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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제오픈탁구선수권대회 참가 성과
최원석 회장 사임, 조중건 회장 영입
제34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세계제패를 이루겠다는 꿈을 안고 1976년 1월 25일 취임한 역대 가장 젊은 회장이었던 최원석 회장이 사정에 의해 동아그룹의 사장직을 물러나게 되면서 대한탁구협회 회장직도 1년 6개월 만에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사임했다.
누구보다도 탁구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많았던 최원석 회장은 버밍엄 세계대회 선수단 해단식을 마치면서 사의를 표명했는데 한 배를 탔던 집행부 전 임원 모두가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대한탁구협회는 그 해 5월 13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공석중인 회장에 대한항공 부사장인 조중건 씨를 만장일치로 추대하고 3명의 전형위원을 뽑아 회장과의 협회를 거쳐 총사퇴한 집행부를 새로 구성하기로 했다.
조중건 제16대 대한탁구협회장은 3인의 전형위원과의 회의에서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는데 예기치 않은 계기로 협회 집행부가 대폭 바뀌었다. 전 집행부의 최원석 회장 1인 체제에서 조중건 회장, 반기언, 박용오, 황우겸, 장화섭 부회장 등 집단지도체제로 바뀐 신 집행부는 출범부터 한국 탁구의 난제인 아시아 탁구계에서의 ‘미아적 위치 탈피’를 들고 나와 의욕적인 단면을 보였다.
조중건 회장은 상임이사진 구성에서 가장 주목이 되었던 국제담당 이사에, 사활이 걸려 있는 탁구외교와 새로운 방향 모세에 역점을 두고 장화섭(당시 CPA 한국 지사장, 작고) 부회장을 겸임시켰다. 일본 탁구계에 발이 넓은 이경호, 천영석 씨가 오랫동안 맡아왔던 국제담당 이사직에 영어, 불어, 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신임 장화섭 부회장을 선임한 것은 모험이라고 할 만큼 획기적인 일이었다.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하나의 장점만으로 세계 탁구에 정통하지 못한 인사가 국제담당 이사의 중책을 해낼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정통 탁구인 출신으로 충분히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모든 탁구인들은 인정했다.
새로 구성된 집행부는 「 처음에 지고 나중에 이긴다. 」라는 비장한 각오로 일본을 통한 아시아탁구연합(ATTU) 접근책을 시도하는 동시에 세계 탁구계와의 외교도 적극 강화하겠다는 큰 포부로 출범했다. 특히 중국, 일본, 북한 등의 야합으로 아시아 탁구계로부터 소외당한 한국 탁구는 당시 세계 탁구계에서도 같은 처지를 당할지도 모를 벼랑에 서있었다.
79년 평양, 81년 유고 노비사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확고한 보장이 없는 한 한국으로서는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어 그야말로 다변화 외교가 시급하던 때였다. 신 집행부는 불퇴전의 목표였던 세계정상 탈환 외에도 사활이 걸린 탈고립의 중요한 과제를 또 하나 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 집행부는 ATTU 가맹에 따른 접촉은 인내와 끈기를 갖고 기필코 성공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겨우 3천명의 탁구인구를 가진 한국과 비교하여 중국의 탁구인구가 3천 5백만 명 이라는 사실에 쇼크 받아 탁구인구 배가운동과 신인 발굴, 우수선수 기량향상을 위한 국제대회 참가 경험 축적, 그리고 우수선수를 배출시킬 지도자 우대 등 의욕적인 활동계획을 세워
발표했다.
● 신 집행부 명단 -
회 장 : 조중건(대한항공 부사장)
부 회 장 : 반기언(국무총리실 조정관), 황우겸(동양화재 상무),
박용오(두산산업 부사장), 장화섭(CPA항공 한국지사장)
전무이사 : 한승호(외환은행 영업부장)
총무이사 : 이종춘(국제스포츠사 대표)
경기이사 : 박성인(한일은행 감독)
재무이사 : 서은석(대한항공 총무부 차장)
기획이사 : 김정립(사업)
이 사 : 이경호(신진학원), 김국배(여류동우회장),
오상영(화진상사 대표), 천영석(산업은행 감독),
이동훈(경기도협회 이사), 정연훈(부산시협회 이사),
실업.중고.초등학교연맹 파견이사 3명
감 사 : 윤현채(전남협회 전무), 김승환(강원도협회 전무)
캐나다 오픈대회 주니어선수단 참가
1977년 5월, 한동안 최원석 회장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협회 행정이 조중건 회장 영입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신 집행부는 유망 신인선수 국제대회 참가경험 축적이라는 목표의 일환책으로 5월 26일 ~ 29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는 캐나다 국제오픈 탁구선수권대회에 남녀 주니어 대표단을 파견시키기로 하고 산하연맹인 한국 중.고등학교 탁구연맹에 위임. 선수단 15명(임원 7, 선수 8)을 선발 완료했다.
과거 남녀 고등학교 단일팀을 친선경기차 가까운 일본에 파견한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주니어 선발팀을 국제 선수권대회에 파견한 것은 탁구사에 없었던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탁구는 긴박한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탁구 외교가 필요했고, 국내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훈련방식만으로는 자라나는 후진 발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 주니어선수들의 캐나다 행은 매우 뜻 깊은 취지와 큰 포부를 가진 일이었다.
● 선수단 명단 -
단 장 : 한상국(서울여상 교장)
감 독 : 정평섭(중고연맹 부회장)
섭 외 : 박석규(중고연맹 이사), 총무 오병환(협회 사무국장)
코 치 : 양성준(호수돈여고 감독), 박철규(대성여상고 감독)
국제심판 : 백송빈(서울여상 감독)
남자선수 : 이광익(부산동래공고), 김창영(성수고),
김완(신진공고), 최완규(대전대신고)
여자선수 : 김경자(시온고), 신경숙(선화여상),
안해숙(계성여상), 김애경(선화여상)
선수단 일행은 5월 19일 하오 대한체육회(무교동) 강당에서 많은 탁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단식을 갖고 그날 밤 9시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로 장도에 올랐다. 미국 LA를 거쳐 세인트루이스를 경유, 워싱턴에 도착하니 그곳에 거주하는 오기서 탁구원로가 나와 우리 선수단을 반갑게 영접했다. 선수단은 준비된 버스로 워싱턴 DC의 전경을 감상하면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도착, 첫날의 여정을 풀었다.
이튿날 미국 워싱턴 주 대표와 우리 교민이 많이 참석한 가운데 친선경기를 가졌다. 상대방 수준이 우리 선수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아 연습게임 정도로 경기를 마치고 그들이 안내하는 워싱턴 DC,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 주요유적지를 돌아보며 신기의 관광을 즐겼다. 몇 임원을 빼고 필자를 위시한 어린 남녀 선수들은 미국이라는 땅을 처음 밟는 순간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선수단 일행은 그날 저녁 워싱턴 주재 한국 교민들이 베푸는 저녁 만찬에 초대되었다. 어린 선수들의 ‘고향의 봄’합창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선수단은 교민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5월 23일, 워싱턴을 출발 캐나다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몬트리올은 1년 전(76년) 제21회 올림픽대회가 개최된 도시였는데, 경기 중계 시 틈틈이 TV를 통해 보여준 환경을 더듬으며 몬트리올에 도착한 선수단의 심정 또한 새삼스럽기만 했다.
몬트리올은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의미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선수단은 1년 전 그러한 올림픽 대회의 업적을 상기하면서 잘 정리된 도로 주변 환경을 눈여겨보며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몬트리올 중심 모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주최지 몬트리올은 캐나다 동남단의 문화도시로서 과거 프랑스 통치 하에 있었던 관계로 호텔로비는 물론 식당 어느 곳에서도 프랑스어를 사용할뿐더러 여러 면에서 프랑스 문화가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5종목을 석권
1977년 5월 26일~29일까지 개최된 캐나다 국제오픈 탁구선수권대회는 우리 한국을 비롯하여 주최국 캐나다, 미국, 이집트, 스웨덴, 유고, 이란 등 1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올림픽 배구경기장의 하나였던 크론제라브라데 체육관에서 성대한 개회식과 함께 개막되었다.
4일간의 결전 끝에 우리 선수단은 남녀 주니어부 5개 종목과 시니어 7개 종목 중 8개 종목에 출전, 5개 종목을 제패하고 준우승 6개 종목, 3위에 8개 종목을 석권했다. 대회기간 중에는 오타와에 주재해 있는 한국의 대사 및 직원들이 날마다 경기장을 찾아 격려했으며, 그곳 교민들 역시 일손을 놓고 경기장을 찾아 열심히 응원하며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우리 선수들의 좋은 성적은 교민들에게도 캐나다인들에게 입지를 과시할 수 있도록 해준 좋은 성과이기도 했다.
특히 대회 최종일 여자 시니어 단식에 출전한 신경숙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영국의 챔피언인 나이트 선수를 3대 1로 물리친 뒤 결승에서 김경자 선수를 맞아 3대 0으로 가볍게 제압, 우승함으로써 여자 주니어 단체전, 주니어 단식에 이어 3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또한 혼합복식에서도 최완규.안해숙 조와 동료인 김창영.김경자 조가 각각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다.
남자 시니어 단식에 출전한 김완 선수는 유고의 최강 카사노비치 선수와 준결승에서 만나 풀세트 접전의 파이팅 넘치는 격전 끝에 2대 3으로 분패, 아깝게 3위에 머물렀다.
● 각 종목 한국 입상 실적 -
여자 주니어 단체 : 1위(한국 A), 2위(한국 B)
남자 주니어 단식 : 1위(김완), 2위(김창영), 3위(이광익)
여자 주니어 단식 : 1위(신경숙), 2위(김경자), 3위(안해숙, 김애경)
남자 시니어 단식 : 3위(김완)
여자 시니어 단식 : 1위(신경숙), 2위(김경자), 3위(김애경)
남자 시니어 복식 : 3위(김완.김창영)
여자 시니어 복식 : 2위(신경숙.김애경), 3위(김경자.안해숙)
혼 합 복 식 : 1위(최완규.안해숙), 2위(김창영.김경자),
3위(김완.김애경, 이광익.신경숙)
경기가 종료되던 날 저녁에는 몬트리올 교민회장 주최 만찬이 있었는데, 회장댁에서 가든파티로 캐나다 주재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불갈비 등 푸짐한 음식을 제공받았다. 또한 교민회장 따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아리랑’과 ‘고향의 봄’등을 합창함으로써 여흥을 즐기며 그날의 경기 성과를 자축했다.
5월 30일 몬트리올 시내 올림픽 주경기장 등 관광이 있었고 이튿날 그곳을 출발, 토론토에 도착했다. 당초 계획에는 없는 일이었으나 선수들이 워낙 좋은 성과를 거두자 한상국 단장이 그에 대한 보너스를 배려했던 것이다.
선수들은 한상국 단장 인척 집에서 숙식하고, 일부 임원은 KAL 토론토 지사장 오피스텔에서 기거했다. 토론토에는 우리 한국 교민이 어느 지역 보다도 많아 교민회에서 우리 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했다. 토론토에서 경기는 없었으나 교민회가 중심이 되어 교민들이 직접 각자의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 선수단을 태운 뒤 공원, 시내 백화점, 온타리오플레이스 놀이터 등등 관광을 시켜주었다. 선수단은 넓은 호수를 끼고 도는 드라이브와 함께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에 위치한 그 유명한 나아아가라 폭포도 구경할 수 있었다.
특별히 교민회는 각자의 승용차에다 음식준비를 해가지고 나와 나아아가라 폭포 주변의 넓은 잔디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불갈비를 구워먹으려 그 웅장한 폭포를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폭포수 밑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면서 바라본 물이 떨어지는 대 폭포의 장관은 그저 혀를 내두르게 할 뿐이었다.
전미오픈대회 참관
6월 2일 ~ 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체육관에서 거행된 제47회 전 미국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는 한국산업은행 탁구 단일팀이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이기원 선수와 신예 이경주 선수의 활약으로 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여자 실업탁구 챔피언인 근업은행 탁구팀을 3대 1로 제압, 75년 대표팀, 76년 대한항공팀 우승에 이어 3연패를 기록했다.
한편 여자복식 결승에서도 이기원.이의자 조가 일본의 나가하라.오노 조를 3대 1로 꺾고 우승했으며, 여자단식 결승에서는 한국 대표를 지낸 재미교포 나인숙(전 산은소속) 선수가 역시 일본의 오노 선수를 맞아 접전 끝에 3대 2로 신승, 우승했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의 대결로 압축되었던 전미오픈대회 여자부에서는 한국이 압승을 거두고 저력을 과시했다.
우리 남녀 주니어 대표팀은 동 대회를 시종 참관하고 디즈니랜드도 돌아보게 되었는데 기상천외한 놀이물의 규모와 시설은 세계 제일로 부상한 미국 문화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귀로 중 그간의 과로와 여독을 풀기 위해 2일간 하와이에 들러 틈틈이 명소관광도 하고, 한낮에는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해변가에 앉아 아름다운 풍치 속에서 일광욕도 하고 수영도 즐겼다.
그 뒤 선수단은 하와이를 출발, 일본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 버터플라이 상사 다마스 회장의 배려로 회사 내에 설치한 비디오 연구소를 관람하고 저녁에는 다마스 회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여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았고, 한국의 전통 유행가를 즐겨 부르는 다마스 회장의 흥에 맞추어 수십 곡의 노래를 부르며 한때를 즐겼다.
6월 7일 일본 도쿄를 출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탁구인과 가족들이 꽃다발을 가지고 나와 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렇게 하여 20여일동안 해외여행 중 좋은 성과를 거두고 귀국한 선수단 일행은 그 어느 행사보다도 많은 체험을 했다. 당시 선수단의 일원으로 함께 했던 필자도 물심양면으로 성심을 다해 선수단을 이끈 한상국 단장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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