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기록되는 ‘고독한 숨의 율법’은 잠수潛水의 문법이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독도 원정
문경선
빛으로 새벽 여는
몸으로 물길 여는
동도 서도 그 사이 물방울 튕겨내며
바다로 몸 숨긴 해녀들
숨비소리 따온다
섬을 돌아 뱃길 돌아
물이 맑은 동해에
대물린 더듬이 물의 바닥 헤집다가
독도는 온통 보물이여
꽃 편지 띄우는 봄
가벼이 딱 숨만큼
참아낸 그 숨만큼
테왁보다 가벼이 허리춤에 숨겨놓은
고독한 숨의 율법을 섬들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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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10미터가 넘는 바닷속에서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유일한 직업이 ‘제주 해녀’다. 우리나라 해녀다. 또 그들의 ‘물질’은 개별이 아닌 집단적인 ‘공동체’ 문화로 이어져 왔고 2016년 제주 해녀문화는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제주해녀들이 독도로 ‘원정遠征 물질’을 처음 떠난다. 그들이 “출향해녀”出鄕海女다. 시인의 작품을 통해 동해 바다에서 신비롭고 성스러운 ‘숨비소리’가 들려 사람도 바닷속 생물도 하늘의 갈매기와 철새들도 그 생명의 휘파람 소리에 잠시 넋을 놓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독도의 ‘새벽’이 열리고 ‘물길’이 열리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자맥질로 바다가 집이고 고향이고 안식처인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장르다. 해녀가 海女歌이며 그 후렴구이다.
세종 때 제주목사 기건이 엄동설한에 맨몸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비참한 삶을 목도하고 “어찌 염치없이 해산물을 먹을 수 있겠는가?”라며 이후 전복 등 해산물을 먹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물질’이었고 당시 극도로 열악한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독도에까지 ‘원정 물질’을 가야만 했던 숙명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시기적으로 앞서서 부산 등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물질’은 이어졌다. 영토의 확장이었다.
시인의 표현대로 ‘대물린 더듬이 물의 바닥 헤집으며’ ‘물이 맑은 동해’에서 ‘봄’을 맞이한 지 100년이 되어 간다. 어머니의 바다, 할머니의 바다가 독도를 둘러싸고 “화산섬에서 화산섬으로” 이어온 ‘숨비소리’는 독도의 갯바위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고 동해의 수평선에 닿아 부서진다.
독도에 기록되는 ‘고독한 숨의 율법’은 잠수潛水의 문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