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미디어 관련 학과 겸임교수에 의한 준강제추행 사건 가해자 엄벌을 위한 청년∙학생∙시민 탄원서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는 ‘인하대학교 미디어 관련 학과 겸임교수에 의한 준강제추행 사건’ 피해자와 연대하는 청년, 학생, 시민 단체 및 개인들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 가해자의 엄벌과 정의로운 판결을 탄원합니다.
가해자는 위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올해 1월 23일, 피의자는 피해자에게 술을 먹여 만취에 이르게 한 뒤, 피해자의 가슴과 성기를 강제로 추행했습니다. 피의자는 B***프로덕션 대표 감독이자 인하대학교 미디어 관련 학과의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업계의 권위자였습니다. 피해자는 피의자와 3년간 알아온 제자이자, 함께하는 프로젝트의 조감독이었습니다. 즉 피해자가 항거불능인데 더해 상당한 신뢰와 상하관계가 있는 관계에서 벌어진 죄질이 나쁜 범죄입니다.
실제로 이로 인해 피해자는 사건 당시부터 피해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문제를 지적하고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영상업계의 폐쇄적 특성, 향후 진로, 친분관계 및 위계로 인한 걱정 등으로 인해 말입니다. 위력으로 인한 부조리는 실제 가해자의 사후 대처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 피의자에 강제추행으로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통보했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피의자는 피해자에 업무 지시 성격의 메시지를 발송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미 피해자에 사과와 함께 프리랜서에 통상 지급하지 않는 퇴직금 명목의 입막음 성격 돈을 송금한 이후에 말입니다.
즉 자신의 범죄를 인지하고, 빈 말뿐이나마 사과를 전했다는 것인데 업무 지시를 했다는 것은 피의자가 전혀 반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쉬는 사람’으로 업계 동료들에 프레임을 씌워 적당히 덮으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 변호사를 통한 사과문 발송, 혐의가 인정되어 입건 된 이후에도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하대학교에서 미디어 실습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1월 23일은 학기 시작 이전이어서, 최소한의 상식이 있었더라면 강의를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즉 피의자는 교단과 경찰서를 왕복하면서까지, 알량한 지위를 지키는데만 급급했을 뿐이란 것입니다. 그럴 때 피의자의 소위 ‘반성문'은 조잡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도 교단에 선 와중 발송된 것이란 점에서, 전혀 반성이 없음을 피해자에 전하는 사실상의 2차가해였습니다. 실제로 피해자는 이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4개월이 넘는 기간을 공황발작, 자살 충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는 반성문을 양형을 낮출 사유가 아닌, 가중할 사유로 써주실 것을 탄원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법원이 교정과 일터, 그리고 사회에 정의를 함께 바로 세워 주십시오
이와 같은 언어도단의 상황에도 피해자는 4월 학내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하는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통상 익명 커뮤니티 특성상,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를 공격하는 2차가해 여론이 난무하기 마련이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물러섬 없이 언론 인터뷰, 학내 대자보 게시 등으로 사건을 알렸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숱하게 외친 바 자신의 후배들과 동료들에겐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된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피해자가 용기 있게 나선 결과, 인하대학교 당국은 사건 공론화 며칠 후 피의자를 해촉하는 전향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피의자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된건 물론, 교단에 전혀 걸맞지 않는 이가 교편을 잡는 부끄러운 상황이 피해자의 용기로 해결된 셈입니다. 이는 피해자의 용기가 의미 깊은 선례를 남겼음을 시사합니다.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대학, 영상 및 예술 업계, 일터에 위계를 악용한 성폭력 사건이 만연함은 분명합니다. 배움 속에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곳이 되어야 할 교정과 일터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한탄스럽습니다. 당장 인하대학교는 물론 타 대학, 해당 업계에서 성폭력 사건이 보도된 적이 수차례입니다. 피의자는 이를 반례 삼아 타인에 모범이 되어야 할 지위에 있었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해주십시오. 또 피해자의 공론화가 도리어 학교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이라고 하는 악질 여론이 빈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십시오. 이럴 때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만, 교정과 일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써 재판부가 피해자와 함께 정의를 말해주길 탄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법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영상업이라는 꿈을 향해 열악한 처우와 여건에도 전력을 다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영상 공부에 더 전력하고자 편입으로 인하대에 입학해, 피의자에 ‘충성'하며 배움을 찾은 가장 꿈과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었습니다. 48시간씩 밤을 세우는 고강도 일에도 보람을 느끼는 노동자였습니다. 가족이 암투병인 상황에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홀로 사건을 처리해 온,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었습니다. 공황장애, 수면장애, 이로 인해 매일 수십 개의 향정신성 약물을 투약하는 가운데 가장 자살충동이 심할 때 피해자가 가족사진은 물론 인하대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고 버텼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청년, 대학생, 노동자,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얼마나 자신의 삶에, 그리고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에 애정과 긍지를 느꼈을지 생각했습니다.
피해자가 겪은 일이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이번 일이 피해자에 안긴 수치와 위기가, 피해자가 자신의 소중한 삶과 사회에 갖는 기대를 꺾지 않길 바라는 까닭입니다. 홀로인 상황에도 자신과 다르지 않은 후배를 생각하며 먼저 세상에 손을 건넨 피해자의 용기에 응답하는 까닭입니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피해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마침내 서게 된 법정에 탄원서로나마 함께 선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피해자의 대자보에도 적혔듯이 “여러분과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람들로써 탄원합니다. 최근까지 가해자가 수업을 한 곳이자 피해자의 자랑스러운 학교 인하대학교의 학생으로써 탄원합니다. 인하대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전국 각지 대학의 학생으로써 탄원합니다. 피해자가 그랬듯이 상사의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으로써 탄원합니다. 판사님, 사법부가 허용하는 최대한으로, 가해자를 엄벌해주실 것과 정의로운 판결을 해주시길 탄원합니다.
2024. 05
인하대학교 미디어 관련 학과 겸임교수에 의한 준강제추행 사건 피해자와 연대하는 청년, 학생,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