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57회동기들이 낸 책 [57' 세상에 말을 걸다]에 실린 남편의 글입니다.
이제 내 말이 들리는가?
권오을
모처럼 아내와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았다. 모 방송국에서 주중에 이틀 방영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면 묘한 매력에 빨려들게 되어 다음주 방영 시간이 기다려지곤 한다. 현역 의원으로 바쁘게 지낼 때는 뉴스나 관심 있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봤지만, 그렇고 그런 뻔한 결론일 거라는 선입감을 가지고 있던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다. 다만 시청률이 높다거나 세간의 관심사가 되면 공부 차원이나 의정 활동의 일환으로 몇 회 정도를 시청하거나, 본방송을 챙겨 볼 여유가 없을 때는 방송사의 다시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한꺼번에 몰아서 보곤 했었다. 최근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아내와 같이 본 드라마는 동대문 패션단지를 배경으로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패션왕〉, 서울의 부자 동네 일번지 사람들의 이야기인 〈청담동 앨리스〉 등 몇 편이다.
드라마를 볼 때는 전체적인 줄거리도 관심사이지만 배우들의 표정연기를 유심히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슬플 때는 눈물을 줄줄 흘릴 수 있고, 또 화날 때는 그 편하던 얼굴이 갑자기 있는 대로 일그러져서 ‘어떻게 저 정도로 험악해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도 정치를 하면서 저런 표정연기는 배워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눈물이 줄줄 쏟아지는 연기와, 불의에 불같이 분노하는 연기는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도대체 있는 듯 없는 듯, 물에 물 탄 듯이 늘 평상심으로 정치 활동을 한 것 같고, 그래서 나의 목소리와 행보에 큰 울림이 없었던 것 같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에서는 장혜성 변호사 역의 이보영, 박수하 학생 역의 이종석, 차관우 변호사 역의 윤상현 같은 젊은 배우들이 그때 그때 필요한 표정 연기를 아주 잘 해내었다. 서너 회 정도를 보다가 그 이후에는 시청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 다시 한번 몰아서 볼 생각이다. 이 드라마는 눈을 보면 상대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박수하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고 이를 적극 변호하는 장혜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이와 연관되어 일어나는 주변의 일들을 미스터리 심리극으로 그렸다. 내가 이 드라마에 빠졌던 이유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등장인물들에 큰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지난 17대 대통령선거 때 중앙선거대책위원으로 유세단장을 역임하면서 성공적인 선거운동을 마무리하고 국회의원으로서 4선에 도전하는 선거운동을 준비할 때였다.
‘이제서야 야당에서 여당으로, 그리고 정치권 비주류에서 주류권으로 진입하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바른 정치, 큰 정치를 한번 해보겠구나’ 하고 가슴이 한창 부풀어 올랐다. 공천은 당연히 된다고 생각했고, 3선에 대한 피로감으로 나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안동의 민심이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지만 당선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통일 문제, 서민 복지, 교육 문제, 비정규직 문제, 농어촌 문제 등의 해결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여당 중진 실세 의원으로서 펼쳐갈 정치 여정을 미리 마음 속에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은 커녕 공천에 낙천하면서 총선 출마조차 포기해야 했다. 안동 신시장에서 멍석을 깔고 안동 시민들을 제대로 못 모신 죄, 안동 출신 국회의원이 공천조차 못 받아 결과적으로 안동의 명예를 실추 시킨 죄 등 여러 가지를 묶어 10일 동안 흰 무명옷을 입고 시민들에게 석고대죄를 한 후 나의 정치 인생의 한 막을 마무리하였다. 그 10일 동안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위로해주기도 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촌로의 따끔한 꾸지람이었다. 그분은 멍석 깔고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대갈을 하셨다.
“누구에게 패악을 부리느냐? 안동 시민들은 권 의원에게 해줄 것 다 해줬다. 도 의원에, 안동서 어렵다던 국회의원 3선을 시켜줬으면 되었지 무얼 더 바라느냐? 시민들에게 사죄한다고 앉아 있지만 실제로는 무언의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니냐? 네가 제대로 못 해서 공천 떨어졌지, 안동 시민들이 공천 안 줬느냐? 시민들은 미우나 고우나 권 의원에게 투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오늘 당장 전을 걷어라.”
실제 사죄하는 마음과 뭔가 억울해서 심술을 부리는 억하심정도 일부 있었다. 그 촌로는 이런 내 마음을 정확히 읽은 것이다. 물론 촌로의 말처럼 그날 전을 걷고 석고대죄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시민들의 눈은 참 정확하고도 무섭구나 생각했다. 그때 나를 도와주던 후배들이 차라리 고등학교를 다닌 대구로 지역구를 옮겨 이번 공천의 부당성에 대해 심판받자고 3일 동안 나를 설득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또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나로서는 정치적 신의를 지키기 위해 공천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오히려 후배들을 설득했다. 내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민들의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으나, 내가 한 결정에 대한 후회는 물론 없다.
출마조차 할 수 없었던 18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난 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골로, 산사로 정처없이 다니면서 그간 바빠서 못 뵈었던 분들을 만났다.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하여 걱정을 하며, 때로는 답답한 심정을 서로 토로하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2008년 한여름에는 경북 안동시 풍산의 한지공장을 찾아 종업원들의 작업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작업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마침 한지회사 회장이 외출에서 돌아오셨다기에 모처럼 커피 한 잔을 같이 하였다. 회장은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업의 애로점 등 그동안 밀렸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회장은 나보다 거의 20년 연상의 고향 선배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로 따뜻한 눈길을 주고 받던 사이였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선배는 대뜸 나에게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권 의원, 이제 내 이야기가 들리는가?”
뜬금없는 질문에 내가 “예?” 하고 반문을 했더니만 다시 한번 “내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선배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권 의원이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고 초창기에는 무척 진지하고 부지런하고 예의가 발랐는데, 재선 후반기부터는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고 하며, 오늘은 그때 처음 시작할 때처럼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다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권 의원을 만날 때마다 무엇에 쫓기는지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은 늘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며,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서 민심이 떠났지만 당신은 아직 한창 나이이니 꼭 재기하라는 말로 격려를 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늘 그 한마디 “이제 내 말이 들리는가?”가 공명 작용을 하듯 귓가에 맴돌았다.
정치 현장을 쫓아다닌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기쁜 일, 슬픈 일, 그리고 짜증 나고 귀찮은 일 등 매일 매일의 일상사에서 무척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한 분 한 분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뻔한 이야기, 상투적인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땐 집중하지 않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야기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거나, 앉아 있는 경우에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당연히 상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상대의 존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말하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요즈음도 그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내가 정말 주위와 소통은 하고 사는가, 아니 주위까지 확대할 필요도 없이 아내와 자식 등 가까운 가족들과 소통은 하고 사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한다. 가끔 식사를 같이 해도 말 한마디 없이 기계적으로 식사만 할 때는 없었는가? 대답은 한 집에 살아도 남처럼 느껴진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이를 증명하는 것 같다. 이제 중년의 나이, 백세를 사는 시대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한 청춘은 넘긴 나이이다. 다른 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고개 끄덕여주고, 화날 땐 같이 분노하고, 즐거울 땐 목젖이 보이도록 껄껄 웃고, 듣기 싫은 쓴소리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나이가 아닌가 싶다. 남은 후반전은 모든 이들에게 “예, 당신의 말을 잘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특히 아내의 말이 잘 들리도록 귀를 크게 하고 살아갈 시간이다.
첫댓글 총장님의 반듯한 성품이나 주변을 살피는 온화함을 나타내는 글귀네요.
글이란 참 오묘하죠? 그냥 적었다 싶은 글도 그 안에서 단어 몇개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사람을 느낄 수 있으까요.
앞으로 시민, 도민, 국민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홧팅!
사람은 타고난 성품대로 살아야 가장 떳떳하고 행복한 것인데요.
이 시대에 정말로 용두산 형님같은 성품으로 국민들을 가슴 따뜻이 보듬을 수 있는 자리가 쉽게 마련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세상은 호락호락 생각대로 되어지는게 아니지요.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가장 빛날때는 아마도 초선의원시절 비록 야당의원이었지만 소신있게 품은마음 그대로 정치활동을 할때였던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모두 용두산 형님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일해 준다면 대한민국에서 사는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행로가 3당합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넘어오고 여당의~계속
비주류로 남아 바른말 제때 할수 있을때는 그래도 빛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3선의원을 거치면서 용두산형님께서도 더 큰일을 하기위해 여당의 수장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알게 모르게 정치적 흙탕물에 젖어들고 계셨습니다.
그 힘의 논리로라면 그것이 정당하고 그길을 가야만 지역사회도 발전시킬수 있겠지만, 그것은 가진자, 기득권층의 이기주의 생각일 뿐입니다. 비록 지역 예산은 좀 덜 끌어오더라도 낮은층 국민들을 대변하여 거대 여당이나 대통령에게도 가슴으로 우러나는 바른 소리 할수 있는 국회의원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한점 부끄럼없이 있는 그대로를 국민들께 보여줄수 있는~계속
정치인상. 그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정치인을 목마르게 찾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국구에서 참신한 정치인의 이미지로 남아 계시니 당론에 휩쓸리기 보다는
어떤자리에 계시더라도
용두산 형님이 꿈꾸는 (국민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는~) 통일한국의 대통령의 이미지를 살려
나아가는 길에 큰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햇살님의 마음을 남편님이. 언제 읽을련지~~
희망님. 햇살님 항상 고맙!!!
"예" 남은후반전 꺼벙이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것입니다.홧팅!!!
글이 솔직하고 아주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힘든일을 겪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빈 곳을 채울 수도 있었으니 다음에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겁니다.
항상 두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