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고려는 당(唐) 나라의 말기(末期)에 일어나 뛰어난 용맹으로 악한 무리를 다스리고, 너그러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마침내 왕업(王業)을 창건하여 후손(後孫)에게 전하였습니다.......그런 후에야 4백 75년간에 걸친 32왕(王)의 사적이 포괄되어 빠짐없이 자세하고 간략하게 모두 기록되어 사가(史家)의 체재(體栽)가 비로소 대강 갖추어진 듯합니다.- 고려사절요를 올리는 전(箋)
[粤惟高麗,起於唐季,以雄武而剗羣兇,以寬大而得衆心,遂建大業,以裕後昆..........然後四百七十五年,三十二王之事,包括無遺,詳略畢擧, 而史家之體,始若粗備 - 進高麗史節要箋]
2)에서 김종서는 고려가 32대, 475년이라고 하였는데, 절요에 스스로 공양왕까지 포함시켰음에도 32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창왕과 공양왕은 아예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서술하였더라도 연대가 맞지 않고 우왕의 재위중간에서 리성계가 조선이 개국하기까지(1381~1392)의 11년이 비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김종서의 말대로 고려사절요가 32왕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라면 그 사직은 우왕에서 끝이 나게 되는 1381년 까지로 보아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고려의 건국년도를 계산하면 907년이 되는데 바로 前蜀(907~918)의 개국년도와 같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