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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Cataluña) 지방 분리 독립운동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 지방 / 13세기 4대 왕국 / 카탈루냐주 깃발(州旗)
지난달 9월 27일, 스페인의 카탈루냐주 지방 선거가 있었는데 아르투르 마스(Artur Mas) 주지사가 이끄는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지방의회의 과반 의석(53.3%) 차지하여 지금 스페인이 시끌벅적하다.
12월의 총선에서는 기필코 분리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주지사의 호언장담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독립보다는 자치 정부의 자치권 확대 정도를 예상한다고 한다.
카탈루냐(Catalunia)는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스페인 북동부 구석에 있는 3각형 모양의 지방인데 북쪽으로 프랑스와 안도라(Andora), 서쪽으로는 예전 아라곤 왕국, 남쪽으로는 발렌시아,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인접해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옛 아라곤 영토의 일부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공업지역이며 전체면적은 약 3만km²(6%), 인구 720만 명 정도(16%)이고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같이 사용하며 주도(州都)는 바르셀로나(Barcelona)이다.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가 세금의 20% 이상을 납부하면서도 중앙정부로부터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며 분리독립을 주장한다. 심심찮게 불거지는 스페인 지방 주(州)들의 분리독립 주장은 스페인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아야 한다.
15세기, 스페인은 이슬람국인 동남 해안지방의 그라나다(Granada) 왕국, 북부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한 바스크(Basque) 지방의 나바라(Navarra) 왕국, 북동부 지역의 아라곤(Aragon) 왕국, 이베리아 중부의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의 4개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474년,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였던 19세의 이사벨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한 살 아래 사촌 동생인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Fernando) 2세와 정략결혼하고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를 쟁취한 후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바스크 지방의 나바라 왕국까지 합병, 스페인을 통일하여 스페인 통일의 어머니로 추앙받는데 곧 이사벨(Isabel) 1세이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연 이사벨 여왕은 용기와 배짱이 두둑하여 1492년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에게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배를 대어주는 이른바 벤처 투자를 하는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훗날 스페인에 엄청난 부를 안겨준다. 그 이후 스페인이 해양대국, 무적함대를 자랑하게 된 밑거름이 된 것도 이사벨 여왕의 업적이라 할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은 피사로(Francisco Pizarro), 코르테즈(Fernando Cortes) 등을 앞세운 중남미 대륙의 진출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식민지를 차지하게 되어 스페인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긴 했지만 후세에 약(藥)이 되었는지 독(毒)이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스페인이 중남미를 지배한 기간은 약 300년이다. 정복자들이 중남미 인디오들에게 저지른 숱한 만행들은 지금까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고, 유럽 백인들의 핍박에서 벗어나려는 인디오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남미(南美)에 볼리바르(Bolivar),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체 게바라(Che Guevara)와 카스트로(Fidel Castro)등 혁명가들을 낳아 좌파정권들이 들어서는 빌미가 되었다. 또 자본주의 선진국에 종속되어 불이익을 강요당하는 후진국들의 탈 종속(脫從屬)을 부르짖는 해방신학(解放神學)이 싹트게 된다.
이로부터 수 세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의 나라들은 독립을 쟁취하지만, 현재 인디오들은 열등 민족으로 치부되고, 모국어 대신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정권이나 경제력도 백인 아니면 인디오와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들이 잡고 있으니 스페인의 자랑일까, 수치일까??
스페인은 내전(1936~1939) 이후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서 36년 간 군부 독재를 겪었고 그 이후 민주화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이때 카탈루냐 지방은 극심한 탄압을 받는데 이것이 오늘날 독립시위가 끊이지 않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은 카탈루냐 지방뿐만 아니라 북부 피레네(Pyrenees) 산록의 바스크(Basque)지방도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도 스코틀랜드 때문에 골치이고, 중국도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주, 티베트 장족(藏族) 자치주의 분리독립 시위로 지구촌은 조용한 날이 없이 연일 시끄럽다.
집시(Gipsy)와 보헤미안(Bohemian)
정열적인 집시음악과 플라멩코 공연 모습
어떤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고 조상 대대로 방랑생활을 하는 민족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민족이 집시(Gipsy)이다. 집시(Gipsy) 혹은 보헤미안(Bohemian)으로 알려진 부족인데 첫 이미지는 ‘영원한 방랑자’, ‘자유로운 영혼들’, ‘아름답고 격정적인 집시음악’, ‘강렬한 터치의 기타(Guitar) 음악’, ‘강열한 리듬의 플라멩코(Flamenco) 춤’ 등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점쟁이, 도둑질, 매춘(賣春), 불결한 위생,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 굶주림,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민족’.... 우리나라 유럽 관광객들이 출국 전, 귀에 못 박히게 듣는 말이 ‘집시들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인간의 심리는 묘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집시(Gypsy)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는 본능이 있는가 하면, 항상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고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자신을 감추고 싶은 본능도 있다고 하니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Bush Man), 아메리카의 원주민 부족들, 중동의 사막 지역에 유랑하는 베두인(Bedouin)족, 순록(馴鹿/Reindeer)을 따라 끝없이 방랑하는 스칸디나비아 북쪽 라플란드(Lapland)의 사미(Sami)족....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민족은 이들 말고도 많이 꼽을 수 있다.
새들 중에도 철새(候鳥)와 텃새(留鳥)가 있는 것처럼 인간도 본능적(Instinctive)으로 방랑하거나 소속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는 모양이니 신기하다.
집시(Gipsy)족은 코카서스(Caucasus) 인종에 속하는 소수 유랑민족으로, 기원에 대해서는 인도(印度) 북서부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나 확실한 정설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집시의 고향이 인도의 서북부, 혹은 히말라야산맥 부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들의 언어가 명백하지는 않으나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 계(系)의 언어(梵語)와 유사하며 집시어(語)의 격(格)이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한 8개의 격(格)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집시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소아시아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14~5세기에 유럽 각지로 흘러 들어갔는데, 나치(Nazi) 시절에는 ‘집시 박멸정책’이 시행되어 유태인처럼 학살 대상이었고, 이때 50여만 명이 넘는 집시들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집시는 방랑인 기질의 종족이지만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슬픔이 배어 나오는, 정서에 다분히 예술적 기질을 지닌 민족이다. 집시를 부르는 명칭은 여러 가지인데 자기들 스스로는 롬(Rom)이라 부른다고 하며 시리아에서는 돔(Dom), 아르메니아에서는 롬(Lo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처음, 집시를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트인(Egipcyan/이집션)이라 했는데 이 단어가 두음소실(頭音消失)로 ‘E’가 떨어져 나가 집션(‘Gipcyan’), 다시 뒷부분이 변형되어 ‘집시(Gipsy)’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Bohemian), 북유럽과 북부독일에서는 타타르(Tatar)인 또는 사라센(Saracen)인, 남부 독일에서는 찌고이너(Zigeuner),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히따노(Gitano)....
아버지를 모르는 집시 아이들 / 부제스쿠 호화주택 / 집시들의 고향 보헤미아
현재 전 세계 집시 인구는 약 200만으로 추정되는데 유럽에 75만~150만, 근동(近東)에는 6~20만,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10만 내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헤미아(Bohemia)라는 나라는 없어졌지만, 오스트리아, 독일 바이에른과 국경을 접하던 왕국이었는데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에 통합되었고 1993년부터는 체코(Czech)가 다시 슬로바키아(Slovakia)와 분리되면서 지금은 루마니아(Romania) 영토가 되었다.
집시들은 가난과 멸시 속에서 살았지만, 일부 집시들은 그들의 전승수공업인 금속공예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집시의 억만장자들은 자기들의 고향이었던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에서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보헤미아지방 부제스쿠(Buzesku)에 엄청난 호화주택을 짓고 부촌을 이루어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부자 마을로 소문이 났는데 약 800채의 호화건물들로 들어차 있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집시들이지만 그들의 예술만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들의 활동 무대인 술집을 중심으로 서점, 화랑, 살롱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의 규범과 통제를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 활동으로 예술가 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의 공연 중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 중의 하나가 집시의 음악과 무용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이다.
14세기부터 발전한 플라멩코는 집시, 안달루시아인, 아랍인, 유대계 스페인인의 민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19세기에 들어와 집시들이 직업적으로 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되면서 플라멩코가 집시음악과 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보통 기타(Guitar) 음악 토케(Toque)와 즉흥춤 바일레(Baile)을 수반하여 노래 칸테(Cante)로 구성되는데, 심오하고 장중하며 비장감을 동반할 뿐더러 죽음과 번뇌, 종교 등을 주요 테마(Thema)로 하는 것이 정통 플라멩코이다. 중간조의 플라멩코는 덜 심오하나 음악에 동양적 색조가 가미되는 경우가 많고, 경쾌한 플라멩코는 사랑, 시골의 전원생활, 일상의 즐거움 등을 소재로 한다고 한다. 독무로, 혹은 군무로 공연되는 이 플라멩코에서 남성들은 발끝과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는 등 복잡하게 펼쳐지고 여성들은 발놀림보다는 손과 전신의 아름다움, 열정의 표현에 치중한다.
공연을 보노라면 복잡한 리듬의 손뼉 치기, 손가락 튕기기(Finger Flick), 추임새가 수반되기도 하며, 종종 캐스터네츠도 등장한다. 이 플라멩코 공연은 유네스코에서 세계 인류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데 보헤미아(Bohemia)지방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집시와 관련된 음악들을 간추려보면,
헝가리(Hungary) 작곡가 리스트(Liszt)의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 스페인(Spain) 작곡가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의 바이올린 독주곡 ‘찌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 독일(獨逸) 브람스(Brahms)의 ‘헝가리 무곡(Hungarian Dance)’, 체코(Czech) 드보르작(Dvořák)의 ‘슬라브 무곡(Slavonic Dances)’, 이탈리아(Italy) 푸치니(Puccini)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
1975년 영국 출신 록 밴드 퀸(Rock Band Queen)이 발표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도 있고, 불꽃 같은 정열의 여인 카르멘의 사랑을 다룬 오페라 카르멘(Carmen)은 프랑스 작곡가 비제(Bizet)가 남긴 불후의 명작으로 주인공이 집시 여인 카르멘이다. 보엠(Boheme)은 프랑스어로 ‘보헤미아인’ 즉, 집시처럼 방탕한 습관, 방랑자, 불량배 등 사람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던 말이라고 한다.
<정통 플라멩코(Flamenco) 공연 관람>
세비야(Sevilla)에서 직접 관람한 정통 플라멩코
나는 2019년 9월, 스페인 배낭여행 중 들른 곳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중심도시인 세비야(Sevilla)였는데 이곳은 여러 가지 볼거리와 역사적인 명소들이 많지만, 집시 예술의 총화(總和)라 할 수 있는 플라멩코(Flamenco)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시내 관광명소들을 둘러본 후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주인에게 정통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을 물어보았더니 가까운 곳에 공연장이 있다며 약도를 그려주는데 ‘Casa de la Memoria(추억의 집)’으로, 저녁 7시 30분 공연이란다. 길을 물어가며 골목길을 헤매다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시계를 보니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공연은 조그만 무대 앞에 3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관람석이 있는 조촐한 공연장인데 이미 발 들여 놓을 틈조차 없이 관객들이 들이차 있다. 가까스로 가운데쯤에 빈 좌석이 보여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완전히 플라멩코의 춤과 음악에 빠져들고 말았다. 공연하는 예술인은 딱 4명으로 처음에는 무대와 출연자 인원을 보고 조금 실망도 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완전히 최정상급 기능보유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Guitar) 연주 토케(Toque)와 노래 칸테(Cante)가 각 1명, 무용 바일레(Baile)가 남녀 각 1명으로 모두 네 명뿐인데도 완전히 청중을 압도한다. 플라멩코는 이 3개 요소(Toque, Cante, Baile)로 구성된다.
화려한 의상도 아니고, 과도한 몸짓도 아닌, 절제된 동작과 춤, 노래, 화려한 기타 연주가 완벽한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 공연하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가슴을 쥐어뜯는, 피를 토하는 듯 비장한 어조의 노래, 온몸이 부서질 듯 강렬하면서도 절제된 동작의 몸짓, 현란한 발 구르기와 손가락 튕기기(Finger Flicks), 캐스터네츠, 그리고 리드미컬한 박수, 거기에 신들린 듯 얹어지는 현란한 기타 선율과의 완벽한 조화는 청중의 숨을 멎게 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멈출 줄 모른다.
공연 중에는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이고 공연이 끝난 후 잠시 사진 촬영이 허락된다. 나는 몇 번 스페인 길거리에서 녹음에 맞추어 플라멩코(Baile)를 추는 소녀들을 보았는데 전연 차원이 다르다.
그네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어설픈 흉내만 내고 있었다는....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 바로 옆의 자그마한 방은 플라멩코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주로 포스터와 무대 의상들이다.
식당 주인의 소개로 정통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고 나의 오랜 숙원(宿願)을 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