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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장,
아무런 말도 없이 주방에서 나가 거실로 간다.
“너 거기 좀 앉거라!”
“네!
잠시 차를 준비해 가지고 오겠습니다.“
”차는 필요 없다.“
이정아는 시어머님의 앞의 소파에 앉았지만 마음이 불안하다.
시어머님의 표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냐?
이제는 입덧이 끝난 것이냐?“
”네!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사골과 꼬리를 먹으려고 준비를 하는 것이더냐?“
“...........................”
“입덧이 끝났다고 저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뱃속에 있는 태아만 키울 것이더냐?
처음도 아니고 경험이 있다는 네가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하냐?“
”죄송합니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만 지금까지 네가 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시집을 올 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으면 와서라도 시댁어른들에게 네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 아니냐?
주말이 되어도 전화 한 통화도 없고 입덧을 한다는 핑계로 얼굴조차 보기 힘든 네가 참으로 가증스럽고 화가 난다.“
”...........................“
”처음 온 시집이 아니라서 무시를 해도 된다는 말이더냐?“
”어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대체 네가 한 일이 무엇이더냐?
혼수를 제대로 해오기나 했니 예단을 해 왔니?
하다못해 남들이 다 해온다는 이바지 음식이라도 해 오기나 했니?
아들을 키워서 너 같은 헌계집에게 주는 것도 분하고 억울한 일인데 시댁 어려운 줄도 모르고 무시를 해?“
”............................“
이정아는 속까지도 덜덜 떨려온다.
시어머님의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저 무서울 뿐이다.
“그런다고 네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네 친정이 남들보다 가난한 집안도 아닌데 네 친정 부모부터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전남편의 딸에게 모두 줄려고 감추어두고 있는 것이란 말이더냐?
맨몸으로 와서 내 아들 피를 뽑으려고 한다는 말이더냐?“
이정아는 무엇이라고 할 말이 없다.
시댁예단에 대해서 남편이 극구 말렸던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자신이 하라는 대로 따르라고만 했던 남편이다.
그런 사람을 믿고 시댁예단에 대해서 시부모님께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결혼식만을 올렸다.
서로의 패물도 커플링 링으도 만족스러워했고 집안 가구들 역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서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침대 이부자리와 수진이가 쓸 만의 가구와 침대만 들여놓았을 뿐이다.
입덧을 하기에 이바지 음식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신혼여행을 와서 며칠이 지난 뒤에 소고기와 과일 그리고 술을 준비해서 다녀왔을 뿐이다.
이정아는 시어머님의 화가 좀처럼 가라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정아는 시어머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한다.
“어머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너같이 가증스러운 것들은 이미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잘못했다는 말로 순간의 위기를 넘기려고 하지만 난 이미 너에게 정이 떨어졌다.
너를 며느리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네게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다.
다만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에 내 아들만 보내라!“
“어머님!
최선을 다해서 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한번만 만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필요없다.
내 집에 내 아들만 보내거라!“
심숙희는 냉정하고 차가운 바람이 일 정도로 쌩하니 몸을 일으켜 아파트를 나선다.
이정아는 황급하게 뒤따라 나선다.
“어머님!
노여움을 거두시고 진지라도 들고 가십시오.“
그러나 심숙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이정아 역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심숙희는 엘리베이트의 정지버튼을 누르고 이정아를 본다.
“내려라!”
차갑고 냉정한 말투다.
이정아는 잠시 그런 시어머님을 바라보다 더 이상 파고들 수 없음을 느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개를 숙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닫긴다.
이정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였다.
남편은 초혼이다.
아들의 결혼에 그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는 부모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크나큰 실수였다.
그저 단순하고 가볍게만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을 남편에게 떠 맡겼던 자신의 크나큰 실수였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정아는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만 마음을 끓인다.
“무슨 걱정이 있어요?”
유용재는 아내가 여느 때하고는 달리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느낀다.
“아뇨!
내가 걱정이 있을 것이 뭐가 있어요?“
”그럼 입맛이 없어요?“
먹는 것도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 것 없어요.
참, 아버님 생신이 거의 다 되어가는 것으로 아는데 맞죠?“
”응? 아버지 생신?
아, 그러고 보니 일주일 뒤네!“
“어떻게 하죠?
결혼을 하고 처음 다가오는 시아버님의 생신인데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그냥 가족끼리 외식을 하면 되는 것인데 그다지 신경 쓸 거 없어요.
내가 미리 형수님 통장으로 다소 얼마라도 보낼 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의 선물이라도 준비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내가 알아서 할게!
당신은 태아 생각만 해요.“
유용재는 아내와 태아 생각만 해서 자신이 다 준비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부모님의 생신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다.
늘 가족들끼리 외식을 하며 조그만 선물과 용돈을 드리는 것이 자식들이 하는 일이고 그것으로 만족해하시는 부모님이시다.
거창하고 번잡한 것을 원치 않으시는 성품이신 부모님이시다.
유용재는 아내를 대신해서 자신이 선물을 준비하고 봉투를 마련할 생각이다.
그러나 이정아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몰라 어쩌지를 못하고 고민을 한다.
이정아는 조심스럽게 윗동서에게 전화를 한다.
서로 아직 전화 통화를 해 보지 않았지만 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신호 벨이 울리자 가슴이 떨린다.
시어머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던 김은하가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번호를 확인한다.
“어? 새 동서네!”
“뭐야?
그 애가 왜 네게 전화를 한 거니?”
심숙희는 이정아의 전화라는 말을 들으면서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받아봐라!”
김은하는 시어머님의 마음을 이해를 한다.
지금 시어머님께서는 절대로 동서를 받아드리지 않으실 것이다.
“여보세요.”
“저............형님이세요?”
“응. 자네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해주시나?”
김은하는 시어머님의 눈치를 살피며 전화통화를 한다.
“저.......형님!
다음 주가 아버님 생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셨으면 해서요.“
”자네가 무엇을 하려고?“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전화를 드려서 도움을 청합니다.
찾아가 뵈어야 하는데..........죄송합니다.“
김은하는 시어머님의 손사래를 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뜻임을 안다.
“동서!
서방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되네!“
“그래도 어떻게.................”
“나도 그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어서 미안하네!
지금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다음에 통화를 하세!“
김은하는 전화를 끊고는 시어머님을 바라본다.
“그 아이를 상대하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내 집에 오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어머님!
그래도 서방님을 생각하셔서 이제는 마음을 푸십시오.
서방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싫다.
부모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결정한 결혼이다.
게다가 아무런 격식조차 갖추지 않은 그 아이를 내가 받아줄 마음이 없다.
용재 녀석이 끝까지 그 아이를 감싸고돈다면 용재마저 버릴 것이다.“
시어머님의 마음이 완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참으로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시다.
시동생이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어머니를 설득했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드렸을 것이다.
부모의 그런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단칼에 부모의 허락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대로 결정을 내린 아들에 대한 서운함이다.
게다가 작은 아들이 결혼을 하면 주려고 많은 것을 준비를 해 놓으신 시어머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것을 건네줄 수 있는 기회마저 없었던 것이 더욱 서운하신 것이고 시부모에 대한 아무런 예의도 갖추지 않았던 새 며느리에 대한 서운 함들이 모두 합쳐 미움이 된 것이다.
김은하는 여러 가지 말로 시어머님의 마음을 설득해 보려고 하지만 완강한 심숙희의 마음이다.
그런 큰며느리의 마음이 고맙기는 하지만 작은 아들과 새 며느리에 대한 미움이 가시지 않는다.
온 가족이 용재의 결혼상대에 대해서 심하게 반대를 했었다.
그러나 유용재는 그런 가족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없이 오직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고 모든 것을 감행을 했던 것이다.
적어도 시댁에 대한 예단 정도는 어머니와 상의를 하게 했더라면 지금같이 심하게 미움이 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숙희는 예단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아들을 따라서 시댁을 무시하는 새 사람에 대한 미움인 것이다.
아들이 뭐라고 하던 자신과 상의라도 했어야 했다.
자신이 아무리 차갑고 까칠하게 대한다 해도 다가왔어야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도 있듯이 다가와 주는 사람을 밀쳐내지는 못하는 심숙희의 성품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도 입덧한다는 이유로 열흘이 넘게 지나고 와서 잠시 얼굴만을 비치고 돌아간 아이들이다.
그러고서는 전화 한 통화도 스스로 하지 않는 새 며느리가 더욱 밉다.
하나하나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헌계집이라는 것도 너무 끔찍하게 싫은데다 무엇 하나 고운 구석이라고는 없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부글거린다.
이정아는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었던 윗동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자 더욱 난감하고 앞이 캄캄해져 온다.
어떻게 해야 시어머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며느리로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일일이 말을 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하든 혼자서 해결하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뜻밖에 윗동서로부터의 휴대폰이 울린다.
“네 형님!”
“어제는 어머님이 바로 곁에 계셔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네!”
“네!”
“아마 어머님 마음이 쉽사리 풀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네!
그렇다고 어머님 말씀대로 오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영원히 남남이 되어 버릴 것이니까 이번 아버님 생신에 서방님께만 맡기지 말고 자네가 성의를 다해서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를 해서 가지고 오시게!“
“정말 그래도 될까요?
워낙에 심하게 화를 내셔서.............“
“그랬으리라고 생각을 하네!
그렇지만 어머님은 참으로 인자하시고 따뜻하신 분일세!
이번 자네들 결혼을 서방님께서 너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리시니까 어머님께서 대단히 화가 나신 것일세!
어머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저 순종을 하고 오지 말란다고 해서 오지 않는다면 자넨 영원히 이 집안사람이 될 수가 없네!
그러니까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그저 묵묵히 듣고 있기만 하면 되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헌데, 무슨 선물이 좋을까요?“
”너무 분에 넘치지도 말고 그렇다고 성의 없어 보이는 것은 더욱 안 되니까 정성을 다해서 준비를 하면 될 걸세!“
김은하는 더욱 상세하게 일러주고 나서는 전화를 끊는다.
아정아는 비로소 가슴이 트이는 것 같고 숨을 쉴 수가 있다.
형님 말씀대로 남편의 말만 믿고 따랐던 것이 자신의 실책인 것이다.
자신은 재혼이지만 남편은 초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정아는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부모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두 분이 등산을 다니시는 것을 남편으로부터 자주 얘기를 들었다.
주말이면 두 분이서 등산을 하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나서 등산복 코너를 간다.
이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인 가을이다.
조금 있으면 겨울이 금방 닥칠 것이다.
겨울을 위한 등산복을 두 분 것을 준비하기로 한다.
최고급의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름 없는 싸구려도 아닌 중저가의 제품으로 선택을 한다.
시아버님 생신은 저녁에 온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을 초대를 해서 식당에서 하기로 한 것임을 듣는다.
유용재는 바쁜 일과 속에서 아버지의 생신을 잠시 잊고 돈 봉투와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다.
그날 아침에도 유용재는 아버지의 생신을 깜빡 잊고 있다.
“오늘 저녁에 아버님 생신이라는 거 알죠?”
“응?
그날이 바로 오늘인가?”
“잊었어요?”
“아, 어쩌나?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 다 준비를 해 놓았으니까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 줘요.“
“고맙소.
이래서 아내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 봐!
깜빡 잊고 있었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 전에 데리러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것 알죠?”
“알았소.
회사에서 나서면서 전화하겠소.“
유용재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엄마가 아시면 사랑해주시리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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