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정관 7♡ 2022-08-05
구속이냐, 자유냐 그 사이에서 그냥 한다. 온전한 자유인이 되고자 한 나와의 약속 또한 구속임을 알아차리고 수행하다 보면 중도(中道)의 길, 그 극무진심(極無盡心)(아래 [주] 참고) 위에 하나의 조화점을 찍는다. 그것은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이 되고 '참나'를 찾아가는 한 여정에서 오직 과정의 파편임을 안다.
[주] 『천부경(天符經)』에서 “본심(本心)”, 즉 ‘本’은 ‘心’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시퀀스의 마지막 구절 “극무진본(極無盡本)”에서 ‘本’을 ‘心’으로 바꾼 모순어법(p∧¬p, 셋으로 나누었을 때 명제 p(~이다)와 그 부정명제 ¬p(~이 아니다)를 하나로 이어주는 '중간'에 해당함)으로 “다하지만 다하지 않는 마음”, 즉 양극성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中)의 도(道)이다. 수학논리는 이분법이다. 즉 셋으로 나누었을 때, 명제 p(~이다)와 그 부정명제 ¬p(~이 아니다)를 하나로 이어주는 '중간'에 해당하는 "p∧¬p'은 '~이고(∧, and), 동시에 ~이 아니다"은 모순을 낳기 때문에 배제하는 '배중률'을 약속한다. 그래서 둘(p, ¬p) 중 어느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 되어 참과 거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배중률). 반면에 자연은 삼분법 그 자체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법칙으로 이어지기에, 중간에 있는 'p∧¬p'가 양극성인 둘(p, ¬p)을 하나로 이어준다. '극'(다할 극), '무진'(다하지 않음)은 서로 양극성이다. 이 둘을 나란히 붙여놓은 '극무진'은 중(p∧¬p)의 표현기법이다. 우리 말에는 두 양극성을 나란히 중으로 표현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선악'은 양극성인 '선과 악'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선과 악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중의 표현이다. 매 순간 일어나는 맘의 작용(선택)이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는 수학논리 중의 표기에 여전히 남아 있다. 『천부경(天符經)』에는 '시무시', '종무종' 등으로 모두 6번 나타난다.
♡무심정관 71♡ 2024-05-01(수) : “천년 학(鶴)과 꽃게”
자연에서는 예로부터 두 동물이 기운과 호흡명상수련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 하나는 백학(白鶴)이다. 백학은 그 겉모습이 이름처럼 백색이다. 흰색은 하늘의 밝은 빛(천기)을 뜻한다. 과거 '흰옷'을 즐겨입는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부르는 ‘백’과 같은 의미다. 백학의 이미지는 '고귀'하다. 하늘의 기운을 가져 '도도'하기도 하다. 걸어갈 때는 서두르지 않고 도도한 모습으로 천천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유롭게 주위를 살피듯 갯벌을 걷는다. 그러다 위급 시 백학은 곧바로 하늘로 (휙~) 비상한다. 다른 한 동물은 꽃게다. 학과 꽃게의 공통점은 둘 다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동작이 느리다는 것이다. 다른 점도 많다. 학은 위급 시 하늘로 비상하지만, 게들은 땅속으로 (빠르게) 숨는다. 색깔도 학은 고귀한 하늘의 백색이라면, 꽃게는 땅의 색이랍니다. 갯벌에 사는 게는 갯벌과 비슷한 (보호)색이다. 그런데 이 둘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이게 호흡과 관계가 있다. 천천히 동작하면 호흡을 조율할 수 있지만, (달리기처럼) 빠르게 동작하면 호흡이 빨라져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가 없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자율신경이 내 맘보다 먼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학과 꽃게가 느리게 걷기에 호흡이 편하고 깊어진다는 의미다. 자꾸만 계속해서 “백학과 꽃게 따라 하기”라고 강조하는 데는 '느리게-천천히-깊게-편하게' 호흡하는 데 그 포인트가 있다. 예전과는 달리 '백학과 꽃게 따라 하기"를 여러 번 강조하면서 아내의 걷는 속도에 비해 내가 무척 느려졌다는 것이다. 먼저 휙~걷고 차 키 받아 갖고 차에 먼저 가 있던 아내는 "여태 뭐 하고 이렇게 늦게 오냐고?" 다구친다. 백학과 꽃게처럼 호흡이 깊어지고 고요해지도록 느리게 걸어오는 내 맘을 어떻게 알까? 그냥 "천천히 걷다보니 늦네"라고 대충 얼부버린다. 백학의 성질이 하늘 기운 양기(陽氣)라면 꽃게는 땅의 기운 음기(陰氣)를 지닌 동물이다. 이 두 동물로부터 '천지'의 두 기운을 다 엿 볼 수 있다. 빠르게 휙~ 나르는 양의 기운과 땅속 깊숙이 머리를 처박는 음의 기운이 서로 조화롭도록, 백학과 꽃게를 따라, 맘수행하겠다고, 스스로 '참나'인 동심을 찾으며 오늘도 성찰한다.
어제(5월 3일) 디자인공원 숲 동산에 있는 정자에서 5시 반부터 내맘대로 수행하는 자유수련 영상을 게시해 봅니다. 그냥 가끔 한 번씩 올려봅니다. 나중에 단무도 수련 동작 하나도. 매일하는 수행인지라 그날 그날 다르게 내 몸이 움직입니다.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그냥하다보면 몸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기다리면 절로 압니다. 뭐든 그냥하면 됩니다. 좋고 나쁜 것 자체는 없어요. 우리가 그렇게 상을 짓는 것이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고 내 맘이 시키는 대로 그냥 선택하고 그냥하다 보면 하늘이, 땅이 자연히 다 알려줍니다. 그런데 오늘 제 자신에게 '그냥 말하는' 습 하나를 여기 적어봅니다.
"이명(以明)아, 일어나 5:30 밖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물로 혓바닥과 구강을 양치질 한 후, 엄지검지로 잇몸 맛사지도 해주고, 악관절을 많이 움직여 주라. 거울 바라보고, 고개도 돌리고-입 크게 벌려 눈동자 크게 위로 아애로 번갈아 가며 뜨고-양볼 수평으로 벌려 찢고 혓 바닥 4방으로 세게 밀고 8방으로 돌리고 상하 와이퍼 처럼 왔다갔다 해주고 180도 돌려도 주고-턱관절 아래로 세게 당겨누르고-엄지검지로 귓밥 잡아 옆으로 당기고 비비고 주무르고-비강도 '하~'하고 긁어내고 토하고-콧구멍도 위아래로 벌렁벌렁-눈도 상하좌우로 찡긋찡긋, 이렇게 못난이 얼굴을 짓어보아라."
라고 참나에게 말해줍니다. 지금 껏 해왔던 습에 상반되는, 몸이 진정 바라는 '거꾸로 바라보기'의 한 짓거리랍니다. 왜 거꾸로 하면 몸이 좋아하냐고요? 몸은 자연처럼 조화롭기를 바래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살려고 지끔 껏 해온 습과 정반대로 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 후 기다리세요. 몸이 스스로 참나에게 말을 해줄 때까지 그냥 수행하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