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시간 반 가량 도로를 열심히 달려 도착한 CCAP Cottage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시설이었다. 맨바닥에서 자야하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전원 매트리스에서 잘 수 있어 편안했고, 호수와 가까워 경치도 좋고 선선한 곳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하게 되어 배가 고팠을 텐데도 난생 처음보는 호수에 시선을 뺏긴 채 풍경을 감상하는 우리 선생님들과 아마이들을 보니 ‘참 잘 왔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도 비록 장애가 있지만 낯선 곳이 신기했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조금 들뜬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평상시에는 생각을 잘 알 수 없고 반응이 더딘 아이들이었는데, 조금 뒤에 호수에 들어갈 때도 좋아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잠시 짐을 풀고 각자 옷을 갈아입고 호숫가에 모였다. 선생님들은 벌써부터 신이 나서 물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고, 아이들은 팔에 튜브를 끼워 1:1로 물에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주로 케어했던 아이는 ‘치숭게’라는 아이였는데, 몸에 힘이 없어 서있거나 오래 앉아있는 일이 어려운 아이였지만, 누구보다도 잘 웃는 아이여서 은근히 힘이 되어주던 아이였다. 물에 데리고 들어오니,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물장구는 아니었어도, 자기 스스로 무릎을 굽혔다 펴며 물이 스치는 느낌을 즐거워했던 것 같다. 사실 치숭게는 꽤 큰 편이라서 물 속이라도 데리고 있는 게 꽤 힘들었었는데, 같이 있을 때는 치숭게는 얼굴을 보느라 그만 둘 생각을 못했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물에서 놀아주고 움직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워낙 몸이 약하다보니 호흡기에 물이라도 들어가거거나 조금이라도 추워하면 바로 조치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비장애 아이들처럼 오래 물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치숭게를 할머니 품에 다시 안겨드리고 다른 아이들도 돌보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물 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물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활동적이고 생기넘쳤다.
물놀이 이후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곤두와니’라는 아이가 조금 불편해해서 데리고 나와 산책을 했다. 센터에 있을 때는 곤두와니가 이렇게 걷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지 미처 몰랐었다. 내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었겠지만, 혼자서도 잘 걸으며 여기저기 궁금해했다. 돌부리가 있거나 평평하지 못한 곳에서는 잘 넘어지기 때문에 곤두와니의 걸음을 좇아다니며 산책하도록 했다. 곤두와니의 생각을 알수는 없었지만, 풀이 있는 곳을 향해 똑바로 가려고 하는 모습이나, 호수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 바닥에 밟히는 모래의 질감을 느끼는 모습이 괜히 감동적이었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곤두와니가 걷는 것과 뒤를 살펴주는 것이 좋았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아침을 먹고, 또 다같이 물가로 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어제만큼 신기해하지는 않았지만, 거센 파도로 맞이해준 호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에서 잘 놀았던 아이들도 함께 파도를 태우며 놀아주었고, 잠시의 자유시간을 누리는 아마이들과도 함께 파도타기를 하고 물장난도 치며 마지막 물놀이를 했다.
각자 샤워와 휴식시간을 가진 후 점심을 먹었고, 다시 짐을 꾸려 은코마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버스에 타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말라위호수와 작별인사를 했다.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멈춰 몇몇 아마이와 선생님들은 생선(은코마는 내륙지방이라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렵다)을 샀고, 생선들은 버스 사이드 미러에 매달려 은코마로 함께 갔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릴롱궤에 멈춰 한국인 스탭들을 내려주었고, 우리는 추수방학이 끝난 뒤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갑자기 다녀온 살리마 울렌도가 끝이 났다.
서두에 밝혔다시피,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그리고 캠프를 하는 동안도 모든 일정을 주관한 김순희 선생님께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내심 죄송한 마음도 컸다. 혹 다음에도 울렌도 일정에 참가하게 된다면 서로서로 잘 도와서 더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2초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장애인사역에 대해 문외한인 나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장애인을 대하는 일은 내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장애인들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만 하는 것도, 그렇게 곤란하게만 하는 것도 아니더라. 그리고 뭔가를 해주는게 아니라 그냥 함께 있기만 하는데도 기뻐하고 웃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여전히 나는 왜 하나님께서 이 친구들에게 장애를 주시고, 또 장애를 가진 채로 평생을 살게 하시는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로 살게 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기를 원하시는지, 그것을 알아가게 하시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태복음 25장 40절)’이라 하셨던 그 말씀이 왜 자꾸만 떠오르는지. 사실은 하나님이 나의 삶 속에서 작은 예수들과 살아가도록 허락하신 것은 아닌지, 그런 마음이 들어 그들과 함께 하는 이 길지 않은 시간이 내게는 참 귀하고 애틋할 것 같다.
치숭궤와 함께 하는 김해빛나 단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