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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물섬남해세광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을 주는사람
본래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저주받은 세상이요 저주받은 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선포 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땅은 저주받은 땅이요 사람은 저주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죄값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았기에 우리가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늘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보니 부부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부모 자식 간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형제간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업상에도 잘 될 것 같은데 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논과 밭에서도 가시와 엉겅퀴를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가시와 엉겅퀴가 되살아나는 저주의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 저주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때부터 병들고 고통을 당하면서 죽는 절망의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전도서 1장 1절로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극도의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이처럼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전도서를 지은 것을 보면 그도 인생은 허무한 것 이라고 결론을 내린게 틀림 없습니다.
세계적인 실존 철학자들도 인간은 절망의 존재라고 고백 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에 대해서 “삼대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죄책과 정죄의 절망이 있으며,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이 있고,
죽음의 절망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이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중에 사람들이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무신 애를 쓰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두고있는 첫 번째 목표가 바로 돈입니다. “돈을 벌면 희망이 있겠지” 싶어서 다들 돈버는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고 난 다음에도 역시 절망은 따라옵니다.
사람이 잘먹고 잘입고 잘살게 되면 더 행복할줄 알았는데 6,25때 피난살이로 고달프고 괴로울 때보다 오늘날 자살하는 사람들이 수십배가 더 많아 졌으니 참 희한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잠재의식 속에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누구든지 자살 충동이 생겨나고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고 난 다음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 하면서도 불안합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자는 죽은후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고 불신자는 죽은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음 저 넘어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천 신지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세상에서 잠시 사는 삶에도 그렇게 크게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죽거나 부모가 돌아 가셔도 천국에서 다시만날 기약이 있기에 비록 헤어지는 인간적은 슬픔은 있지만 남들처럼 울고 불고 난리를 치거나 목노아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기에 소망을 품고 찬송을 부르면서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세상에 목을 매고 아둥 바둥 하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뜨거운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죽음 건너편에 있는 영계의 소식을 알려 주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알게 된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성탄절에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그리고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면 죽음도 큰 영광과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생명줄입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붙잡으면 우리도 사망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되지만 예수님을 버린 사람들은 뜨거운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문준경전도사님의 순교 사적지에 갔다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한 어르신을 만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어르신이 장로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인데 이동네 분들이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더니 증도 사람들은 거의 다 교회에 다닌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나이든 그 집사님에게 한가지를 물었습니다. “집사님! 예수믿다가 돌아 가시면 천국에 가시는건 아시죠?”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그건 잘 모릅니다! 나같은 것이 천국에 갈수 있을지 모르것네요?”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천국 가려고 예수 믿는 겁니다!” 했더니 “글쎄요! 그건 모르것네요! 갈수 있을랑가?”합니다.
그래서 “꼭 갑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들여 보내주시겠다고 예수님이 약속 하셨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리는데도 여전히 “글쎄요 내가 천국 갈랑가?” 하시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셨습니다.
천국은 내가 뭘 잘해서 가는곳이 아닙니다. 내가 선한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나는 천국 가겠지 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나는 죄를 많이 지어서 천국에 못갈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착각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인강도로 살면서 죄만 지은 악한 강도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강도가
“예수님! 당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도 좀 천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구세주로 믿습니다”하고 고백을 했는데 그때 예수님은 그 살인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살인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믿고 천국에 갔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저주와 가난과 절망이 판치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은 유일한 우리의 소망입니다. 세상의 모든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무궁화 꽃은 우리나라의 국화입니다. 하고 많은 꽃중에 무궁화꽃을 우리나라의 국화로 정한 이유는 무궁화꽃의 생리가 우리나라 국민성의 생리와 맞기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무궁화 꽃은 7월과 10월 사이에 100일 동안 피는 꽃입니다.
그런데 무궁화 꽃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겹겹으로 피는 무궁화 꽃이 있고 홀겹으로 다섯 조각으로 피는 무궁화가 있습니다. 다섯장으로 피는 홀겹 무궁화 꽃은 새벽에 피어서 햇볕을 받고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들어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시들어서 꽃이 떨어지면 다시 그 속에서 밑에있던 꽃몽우리가 나와서 새벽이 되면 또 꽃을 피우고 낮에 활짝 피고 밤에 죽어서 떨어지는데 그렇게 꽃몽우리가 100일 동안 계속해서 피고 지면서 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 같은데 또 피고 꽃이 떨어진 것 같은데 또 피고 그래서 무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과 비슷합니다. 짓밟히고 땅에 떨어져도 망하지 않고 다시 피고 또 피면서 살아온 민족이 우리민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하는것도 무궁화꽃처럼 해야 합니다. 무궁화 꽃처럼 매일 매일 하나님께 아름다운 꽃을 피워 드려야 합니다. 아침마다 새 꽃을 피워드리고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날마다 새로운 꽃으로 즐거움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시든꽃은 죽어서 떨어져야 새 꽃이 필수 있습니다. 시든꽃과 죽은꽃이 안떨어지고 그대로 있으면 새 꽃이 필수 없습니다. 죽어서 떨어져야 거기서 다시 아름다운 새 꽃이 핍니다.
이것은 마치 죽음과 부활이 맞다아 있는것과 같습니다. 죽어야 부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고난 후에 다시 부활해서 영생복락을 얻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의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만이 죽어도 다시 살아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의 유전인자는 어떻게 가질수가 있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살다보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전인자를 심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바로 이 부활의 유전인자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내멋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그때부터 영원한 삶이 시작된다고 분명히 증거 합니다. 죽자마자 영원한 천국으로 갈 사람이 있고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사람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2002년 월드컵때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선수들이 세계랭킹 5위요 당시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포르투칼을 물리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을 했습니다. 그날 47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환호하며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길거리에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고 그리고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댔습니다.
해방이후로 온 민족이 이렇게 흥분해서 기뻐한 것은 처음있는 일입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신나고 유쾌, 상쾌, 통쾌한 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954년도에 처음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헝가리에 9:0으로 참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16강에 오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람이 감격에 북받치면 할말을 잃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나머지 기절한 사람도 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자 너무나 기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기뻐서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진리를 깨닫고 너무나 기뻐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오늘 본문 로마서 8장31절에서 고백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는 말은 너무 너무 기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감격스러워 했습니까?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즉 이 일 때문에 할말이 없을 정도로 감격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일은 무엇입니까? 이 일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일”(롬8:2)을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다 죄와 죽음의 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였던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이게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또 한가지 사도 바울이 감격한 사건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사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양자의 영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안에서 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실패와 넘어짐과 아픔등 어려운 일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님과 강인숙 건국대 교수의 1녀2남 중 맏딸로 태어난 이민아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졸업한 수재입니다. 그런 그가 1981년도에 졸업 하자마자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청년작가인 김한길(전 문화부장관, 새정치민주연합대표)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걱정하는 부모도 외면하고 자신을 사랑해줄 것으로 믿은 남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김한길과의 첫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고백하기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한 사랑이었지만 실패 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을 첫사랑에서 찾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랑만 있으면 딴 건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고 믿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세계 또한 나와는 단절돼 있었습니다. 스물 두 살, 너무 어리고 철이 없을 때 무모한 도전을 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 낳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흑인들도 마다하는 일자리에서 밤을 새우는 주유소 일을 최소 일당을 받으면서 일을 했고 낮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니 남편도 자존심 때문에 더욱 이를 악물었지만 그러면서 서로에게 지쳐갔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동의와 축복을 받지 못한 결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던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민아씨가 키웠는데 그 아들이 미국의 명문인 버클리대학 3학년때 갑자기 감기에 걸린 듯 하더니 쓰러져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죽은후에 1년 동안 매일같이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죽은지 일년후에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네 아들의 죽음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은 죽음의 고통도 너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라는 깨닳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깨닳은 그녀는 그때부터 유진이 또래의 비행청소년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돌보고 상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그 아이들을 아들 유진이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돌보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상담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가르는 벽이 마음에 있었는데 아들 유진이가 죽은 후에는 그 벽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문제아 들을 엄마의 사랑으로 품어주었더니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술과 마약을 끊고 부모에게 돌아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서른 명의 아이들을 구원 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마마미나”라고 불렀습니다. 일을 하다가 아들 유진이가 그리워서 울면 아이들이 자기를 안고 기도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고백하기를 “유진이의 죽음이 내 가슴에 한알의 밀알로 떨어져서 이기적이었던 나를 세상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유진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문제아 아이들을 통해서 매일 유진이를 만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비밀이 그 속에 있음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들 유진이의 죽음을 통해서 깨닳았습니다. 그 사랑을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고백한 고백중에서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은 고백은 “나 자신을 죽이고 남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에너지를, 돌처럼 딱딱한 내 심장에 끊임없이 충전 받아야만, 말썽꾸러기 자식에게, 그리고 원망스럽기만 한 나의 배우자에게, 그리고 생판 모르는 이웃에게, 폭풍 같은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늘의 태양과 그 햇살이 없이는, 내 힘만으로는 절대로 화초를 키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녀는 재혼해서 두 번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이 특수자폐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학교에서 받아주질 않아서 초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겼습니다. 중학교도 1년동안 다니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하루 하루를 지내다 보니까, 또 마음이 상하고 가족도 싫어 졌습니다. 그때 그녀가 또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닳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회개하고 찾아간 곳이 하와이입니다.
하와이에 있는 크리스챤 스쿨을 찾아가서 아이를 그 학교에 넣고 자기는 그 학교의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봤습니다. 그녀는 비로소 아이를 내 몸처럼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아이의 자폐증상이 봄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한꺼번에 7~9개의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자폐가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해결되어 기뻐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견딜수가 있었는데 눈이 보이질 않게되자 막장 인생이 되었습니다.
딸이 실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어령교수는 하와이에 있는 딸을 찾아가서 딸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 딸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면 저의 남은 생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드린지 7개월 만에 딸의 망막 박리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실명에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기적입니다. 회복불능의 상태였는데 회복이 되었으니 기적입니다.
이어령교수는 그길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용조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어령교수님은 딸에게 “너에게 일어난 기적을 절대로 이야기 하지 말아라”라고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기적은 구원의 싸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니까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요 신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은총이지 종교의 본질은 아니니까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령교수님은 “사랑의 실천과, 복음이 없는 기적은 사교(邪敎)에 불과하다”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말에는 교수님이 기독교를 믿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낸 이유와 더불어 기독교가 추구해야할 목표와 지향 해야 할 정신을 정확하게 가르친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눈을 뜨게 된 이민아씨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이민아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대형화, 세속화 되어서 일어나는 온갖 잡음과 분란을 잠재우고 한국 교회가 새롭게 변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 하면서
“오늘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나 낙심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는 것과,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병자들이나, 갈 곳 없어 방황하는 10대들이나,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가 끌어안고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민아목사님은 목사 안수를 받은후에 미국과 아프리카와 남미를 돌면서 청소년 선교사역에 전념해 오다가 재작년에 위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이민아 목사님께서 고백한 고백중에 제 가슴에 와 닿았던 또 한가지 고백은 “내 생애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죽을것 같은 진통 끝에 첫 아이를 낳아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친 순간입니다! 고통없이 얻을수 있는 행복은 없습니다! 불 속을 지나가지 않으면 금이 정련되지 않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옵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땅 끝에 선 아이들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다가 가고 싶습니다” 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민아목사님은 이 세상에서 살다간 사람들중에 가장 고난과 슬픔을 많이 겪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렇게도 많은 고난을 주신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돌아 오라고 자기에게 고난을 주셨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가서 또 최고의 명문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연방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서 지내는 동안에 도무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사니까 하나님께서 수 많은 고난을 주셔서 그래서 비로소 자기가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고난을 자랑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바울사도도 고난이 자기를 위대한 사도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랑한 것입니다. 고난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바울사도는, 예수를 믿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다가 마지막에는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고 크게 감사합니다.
바울사도는 나같은 죄인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신것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삶과, 그리고 창세 전부터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 마지막날에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고 거기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할 때 더 이상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 그런즉 이 일에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고 오늘 본문 31절에서 감격스러운 고백을 한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복중에 복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 받았고 살아 생전에도 주님께 아뢰기만 하면 주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 가는 사람들 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안에 감추인 신령한 은혜와 보화들을 기뻐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