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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30일 아산 UBF 주일메시지
일어나 잡아먹어라
말씀 / 사도행전 9:32-11:18
요절 / 사도행전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닐스 보어, 막스 보른, 에르윈 슈뢰딩거, 막스 플랑크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초, 중, 고 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이 1927년 벨기에에서 개최된 5차 솔바예 회의에 모였습니다. 이 회의를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회의로 여깁니다. 여기서 고전물리와 다른 현대물리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빛의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핵물리학 등이 그 내용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질세계에서 그동안 절대 진리로 여겨졌던 아이삭 뉴턴의 역학과는 다른 원리가 원자와 전자의 차원에서는 작용한다고 논의한 것입니다. 이런 이론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각 산업분야에 사용되고 있는 반도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반도체 덕분에 성능 좋은 컴퓨터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사용하는 LED조명, OLED디스플레이, OLED TV도 현대물리의 산물입니다. 더불어서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멸망의 두려움을 갖게 된 것도 그 영향입니다.
오랫동안 가져왔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예를 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 하나님께서 세계선교를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굳어져 있는 고정관념은 깨지고 허물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굳은 생각은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어떻게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허물어 주셨는가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 Asan UBF도 말씀을 통하여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마음의 눈을 세계로 넓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변방을 다니는 베드로(9:32-43)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바 있습니다. 사울의 회심 후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때 사도 베드로는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돌아보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사도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습니다. 욥바가 인천같은 항구도시인데, 룻다는 욥바에서 내륙으로 17킬로 지점에 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곳에 애니아 라는 사람이 중풍병에 걸려 8년이나 누워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심방하여 8년간 중풍병에 걸려 누워 지내는 애니아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애니야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중풍병이 금새 떠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 이름 권세가 애니야를 질병으로부터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은 이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욥바는 예루살렘 서쪽 60킬로 떨어진 항구입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어 이름이고 도르가는 헬라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영양’이란 의미입니다. 도르가의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다비다를 ‘여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제자’라는 단어는 이곳 한 곳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즐기지 않았습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였으며 주와 복음을 위하여 실제적인 헌신을 하였습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는 다비다가 병이 들어 생명의 날을 다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왔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욥바로 청하였습니다.
39,40절을 보십시오. 사도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하여 장례식이 치루어지는 곳에 도착하니 다비다의 섬김을 받았던 과부들이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어 준 옷들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죽어 누워 있는 다비다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죽은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 인하여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41,42). 4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욥바에 며칠 더 있었습니다. 이 때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유하였습니다. 룻다와 욥바로 베드로를 인도하신 성령의 뜻은 무엇입니까?
세계선교를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욥바는 유다의 대표 항구입니다. 룻다는 그 배후 도시입니다. 성령께서 사도 베드로를 예루살렘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항구 욥바로 인도하셨습니다. 욥바의 교회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욥바가 세계선교를 위한 출입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거하게 하심으로써 율법의 벽을 허물게 하셨습니다. 시몬의 직업은 가죽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죽은 짐승의 가죽을 얻기 위해서 짐승을 키우거나 도살하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도축은 생명을 끊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정결한 일은 아닙니다. 무두장이 시몬은 율법으로 본다면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변방에 가서 피장의 집에 유하게 하신 성령은 베드로를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율법의 벽을 뛰어넘도록 미리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세상 모든 영혼 하나하나에 전파되어 모든 인생들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모든 준비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실행하십니다. 변방에 위치한 욥바와 룻다는 성도들 가운데 연약한 사람과 죽은 사람을 낫게 하시고 살아나게 하는 은혜를 통하여 세계선교를 위한 든든한 거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2. 일어나 잡아먹으라(10:1-48)
10장 1,2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군 장교가 있었습니다. 기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북부에 있는 곳이고 가이사랴는 해변 항구로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휘하에 약 100여명의 부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참 주인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백성들을 섬겨주었으며,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경건한 삶이란 혼자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삶이란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희생하고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고넬료가 기도하는데 환상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고넬료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자는 사도 베드로를 청하여 오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계시를 주시는가? 유대인들의 상식과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자 누가는 베드로에게 환상이 임하기 전에 고넬료에게 먼저 환상이 임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의 이름을 부르며 구체적 계시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사실을 세 번 더! 총 네 번 반복하여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영혼이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으며, 하늘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심판의 대상이라 규정하였습니다.
고넬료는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사자의 방향에 순종했습니다. 욥바로 사도 베드로를 청하도록 경건한 사람을 선발하여 보냈습니다. 문제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땅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반석입니다. 그는 사도들 중에서도 대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한계 안에 있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대상, 구원의 대상을 유대인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관심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헬라 사람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로마 백부장의 기도도 들으셨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해주시고 이스라엘에도 이만한 믿음은 없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유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초대교회를 움직이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특별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가고 있을 때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환상이 임하였습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에게는 짐승들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시는 방향은 이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 하였나이다” 잡아먹으라 한 짐승들이 돼지, 낙타, 두더지, 거북이, 도마뱀, 지네, 독수리, 까마귀... 구약성경에서 먹지 말도록 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구약 레위기11:1-47과 신명기14:4-20에는 먹지 말아야 하는 짐승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와 신명기에서의 부정한 짐승을 잡아서 먹을 경우 죄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도 이런 생각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니라” 베드로에게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의 개념이 매우 견고하였기 때문에 같은 말씀, 같은 계시가 세 번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보자기와 그릇은 하늘로 올리워 갔습니다. 이 강력한 환상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뜻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베드로의 내면에는 꺼림찍하고 부담스러운 환상이 왜 임하셨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고한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환상의 의미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17-20절을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들이 성령께서 보낸 사람들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이지만 영접하고 따라가라고 지시 하셨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의 초청을 받아 들여 함께 가이사랴로 길을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환상은 유대인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만민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주시는 반복적인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영접하였습니다.
24-2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일행들은 다음날 가이사랴에 들어갔습니다. 고넬료가 정중하게 베드로를 영접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방인들과 교제를 금하신 것은 맞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교제를 금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써 순수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이 타민족과 교제하는 것은 상대방이 섬기는 신전에 가서 그 사람들의 신전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였습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교제를 금하신 것은 가나안 우상숭배의 죄악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 그것이 확장되어서 이방인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이방나라에 전하지 않는 것은 이방인 배타심의 불필요한 확장이었습니다.
30-33절을 보십시오. 고넬료도 자신에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와 구체적인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방향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서로에게 임한 환상과 계시를 서로 확인하고 나니, 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은 없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이방인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함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집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전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합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먼저 와서 예비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선구자를 보내어 증언한 정통성 있는 메시야 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주셨고 아픈 사람들을 고치고 귀신 들린 자들을 마귀로부터 해방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 이십니다.
39-4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병든 자와 연약한 자들을 섬기고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핵심 사역은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유대인들에 의하여 버림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에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죽으신 것은 우리 인생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치루어야 할 죄의 값을 우리 대신 치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아낌없이 그 피를 뿌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부활 하심으로써 능력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인생을 사로잡은 죄와 사망은 더 이상 예수 믿는 자들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다시 오십니다. 그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장으로 오십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역사에 자신과 사도들이 분명한 증인임을 밝혔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죄 사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 안에서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44-4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데 성령이 내려 오셨습니다. 말씀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 방언이 터졌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제자들은 이방인에게 임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놀랐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사도들이 세례를 주었을 때, 성령이 임하였는데 여기서는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11장 1-17절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에게 이루신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도록 하는 베드로의 역사보고입니다. 예루살렘 유대인 성도들은 베드로를 비난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이루신 모든 역사들을 세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성도들은 비난을 멈추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유대 크리스천들은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계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유대의 사도들과 믿는 형제들이 스스로 넘지 못하는 이 장벽을 성령께서 허물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세계에는 견고한 편견과 고정된 관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성경을 통하여 올바른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중심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열린 마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배우고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관념을 깨우쳐 주실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 진취적이고 비전 넘치는 청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아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그럴 필요없다’는 유대인들의 굳은 생각이 예수님께서 피흘려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전파되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뜻을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유대인들이 막고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의 위험성, 자기 고집의 해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개임을 통하여 이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느라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방해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계선교 하는 일을 비웃고 깔보고 비난하고 책잡는 일이 그치지 않고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행한 자들에게 합당한 징계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야 중단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각 사람들이 구원얻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생명의 구원주시고자 여러모로 일하시는 주 예수님을 깊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이 생명역사에 쓰임 받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생명역사에 나도 나의 삶을 드리며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아산 UBF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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