 풍부하고. 보기 좋습니다.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자를 내리는 이유가 어려운 이를 도와주고, 나누어 주라는 의미래요. 그걸 실천하지 않으니 자식대에 많이 거덜 난답니다. 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하는 이유지요. 우린 그나마도 아예 실천할 성 싶지 않으니까 부자가 못 되나 보지요. 어째 좀 씁쓸하긴 하네요
부자의 속성 중 하나가 끝없는 욕망,그로 인해 베품이 안되는 것, 또 하나는 자기 도취, 그로 인해 거만해진다고 봐요.그러니 많이 가진 자면서도 이 둘을 초월한 부자는 존경을 받을 만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