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백광현 뒷이야기 53 - 주황 (패혈증)을 막아라, 외과술 후의 처치법 (1탄)
칼처럼 생긴 침으로 환부를 절개하고 난 후
과연 그 부위를 어떻게 후처치를 할 것인가?
이것은 조선시대 외과술을 행하는 모든 의원들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냥 째고 가만히 두면 당연히 안 되지 않겠는가?
주황(走黃)이라고 부르는 패혈증 증세가 나타나면 안 되지 않는가?
<치종지남>에는 절개 후에 어떤 처치를 하면
주황이건 파상풍이건 간에 생기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 방송에서 등장한 장면들 위주로 하나씩 정리해보자.
1. 농도를 맞춘 염탕수
치종지남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소독수는 바로 염탕수이다.
소독을 위해 사용하는 소독수의 종류는 정말 무지하게 많다.
그 무지하게 많은 소독수 중에서 임언국은 염탕수를 선택했다.
지금의 식염수와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된다.
아마도 그는 여러 가지 소독수를 사용해 보지 않았을까?
워낙 의서에 적힌 종류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러 소독수 중에서 가장 소독의 효과가 뛰어나고
침술 후에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바로 염탕수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염탕수의 농도가 중요하다.
치종지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염분이 많으면 아프고, 묽으면 효과가 없다."
염도가 너무 진해도 안 되고 묽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딱 어느 농도에 맞춘 염탕수라야 제대로 소독의 효과를 걷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농도는 물 2바리에 소금 1홉이라고 한다.
동이로 한다면 물 1동이에 소금 2되라고 한다.
이게 지금의 단위로 어느 정도인지는 귀찮아서 못 찾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고 알려 주시길...
2. 반드시 끓여서 만든 염탕수라야
염탕수를 만들 때에도 그냥 물에다가 소금만 탄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에 소금을 탄 후 반드시 끓여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온도로 식힌 후에 사용한다.
혹시라도 모르니 철저한 멸균을 미리 해두는 셈이다.
3. 염탕침인법(鹽湯沈引法)
염탕(鹽湯), 즉 소금물에 환부를 담궈서(沈) 독기를 끌어내는(引) 방법이
바로 염탕침인법이란 것이다.
먼저 제대로 된 염탕을 준비한다.
그리고 통을 준비하여 여기에 염탕을 붓고 환부를 담근다.
팔이건 다리이건 간에 환부를 염탕 속에 담그는 것이다.
얼굴과 같은 부위에 종기가 났다면 머리를 통 속에 담글 수는 없으므로
이 때에는 대야를 밑에 준비한 후 얼굴에 염탕을 계속 부어준다.
오늘 방송에서 세자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4. 염탕에 담그는 횟수
횟수도 중요하다.
염탕침인법을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횟수를 다르게 하기는 하지만
보통 낮에 3차례, 밤에 1차례 실시한다고 한다.
5. 약재 목욕법
소염, 소독, 살균의 효과가 있는 약재를 우려낸 목욕수로 목욕하는 방법이다.
소금, 사매, 창이자, 상회 등의 약재를 넣고 끓여낸 목욕수로
목욕하는 방법니다.
이 목욕수의 이름이 사매탕이다.
6. 환부에 삽입하는 외용제
여기까지 환부를 소독했다.
이제 환부에 독기를 소멸시키고 새살이 돋도록 해주는 외용제를 삽입할 차례이다.
종기에 삽입하는 외용제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먼저 우리가 한의원에 가면 받아오는 동글동글한 알약을 떠올려보자.
이 동그란 알약을 환약(丸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종기의 근을 빼낸 후 환부에 삽입하는 외용제는
위의 환약보다는 크기가 작다.
좁쌀만한 크기로 알약을 빚는데 이걸 전문용어로 정자(錠子)라고 부른다.
그 정자가 아니다. 한자가 다르다. 오해 마시길...
또 얇고 길죽하게 못처럼 생긴 외용제를 만들기도 한다.
이걸 전문용어로 조(條)라고 부른다.
그럼 이걸 환부에 삽입한 형태는 이렇게 될 것이다.
침으로 종기의 근을 도려낸 후
정자(錠子) 삽입
조(條) 삽입
가만히 보면 지금 주사기로 항생제나 소염제 주사액을 주입하는 것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약재로 이런 외용제를 만들어야 가장 효과가 좋겠느냐 이다.
이것 또한 의서에 정~말 종류가 많다.
정말 많은데 치종지남에서는 황광육과 백급을 선택했다.
사용해 본 여러 외용제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책에도 그렇게 적어놓았겠지?
오늘은 6번까지만 적어야겠다.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6번 내용까지만 진도를 나갔으니깐.
그 다음 항목을 적으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이다.
한 가지만 더...
위의 내용을 보고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 거 없네! 저게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별 것도 없구만!"
그래...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시라.
조선시대 의학의 발전 정도를 지금 21세기와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독의 기술이야 당연히 지금이 더 발달되어 있다.
항생의 기술이야 당연히 지금이 더 발달되어 있다.
너무 발달되어서 보통의 세균이 슈퍼 세균으로 진화할 정도라고 한다.
외과수술의 기술도도 당연히 지금이 훨씬 더 발달되어 있다.
조선시대 의학을 평가할 때에 21세기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동시대 한중일의 의학과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
동시대 한중일의 의학과 비교했을 때에 과연 어떠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치종지남의 외과술과 외과술 후 처치는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치종지남의 내용을 살펴본 일본사람이 했던 말이다!
임언국을 16세기 유럽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의사 파레와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작 조선에서는 책을 빼앗긴 후 치종지남이라는 책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잊혀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남의 나라 책을 뺏어온 일본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본 사람마다
감탄해 마지 않았다.
왜? 동시대 한중일의 어느 의서에도 없던 독창적인 외과술이 담겨져 있었으니까!
임진왜란 때에 뺏어온 치종지남을 조선 참본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의 와세다대학에 보관되어 있다.
이 조선 참본을 베낀 필사본이 일본 교토대학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이 책을 필사해 갔다.
그래서 지금 중국 어디에 중국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정확히 어딘지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논문을 펼쳐봐야 함.)
그 중국 필사본 역시 와세다대학의 조선 참본을 필사한 것이라 한다.
지금처럼 페니실린도 없고 스테로이드제도 없던 그 시절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꼭 외과술이 필요했던 환자의 환부를
칼로 자르고 째고 절개하고 도려낸 후
어떻게 하면 패혈증이 오지 않고 어떻게 하면 파상풍이 오지 않게 할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임언국이 찾아낸
그 방법이 바로 치종지남에 적혀 있다는 것이다.
종기와의 사투, 패혈증과의 사투, 파상풍과의 사투 끝에
찾아낸 그 답안이 이 책에 적혀 있는 것이다.
전라도 정읍의 시골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이름을 날리게 되어
마침내는 나라에서 모셔가게 되었던 그 임언국이라는 의사의 비법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임언국을, 그리고 백광현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이다.
세계에 내놓고 자랑해도 되는 우리의 선조들이라고 말이다.
드라마에서 치종지남의 내용을 어디까지 보여줄 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지만
암튼 드라마 진도에 맞춰서 글을 써보겠다.
오늘 광현이가 자신과 세자의 종기 부위에 했던 소독법들은
패혈증을 예방하는 그 처치에 조금씩 근접해가는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뒷이야기의 뒷이야기 1>
실존인물 백광현이 실제로 사용했던 소염항생 목적의 약이 또 있다.
그게 드라마에 나올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것도 내용 봐서 나중에 올리던지 하겠다.
지금 당장 궁금하다면 《백광현뎐》의 부록을 참고하시길...
뒷이야기의 뒷이야기 2>
지난 주에 <마의> 싸인 포스터를 받았다.
난 그냥 포스터만 기대했는데 싸인 포스터가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조승우, 이요원, 유선, 김소은, 한상진, 손창민, 이상우 씨가
직접 내 이름을 포스터에 적고 친필 싸인을 해준 것이다. 우와~ 신난다.
배우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액자에 담아서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게요.
그리고... 조배우가 포스터에 내 이름을 적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OOO 님, 건강하세요."
네, 승우씨! 승우씨가 건강하라고 했으니 저 꼭 건강할게요!!!
♥.♥
◡
(54번째 이야기 곧 이어짐)
드라마 <마의> 주인공 백광현은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의 행적을 찾아 조선의 기록을 다 뒤졌다.
그의 놀라왔던 의술과 환자를 사랑했던 마음과
임금에 대한 충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도저히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기에 글을 썼다.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