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켈러의 책 『양과 목자』를 읽기 위해서는 저자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번역서의 저자 소개란을 그대로 옮겨 본다.
필립 켈러, W.Phillip Keller, 1920-1997
자연과 양떼를 사랑했던 목자이자 평신도 사역자.
동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본토박이 목자들 틈에서 자라났다.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에서 농업 토양학자로 훈련을 쌓은 뒤, 캐나다 남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에서 농학 연구와 토양 관리 및 목장 개발에 여러 해를 몸담았다. 후에 동아프리카에서 생태학 연구에 전념하면서, 자연 보호와 야생 생물 사진술 및 신문 잡지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오랫동안 양을 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 『양과 목자』는 시편23편에 대한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통찰을 내놓으며, 5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수많은 독자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현대의 고전이 된 이 책 외에도 그는 Lessons from a Sheep Dog, A Layman Looks at the Lord’s Prayer 등 수많은 책을 썼다.
처음 이 책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와 닿은 것은 시편 23편의 첫 구절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 대한 그의 인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양을 안고 있는 목자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통해 강조되는 점은 목자의 품의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평화로움이다. 이 이미지에는 그 어떤 생동감이나 관계성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양을 키웠던 경험을 먼저 떠올리면서, 목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은 양과 목장을 사기 위한 비용 마련부터 시작되는 과정이다. 필요한 재정 마련을 위해 고생하면서 돈을 모았던 경험이 목자라는 단어 안에 배어 있다. 예산 범위 내에서 최적의 목장 부지를 찾아 다녔던 경험 역시 말한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생동감 그 자체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내가 처음으로 양을 기르려는 모험을 할 때, 돈을 내고 양을 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모른다. 그 양들은 내가 값을 치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독히 어려운 시기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가며 번 돈이었다. 처음 양떼를 살 때, 나는 문자 그대로 나 자신의 몸으로 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양들이 참으로 나의 일부이며 또한 나는 양들의 일부라는 사실을 특별히 느꼈다. 그래서 비록 무심한 관찰자에게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그 30마리의 양들은 내가 특별한 애착을 느꼈던,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이 부분 저자의 표현은 우리말보다 더 절절하다.
“I recall quite clearly how in my first venture with sheep, the question of paying a price for my ewes was so terribly important. They belonged to me only by virtue of the fact that I paid hard cash for them. It was money earned by the blood and sweat and tears drawn from my own body during the desperate grinding years of the Depression. And when I bought that first small flock I was buying them literally with my own body which had been laid down with this day in mind.
Because of this I felt in a special way that they were in very truth a part of me and I a part of them. There was an intimate identity involved which, though not apparent on the surface to the casual observer, nonetheless made those thirty ewes exceedingly precious to me.”
이부분을 읽으면서 ‘끔찍하게 중요한 – terribly important’, ‘그들에 대한 힘겹고 어려운 현금을 치르다 – paid hard cash for them’, ‘내 자신의 몸에서 끄집어 낸 피와 땀과 눈물로 번 돈 – money earned by the blood and sweat and tears drawn from my own body’, ‘그렇기에 그들은 정말 내 몸의 일부이고 나도 그들의 일부다 – they were in very truth a part of me and I a part of them’ 등의 표현은 앞서 말한 그림이 주는 정적인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모진 고통과 인내와 수고와 노력이 동반되는 격한 생동감과 함께 고통스럽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쁜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한 구절에서 저자가 이런 느낌과 묵상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양을 키웠던 경험때문이다. 이 구절의 묵상에서 필자에게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의 경험이다. 주어진 예산은 부족한데 그에 맞는 가장 적합한 교회 자리를 찾기 위해 뛰어다녔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끔찍하게 힘들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오직 기도하면 다 된다고 믿으면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예배 드리고 성경을 읽고 전도지를 돌리고 하던 일들은 내 몸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끄집어 낸 일이었다. 많은 지인들의 관심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교회를 정리하던 일도 생각난다. 그 사이 교회를 다녀갔던 성도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새로 온 성도 한 명만 있어도 한 주간은 정말 행복했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아무도 안 오고 혼자서 예배를 드리게 될 때 느끼는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한 구절이 담아 내고 있다. 그 점을 저자는 우리에게 전해준다.
‘
소유권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양에 대한 목자의 소유권을 말한다. 한 마리 양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목자가 치렀던 노력과 고통과 희생이 담긴 목회의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감히 아무나 함부로 ‘나는 목회자다’ 라고 말할 수 없게 하는 준엄한 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벌써 목회자의 진위가 가려진다. 돌이켜 보면 나는 매우 모자라고 자격 없는 목회자였다. 아니 자신이 목회자라고 착각했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귀한 양하지만 이 구절은 우리에게 위와 같은 반성과 후회만 주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주님의 귀하고 소중한 양임을 또한 자각시켜 준다. 나의 가치가 하나님과 주님에게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가의 크기만큼 나의 존재가 갖는 정체성도 커진다. 이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성경은 우리의 삶의 여정과 경험과 함께 어우러지고 빚어질 때 비로소 소중한 영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