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의료와 관계없는 사람도 평생 중 한 번은 써먹을 수 있는 정신과 지식을 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한 번은 써먹을 실 테니 읽어봐~읽어봐~
섬망! 처음 들어보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마 평생에 한 번쯤은 주변에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중환자실 들어가셨는데, 아들도 못 알아보더라.'
'할머니가 수술받고는 치매가 갑자기 생겼다더라.'
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죠? 이것이 섬망입니다.
섬망은 譫妄으로, 헛소리할 섬 망령들 망 해서 섬망입니다.
한자 뜻 그대로 헛소리도 하고 망령이 든 것 같은 행동을 합니다.
입원해 있으신데 갑자기 밭일하러 가야 한다고 일어나시거나, 수액을 모두 뽑아버리거나, 밤에 잠 안 자고 고성방가를 하신다거나, 죽은 할멈이 보인다고 우시거나 하는 것이 주요 증상이지요.
섬망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에, 이런 증상만 있는 것에 더하여 하나의 조건이 더 있습니다.
몸이 엄청나게 안 좋거나, 갑자기 신체에 큰 변화가 왔을 때 '잠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섬망이라고 합니다.
섬망 환자의 모습은 마치 아주 극심한 치매환자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 가족들이 엄청나게 당황하지요. 없던 치매가 갑자기 생긴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원래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옵니다.
그리고 저녁에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죠.
결론적으로 몸이 안 좋아지거나 급격한 몸의 변화가 일어난 이후에, 특히 저녁에 더 안 좋아지는 갑작스러운 치매 증상을 보이는 현상 = 섬망입니다.
이 섬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뇌가 '기능을... 정지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돌아가고 있는데, 컴퓨터에다가 물 뿌리고 난방해주고 먼지 뿌리면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키겠죠?
그런 것처럼, 뇌에 염증물질도 들어가고 마취약도 들어가고 진통제도 들어가고 하면 뇌도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겠어요?
그래서 주로 수술을 받거나, 큰 병에 걸리거나, 암 말기라거나, 약을 쓰던 분이 갑자기 끊는다거나 하는 분이 이런 상태가 오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미 컴퓨터가 오래되고 관리가 안된 상태라면 더욱 고장이 잘 나겠죠?
사람에게도 이것이 적용돼서, 소위 말하는 '치매기'가 잠재되어 있던 분들이 이런 상태가 잘 됩니다.
그래서 연세가 어느 정도 있는 (50세 이상?) 분들은 수술 후 섬망이 생길 수 있다~ 는 설명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할 정도면 더더욱이 그러셨을 것이고요.
여담으로, 섬망을 겪으면서 증상이 확 드러나고 가족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치매 증상이 더 잘 보이게 되고, 그래서 이때부터 치매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 하면서 수술한 의사와 투닥투닥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지요.
수술하는 선생님들이 가끔 하소연하시더라고요.
자 그럼 섬망이 생긴 것은 알겠는데 그럼 이제 어쩌냐?
일단 의료진은 섬망의 원인이 되는 안 좋은 몸 상태를 좋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신과 협진이 된다면, 정신과에서 약물을 소량 투여할 수 있지요.
이건 말은 간단하지만 아주 복잡한 과정이므로, 그냥 이런 것을 의료진이 할 것이다... 정도만 알아두시면 되겠고요.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여러분에게 더 도움이 되겠죠?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익숙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면서 일상으로 되돌리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환자를 가능한 낮에 깨운 상태로 유지한다. 낮잠을 자면 밤잠을 못 자고, 섬망이 악화된다. 섬망 환자는 낮에 겁나 자려고 하는데, 어떻게든 깨우는 것이 좋습니다.
2. 햇볕을 쐬여주고, 산책을 시킨다. 가능한 창가 자리가 좋습니다. 걷지 못하는 상태면 휠체어도 좋아요.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3.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자극을 준다. 날짜를 물어보고, 알려주고, 장소를 물어보고, 알려주면서 환자가 계속해서 뇌를 쓰게 만든다.
4. 간병은 가능한 친숙한 사람이 한다. 병실에 친숙한 물건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5. 병실은 가능한 1~2인실, 조용하면서도 백색소음이 있는 정도로 유지한다. 밤에도 미등을 켜 놓아서 환자가 자다 깨었을 때 완전히 깜깜한 상태가 아니게 한다.
보호자 분이라면 요 5가지만 해도 굉장히 헌신적으로 간병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 섬망은 잠깐 왔다 가는 것이고, 잘 간병하고 약 써서 좋아졌다면 그냥 잊어버리면 되느냐?
그건 아니고, 치매 관련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섬망이 왔다는 것은 뇌가 약한 상태라는 것이고, 그건 알지 못하는 치매가 기저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증거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섬망이 호전되었다고 바로 검사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완전히 좋아지고 약 1달 정도 지난 후에 하시는 것이 적절합니다.
섬망은 좋아진 것 같은 상태에서도 한 달 정도 여파를 남긴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섬망이 2~3주가 되었는데도 안 좋아진다?
그럼 이건 아직 몸의 문제나 약물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것입니다.
아니면 뇌 자체가 완전히 손상된... 그러니까 잘 모르고 넘어간 뇌출혈이나 뇌경색, 뇌감염 등이 있는 것일 수 있지요.
그럴 때는 정신과가 있는 대형 병원을 방문하실 것으로 권유드립니다.
어차피 몸상태와 함께 정신과 협진이 이루어져야 치료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의원급에서는 처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약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섬망 오신 분은 뇌 CT 또는 MRI를 찍을 것을 권유드리기도 합니다. 이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 그래서 주변 사람이나 친척, 조부모님 등이 수술 후에 이상한 모습을 보여서 모두가 걱정할 때 명탐정 코난 빙의하여 '범인은... 섬망이야!'라고 할 수 있으면 멋있겠죠?
이상 여러분에게 멋있어질 기회를 드린 아빠나무였습니다.
모두 좋은 한 주의 시작 보내세요~
첫댓글 음......
몇년전 부서에서 단체로 펜션 빌려서 워크샵 했을 때, 밤 12시 40분쯤에 준비했던 고기와 술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라서 자러 가려는데 갑자기 선배대리 한 분이 '그래 다들 잘가 나도 집에 가야지 헹홍헹헹'하며 밖으로 나가려 하길래 한 20분동안 붙잡고 말려서 재운 적이 있는데 이것도 섬망인가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섬망이지요 ㅋㅋ 그냥 만취 정도가 아니라 그걸 넘어서 술이 완전히 뇌를 절여 버리면 그렇게 되지요. 다만 이 경우는 술이 과도하게 들어간 것이 문제라서 시간이 지나서 술이 소화되면 정상이 됩니다
@아빠나무 오홍...그럼 그 옆에서 다른 부장님이 '우리 장대리가 고생이 많아...내가 선배로서 미안하다...'하며 대성통곡한 것도 섬망이겠군요?
@_Arondite_ 고건 좀 애매하네요. 단순히 술로 인해 충동조절, 감정조절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져서 그런 것일 가능성도 있어서요 ㅎㅎ 섬망이라고 할 정도면 시간, 공간 등을 인지하는 능력이 보통은 떨어지거든요. 좀 더 먹이셨으면 완전히 섬망에 이르렀겠지만요 ㅋㅋㅋㅋ
@아빠나무 오홍...차이가 미묘하군요. 감사함미다.
지금 아버지도 입원중이신데 코로나로 인해서 병윈에 못들어가니 저걸 못해드려서 갑갑하네요...
ㅠㅜ 요즘 간병인도 1명 밖에 못 있고 문병도 안 되서 힘들어하시더군요. 어서 나아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경황없는 상태에서 환자에게 저런 증상이 나타나면 진짜로 당황할텐데 말이죠..
이게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고, 의사는 몇 일 지나면 그냥 좋아지니까 설명을 잘 안 해주는 경향이 있죠. 보호자는 엄청 놀라지만요ㅠ
아....치매기가 있으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라... 상당히 불안한 느낌이네요. ㅜ 가장 좋은건 안 일어나는거지만, 일어난다면 대처해야겠죠. 지식 감사합니다 ㅠㅜ
그래서 추후에 검사를 하실 필요가 있지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할머니가 밤에 가위에 자주 눌리시는데 이건 괜찮은걸까요 가위 눌리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거든여 기력이 쇠하셔서 아니면 잘따 혈액순환이 안되셔서 그런걸로만 생각했는데 글읽고나니 쌔하네여
수면 중 행동도 이번 주에 다룰겁니다 ㅎㅎ 기대해주세용!
헛 이거에 대해서는 글 내용에 추가를 안 했네요. 가위 눌리는게 진짜 못 움직이시는데 깨어나셔서 괴로웠다고 하시는 것이면 사실 큰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막 움직이고 괴로워하시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것을 가위눌린 것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면 상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빠나무 그렇군요 다음에도 그러시면 어떤 증센지 봐야겠네용..
저렇게 소위 겉보기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상태에서도 그 사람과 똑같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을까요?
'자아' 라는 것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다를 것 같네요 ㅎ
술에 만땅 취해서 나오는 행동을 '본성'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심신미약'으로 보냐가 다른 것 같은 느낌...
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일단 섬망 상태에서도 기억이 있기는 합니다만, 꿈처럼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보통 '내 정신이 아니었어'라고 마무리되고 끝납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자기 자신이냐...는 것은 정신의학의 문제보다는 철학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는 같은 자아이지만 통제능력이 상실된 상태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때리면 그 '자아'가 잘못을 한 것은 맞으나, 원치않게 조절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의한 것이니 정상을 참작해야한다...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