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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하리로다”
시편 23편 1절 - 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편은 성경 중에서 가장 사랑 받고 많은 사람이 암송하는 장이요, 뛰어난 문학 작품이요,
많은 은혜와 위로를
받게 하는 시일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포괄적으로
다 설명하는 귀한 시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 23편을 암송하며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노래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항상 부족함이 없는 생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 평생에 따르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세상에서는 자기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이 있거나 다른 의지하는 물질이나 삶의 도구가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매끼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자입니다.
돈이 목자가 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죽는 사람이요, 자기 생명과 돈을 바꾸는 만큼
돈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돈이 목자가 된 사람입니다.
명예가 나의 목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람으로
돈을 목자로 삼은 사람보다는 조금 고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명예를 나의 목자로 삼았다 하여 그 사람이 무슨 명예로운 사람으로 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권력을 목자로 삼은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으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권력과 바꾸는 사람을
세상의 권력가들에게서
종종 보게 됩니다.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애매하게 모함하여 죽이고,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권력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서민들은 취미나, 오락이나 운동이 자기의 목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등산이 자기의 목자가 된 사람이 있어서 이런 사람은 하루라도 이것이 빠지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술이나 담배가, 취미가 골프가 자기의 목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목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여 두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가는 일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에는 나와 하나님과 주님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부, 포도나무 가지, 그리스도의 지체,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친구, 하나님의 백성 등
여러 가지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나타나는 말은 상당히 우리에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여호와로히” 는 하나님의 사랑, 돌보심, 너그러움, 희생, 안위, 상급 등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양은 동물 가운데서 무기가 없는 짐승입니다.
연약한 짐승이요, 스스로 살 줄 모르고, 사자에게 잡혀 먹힐 때에도 두어 번 맴 맴 소리를 지른
다음에는 그냥 나를 맛있게 잡수십시오.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도무지 살수 없는 동물입니다.
양이 선한 목자 좋은 목자를 만나면 상당히 배부르게 먹으며 잘 지내며 번식을 잘 하지만
악한 목자를 만나면, 삯군
목자를 만나면 굶주리며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인간은 양을 닮은 점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양과 같이 연약한 우리 인간입니다.
죽음이 와도 대항 할 수 없고, 운명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냥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하고,
자기 혼자서 살수도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스스로 나를 보호 할 수 없어 보호자를 잘못 찾아 우상에게 보호를 매끼고 귀신에게
자기를 매끼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오늘날 가난하고 돈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돈을 목자로 삼고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헛된 우상이나 귀신을 목자로 삼았었기 때문에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연약함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전쟁하며 어려울 때에 가마니를 깔고 판잣집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는 가난하고
돈이 없다고 자살하여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회개하며 기도하면서 전쟁에 나간 자식, 군대에 나간 사람들을 위하여
매달리고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셔서 나라를 일으키고 잘살게 하여 주셨는데,
사람들이 변질하여 마귀를 목자로 삼고 사치, 방탕, 낭비로 마귀의 망하게 하는 일을 따라
마귀를 목자로 삼고 살다가 이러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북한도 역시 말할 나위가 없이 김일성 일가를 목자로 삼고 살기 때문에, 거지로 가득 찬
거렁뱅이, 꽃제비, 꽃바구니 나라가 된 것입니다.
북한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다시 태여 나는 거듭남이 없이 계속 김일성 일가를 목자로 삼고 있다면,
아무리 외부
세계의 도움이 있다 하여도 다시 회복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고 살지 않는 한 항상 부족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적인 부족함도 나타나고, 정신적인 기갈의 부족함이 더욱 나타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기갈은 물질은 부요한 나라와 가정에서도 부족함이 나타나서 갈등과 이혼과
다툼과 시기와 쾌락을 쫓는
일이 나타나는 것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지 않은 사람들에게 당연히 임하는 현상입니다.
영적인 부족함은 특별히 여호와를 목자로 삼지 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우리가 감사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내가 넉넉하고 남아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만족함이 내 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만족과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내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여 주시니 쌓아 놓지 않아도 공급하여 주시니,
시시때때로 내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여 주시니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사람은 2절 이하의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푸른 풀밭에 양들이 가득히 누워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는 평화를 상상하게 됩니다.
캐나다의 켈러 목사님은 북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팔레스타인에서 목자 노릇을 하였고 양을 데리고
목장을 경영하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받아 목사님이 된 후에 자기가 양을 키우며
경험한 것읕 토대로 시편 23편을 해석한 책이 있습니다.
이 23 편의 시편을 기록한 다윗도 역시 목자로서 정확하게 목자 되신 하나님과 양이 된 우리를
명확하게 잘 표현하였습니다.
양이 눕는 경우는 네 가지의 조건이 이루어 질 때에만 양이 눕습니다.
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양은 절대로 눕지 않습니다.
1. 겁과 두려움에서 해방이 되어야 눕습니다.
세상에 양처럼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동물은 없습니다. 양이 풀을 먹다가 갑자기 토끼 새끼가
뛰어 나와도 놀라서 한 마리만 도망가도 곁에 있던 양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도망가니
또 다른 양도 덩달아 도망갑니다.
인간도 역시 겁이 많습니다. 두려움도 많습니다. 남이 무엇이라 하면 놀라서 군중 심리에
끌려서 뛰어 도망갑니다.
발암물질이 있다 하면 먹어 보지도 않고 야단이고, 소금이 나쁘다고 하니 소금이
안 들어간 NO SALT 식품이 유행이더니, 요새는 소금을 안 먹는 사람보다 소금을 먹은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하니 또 소금을 먹고 합니다.
콜레스톨이 많으면 안 된다 하여 계란을 독약 같이 여기고 있지만, 사람이 동물성 지방질을
안 먹어도 사람이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면서 혈기를 부리면 콜레스톨이 체내에서 자체 생산되어
혈관이 막히고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띵하다가 뇌에 혈관이 터지거나 피가 안 통하여 죽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음식을 의사가 말 한대로 한다면 먹을 음식이 없는 것입니다.
물도 생수를 먹어야지 수돗물은 오염이 되었다 하여 먹지 못하게 하고, 요새는 더 나아가서
알카리 이온수를 먹어야 한다하고 있으니 앞으로 모든 물은 오염이 되어 세계는 물을 얻기 위하여
전쟁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의 98%가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두려움의 불안 공포의 근심은 40%는 장차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일을 헛되게
근심하는 것이고,
30%는 이미 과거에 일어났음으로 아무리 근심하여도 돌이켜지지 않는 일로 물이 이미 쏟아진 상태입니다.
12%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10%는 혹시 내가 아프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요
8%는 오직 내가 근심 걱정하여야 할 일을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근심 걱정의 82%는 쓸데없는 근심 걱정입니다. 사람도 역시 근심 걱정에서
해방이 되지 않으면 누워도 잠이 오지 않듯 양은 이 근심 걱정, 두려움에서 해방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를 않습니다.
양이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는 때는 목자가 내 곁에 있을 때에 양이 두려움에서 해방이 됩니다.
오직 목자만이 양의 근심 걱정을 해결하여 줍니다.
곰, 사자, 이리가 다가와도 목자가 함께 있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면 주님이 이 일을 담당하고 처리하는 것임으로 걱정 근심에서 두려움에서
해결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배우고 주님께 맡겨 버리는 순종과 믿음이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목자로서 나를 보호하고 인도할 책임이 있음으로 이를 믿고
주님이 나의 장래를 주장하시게 하여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맡겨 버리는 일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두려움, 근심, 걱정에서 모두 해방시켜 주시는 목자입니다.
2. 자기들끼리의 분쟁이 없을 때에 양이 눕습니다.
양들은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세력 다툼이 심합니다. 힘의 서열이 양의 공동체에서도 있어서
힘센 놈이 풀밭에 있으면 다른 약한 놈이 와서 풀을 못 먹게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남의 풀이 더 맛있게 보이면 쫓아가서 받아 버리어 쫓아내고 자기가 차지합니다.
둘째 놈은 셋째 놈에게, 셋째 놈은 네 번째에게 세도를 씁니다.
토끼에게도 놀라서 도망가는 양이지만 자기들끼리는 세력 다툼이 심하고 힘의 폭력이 셉니다.
우리 집에 닭을 8 마리 키우는데 덩치 큰 닭이 고참 닭에게 항상 쪼이고 도망 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공동체에는 서열이 있어 항상 다툼이 있는 것을 봅니다.
집에 풍산개 3 마리하고 진돗개 두 마리가 있는데 개들도 서열이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교회도 역시 외부에게는 약하고, 교회 안에서는 싸움이 심한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재미 동포 교회들이 더 심합니다. 일주일 내내 코쟁이에게 찍 소리 못하고 눌려 살다가
양끼리 있는 교회에 오면 어찌 세력 다툼의 싸움이 심한지 모릅니다.
인간도 역시 자연의 세계 앞에서는 무력하여 힘없이 지내다가 인간끼리 모이면 내가 힘이 세다.
내 똥이 더 굵다 하는 문제로 싸웁니다.
양은 목자가 없을 때에는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목자가 있으면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도 인간끼리 싸우지 않고는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면 싸움에서 해방되어 싸울 마음, 싸울 욕심이 없어집니다.
아직도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을 목자로 삼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마귀를 목자로 삼으면 싸움의 선수가 될 수 있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인 사람은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은 싸움의 원인인 부족함이 있지 않고 항상 만족하게,
넉넉하게 있음으로 싸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양은 자기들끼리 분쟁, 싸움이 없을 때에야 눕게 됩니다.
3. 자기를 괴롭히는 곤충에서 해방되어야 눕게 됩니다.
양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곤충, 파리를 쫓아 버릴 도구나 힘이 없습니다.
진드기나 해충 파리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양은 꼬리도 없습니다.
사람도 역시 인간을 괴롭히는 마귀나 귀신, 질병, 번민 등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디를 도망가도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은 항상 쫓아다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러한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에 부지런한 목자는 양들에게 살충제나 곤충이 달라붙지 못하는 약을 발라서
그 괴로움에서 건져 줍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제어하고 달라붙지 못하게끔, 느끼지 못하게끔,
성가신 일에서 귀찮은
일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사람도 역시 평안을 누릴 때에는 괴롭히는 일이 없을 때에 평강을 누리는 것과 같이 양도 역시
괴롭히는 곤충에서
해방이 될 때에 푸른 초장에 눕는 것입니다.
4. 배고픔, 기갈에서 해방이 되어야 눕습니다.
양은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동물입니다. 습기가 많고 비가 많은 곳에서는 털 때문에,
땅에 있는 벌레 때문에 질병으로 죽어서 양은 건조한 곳에서 기릅니다.
건조한 땅에서는 푸른 초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목자, 유능한 목자를 만날 때에 양은 푸른 초장에 인도 받아 배부르게 꼴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또 초장에는 독초도 있습니다. 양이 먹어서는 안 되는 풀을 미리 제거하고 잡목 뿌리를 제거하는 일은
오직 목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양은 배부르게 먹어야만 누워서 새김질을 하면서 평안히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양과 같이 주님께서 근심, 걱정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고,
분쟁 싸움에서 해결하여 주시고, 우리를 귀찮게 구는 것들로부터 해방시키고,
하늘 양식으로 배를 채우시고 먹여 주시니, 우리는 푸른 초장에 누운 양과 같이 평강의 복을,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자만이 누리는 푸른 초장에 누울 수 있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쉴 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 도다”
건조한 땅에서는 양이 잘 자라고 잘 번식하지만 물이 모자랄 때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가 좋은 물을 대어 주지 않으면 아무런 물이나 막 먹어 버립니다.
길바닥에 있는 물, 더러운 물, 오물 등을 가리지 않고 먹어서 결국 질병이 생깁니다.
인간도 좋은 생수를 먹어야 건강에 좋고, 신진 대사가 잘되어 세포가 맑아져서 건강하여 지듯 좋은 물을 먹어야 하되 많이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흡족하게 먹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좋은 물을 많이 먹어야 사람도 건강하여 지듯, 양이나 다른 짐승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갈증을 해결하려고 이물 저 물을 가리지 않고 먹으면 건강에 아주 해로운 물을 마시게 됩니다.
마치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꿀꺽 꿀꺽 마신다면 이 사람은 얼마 못 가서 죽게 됩니다.
인간의 갈증 해결 방법은 생수의 근원을 찾아가서 생수를 맘껏 마시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생수의 근원이 된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갈증을 해결하여 보려고 아무데나 웅덩이를 파고 갈증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악이요 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악을 행합니다.
멸망할 자들은 아무 종교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말하지만, 다른 종교를 믿어 보아야 영의 기갈은 해갈 안 됩니다.
영의 기갈을 해결하여 보려고 아무런 종교, 아무런 신이나 아무런 귀신이나 아무런 것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점쟁이도 찾아보고, 절간에도 가보고, 점도 쳐보고, 굿도 하여보고 이 종교, 저 종교를 믿어 보는 그러함이 하나님
앞에서는 악인 것입니다.
갈증은 오직 예수 이외에는 해갈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맘껏 마심으로
생수의 강이신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의 갈 중을 풀어야 합니다.
예수 이외에서 기갈을 해결하려 하는 것은 모두 악입니다.
문화생활을 하여 보면 어떨까? 취미, 오락, 운동, 쾌락, 문학, 예술 등지에 빠져서 갈증을 해결하여 보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입니다.
나도 한때는 Classic 음악에 빠져서 갈증을 해결하여 보려고 음반을 400여개 이상을 사다 놓고 음악을 들으며 음악 속에서 갈증을 해결하여 보려고 한 때가 있었습니다. 돈만들지 기갈은 절대 해결이 안됩니다.
골프, 낚시, 도박, 등산, 운동 등으로 나의 기갈을 해결하여 보려고 하지만, 더욱 기갈이 다가 올뿐, 더운 여름에 얼음
과자 먹는 것과 같이 그 당시에만 시원하지 지나면 더 목말라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처첩을 1,000여명을 두어 정욕의 갈증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더욱 기갈만 더 심하여 지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갈증을 해결 못하여 이방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재물을 태산 같이 쌓고 돈을 한 시간에 만 딸라씩 쓰는 부잣집 마님도 갈증을 풀지 못하여 이혼을 하며 나쁜 일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날 마약이 성행하고 기호 식품이 잘 팔리는 것은 사람들이 갈증을 해결하는 방법을 여기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약 근절의 방법은 생수의 근원만 찾아 이 생수를 마시면 누가 비싼 돈을 들이며 마약을 사 먹을 것입니까?
3 S 정책으로 마귀는 인간의 기갈을 잘못 되게 풀게 합니다. Screen, Sex, Sport 가 절대로 우리의 기갈은 풀어 주지 못합니다. 일시적인 기갈 해결법으로 얼음과자를 먹는 것과 같은 해갈 법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 -38절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내 속에 임하면 영원토록 기갈이 해갈이 되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침으로 있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감사하고, 기쁘고 즐거운 삶을 항상 노래하면서 살아갑니다.
있어서, 보아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없어도, 만지지 못해도, 하나님의 성령이 지금 내게 있는 것이 만족하게 감사하게 하여 줌으로 더욱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만족과 감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고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인생의 기갈의 해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양이 해갈하는 방법 세 가지
1. 풀에 맺힌 이슬을 먹음으로 해갈합니다.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밤새 풀 사이에. 풀잎에 맺힌 이슬과 함께 풀을 먹으면 다른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해뜨기 전에 들풀을 먹는 양, 달밤에 풀을 뜯기를 좋아하는 양같이 하늘이 주는 맑고 깨끗한 이슬을 먹으며 사는 양이 있습니다.
해 뜨기 전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만나와 새벽이슬을 먹는 말씀과 기도를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해갈을 하는 법이 있습니다.
새벽이슬을 먹는 양은 기갈이 없이 흡족한 배부름과 만족함에 살아갑니다.
오늘 내가 스트레스가 생기고 신경질 나고 답답하고 만족함이 없이 기갈이 있는 것은 새벽이슬을 먹은 사람이 아닙니다. 새벽이슬의 양식을 흡족히 많이 먹는 하나님의 양이 되어야 기갈이 없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말씀을 먹는 사람이 기갈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2. 목자가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서 양에게 주는 물을 먹을 때에 기갈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우물은 심히 깊습니다. 우물 밑까지 내려가서 목자가 물을 길어다가 구유에 부으면 양들이 이 깊은 물에서 담아 온 시원한 물을 먹음으로 기갈이 사라집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깊은 곳에까지 내려가서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 승천하시었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에 목마른 자는 주님께 와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길어다 주시는 생수의 물을 마실 때에 기갈이 해갈됩니다.
목사가 일주일 동안 설교 준비를 하여 깊은 말씀의 우물을 퍼다가 양에게 줄 때에 이 물을 마시면 해갈하게 됩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오지 않으며 깊은 하나님의 생수의 샘물을 먹지 않으면 이 사람은 기갈이 심하게 됩니다.
말씀을 먹지 않는 사람은 해갈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할 때에 금요일에는 최고 정절의 활력이 솟아나고 주일 밤 예배가 끝이 나면 힘이 다 빠집니다.
그 이유는 이미 금요일에는 깊은 우물에 들어가서 물을 길어다가 구유에 이미 담아 놓고 양들이 와서 먹기를 기다리는 말씀이 준비가 된 상태이고, 월요일은 양들이 이 물을 다 마시어 버렸으니 다시 깊은 우물에 가서, 기도를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길어다가 양들에게 줄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설교 준비가 마친 날은 나는 날아 갈 듯한 기분으로 아주 상쾌함을 느낍니다.
목자가 깊은 우물에 가서 길어 오는 시원한 생수의 물을 마실 때에 양은 해갈이 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나를 위하여 길어다 주시는 생수의 깊은 우물의 물을 마시는 내가 될 때에 우리는 만족함 속에서 살게 됩니다.
3. 잔잔한 시내 물가에서 물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산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잔잔한 개울가에서 맑은 물을 마음껏 들이킴으로 해갈이 됩니다.
목자는 어느 곳에 물이 좋은 개울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양을 개울이 있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하여 갑니다.
어느 양은 성급하여 그 곳까지 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길바닥의 물, 오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목자가 인도하는 물을 안 먹고 자기의 마음대로 오물을 마신다면 그 양은 병이 들어 죽게 됩니다.
주님이 시냇가에 인도 할 때까지 목이 말라도 참고, 목자를 믿고 따라가야 좋은 물을 얻고 맘껏 물을 마시고 해갈하게 됩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내 스스로가 해갈을 하려고 오물을, 길바닥의 더러운 물을 먹는 자는 병든 자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내 마음대로 세상의 연락을 따라서 해갈을 하려 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고 믿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원망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였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믿고, 주님이 인도하는 곳까지 참으면서, 견디면서, 생수의 시냇가에 이를 때까지, 인내로 목자
예수님만을 믿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소생한다는 말은 회복 시켜 준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안 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실수로 인하여 넘어집니다.
양도 역시 넘어집니다. 양은 넘어지면 절대로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양은 반드시 누울 때에 (앉을 때) 발목을 꾸부리고 배를 땅에 대고 소같이 앉아 있습니다.
개같이 옆으로 벌떡 누워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실수하여 개 같이 옆으로 눕게 되면, 네 발이 다 들려서 거북이가 뒤집힌 것과 같이 허우적대다가 여름에는 한나절도 안 되어 죽어 버립니다.
양은 넘어지면 목자가 와서 일으켜 주어야만 일어납니다.
양이 넘어지는 이유
1. 더 평안한 자리를 찾다가 넘어집니다.
풀을 먹고 쉴 때에 남보다 편안한데서, 움푹 팬 데, 쾌적한 데를 찾아 누었다가 다리를 좀더, 몸을 더 편안히 하려고
몸을 돌리다가 중심을 잃고 발랑 넘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넘어지는 자는 반듯이 자기가 좀 더 평안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하던 사람이 넘어 집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수고를 안 하고, 기도하는 수고를 안 하고, 평안히 적당히 거짓말도 하여보고 하다가 넘어집니다.
편한 자세로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은 넘어지게 됩니다.
주일 저녁에 Sofa에 몸을 편히 담고 있는 사람들이 넘어지기 쉽습니다.
양이 저 혼자서 넘어지면 그런 대로 좋은데 새끼 양까지 깔고 넘어지면 주인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히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 받은 사람이 넘어지면 주인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힙니다.
넘어지는 양들 중에는 습관적으로 잘 넘어지는 양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양이 넘어질 때에 목자는 두 가지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언제나 철이 들어서 안 넘어질까 하는 마음과 내가 너를 만났으니 다행이지 너를 못 만났다면 너는 죽었다 하는 마음을 갖는 다고 합니다.
주인은 넘어진 양을 책망하지 않고 바로 일으켜 세우며 불쌍히 여겨 줍니다.
양은 발랑 넘어지면 혼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만 살아나는 양이 됩니다.
우리도 넘어질 때 주님이 오셔서 나를 일으켜 주실 때에 다시 살아나는 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털이 많고 털이 긴 양이 잘 넘어 집니다.
진흙이나 오물이 묻어서 중심을 잘못 잡아 넘어 집니다. 이럴 때에는 양을 잡아다가 목자는 털을 깎습니다.
털을 깍지 않으면 언젠가는 영영히 넘어져 죽을 수가 있음으로 양을 잡아다가 털을 깎습니다.
털을 깎는 동안은 괴롭지만 털을 깍은 후에는 몸이 가볍고 가뿐합니다.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자기의 고집, 세상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자는 넘어지기 쉽습니다.
더럽고 무거운 죄와 수고의 모든 짐을 떨어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이러함이 있는 사람을 잡아다가 털을 깎는 시험을 주어 모든 넘어지기 쉬운 원인들을 제거하여 버립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양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털을 깎는 주님의 사랑의 징계를 감사히 받고 넘어짐이 없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3. 지나치게 살이 찐 양이 잘 넘어 집니다.
살아 너무 찌면 균형을 잘못 잡습니다. 살이 찌는 것과 건강과는 다른 것입니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살이 찌듯 우리는 넘어지지 않게 영적 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살이 찌면 몸도 둔하여지고 활동도 안 되고 기도하기도 힘이 듭니다.
지상에서 받는 축복, 사역에서 받는 축복, 모든 일이 형통 할 때에, 살이 찔 때에 넘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잘되고, 살만하고 하나님 없어도 내가 살아 갈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살이 찌는 때로 넘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우리는 이러 할 때에 넘어지고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잘되고 교회가 부흥이 되고, 물질 축복이 넘칠 때에 더욱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한국 대형 교회들이 다 이렇게 기복주의, 다원주의, WCC로 넘어지고 있습니다.
살이 너무 찔 때에는 살을 깎는 법, Diet를 하여야 합니다.
물질을 걷으시고 사역의 축복을 거두어 안 넘어 질정도가 될 때까지 살 까기를 하시는 목자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주님은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여 주시기도 하며, 넘어져도 책망하시지 않고 측은히 여기며 아무 말씀 안하시며 일으켜 다시 살게 하시는 나를 소생 시켜 주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양은 한번 초장으로 가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줄을 모르고 풀이 바닥나고 없으면 풀뿌리를 파먹을 지언즉 옮겨 갈 줄을 모릅니다. 그리하여 땅이 폐허가 됩니다.
목자는 자기 땅이 폐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양을 살리기 위하여, 선한 목자라는 명예를 얻기 위하여, 자기 이름을 위하여서라도 양이 어느 정도 풀을 뜯어먹으면 양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여 옮겨서 양도 좋고, 초장도 폐허가 안 되도록 다른 초장으로 옮겨갑니다.
양들은 먹을 것이 없어도 옮겨가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이대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대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대로 있지 말고 옮겨 다니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로, 온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온 세계로 옮겨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은 우리는 교인 100명과 자체 교회당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이대로 초장에 안주하고 있다면 내게 손해가 임합니다.
다른 초장으로 옮겨 다니면서 사역을 하고 사역지를 넓혀 가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생활입니다. 이러한 일이, 옮겨가는 일이 내게는 괴로운 일이지만, 이일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께도 좋고, 내게도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서 집을 짓고 안주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르며 주님이 옮겨가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 목자를 믿고 따라가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양은 겨울과 봄은 우리에서 지내고 여름과 가을은 고산지대로 옮겨가며 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말을 하였습니까? 산에 오르려면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등성이를 타고는 높은 산에 올라 갈 수가 없습니다. 이 골짜기를 타고 산에 오를 때에는 양쪽에 높은 절벽도 있고,
바위도 있고, 바위 위에서 짐승들이 좋은 먹이인 양들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골짜기에 급류가 내려와 떠내려 갈 수도 있습니다.
아리조나에서 있었던 일로 먼 곳에서 비가 내려 왔는데 골짜기로 탐사를 하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여기가 비가 안 오면 급류가 안 생기는 줄로만 알고 있다가 비 한 방울도 자기들은 구경하지 못하였지만, 먼데서 내린 소나기 급류로 인하요 10명이 사망하고 한 사람이 구조되었습니다. 탐사를 갈 때에 소방관이 이런 일이 자주 있으니 골짜기를 갈 때에는 조심을 하라며 비가 안 와도 항상 대피할 곳을 보면서 다니라고 말을 하였는데 믿지 않다가 참변을 당한 일이 제가 피닉스에 살 때에 있었습니다.
사막의 골짜기는 이러한 위험이 있습니다. 독성 식물도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돌사태, 눈사태가 날수도 있음으로 골짜기는 사망의 음침함이 항상 기다리는 골짜기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함이 있는 골짜기를 가도 양들이 태연히 가는 이유는 목자가 함께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이미 양이 우리에 있을 때에 혼자서 골짜기와 높은 고원을 탐사하여 어디로 가면 안전하고 어느 곳에 풀이
좋으며 많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양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나를 인도하시니, 믿고 사망의 음침함이 있는 골짜기라도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어덯게 사는가 너무 걱정 마시고 목자만 따라가는 양이 되면 다 해결 됩니다.
좋은 초장에 가려면 반드시 이러한 골짜기를 거쳐가야만 푸른 초장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저 좋은 낙원에 가려면, 반드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여야만 저 좋은 낙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40년간이나 걸어가야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골고다의 길을 걷고 십자가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신 후에 부활의 영광의 푸른 초장이 온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은 신앙은 좋은 초장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도 두려움이 없습니까?
목자는 골짜기를 통과 할 때에 혼자서 멀리 앞서가지 않습니다. 양과 가까이 하며 양 하나 하나를 살펴보며 모두들 안전하게 잘 따라 오는가 하고 세심한 관찰을 하면서 양을 인도하여 갑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려운 환경을 만났습니까? 교회가 어렵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주님이 지금 나를 아주 가까이 하시며 나를 특별히 관심하며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고 있음을 알고 안심하고 주님만 따라 가야 합니다.
성화 중에 모래 발자국이란 성화가 있습니다. 이 성화는 바닷가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다가 한사람의 발자국이 있다가 하는 성화입니다. 어느 사람이 천국에 가서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니 자기가 편안하고 형통 할 때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고 자기가 어렵고 환난을 겪을 때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입니다. 주님께 항의를 하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힘들고 어려 울 때에 어째서 주님이 어디를 가셔서 내 발자국만 있는가 하고 물으니 얘야 이것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다. 네가 어렵고 힘들 때에는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에 내 발자국만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을 그림으로 그린 성화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 때에는 주님이 나와 가장 가까이 하심을 알고 두려워하지 말고 나도 목자를 바짝 쫓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영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래 살 곳은 이곳이 아님을 알고 푸른 초장을 향하여 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산모가 출산의 고통을 바라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새 생명의 탄생의 기쁨을 바라 볼 때에 출산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골짜기로 목자가 인도하는가?
1. 골짜기에는 군데군데에 물이 있습니다.
물이 있는 곳을 통과하여야만 여행 중에 물을 먹으며 갈 수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 물을 먹이기 위하여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어려 울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게 되니, 이 길은 은혜를 받는 길임으로 이 골짜기를 통과하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골짜기에 은혜의 샘물이 있습니다.
2. 골짜기에는 수분이 있음으로 풀이 있습니다.
양을 굶기지 않고 먼 길을 가기 위하여 골짜기를 목자가 이 길을 인도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율법으로 가르치고, 역경 속에서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만나가 있는 것입니다.
역경 중에 믿음이 더 굳세어 지는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막대기 -
막대기는 뿌리와 줄기가 달린 나무를 잘라서 만든 곤봉 같은 막대기입니다.
우리말로는 몽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뿌리를 손잡이로 하고 나무줄기를 지름 대로하여 이것을 던지는 연습을 많이 하여 짐승을 쫓거나 잡거나 합니다.
막대기는 외부 대적을 물리치는 목자의 무기, 장비입니다.
1. 양을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양이 못 갈 곳을 가거니 못 먹을 풀을 먹으면 양이 있는 곳에 이 막대기를 던지면 양이 놀라서 도망가고 짐승이 오면 이 막대기를 던져서 쫓아 버리거나 때려죽이는 것입니다.
목동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에 물맷돌을 가지고도 갔고, 이 막대기도 들고 골리앗과 싸우러 갔습니다.
2. 양을 검사하는 장비입니다.
양의 피부병 여부를 이 막대기로 털을 헤치며 검사합니다.
막대기는 주님의 인도와 보호하는 막대기이요 주님의 권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뱀이나 짐승이 있으면 이것을 먼저 던져 미리 쫓아 버리어 양이 놀라지 않게 합니다.
우리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를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합니다.
목자의 권능, 능력을 이 막대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팡이 -
지팡이는 인자, 자비, 사랑을 상징합니다.
목자의 상징으로 끝이 낚싯바늘같이 휘어져 있는 J자형입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목자들이 들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미국에서는 성탄 때에 목자의 지방이 같은 박하사탕인 Candy Cane을 많이 팔고 있습니다.
이것이 “J”자 모양인 것은 목자의 지팡이도 상징하고 Jesus 인 예수를 말하는 첫 글자이고 Joy(기쁨)을 나타내는 첫
글자의 상징으로 목자의 지팡이를 말합니다.
목자의 장비의 필수품이 이 지팡이입니다.
1. 양을 모을 때 쓰입니다.
새끼가 어미 곁을 떠나면 목자는 지팡이로 양 새끼를 들어서 제 어미 곁으로 가져다가 줍니다.
이때에 사람의 손이 새끼에게 닿으면 사람의 손 냄새가 나서 어미는 제 새끼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치 토끼 같이 사람의 손이 닿으면 새끼를 잡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2. 사랑의 돌봄을 할 때 쓰입니다.
들 중에 수줍어서 목자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 양이 있으면 지팡이로 끌어들여서 사랑하여 줍니다.
3. 양을 인도 할 때에 사용합니다.
좁은 길, 위험한 길에서 양이 안 가려고 하면 모가지를 걸어서 끌어서 인도합니다.
진리의 길로 이끌어 갈 때에 주님이 사용합니다.
4. 양에게 친밀감을 주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지팡이로 양의 몸을 긁어 주거나 양의 몸에 지팡이를 대고 가면 양이 좋아합니다.
돼지를 막대기로 긁어 주면 좋아하듯 사랑의 손길을 이 지팡이로 표시합니다.
5. 위험에 처한 양을 끌어 낼 때에 사용합니다.
냇물에 빠졌거나 가시덤불에 걸렸을 때에 지팡이로 걸어서 끌어냅니다.
예수를 믿어도 위험하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가장 자리로 가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자는 지팡이로 목을 걸어 끌어내어 안전한 곳으로 오게 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니,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더라도 우리는
목자가 함께 나와 가까이 있음을 알고,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목자의 인도를 따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상은 Table입니다. 식탁입니다. 밥상입니다. 골짜기를 다 지난 후에 높은 지대로 올라가면 마음껏 즐겁게 먹을 수
있는 풀이 여름철에 먹을 양식이 가득히 있습니다.
양이 있으면 이를 잡아먹으려는 이리나 악한 짐승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면서 노리고 있지만 목자가 이미 먼저
와서 답사를 하며 독초도 제하여 버리고, 양이 잘 곳도 알아두고 짐승을 다 쫓아버린 뒤, 시냇물도 깨끗이 청소를 하여 둔 뒤임으로 맑은 물이 가득히 고여 있고,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이 준비하여 두신 목자가 양을 위하여, 이미 상을
차려 준 것입니다.
광야에서 식탁을 차려 주신 주님이 오늘도 내게 좋은 것으로 상을 차려서 신령한 양식, 육신의 양식을 마음껏 맛있게 먹게 하여 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1. 해충 예방의 목적으로 기름을 바릅니다.
양이 1년 중에 가장 즐겁고 행복할 때가 이때입니다.
마음껏 꼴을 먹고 좋은 물을 먹고 살이 찌는 때가 이때이지만, 아울러 양을 괴롭히는 파리도 이때에 극성을 부리며
양을 괴롭힙니다.
파리 중에 어떤 파리는 양의 콧등에다가 알을 까놓습니다.
애벌레가 코를 타고 들어가서, 양의 골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자라기 시작하면 양은 심한 두통이 생깁니다.
두통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양이 견딜 수가 없어서 이 아픔을 없애 버리려고, 자기 머리를 바위에다 찧어 버리며,
나무를 들이받으며, 비비다가 눈이 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을 칩니다.
아니면 수풀 가운데 머리를 쑤셔 넣고 나오지를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파리는 사람의 살 속에다가 알을 까 넣고 달아나 버려 이 파리에 쏘이면 애 벌레가 살 속에서 자라서 한 마리씩 살을 째고 파내어야 하는 지독한 독충이 있습니다.
목자는 이러함을 예방하기 위하여 파리가 싫어하고 냄새가 약초와 냄새나는 기름을 섞어서 양의 머리에 발라 주면,
파리가 달라붙지 못함으로, 양은 이 파리의 공포증에서 해방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이러한 질병의 고통과 세상의 무서운 고통에 놀라서 두려워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사람을 자동차 타기를 두려워합니다.
암이나 성인병 등 불치병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목자 되신 하나님, 주님이 내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발라 주면, 우리는 은혜의 축복 속에 안심하며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런 저런 일을 당하고 나면, 아주 노이로제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를 집구석에 처박아 두고 사는 사람도 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성령의 기름을 바르면 파리가 앉을 수가 없고,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 고통을 주는 것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항상 머리에 기름으로 바르고 있어야 합니다.
기름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말라지고 소멸하는 것입니다. 냄새가 사라지고 기름이 마르면 파리는 또 달려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날마다 새로운 기름을 목자에게 발라 달라고 간구 하여야 합니다.
2. 질병 치료의 목적
양은 피부가 얇고 털은 길어서 헌데가 생겨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양이 피부병이 걸리면 털도 못쓰고, 가죽도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함을 예방하기 위하여 머리에 기름을 바릅니다.
병이 걸린 양이 있으면 양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비벼 대면서 애정을 표시하고 있고, 이때에 피부병이 전염되어
옮겨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병든 양이 머리를 맞대고 불평불만을 말하면서 비벼 대면 이 불평불만이 전염되어 온 교회로 확산됩니다.
이러한 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머리에 기름을 발라야 합니다.
기름을 발라 놓으면 머리를 맞대고 수군수군하는 동안 성령의 불이 옮겨 붙어 버립니다.
성령의 기름을 머리에 항상 바르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나쁜 질병이 전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3. 싸움의 방지를 위하여 기름을 바릅니다.
가을이 되면 발정기가 되어 수놈끼리 싸움이 치열합니다.
양은 싸울 때에 머리를 맞대고 밀면서 싸우니 머리에 기름을 발라 두니 밀어 바야 미끄러져 버립니다.
한두 번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오지만 싸워바야 미끄러져 버리니 싸울 재미가 없습니다.
실큰 싸워도 상처가 나지 않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니 싸움이 예방됩니다.
교회도 역시 세력 다툼의 싸움이 있지만, 성령의 기름을 발라 두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나의 목자 되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셨으니 축복의 잔, 감사의 잔, 사랑의 잔, 건강의 잔, 고통, 질병에서 해방의 잔, 평화의 잔이 차고 넘칩니다.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나의 평생의 삶이 여호와로 목자로 삼은 나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기르심이 있으니 어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딸아 가면서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르고 함께 거할 것을
서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실 것만 요구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하나님에게 좋은 양이 먼저 되어 지기를 노력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양이 되어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러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복을 감당하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양은 주인의 음성,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만, 병든 양은 주인의 음성과 다른 사람의 음성까지 혼합하여 들려
혼돈 된 생활을 합니다.
내 귀에는 주인의 음성만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건강한 하나님의 좋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양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는 양,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부족함이 없는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남은 평생에 여호와 하난님을 목자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정녕 따라 다니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운데 살게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이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천국에서 영생하게 됨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항상 따라 다니는 복을 받게 되고, 이 세상을 떠난후에도 주님께서 영접하여 여호와의 집에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됨을 믿고 아멘, 할렐루야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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