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어느 날 성주 독용산성 답사에 나섰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면 성주댐을 따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성주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용산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성주에 올 때마다 독용산성에 대한 관심이 있어 가 보기로 했다.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서 독용산성주차장 까지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약 6km정도 구불 구불 올라가야한다. 내려오는 차라도 만나면 후진을 하든 앞으로 가든 피 할 수 있는 곳 까지 가서 아슬아슬하게 교차를 해야하는 좁은 길이다. 마음을 졸이며 올라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 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산길의 아름다움은 탄성이 나온다. 힘겹게 마음 졸이며 올라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문까지 1.1km를 성벽 위로 나있는 둘레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허물어진 산성의 성벽이 남아 있었다. 얼마를 가다 보니 동문까지 복원이 되어 있는 성벽길 위를 걷게 되었다. 계곡을 따라 산의 8부 능선에 만들어진 성벽이라 구불 구불 이어져 있고 오르락 내리락을 하며 걷다 다시 성밖으로 나있는 길을 걷게 되었다. 드디어 독용산성의 복원된 동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산성의 전체길이가 7,7km에 이르다보니 성전체를 둘러보기에는 너무 힘들거 같아 동문 오른쪽으로 난 성벽길을 따라 가다 동암문을 만났고 그 곳에서 좀더 가보기로 하고 갔으나 길은 끊겨 북문까지 가는 길을 찾지못해 다시 되돌아 나왔다. 성주군에서도 앞으로도 계속 복원을 할 계획으로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또 올 기회를 기약하며 내려왔다. 독용산성휴양림의 숙소 까지는 약 15분 정도 소요되어 근처의 청암사를 들러보기로 하고 청암사로 갔다.
독용산성 녹색나눔 숲 데크에서부터 독용산성 자연휴양림까지 산책로 약 500m 구간이며
산책로 주변에 편백나무 외 1종 210주를 식재하고,
휴양림 내 자산홍 3,700주를 심어 독용산성 자연휴양림 이용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었다.
성주호 전망대가 있는 이 곳에서 독용산성 동문까지는 2.7km이다.
그러나 다행히 임도로 독용산성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다.
성주호 전망대
성주호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성주호
금수면 봉두리에 위치한 성주댐은 1992년 완공외었으며,
댐높이 60m, 제방길이 430m, 면적 3,530㏊에 총 3,800만 톤의 저수량을 보유하고 있다.
성주군과 고령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성주댐을 끼고 도는 약 7km의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데, 자연과 인간과 자동차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성주호 주변에는 수몰지역 내의 문화재를 옮겨놓은 영모재와 구강재가 있으며
운봉 현황호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백운정’을 비롯해
가야산·독용산성 등의 볼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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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으로 돌아 가 보이는 산이 가야산이다.
독용산성 주차장에 있는 독용산성 안내도
독용산성동문으로 가는 길에는 성벽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독용산성 동문 까지는 성벽길을 따라 1.1km를 걸어 가야 한다.
성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성벽의 흔적들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성벽은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로 가면서 점차 작은 돌을 쌓되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것)과 내탁법(內托法 : 속을 다지고 겉을 쌓는 일)을 고루 사용하였다.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3m 정도이며 가장 잘 남은 부분의 높이는 4m정도 되는 곳도 있다.
숲 사이로 나 있는 성벽 위 길을 따라 간다.
이 곳에서 부터 동문까지 복원 해 놓은 성벽 길을 따라 걸어 간다
복원 해 놓은 성벽 길
아래로 보이는 복원 된 성벽
이 곳은 성벽에 나 있는 치부분이다.
이제 이 성벽 끝에서 아래로 내려가 성 둘레길을 따라 동문으로 간다
드디어 동문 입구에 다다르다.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km(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으로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리고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 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군기고(軍器庫, 일제시 유물발굴)에는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으며, 별장1, 승장1, 호병44호로서 산성을 방어하였다 한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 사지가 산재하고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李元楨)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京山誌)》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속되었고, 성 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등이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동문지(東門址), 서문지, 남문지, 북문지, 동암문지(東暗門址), 서문암지, 남문암지,
수구문지(水溝門址), 동치성(東雉城), 서치성, 객사지, 군기고지, 안국사지와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비석 5기가 있다.
복원된 독용산성 동문
동문 누각에서 본 풍경
동문에서 오른쪽 성벽길을 따라 간다.
성벽길을 다라 걷다 만난 동문 암문터
동 암문의 모습
암문 위에서 내려다 보면 성벽길이 보인다
성벽길 위에서 본 성주호
성벽을 따라 가면 북문이 나온다. 그러나 성벽 복원이 여기에서 끝나 북문으로 가는 길이
낙엽에 가려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되돌아 나왔다.
독용산성의 총 둘레길이 7,7km라 오늘은 여기 까지 가는 것 만으로 만족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