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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23권
5. 변업품⑥
5.8. 특히 업장(業障)에 대하여
1) 5무간업(無間業)의 본질
앞에서 분별한 세 가지 무거운 장애 중에서, 5무간업이 업장의 본질[體]이라고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5무간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 같은 다섯 가지 무간업 중에서
네 가지는 신업이고, 한 가지는 어업이며,
다시 세 가지는 살생이고, 한 가지는 허광어이며
한 가지는 살생의 가행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5무간업 중에서 네 가지는 바로 신업이고, 한 가지는 바로 어업이다.65)
또한 세 가지는 살생의 근본업도이고,66) 한 가지는 허광어의 근본업도이며, 한 가지는 바로 살생업도의 가행이니, 여래의 몸은 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가를 파괴하는 무간업은 바로 허광어이다.
이같이 [승가를 파괴하는 무간업의 본질이] 허광어라면, 어떠한 이유에서 ‘승가를 파괴하는 것[破僧]’이라고 이름한 것인가?
원인에 결과의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혹은 [원인 즉 허광어가] 능히 승가를 파괴하였기 때문이다.67)
2) 방론-파화합승(破和合僧)
① 승가의 파괴[破僧]
만약 그렇다면 ‘승가의 파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능히 파괴하는 이[能破]와 파괴되는 이[所破] 중에 누가 파괴를 성취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승가의 파괴란 화합하지 않음이니
심불상응행온(心不上應行蘊)과
무부무기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파괴되는 승가에 의해 성취된다.
논하여 말하겠다.
‘승가의 파괴’라고 하는 [무간업의] 본질은 바로 화합하지 않는 것[不和合性]이다. 이는 무부무기로서 심불상응행온에 포섭된다.68)
그렇다면 어찌 무간업이 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승가의 파괴는 허광어(거짓말)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승가를 파괴하는 것’은 바로 무간업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승가의 파괴는 능히 그것을 파괴하는 자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파괴되는 승가의 대중에 의해 성취될 뿐이다.
② 승가를 파괴하는 자가 성취하는 죄
그렇다면 이같이 능히 파괴하는 자는 무슨 죄를 성취하는 것이며, 승가를 파괴하는 업의 이숙은 어떠한 처소에서 얼마간 이루어지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능히 파괴하는 자는 오로지
이 같은 허광어의 죄를 성취하니
무간지옥에서 1겁 동안 이숙하며
죄가 증가함에 따라 괴로움도 증가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능히 승가를 파괴하는 자는 파승죄(破僧罪)를 성취한다. 즉 이러한 파승죄는 허광어를 본질[性]로 하는데, 이는 바로 승가의 파괴와 동시에 생겨난 어(語)의 표업과 무표업이다.
이 같은 [파승죄를 지은] 이는 반드시 무간(無間)의 대지옥 중에서 일 중겁(中劫)을 보내면서 지극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역죄의 경우는 반드시 무간지옥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파승죄를 지은] 이가 [무간지옥에서] 일 대겁(大劫)을 보내지 않는 것은 욕계에는 이 같은 수명의 길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69) 나아가 일 중겁의 시간 또한 모두 채우는 것도 아니니, 경에서 “천수(天授,제바달다를 말함)는 인간의 수명이 4만 세일 때 인취 중에 다시 태어나 독각의 보리(菩提)를 증득하리라”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70) 그럴지라도 [이는 본송에서 말한] ‘수명이 1겁’이라는 말에 위배되지 않으니, 1겁의 일부분에 대해서도 1겁이라는 말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분에 대해 역시 ‘전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이러한 햇볕(사실은 햇볕의 일부임)은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러하다.71)
만약 다수의 역죄를 지은 자가 처음에 이미 한 번의 무간지옥에서의 생을 초래하였다면, 그 밖의 역죄에는 과보가 없는 것인가?72)
‘과보가 없다’는 과실은 없으니, 다수의 역죄를 지은 자는 오로지 [무간지옥에서의 생을] 한 번만 인기하지만, 그 밖의 다른 역죄의 과보가 그것을 도와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죄가 증가함에 따라 괴로움 또한 증가하여 극심해지니, 이를테면 다수의 역죄로 말미암아 지옥 중에서 크게 연약해진 몸[大柔軟身]과 맹렬한 고통을 주는 수많은 형구를 초래하여 두 배, 세 배, 네 배, 다섯 배나 무거운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혹은 중간에 요절하는 일없이 오랫동안 괴로움을 받는데, 어떻게 다른 역죄의 과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③ 승가의 파괴에 관한 여러 사정
누가 어떠한 처소에서 누구를 능히 파괴하는 것인가? 또한 파괴는 어느 때에 일어나 얼마동안 지속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필추로서, 견(見)과 청정의 행자(行者)가
다른 처소에서, 어리석은 이들을 파괴하니
[파괴되는 이들이] 다른 스승과 성도를 인허할 때
‘파괴’라고 이름하며, 밤이 다하도록 지속하지 않는다.
논하여 말하겠다.
능히 승가를 파괴할 수 있는 이는 요컨대 대(大) 필추로서 필시 재가자나 필추니 등이 아니니, 그들의 의지(依止)에는 위덕(威德)이 없기 때문이다.73) 또한 오로지 견행자(見行者)로서 애행자(愛行者)가 아니니,74) [견행자는] 악한 의요가 지극히 견고하고 깊기 때문이며, [애행자는] 염오와 청정의 품류에 대해 다 같이 조급하게 동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컨대 청정한 행[淨行]에 머무는 자가 바야흐로 능히 승가를 파괴하는 것으로, 계를 범한 자의 [말에는] 위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그 밖의 역죄를 지은 후에는 능히 승가를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니, 그 밖의 역죄를 짓고 아울러 그 과보를 받았다면 처소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바야흐로 청정한 행에 머무는 자를 언급하여 앞의 유형(즉 승가를 파괴하는 자)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단정하고 엄숙한 말을 원만하게 갖추었다는 등의 사실을 나타낸 것으로, 말이 누추하고 어눌한 이들에게는 승가를 파괴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승가의 파괴는] 요컨대 [여래가 머무는 처소와는] 다른 처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대사(大師, 부처님을 말함)와 대면하고 있을 때는 파괴되지 않는다. 즉 모든 여래에 대해서는 가벼이 여기거나 핍박할 수 없을뿐더러 언사(言詞)에 위엄이 있고 엄숙하여 직접 대면하여서는 필시 [승가를 파괴할만한] 어떠한 공능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로지 이생의 승가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 성자의 승가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니, [성자 이외의] 다른 이는 능히 증정(證淨)을 인기하여 획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75)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인법(忍法)을 획득한 이도 역시 능히 파괴할 수 없으니,76) 결정적인 인법[決定忍]은 부처님께서 설한 바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지만,
[본송에서는] 두 뜻(이생과 忍位)을 포함하기 위해 ‘어리석은 이[愚夫]’라는 말로 설하게 된 것이다.
또한 요컨대 파괴되는 승가에서는 부처님과는 다른 스승을 인허(忍許)하고, 부처님의 교설과는 다른 성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허하는데, 승가의 파괴는 마땅히 그와 같은 사실을 인허할 때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승가의 파괴는] 반드시 그날 밤 안에 화합하며, 밤이 다하도록 지속하지 않는다.77)
이상과 같은 승가의 파괴를 일컬어 ‘파법륜승(破法輪僧)’이라고도 하는데, 능히 부처님의 법(즉 聖道)의 수레바퀴를 장애하여 승가의 화합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즉 승가가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사도(邪道)가 일어날 때, 성도가 차단되어 잠시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란, 이를테면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다음의 다섯 가지 사실을 출리(出離)의 도(道)라고 그릇되게 설한 것을 말하니,
첫째는 우유 등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소금을 먹지 않는 것이며,
넷째는 재단되지 않은 옷만을 입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을 변두리의 절[寺]에 머무는 것이다.78)
즉 대중들이 만약 그가 설한 이러한 내용을 인허할 때, 이를 일컬어 ‘법의 수레바퀴가 파괴된 것[破法輪]’이라고 하며, 또한 역시 ‘승가의 파괴[破僧]’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④ 승가가 파괴되는 최소한의 인원과 처소
어떠한 주(洲)에서, 몇 사람에 의해 법륜승가[法輪僧]가 파괴되며, 갈마승가[羯磨僧]는 어떠한 주에서, 몇 사람에 의해 파괴되는 것인가?79)
게송으로 말하겠다.
섬부주에서, 아홉 사람 등에 의해
비로소 법륜승가는 파괴되며
갈마승가는 오로지 세 주(洲)에서
여덟 사람 등에 의해 파괴될 뿐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남섬부주의 사람으로서 적게는 아홉 명, 혹은 그 이상이 되어야 능히 법륜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주에서는 법륜이 파괴되지 않으니, 그곳에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으로, 요컨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어야 다른 스승[異師]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덟 명의 필추가 분열하여 두 그룹[衆]이 될 때 승가는 파괴되는 것이며, 능히 파괴하는 자가 아홉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륜승가의 파괴에는] 최소한 아홉 명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본송에서] ‘등’이라고 말한 것은 그 이상은 한정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갈마승가만은 세 주(洲)에서 두루 파괴될 수 있는 것으로, 최소한 여덟 명이 필요하지만 그 이상은 역시 한정이 없다. 그리고 세 주에 통한다고 함은, 그곳에는 모두 성교(聖敎)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성교가 존재하는 한] 출가제자의 무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동일한 결계(結界,교구를 말함) 중에서 승가가 두 부파로 나누어져 각기 별도의 갈마(羯磨,즉 의식작법)를 조작하기 때문에 여덟 명이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80) 이를 초과하더라도 무방하기 때문에 [본송에서] 역시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⑤ 법륜승(法輪僧)이 파괴되지 않은 시기
어느 시기에 법륜승가가 파괴될 수 있고, 갈마승가가 파괴될 수 있는 것인가?
결계(結界)가 이루어진 이후로부터 법이 아직 멸하지 않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법륜승가는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지만, 여섯 시기만은 제외된다.
어떠한 때가 여섯 시기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처음과 마지막과, 부스럼과 쌍(雙)이 생겨나기 이전과
불멸(佛滅) 이후와 아직 결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이니
이와 같은 여섯 시기에 있어서는
법륜승가는 결코 파괴되는 일이 없었다.
논하여 말하겠다.
‘처음’이란 이를테면 세존께서 성불하고서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를 말하니,81) 이때 유정들에게는 선한 아세야(阿世耶, 意樂)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며, 악한 아세야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란 이를테면 선서(善逝, 여래10호의 하나)께서 장차 반열반에 들고자 하였을 때를 말하니, 이때에는 성교가 증광(增廣)하여 훌륭히 안주하였기 때문으로, 반드시 승가가 화합하여야 비로소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말하기를,
“[세존께서 성불하고서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법성(法性)을 증득하는 것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며, [장차 반열반에 들고자 하였을 때에는] 대중들이 모두 걱정하고 슬퍼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지만, 성교에 대한 계(戒)와 견(見)의 두 가지 부스럼[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도 역시 승가가 파괴되는 일이 없었으니,82) 요컨대 ‘견’의 부스럼이 생겨날 때 비로소 승가는 파괴되기 때문이다.
아직 지(止)ㆍ관(觀)이 제일인 쌍(雙,두 사람)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에도 [승가가 파괴된 일이 없었으니], [승가가 파괴되더라도] 자연적[法爾]으로 그들에 의해 신속하게 다시 화합하였기 때문이다.83)
부처님께서 입멸하고 난 이후에도 다른 이를 신수(信受)하지 않아 [승가가 파괴되는 일이 없으니], 이때에는 진실로 부처님을 대적할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84)
또한 결계(結界)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승가가 파괴된 일이 없었으니], 하나의 결계 안에서 승가가 두 부류로 나누어져야 ‘승가의 파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여섯 시기에는 법륜이 파괴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승가의 파괴가 모든 부처님에게 다 존재하였던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요컨대 숙세에 다른 승가를 파괴한 업이 있어야 하니, 일찍이 석가모니께서 현겁(賢劫)의 가섭파불(迦葉波佛) 시절에 다른 대중들의 무리를 파괴하였기 때문에 [승가의 파괴가 있게 된 것이다].85)
3) 무간업이 역죄(逆罪)가 되는 이유
이제 바야흐로 방론(傍論)을 마치고 마땅히 역죄(逆罪)의 인연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은혜와 공덕의 밭을 져버리고 파괴하였기 때문으로
모습[形]을 바꾸었더라도 역시 역죄를 성취하는데,
어머니란 말하자면 그녀의 피(난자)가 자식의 원인이 된 이로서
잘못하여 죽였을 경우 등에는 성취되는 일이 없거나, 혹은 있다.
그리고 때리려는 마음으로 불신(佛身)에서 피를 내거나
이후에 무학이 된 자를 해친 경우에는 성취되는 일이 없다.
논하여 말하겠다.
어떠한 이유에서 어머니 등을 살해하는 것은 무간죄를 성취하고 그 밖의 다른 살생은 무간죄를 성취하지 않는 것인가?
은혜의 밭[恩田]을 져버리고, 공덕의 밭[德田]을 파괴하였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부모를 살해하는 것은 바로 은혜의 밭을 져버리는 일이다.
어떻게 은혜가 있는 것인가?
몸을 낳아준 근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들을 져버리는 것인가?
말하자면 그들을 [죽임으로써]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공덕의 밭이란, 이를테면 그 밖의 아라한 등을 말하는 것이니, 그들은 온갖 뛰어난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아울러 능히 [다른 이로 하여금 뛰어난 공덕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즉 [아라한을 죽이는 것은] 그 같은 공덕의 소의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부모가 자식이 갓 태어났을 때, 그를 죽이기 위해 승냥이와 이리가 다니는 길 등에 버리거나, 혹은 태(胎) 중에 있을 때 방편을 사용하여 죽이고자 하였으나 정업(定業)의 힘으로 말미암아 자식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은혜가 있기에 그들을 져버릴 경우 역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결정코 [자식으로 인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등의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자식을 죽이려고 마음을 순간적[急]으로 일으켰던 것이지만, 그러나 버리려고 하였을 때에는 필시 그를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였을 것이며, [버린] 자식에 대해 자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은혜를 저버린다면, 이는 하품의 역죄에 저촉되는 것으로, 역죄에도 하ㆍ중ㆍ상품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모두 역죄를 성취한다고 말한 것이다.
혹은 어머니 등은 [자식의] 밭이자 그릇이 되는 존재(즉 자식의 근본)이기 때문에, 설혹 그들에게 은혜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만으로도 필시 마땅히 무간에 지옥 중에 태어나게 될 것으로, 지혜가 총명한 이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법에 대해 그 근원을 요달(了達)하여 이와 같이 ‘다만 마땅히 깊이 믿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86)
부모의 모습이 바뀌었을 때 살해하더라도 역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인가?87)
역시 역죄를 성취하니, 의지(依止)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여인이 갈랄람(羯剌藍, 잉태 후 첫 7일간의 상태)을 낙태하였을 때, 다른 여인이 그것을 수취(收取)하여 자신의 산문(産門, 탯집) 안에 두고 길러 아들을 낳았을 경우, 누구를 죽여야 어머니를 죽이는 역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인가?
[어머니란] 그녀(앞의 여인)의 피[血,즉 난자]로써 [자식을] 낳은 자이니, 식(識)이 거기에 의탁할 때 비로소 증장하기 때문이다.88) 그리고 두 번째 여인은 다만 길러준 어머니와 같을 뿐이다. 비록 지어진[所作, 낳아진] 모든 이라면 다 [뒤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 은혜를] 묻는 것이 도리[缺]라 할지라도, 그녀를 죽일 경우에는 다만 무간죄와 동류의 죄를 성취할 뿐이다. 따라서 오로지 인취로서 결생(結生)하게 한 뛰어난 인연을 해치는 경우에만 어머니를 살해하는 역죄를 성취하며, 오로지 품고 길러준 이를 해친 경우에는 역죄를 성취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부모에 대해 살생의 가행을 일으켰지만 잘못하여 다른 사람을 죽였을 때에는 무간업을 성취하지 않으며, 부모가 아닌 이에 대해 살생의 가행을 일으키고 잘못하여 부모를 죽였을 경우에도 역시 역죄를 성취하지 않는다.89) 그러나 만약 동일한 가행으로 어머니와 그 밖의 다른 이를 죽였을 경우에는 두 가지(무간업과 살생) 무표가 생겨나지만, 이때의 표업은 오로지 역죄일 뿐이니, 무간업의 세력이 [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존자(鳴尊者)는 설하기를,
“이러한 상태에서는 역시 두 가지의 표업이 존재하니, 표업은 바로 극미가 적집하여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90)
지금 그의 뜻을 관찰해 보건대, 표업에는 다수의 극미가 존재하기에 이는 역죄에 포함되기도 하고, 그 밖의 다른 죄에 포섭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아라한에 대해 아라한이라는 생각 없이, 또한 역시 ‘이 사람은 아라한이 아니다’는 결정적인 이해 없이 아라한을 살해하였더라도 거기에는 간택의 차별[簡別]이 없었기 때문에 역죄를 성취하게 된다.91) 그러나 부모의 경우에는 이와 전혀 동일하지 않으니, 쉽게 식별하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부모임을] 식별하지 못한 자가 부모를 살해하였을지라도 은혜의 마음을 저버리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과 일반사람 사이에는 차별될 만한 징표가 없어 [‘이 사람은 아라한이다’라고] 식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아라한이 아니다’라는 사실도 역시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방종한 마음[漫心]으로 살해하였더라도 역시 무간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아버지를 살해하였을 경우, 아버지가 바로 아라한이었을지라도 한 가지의 역죄를 획득하니, 의지(依止)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의 역죄가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성취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두 갈래로써 그의 죄를 꾸짖어 책망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시흠지(始欠持)에게
“그대는 이미 두 가지 역죄를 지었으니, 이른바 아버지를 살해한 것과 아라한을 살해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92)
만약 부처님의 소의신[佛所]에 악심으로써 피가 나게 하였다면, 그 같은 이는 모두 무간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인가?
요컨대 반드시 죽이려는 마음[殺心]으로써 피가 나게 하여야 비로소 역죄가 성취되는 것으로, [다만] 때리려는 마음으로써 피가 나게 하였다면 무간죄는 성취되지 않으니, 결정코 복전(福田)을 파괴하려는 마음은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살생의 가행을 일으키는 단계에서 그는 아직 무학을 성취하지 않았지만, 장차 죽으려고 할 때 바야흐로 아라한과를 획득하였다면, 능히 그를 살해한 자는 역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인가?
역죄를 성취하는 일이 없으니, 무학의 소의신에 대해 살생의 가행을 일으킨 일이 없기 때문이다.
4) 역죄 가행의 불가전(不可轉)에 대하여
만약 무간업을 짓는 가행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염오를 떠나거나 성자의 과위를 획득하는 일은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93)
게송으로 말하겠다.
역죄를 짓는 것이 결정된 가행에 의해서는
염오를 떠나 성자의 과위를 획득하는 일이 없다.
논하여 말하겠다.
만약 무간업의 가행을 필시 결정적으로 성취한 자라면 그 중간에 (다시 말해 무간의 업도를 성취하기 전에) 염오를 떠나 성자의 과위를 획득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악업도의 가행을 성취하였으면서 중간에 만약 성도가 낳아졌다면 근본업도는 일어나지 않으니, 바뀌어 획득된 상속이 결정코 그러한 [악업도의 상속과] 다르기 때문으로, 이미 진리를 통찰한 자는 업도의 죄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종의에서는 대체[總]로 무간업의 가행에 두 가지가 있다고 설하니,
첫째는 [근본업도에] 가까운[近] 가행이며,
둘째는 먼[遠] 가행으로, 이 중의 가까운 가행은 바뀔 수 없지만, 먼 가행은 바뀔 수 있다.
5) 가장 무거운 죄와 가장 큰 과보를 초래하는 업
온갖 악행의 무간업 중에서 어떠한 죄가 가장 무거우며, 온갖 묘행의 세간 선업 중에서 어떠한 업이 가장 큰 과보를 초래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승가를 파괴하는 허광어가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이며
제일유(第一有)를 초래하는 사업(思業)이
세간의 선업 중에서 가장 큰 과보를 낳는다.
논하여 말하겠다.
승가를 파괴하기 위해 허광어를 일으키는 것이 온갖 악행 중에서 가장 큰 죄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가장 큰] 죄를 허광어에 포섭시키는 것인가?
발성된 말이 [본심과는] 다른 생각에 근거하였기 때문으로, 이를테면 그(승가를 파괴하는 자로서, 예컨대 제바달다)는 법에 대해 법이라 생각하며, 비법에 대해 비법이라 생각하며, 대사(大師)에 대해 대사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일체지자(一切智者)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음에도 깊고도 견고한 악한 아세야로 말미암아 이러한 생각을 감추고서 다르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설혹 [본심과는] 다르게 생각하였을지라도 승가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능히 1겁에 걸친 [지옥에서의] 목숨[劫壽]을 초래하는 중죄를 낳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허광어의] 죄를 악행 중에서 가장 큰 죄라고 한 것인가?
이는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손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며, 세간의 생천(生天)과 해탈로의 도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세간의 선업 중 가장 큰 과보를 낳는 것은 제일유(第一有, 비상비비상처를 말함)의 이숙과를 초래하는 사업(思業)이니, 이는 능히 가장 지극히 고요한[極靜]의 이숙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이 설한 것은 이숙과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며, 그것을 다섯 가지 결과(이숙ㆍ등류ㆍ사용ㆍ증상ㆍ이계과) 모두에 근거하여 설할 경우, 바로 금강유정(金剛喩定, 제일유의 번뇌를 끊는 선정)과 상응하는 사업이 가장 큰 과보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이것은 이숙과를 제외한 유위와 무위의 네 가지 결과와 아라한과를 능히 획득하기 때문이다. 비록 온갖 무루인 무간도(無間道)의 사업도 다 이숙과를 제외한 그 밖의 네 가지 결과를 획득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금강유정에 의해 획득된 결과가 가장 수승하다고 할 수 있으니, 모든 결(結,번뇌의 이명)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바로 이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송에서는] 이 같은 [세간과 출세간의 차이를] 간별하기 위해 ‘세간의 선업’이라는 말로 설하게 된 것이다.
6) 무간업과 동류의 업
오로지 무간죄에 의해서만 결정코 지옥에 태어나게 되는 것인가?
무간죄와 동류(同類)인 온갖 업에 의해서도 역시 결정코 그곳에 태어나게 되지만, 결정코 무간[생]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 무간업이 아니기 때문이다.94)
무간죄와 동류인 업은 그 상(相)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어머니인 무학니(尼)를 더럽히는 것과
주정(住定)의 보살과
유학의 성자를 살해하는 것과
승가화합의 인연을 침탈하는 것과
솔도파(窣堵婆)를 파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무간죄와 동류인 업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여기서 ‘동류’라고 하는 말은 바로 서로 유사하다는 뜻이다.
만약 어떤 이가 어머니인 아라한니(尼)에 대해 지극히 더럽고도 욕된 업인 비범행을 저질렀다면, 이를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과 동류의 업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이가 주정(住定)의 보살을 살해하였다면,95) 이를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과 동류의 업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이가 유학의 성자를 살해하였다면, 이를 세 번째의 무간죄(아라한을 살해하는 것)와 동류의 업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이가 승가화합의 인연을 침탈하였다면,96) 이를 승가를 파괴하는 것과 동류의 업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의 솔도파(窣堵婆,stūpa,탑)를 파괴하였다면, 이를 다섯 번째의 무간죄(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는 것)와 동류의 업이라고 한다.
7) 세 시기에 장애가 되는 업
이숙업은 세 시기에 있어서는 지극한 장애가 되기도 한다.
세 시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인(忍)과 불환과와 무학을
획득하려고 할 때의 업은 장애가 된다.
논하여 말하겠다.
만약 정위(頂位)로부터 장차 인위(忍位)을 획득하려고 할 때 악취를 초래하는 업은 모두 지극한 장애가 되니, ‘인’은 그 같은 이숙지(地)를 초월하기 때문으로,97) 마치 어떤 사람이 장차 본래부터 머물던 나라를 떠나고자 할 때 일체의 빚쟁이들이 모두 몰려와 떠나는 것을 지극히 장애하는 것과 같다.
또한 만약 어떤 이가 장차 불환과를 획득하려고 할 때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업은 모두 지극한 장애가 되며, 만약 어떤 이가 장차 무학과를 획득하려고 할 때 색ㆍ무색계의 업은 모두 지극한 장애가 되는데, 이러한 뒤의 두 가지 단계에 대한 비유도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98) 그렇지만 이러한 온갖 업 중에서 순현법수업과, 순부정수업으로서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 업과, 그리고 아울러 이숙정(定)의 업 중에서 다른 곳에서 성숙하지 않는 업은 제외된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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