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되어 세상 밖으로
홍재숙
인간의 숙명인 생로병사의 그물에 갇혔다. 왼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병원침대에 갇혀보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한밤중에도 몰아치는 통증에 침대에 걸터앉아 텅 빈 컴컴한 거리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간판 등도 지쳤는지 희미하게 빛나고 차량도 드물다. 다들 밤의 장막을 덮고 잠들어 있다.
염증으로 달아올라 뜨끈해진 수술 부위를 연신 쓰다듬는다. 밤은 왜 이리 길기만 한가. 통증에 못 견딘 윗니도 날을 세워 혀를 공격한다. 마치 절벽 끄트머리 날카로운 돌출부처럼 이빨이 와들거리며 일어난다.
‘생 ․ 로’ 를 살아내다가 ‘병’의 그물에 걸렸다. 호시탐탐 ‘사’가 쳐놓은 그물이 빠져나갈 틈새 없이 촘촘하다. 나는 비로소, 이제야 그동안 무심했던 내 몸을 심각하게 들여다본다. 진통제의 힘을 빌리려 침상머리에 늘어진 호출기를 눌렀다. 밤샘 근무 간호사가 종종걸음으로 진통 주사를 놓으려 커텐을 젖힌다. “따끔할 거예요.” 곧추세운 주사바늘이 고문으로 다가온다. 얼른 회복하여 ‘생’으로 돌아가야지.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할 고통의 무게이다.
통증이 잦아든다. 그래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식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지나온 뒤안길이 나에게 말을 건다.
맞은편 침상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큰일을 치룬 냄새가 피어오른다. 양 골반에 고관절 수술을 받은 할머니와, 넘어지는 바람에 엉치뼈가 금이 가서 수술을 받은 할머니가 뒤치락거리는 나에게 호출기를 눌러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두 할머니도 칠, 팔십 고개에서 ‘병’의 그물에게 덜미를 잡힌 신세이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기에 자신의 몸을 고스란히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앞 침대 할머니가 찾아요.”
금세 밤샘 담당 조무사가 달려온다. 기저귀 가는 부스럭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힘을 쭉 빼세요.” 소리 죽여 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병원에 입원해보니 간호사만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와 여사님이라 불리는 간병인도 백의의 천사다. 물론 자신이 택한 직업이지만 그녀들의 봉사하는 마음은 숭고하다. 병들어 마음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환자를 위해 낮과 밤을 송두리째 바친다. 모든 병이 그렇듯 밤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위해 천사들은 잠들지 않는다. 호출기에 대답하며 병실로 달려온다.
병든 부모를 병원에 맡기고 생활전선으로 걸어가는 자녀들의 고단한 뒷모습에는 ‘효도’ 라는 무거운 짐이 함께 얹혀 있다. 병실에서는 자녀에게서 걸려오는 핸드폰 울리는 횟수로 효의 기준이 판단된다. 뭐 먹고 싶으냐고 묻는 목소리에 환자 얼굴에는 생기가 돋고 목소리도 커진다. 자녀가 1층 관리실에 먹거리를 맡겨놓으면 각 병실에 배달이 되고 냉장고는 환자들의 기호식품으로 가득 찬다.
밥시간에 맞춰 드르륵 거리는 병원 식판 운반카 소리가 들리면 환자들은 냉장고에 넣어둔 개인 반찬을 꺼낸다. 맞은편 침상 두 할머니의 메뉴로 사는 형편을 엿본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고관절 수술 할머니는 병원 밥이 입에 안 맞는다고 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줄줄이 말하면, 다음날 아침에 어김없이 죽과 김밥, 바나나, 과일 등이 도착한다. 후처로 들어와 갓난아이 때부터 키운 전처 아들과 같이 사는 엉치뼈 수술 할머니는 입맛이 없다면서 병원 밥을 입에 넣고 마냥 우물거린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은 덩치만 컸지 착해서 아무 것도 몰라요. 그래도 공부 잘해서 Y대 건축과 나왔어요.” 라고 혼잣말을 한다.
식사시간이라 종종걸음 치는 병실담당 간호조무사는 일어서지 못하는 고관절 할머니 밥상을 냉장고에서 꺼내 차려주랴, 밥 안 먹는 엉치뼈 할머니에게 밥에 반찬을 얹어 아기처럼 입에 넣어주랴 애가 탄다. 끼니때마다 벌어지는 우리 방 병실 풍경이다.
“수술이 참 잘되었습니다. 2주 후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아침 회진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생의 의지를 불어넣어주던 담당 원장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애당초 한 달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걷는 것도 겁이 나고 집에 가면 백세 가까운 시어머니를 노노케어 할 자신도 없어서였다. 그런데 아뿔싸! 네모난 좁은 침상에서 제한된 움직임을 하다 보니 허벅지 근육이 빠지는 걸 느꼈다. 4인용 병실에서 부대끼는 것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3주차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생’을 향하여 세상 밖으로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집에서 재활운동을 하며 일상생활을 하자. 어차피 내 몸은 내가 감당해야한다. 씩씩하게 일어나서 옥죄고 괴롭히는 ‘병’의 그물을 끊어버리자.
나는 봄꽃봉오리가 올라왔을 즈음 입원을 해서 활짝 피어 시들해질 때 봄꽃이 되어 병원 밖 세상으로 나왔다.
*홍재숙 (소설가‧ 수필가 ‧ 아동문학가)
수필집:『꽃은 길을 불러 모은다』(2010),『연필, 그 사각거리는』(2019)
공저:『독서가 힘이다 』1~7권 출간
제7회 강서문화원 주최 강서문학상 대상 (2019) 송헌수필문학상, 書로多讀 작가상 등
국제PEN한국본부.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한국문협독서진흥회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어린이문화진흥회 회원, 가산문학회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2021 신예작가>선정,
현 <강서구립 길꽃어린이도서관> 수요수필반, 인문철학온라인독서반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