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이 마침 겨울 방학 중이어서 우리 네 식구는 모처럼 기차를 타고 부산 시댁으로 향했다. 아이들
은 제사라는 의미보다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제사였기에 의미가 컸
다. 다행히 형님께서 부지런하고 음식 만드는 솜씨가 좋으셔서 마음 든든했다.
"먼길 오느라 수고했네"하시는 형님은 혼자서 분주하게 제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곁에서 거들고 있
던 고등학교 다니는 조카딸은 내 얼굴을 보자 반색하였다. 그리곤 사촌동생들을 돌본다며 자연스레 자
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웃으면서 건네주는 앞치마를 받아 허리에 둘렀다. 형님 곁에 앉아 일을 거들었
다.
베란다에 놓인 큰솥에서는 이제 막 쪄낸 생선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에는 나
물이며 전 부칠 것들이 잘 손질되어 있었다. 마치 어머님이 생전에 제사 준비하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형님 애 많이 쓰셨네요. 이걸 혼자 다 하셨어요?"
"글쎄, 준비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머님 하시던 거에 비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
어머님 솜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하는 형님이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시댁이 종가집이라 어머님은 많은 제사를 한 달에 두어 번 씩 치르면서 세월을 보내셨다. 바닷가 지방
의 풍습대로 제사상에 생선을 많이 올렸으므로 언제나 생선이 떠나질 않았다. 제사가 다가오면 어머니
는 새벽 일찍 장에 가서 싱싱한 어물을 사오셨다. 그리곤 깨끗하게 손질해 말려서 쪄내곤 하셨다. 언제
나 정성을 다해 조상을 모시는 전형적인 종가집 맏며느리 역할을 다 하셨다. 어머님을 떠올릴 때면 항
상 마루 한 켠에 손질한 생선들이 매달려 있던 걸 연상하게 된다.
어머님은 생전에 둘째 형님을 아끼셨다. 넉넉한 품성과 부지런한 형님은 어머님을 많이 도우셨다. 그
래서일까, 오랜 세월을 함께 하신 형님의 몸짓은 어머님과 아주 흡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가 깊어서
인지 돌아가신 뒤에도 형님 댁에서 제사상을 받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깊은 정의 연결이란 생각이 들면
서어머님 마음은 참 편하실 거란 생각이 든다. 우연이 아닌 영원한 안주를 위해서라도 잘 된 일인 것 같
다.
어머님, 아버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 (어머님 기일이지만 두 분이 다 돌아가셨으면 함께 올
리는 거라고 했다.) 워낙 모시고 계실 때부터 효심이 두터우셨던 아주버님은 첫 기일에 올리는 술잔 위
로 그리움의 눈물을 담아 드렸다. 곁에 있던 막내로 자란 남편 역시 내리사랑에 젖은 감회로 어깨를 들
먹이고 있었다. 모두들 숙연한 자세로 차례차례 술잔을 올렸다. 한들거리는 촛불 사이로 두 분은 다정하
게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시선에는 생전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면면히 피어오르는 듯했
다.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에 수저를 옮기면서 술잔을 올린 뒤 혼령이 다 드시도록 환하게 켜져 있던 전등
불을 껐다. 우리 모두는 상에서 멀리 떨어져 앉아 무릎을 꿇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 때 형님께서는 따로
준비한 작은 상을 제사상 옆에 갖다 놓으셨다. 물바가지 같이 큰그릇에 숟가락이 대여섯 개 꽂혀 있었
다.
그 안에는 밥과 나물 그리고 제사상에 올린 것과 같은 전 종류와 생선이 조금씩 들어 있었다. 혼령 친
구분들 드실 거라는 별도의 상차림이었다. 부모님을 대하는 정성으로 친구 분 혼령들에게까지 지극한
예우를 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정경으로 다가와 형언하
기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불을 켜고 제사상을 물리면서 갖은 음식들을 조금씩 떼 내어 바깥에 내놓았다. 이에는 미물들까지 세
심히 생각하는 옛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친정과는 조금 다른 제사를 드리면서 이런 전통이 우리 세대에만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드는 건 괜한 우려일까? 더구나 요즘은 제사음식도 맞춤 시대라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
성들이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라곤 하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그러나 점차 제사음식 대행
업체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하니 다음 세대에서는 지금처럼의 제사준비 모습 등은 보기가 힘들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제사를 준비하는 정성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섬세한 정서의 흐름이 더없이 귀하게 여겨
진다. 더불어 우리 전통이 퇴색될까 염려가 되며 시대 변화에 아쉬운 마음이 담긴다.
제사 지낸 음식을 놓고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생전의 어머님을 회상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문득 앞에
앉은 형님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정다운 어머님의 모습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첫댓글 호곡~ 가슴 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