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은 요지경(瑤池鏡)
2. 내가 개설한 국내최초(國內最初)의 학교 홈페이지와 학급 홈페이지
①내가 개설한 전국최초의 학교 홈페이지(1993)-인천 서구 건지초등학교 ‘건지골 소식’
②내가 개설한 전국최초의 학급 홈페이지(1995)-부평남초등학교 5학년 7반 “별똥마을”<사진:우리 집 거실>
나는 인천교육대학 2년 동안 전공은 초등교육학이고 선택과목은 음악으로 음악반이었다.
69년 대학을 졸업하고 초임이 가평이었는데 75년인가 인천으로 들어왔고 84년에 인천교대 야간대학에서 2년간 음악교육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다시 청주 교원대학에 가서 음악 전문과정(6개월)을 이수했으니 부전공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내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컴퓨터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면,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훨씬 전인 1990년, 새로 개교하는 인천 서구의 건지(乾地)국민학교 연구부장으로 초빙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인천시 서구 가좌동으로 학교가 세워진 곳은 예전 ‘가재울’이라 불리던 곳인데 지금은 아파트와 주택들로 가득 들어차 있지만, 옛날에는 자그마한 골짜기로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고 가재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재골이라 하다가 가재울... 그런데 개울물이 거의 말라 마른 연못, 하늘 연못이라는 의미의 건지(乾池)로 불렸는데 학교 이름은 거리가 멀다고 해야되나, 건지(乾地-마른 땅)로 바뀌었으니 신기한 학교 명칭의 내력이다.
개교(開校)로 바쁜데 갑자기 교장이 느닷없이 교장실로 부르더니 교육청 지시라며 우리 학교를 인천시 컴퓨터시범학교로 지정을 한다면서 나더러 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당시 컴퓨터에 전혀 문외한이던 나는 ‘저는 컴퓨터를 전혀 모릅니다. 저는 연구부장을 못하겠습니다.’
교장은 나를 보고 애원하는 표정으로 교육청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니 제발 좀 맡아달라고 사정 조(調)로 부탁을 한다. 마음이 약한 나는 곧바로 인천교육연구원을 찾아가서 당시 대학 동기로 인하대 야간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연구사(하○철)를 찾아가서 내 사정을 토로했더니 자기가 도와줄 테니 맡아보라고 한다.
당시 PC 국내 통신망이라고 불리던 통신사로 하이텔(HiTEL)과 천리안(Chollian), 나우누리(Naunuri), 유니텔(Unitel)이 있었는데 통신요금이 싼 하이텔 속에 인천지역 통신망인 인디텔(Inditel)이 있으니 그곳에 찾아가서 학교통신망(현 학교홈페이지)을 개설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한다. 연구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인디텔 인천본부로 찾아가서 허락을 받고 곧바로 컴퓨터가게에 가서 컴퓨터를 한 대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밤새워 들여다보며 컴퓨터를 익히고 인디텔과 협력하여 개설한 것이 전국최초의 학교 홈페이지라고 할 수 있는 학교통신망『건지골 소식』이었다.
당시 가정에는 컴퓨터가 거의 없던 시절인데 하이텔에서 단말기라고 조그만, 오로지 통신만 되는 꼬마 컴퓨터를 무상으로 빌려주었는데 내가 직접 트럭을 빌려 전화국에 가서 한 차 실어다가 운동장에서 학부형들을 불러 나누어주고 가입하는 방법, 운영하는 방법 등을 유인물로 만들어 나누어 주고....
하이텔 단말기는 크기도 작고, 마우스(Mouse)도 없는, 조그만 자판만 있어 오직 통신만 가능했다.
1994년 컴퓨터시범학교 보고회에는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KEDI), 서울, 부산, 대구, 심지어 포항 포철국민학교 등이 몰려와서 보고서는 물론이려니와 개설방법, 운영방법까지 들려 보내느라 혼났다.
이듬해 1995년에 부평에 있는 부평남국민학교로 옮겨서 5학년 7반을 맡고 학급통신망 ‘별똥마을’을 개설했는데 이것 또한 전국최초의 학급 홈페이지였다.
내가 만들어 준 우리 반 아이들의 아이디(ID)는 출석번호에 따라....(별똥마을이니 별 이름으로)
남자아이들은 북극성1, 북극성2, 북극성3... 여자아이들은 아기별1, 아기별2, 아기별3....
당시 컴퓨터를, 정보통신을 전혀 모르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모아 열심히 교육했다.
학급통신망의 메뉴는 1. 별똥게시판, 2. 학습안내, 3. 우리 반 이야기, 4. 글짓기 교실, 5. 질문이요!, 6. 가정통신, 7. 별똥우체국, 8. 별들의 대화의 8개 방으로 꾸며 운영하였다.
요즘의 화려한 학교, 학급 인터넷 홈페이지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겠지만 당시로는 한껏 멋을 낸, 알차게 꾸며진 홈페이지였다고 생각된다. 이 학급통신망도 굉장히 활성화되어 일반인들도 들어와 놀라곤 했었다.
그리고 당시 내 나이 40대라 연령이 40대인 사람들을 모아 ‘40사모(40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모임방을 만들었는데 회원이 40여 명으로 굉장히 활성화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없이 많은 번개팅도 하고 기금을 모아 인천농맹아(聾盲啞) 학교를 방문하여 선물도 기증하고...
당연히 내가 운영자였는데 당시는 운영자를 시삽(Sysop: System Operator)이라고 불렀었다.
이러한 우리나라 정보통신교육에 앞장섰던 공로를 인정받았던 때문이었는지 나는 1998년에 국무총리가 주는 공무원의 자랑인 ‘모범공무증’도 받았으니 영광이며 인생의 보람이라 하겠다.
(모범공무원증/제29807호/1998년 12월 28일 국무총리 김종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