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해서 보세요. 머릿속으로 구호를 음미하세요. 여러분도 들을 수 있습니다. '뿅뿅뿅은 삐삐하라.'
80년 광주를 기억하는가? 당시 모든 언론들이 예외없이 시민들의 민주항쟁을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보도하던 것을? 그러나 사실은 어떠했던가? 당시 언론들의 보도와는 180도 딴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당시 전두환의 총칼에 짓밟혀 진실을 알고도 말 못하거나 그에 아부하여 제살길 찾으려는 몸보신에 급급한 나약한 언론인들의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진실 호도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짐을 지웠던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는 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생생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바다.
지난 촛불정국 때도 오십보 백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이번 제야의 종 타종행사만큼은 아니었다. 오늘 현장에 있던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모습과 주변의 스크린들에 비춰지는 방송화면들의 모습이 그토록 판이하게 다른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방송 화면으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종각 사거리를 가득 메운 수만 시민이 손에 손에 든 아듀 2008, MB OUT 등의 피켓과 명박퇴진, 해체 한나라 등의 구호뿐이었고, 무대는 경찰의 철통 보호 속에 참여 시민들과 완전히 따로 노는 유리온실 속의 다른 세계였으며, 진행자와 출연자들도 그에 무척 당혹해하며 애써 태연을 가장하려는 안쓰러운 모습들뿐이었다. 그러나 방송 화면은 너무도 태연하게 평화로운 모습들만을 비춰주고 있었다. 현장과는 180도 다르게, 그들이 그리고 싶은 세상, 아니 권력이 그렇게 포장하고 싶은 세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누가 평화와 희망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오늘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거의 100퍼센트가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평화와 희망은 오직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 옹호에만 목을 매는 MB의 OUT, 한나라당의 해체를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는데, 그것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들어와 쐬주 한잔과 김치찌개로 몸을 녹이며 확인한 결과, 오늘 행사의 주관방송사는 KBS였으며, KBS에서는 종각 현장에서는 아예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평화로운 관객들의 화면은 대학로에서 따왔고(그럼에도 종각 현장의 화면인 듯 모호하게 처리했다), 시민들의 함성과 구호에 묻혀버렸던 종소리는 임진각 행사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시민들의 야유와 함성에 묻혀버린 오세훈 시장의 인사말에 대한 박수소리는 음향처리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건 명백히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탈을 쓴 관제홍보프로그램일 뿐이다. 이 시간 이후로 모든 KBS 종사자는 스스로 언론인이 아니고 홍보맨임을 이실직고해야 한다. 대신, 국민들한테서 언론인으로 대우받는 모든 처우는 당장 반납해야 마땅하다. 국민을 속이는 언론으로는 그동안 조중동만으로도 족했고, 더욱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세금과 경비를 걷어 운영하는 공영방송 KBS가 국민을 명백히 속이는 것은 단 하루도 더 참아줄 수 없다.
KBS는 2009년 새해 원단에 스스로의 정체를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해야 한다. 스스로 홍보맨이 되고 싶거든 국민들에게 그 이상의 대우를 받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80년 광주에서 KBS가 왜 불탔는지 그 이유를 잊었는가? 또한, 지금 상당수의 국민들로부터 방송언론의 마지막 지킴이로 사랑받고 있는 MBC가 그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것을 불행히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파업중이라고는 하지만, 메이저 언론으로서 막강한 장비와 취재진, 기술진을 보유하고 있는 MBC가 이 문제를 파업중이라는 이유로 은근슬쩍 넘기려 한다면 이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언론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내가 알기로 아무리 파업중이라 해도 MBC가 그 정도의 취재력과 방송 소스를 확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30일 밤부터 방송법 처리 문제는 사실상 올해를 넘기고 내년으로 넘어간 정황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MBC 성원들이 이 문제를 회피할 여지는 거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시급히 큰 이슈로 다루어주기를 기대한다.
2008년을 보내고 2009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또 한 번의 개벽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그런 어정쩡한 태도가 설 곳은 없다. YTN, 가볍게 스케치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 비중으로는 낙제점이다. 한때 그 알량한 꼴에 그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던 KBS가 지금 어떤 꼴이 돼 있는지, 그걸 제대로 돌아볼 줄 안다면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정말 안 된다. sbs, 다른 보도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나와 직접 관련된 것만 챙기고 그 이상의 것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가 용납되는 것은 지극히 한시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결전의 시간이고, 결전의 시간에 중립자, 혹은 중립자를 가장한 기회주의자가 설 땅은 없다.
현 시점에서 방송법 현안은 전국민적 관심사가 돼 있고, 그것이 어떻게 귀결되느냐는 대한민국 언론의 미래의 문제일 뿐 아니라, 방송 종사자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며,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방송사와 그 종사자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방송 종사자들은 이 점을 뼈저리게 돌아보아야 한다. 당신들의 말로만의 기계적 중립 지향이 갖고 있는 독소,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신들의 유형, 무형의 밥그릇 다툼을 국민들은 사실상 알 만큼 다 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방송법 문제에 대해 당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그 오랜 기간 독재정권을 경험하면서 권력과 자본에 완전히 무릎 꿇은 언론의 존재가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옥죄어오는지를 너무나도 깊이 절감한 탓에 엇 소리만 해도 그 함의를 눈치챌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온갖 기회주의적 행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무조건 지지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접어두고 방송법 개악 저지를 위해서라도 국민들, 특히 이 힘든 시기에 제 시간, 제 돈 바쳐가며 올곧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들을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 대체 누구의 힘에 의지하며 싸우겠다는 것인가?
2009년 새해는 과거의 실패와 오욕을 씻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새로운 기반을 다져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당신들 노조위원장들의 결의대로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으로, 결사항전의 의지로 언론의 굳건한 디딤돌을 새로 놓아야 하는 때인 것이다. 제야의 종 타종, 새해맞이 행사는 그 첫걸음이다. 지금 이 시간, 첫해가 이제야 밝아오는 지금, 때는 늦지 않았다. 제야의 종 타종식 행사보도의 문제점을 철저히 따지며, 첫 단추를 다시 꿰는 데서부터 2009년 한국 언론의 새해는 시작된다. 그걸 못한다면, 언론은 80년 광주에서처럼 다시 불타 없어진다. 그 다음은?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한 세기에 한 번 올까말까 한 대격변이 시작되는 해이다. 시대에 뒤진 모든 묵은 것은 스러지고, 밑바닥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는 해이다. 썩은 언론, 그릇된 언론은 없느니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