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을 펼쳐라
공동주택에서 마을 만들기
이근호(농화학과 86, 마을르네상스센터장)
벌써 4월입니다. 작년 5월말 마을르네상스센터장으로 채용(?)되었으니, 거의 일 년이 되어갑니다. 작년에 54개팀, 올해 80개팀이 공모사업에 참여하였거나, 하고 있고, 거의 4,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각종 마을만들기 교육을 경험하였습니다. 참여하고 있는 활동도 나무를 심고, 꽃길을 가꾸는 환경가꾸기 활동부터, 마을축제, 옥상텃밭, 주민교육(답사), 자전거학교, 벼룩시장, 벌키우기, 콩나물재배, 커뮤니티 공간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독주택지역에 비해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의 경우 마을르네상스사업을 하기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라 하면 대개 무언가 물리적인 시설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수원의 아파트들은 비교적 새 건물들이라 새로 바꿀 시설이 없는 상황이라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마을르네상스는 공동체 시민운동이라고 설명을 하여도 맘에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 할까요? 특히, 입주자대표입장에서는 임기 중에 멋있는 시설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맘이 굴뚝같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없다고 하는 아파트에서 뭔가 성과를 내고 있는 아파트 마을 만들기 사례를 살펴보면 일정부분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처음부터 시설공사를 하기 보다는 주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수원 아파트 마을 만들기의 첫 동네는 영통의 청명마을입니다.
이곳은 청명산 자락에 있는 마을인데 입주자 대표가 청명산의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수원의 환경단체인 수원환경운동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 답사를 진행하고, 아파트 주부를 대상으로 환경안내자 교육도 진행하였습니다.
2년정도 진행하니 자연스레 환경안내자 모임이 구성되었고, 환경안내자 모임을 통해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도 환경교육(답사)에서 아파트내 문화 행사, 아파트 환경 탐사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주민 역량이 축적된 후 아파트 담장 허물기 사업을 추진하여 정자도 만들고, 아파트 옆 소공원에 인공폭포까지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5년 이상의 오랜 시간에 걸쳐, 아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주부들이 모이고, 모인 주부를 통해 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파트 환경 개선 사업까지 추진한 경우입니다.
수원의 화서2동에 꽃뫼버들마을 단지가 있습니다.
이곳의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아파트내 공유 공간을 아이들 공부방으로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책걸상을 준비하고, 어머니들이 교대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옆 아파트의 아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수원에서 진행되는 각종 아파트 마을르네상스 중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아이들이 모이고, 어머니들이 모이니 자연스레 마을일에 대해 고민하는 그룹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음식물퇴비화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대량으로 배출되는 김장쓰레기와 낙엽을 섞어서 퇴비화 시설을 아파트내에 설치하여, 생산된 퇴비는 아파트 단지내 화단가꾸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많은 돈을 들여서 설치한 각종 퇴비화 시설이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이 아파트에서는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설이라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김장쓰레기와 낙엽을 섞어서 쌓아 두는 것이 전부인 구조입니다. (2011년 수원시민창안대회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한국기록원에 아파트내에 다양한 식물(야생화)가 서식하는 아파트로 기록 등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의 300종이상되는 야생화가 서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줄맞추어 심어져 있는 화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울려 서식하고 있는 화단을 조성하였습니다.
이 모든 활동을 부녀회 회원들의 힘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거창한 시설을 꾸미지 않더라도 주민들의 실생활-아이들 교육, 김장쓰레기, 화단꾸미기-과 밀접한 활동을 하면서 활기찬 아파트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음악동아리 활동 사례도 있습니다
아파트 지하 공간(펌프실)을 음악연습실로 사용하는 동아리인데, 소그룹의 취미활동에 그친 활동을 마을주민과 함께 하는 음악활동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동아리 구성원과 마을르네상스센터와의 수많은 논의를 통해 동아리 활동 폭을 넓히기로 합의를 하고,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하였습니다. 거의 1,000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멋있는 음악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개인의 취미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동아리가 동네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을 주민에게 사랑받는 동아리가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문화답사에서 출발하여 마을기업(카페)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위한 문화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교육 관련 업체, 단체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모임을 통해 답사대상지역을 정하고, 세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직접 진행하였습니다.
1년 이상 진행하다 보니, 부모님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아이들 물품을 교환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필요 없어진 물품을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아파트 벼룩시장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정례적인 벼룩시장을 통해 단순한 답사 모임이 아파트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이 안정화 되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에 관심있는 어머님이 음식물쓰레기에 대해 고민하였고, 지렁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들의 참여로 확대되었으며, 지렁이를 키우면서 발생한 분변토를 활용한 아파트 공지를 활용한 텃밭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렁이를 이용한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사업이 아파트 텃밭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이 운영되다 보니 시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마을기업 사업에 참여할 주민주체를 찾던 시에서 평소 활발한 활동을 보이든 주민들에게 마을기업을 제안하였습니다. 마침 벼룩시장 기증 물품 저장 장소와 만남의 장소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던 주민들은 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파트 내 상가 건물에 마을카페를 개설하여,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답사)이 벼룩시장과 음식물쓰레기 활용을 위한 지렁이키우기, 마을카페 운영 등 마을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확대된 사례입니다.
흔히 아파트는 현대의 고립된 삶을 대표하는 주거양식으로 설명됩니다. 바로 옆집도 모르는 삭막한 현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야를 돌려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운영할 사람을 찾는 것이 쉬울 수 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아파트를 살펴보면 대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모님들의 참여가 늘어가고, 적극적인 부모님들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프로그램이 다양화 됩니다.
“마을에 필요한 일을 찾기 보다는 내가 마을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마을 만들기를 쉽게 시작하는 첫 걸음인 것 같습니다.
마을 만들기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안할 용기가 있으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