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땔나무 하는 초동되다
이영백
1963년 2월 10일부터 꼴딱 당한 것이다. 그 시절 시골에서 연료는 나무를 사용하였다. 나무는 먼 산에서 해 오는 아찰이, 물거리, 장작, 가까운 야산에서는 낙엽이나 솔가리를 긁어야 하였다. 먼 산에는 큰 머슴과 셋째 형이, 중간 산에는 중 머슴과 넷째 형이, 야산에는 꼴머슴과 내가 연료용 나무를 가져와야 하였다. 나는 땔나무 하는 아이인 “초동(樵童)”이다.
낙엽은 야산 기슭에 많이 있다. 가마니에 퍼 담아 지게에 올려 짊어지고 오면 된다. 지고 올 때 바람이 불면 한 발 나갔다가, 반 발 물러선다. 그렇게 집에까지 오면 걸음 수가 배가 된다. 앞날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
큰 머슴과 셋째 형은 새벽밥 먹고 초백이에 밥 싸서 칠십 리 길 다녀 아찰이 해 온다. 중 머슴과 셋째 형은 도시락 사서 삼십 리 길 다녀 물거리 해 온다. 비가 오지 않는 날, 농사철이 아닌 때에 그렇게 나무를 준비하여야 추운 겨울을 따습게 지낼 수 있다. 그래야 우리는 효자의 삶이 된다.
꼴머슴과 나는 낙엽을 모아다가 마당에 늘어둔다. 저녁 되면 외양간에 넣어 거름 만든다. 남은 낙엽은 부엌마다 불 지필 때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낙엽 태운 재도 수시로 긁어내어다가 헛간에 쌓아 둔다. 이것은 농사짓는 데 거름이다. 낙엽은 아무리 긁어와도 항상 부족하다. 늘 일상 바쁘게 나무를 준비하여야 할 뿐이다. 겨울 동안 불 때야 하는 나무는 산더미이다.
초가을이 시작되면 꼴머슴과 나는 소나무 밑동의 노란 솔가리를 모으러 야산에 번질나게 다녔다. 솔가리는 연료로 치면 비행기에 사용하는 휘발유처럼 고급 연료이다. 밥하는 데 솔가리로 불 때면 연기도 잘 나지 않으며, 불기운이 좋아 지은 밥맛도 최고이다. 특히 서 말 무쇠 참 솥에 밥 지으면 그 밥물 넘는 것 하며, 뜸 들일 때 불 조절도 쉬어 솔가리를 셋째 누나는 그렇게 좋아하였다. 매일 긁으러 다니면 손가락이 물러 터진다. 많은 사람이 긁어갔으니까 없어서 키 작은 소나무 밑동에 맨손으로 그러모은다.
명분으로는 서당 다니고, 실제는 가사를 도와야 하는 소년 나무꾼이다.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해 낼지는 아무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다. 여하튼 아버지 생각으로는 많은 자식 낳아 큰 살림 이루는 데 도움 된 것이다.
신학문은 하늘의 별 따기요, 그렇게 땔나무 하는 초동으로 살았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