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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교사의 보람과 상급(賞給)(디모데전서 4:11-16)
첫째. 여러분!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체의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육적인 삶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육체가 편하고 좋을 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반면에, 육체도 중요하나 영혼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은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먹고 싶어도 거절하고, 자고 싶어도 자지 않고, 깨어 있습니다. 가기 싫어도 가고, 하기 싫어도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영성(靈性)이란, 이렇게 영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영적인 삶의 능력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만지는 것이 물질이고, 상대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이 크다는 말은, 영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크다는 뜻입니다. 영성이 깊다는 말은, 영적으로 살아가는 끈기와 지구력이 깊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축복할 힘이 있고, 환란, 시험, 죄 많은 세상에서 영적으로 살아가는 힘, 영성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미나는, 이런 교회학교 교사가 되자는 세미나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영성이 깊은 삶이 무엇입니까?
1. 창조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 지혜, 능력,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죄가 없고, 질병, 슬픔, 불행, 이별, 미움, 가난, 실패, 저주, 죽음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갈망하며 푯대삼고 살아가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기독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되, 유행 따라, 감정 따라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1982년 4월, 평소 술버릇이 좋지 않은, 경남 의령경찰서 소속 우범곤 순경이, 술에 취해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부인이, 우순경 배 위에 붙어있는 파리를 잡는다고, 파리채를 내리 쳤습니다. 잠에서 깬 우순경이, 왜 파리채로 쳤느냐고, 파리 한 마리 때문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당신 성질머리가 그 모양이니, 동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마디 하자, 성질이 치밀어 오른 우순경이, 의령경찰서 무기고로 달려가 칼빈 소총 2점, 실탄 180여발, 수류탄 8발을 꺼내, 궁유면 주민 무려 56명을 죽였습니다. 34명을 부상 입히고, 자신도 자폭해서 죽었습니다. 이 일로 당시 서정화 내무부장관, 의령경찰서장 등 3명의 경찰관, 방위병 3명이 구속되었습니다. 파리 한 마리 잡으려다가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습니까? 감정 따라 살면 이렇습니다.
3. 성령론적으로, 성령의 능력과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한순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예수님을 믿는 것,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예수님 믿는 것을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일생동안 영적으로 살아가려면, 성령의 역사를 환영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1) 성품, 성질머리와 신앙이 변화되는 삶입니다.
변화에는 관심이 없고 목적 달성 소원 성취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는 육적인 사람입니다. 얼굴 표정이 항상 밝고 환해야 합니다. 항상 긴장하고 심각하고 어둡고 오만가지 인상을 팍팍 쓰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언제보아도 씽긋뻥긋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목소리도, 언어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걸어도 앞만 바라보고 똑바로 걸어가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습관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2) 복음의 증인, 부할 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입니다.
태신자를 작정하고, 개인전도 노방전도 잘해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전도 잘하는 삶입니다. 가르치기도 잘해야 합니다. 섬김이 사명도, 양육도 잘 시키는 삶입니다.
(3)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견인하는 삶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순간까지, 참고 견디면서 믿음 지켜야 합니다. 의로워야 합니다. 어떤 박해도, 고난도, 시험도, 환난도, 잘 감수하고, 돈과 권력, 명예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이렇게 영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교사는, 이렇게 영성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여러분! 교회학교(敎會學校) 교사(敎師)란 어떤 사람입니까?
1. 교육, 영어로 Education이 무엇입니까? 교육이란, 밖에서 안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in filling) 뭘 채워주는 것입니까? 교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 기술, 경험, 믿음,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채워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렇다면 교회학교 교사는, 믿음 하나 똑 부러지게 학생들에게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일, 학생들에게 채워줘야 할 교사의 믿음이, 흔들리고 오락가락 한다면 학생들에게 뭘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영성 세미나에 참 잘 오셨습니다. 이런 세미나를 행여나 귀찮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면서 수강하시기 바랍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입니다. “배우는데 염증을 느끼지 말고, 가르치는데 권태를 느끼지 말라.”
2. 교육, Education이란,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이끌어 내주는 것입니다.(drawing out) 그렇다면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의 은사, 지능, 가능성, 학습 능력, 판단력, 지구력을 개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을 가까이 하고, 좋아하고, 학생을 알아야 합니다. 인격은 고정체가 아니라 변동체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들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고 담임 선생님한테 불려와 사정사정하는 아버지를 보고, 이쯤해서 학교를 그만 두려고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일 날, 교회학교 교사와 의논을 했습니다. 그때, 교회학교 교사가 일러준 대로, 기왕이면 장학생으로 다니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1등하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3년간 1등, 대학교 4년간 1등, 신학대학원 3년간 1등, 대학원까지 내내 1등하여 장학생으로 마쳤습니다. 강문호 목사님 간증입니다. 강문호 학생에게는 이렇게 엄청난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능성을 개발해 이끌어 주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3. 교육(敎育. 가르칠교, 기를육)이란, 한문으로 가르쳐서 길러내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렇다면 교회학교 교사는, 뭘 가르쳐야 합니까? 성경을 가르쳐서 합니다. 어떤 인물을 길러내야 합니까? 교회 일꾼, 복음의 인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믿음의 인물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디모데전서 4:13-16)
셋째. 그렇다면, 이렇게 수고하는 교회학교 교사가 받는 보람과 상급(賞給)은 무엇입니까?
1. 학생(學生)을 가르치는 자체가, 보람과 상급입니다.
‘나는 장차 뭐가 돼야 할까?’ 하고 고민하던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아파서 아버지를 따라 병원엘 갔습니다. 가운을 입고 간호사 도움을 받으면서, 그 아버지 병을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차 의사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후였습니다. 그 아버지와 함께 법원에 갔는데, 판결하는 판사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판사가 더 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날이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나왔습니다. 은혜스럽게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장차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월요일입니다. 신문을 펴보았더니, 달나라에 다녀왔다는 과학자들의 기사를 읽고 나니, 갑자기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이 고등학생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장차 뭐가 되면 좋겠습니까?” 그때 응답이 왔습니다. “기왕이면 다 되어 보아라.” “하나님! 몸이 하나인데, 한 몸으로 어떻게 다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 다 되어보고 싶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라. 그러면, 네가 가르치는 학생가운데 장차 의사, 판사, 목사, 과학자가 나올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가르치는 학생가운데 의사가 나오면, 네가 의사되는 것 같은 것이고, 목사가 나오면 목사 되는 것 같지 않겠느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가르치는 학생가운데, 반드시 이런 인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가르치는 교사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고, 상급입니다. 학생들은 가르치는 만큼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 40일 새벽 작정기도회를 개최한 개척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40일 새벽 작정기도회를 시작한 지 20일 쯤 됐을 때, 교회 옆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40일 새벽 작정기도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잠이 모자라 수업시간마다 꾸벅꾸벅 졸고 있다고, 선생님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목사님!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새벽기도회를 중지해 주십시오.” 그런 일이 있던 어느 날 새벽입니다. 5학년의 한 학생이 새벽기도회 마치고, 남아서 기도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침 7시였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다오.’ 하고 집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뛰어 오던 길에, 길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이 5학년생 좀 보세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엘 갔습니다.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래요. 10분만 늦었어도 할머니는 길바닥에서 돌아 가셨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 할머니가 회복된 후에, 그 할머니 자녀들이 이 5학년생을 찾아 왔습니다. “너무 고맙다. 너무 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은데, 자전거가 필요하니? 스마트 폰, 컴퓨터가 필요하니? 필요한 것 뭐든지 사줄게.” 그때 5학년생이 대답했습니다. “뭐든지 사 주실 거예요? 나한테 자전거, 스마트 폰, 컴퓨터, 다 있어요. 우리는 교회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 하나 지어 주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 자녀들이, 전세 들어 있는 그 개척교회에, 아담한 교회를 지어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5학년 학생을 교회학교에서 길러낸 것입니다. 그 학생을 가르친 교사는, 얼마나 가르친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꼈겠습니까?
이것이 교회학교 교사의 보람이요, 교사가 받을 상급입니다.
2. 교사 자신의 신앙(信仰)이, 성장(盛裝)하고 성숙(成熟)해지는, 보람과 상급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사 자신의 인격과 신앙이 성장해가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교수형으로 사형 당할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집행관이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예, 두 가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고향에 계신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잘 죽었노라’고 전해 주십시오. 두 번째는, 이 시간 갑자기 생각이 나는 분이 있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회에서 가르쳐 주신, 교회학교 교사가 있는데, ‘마지막에 내가 예수님 잘 믿고 죽었다.’고 전해 주십시오.” 집행관에게 이 연락을 받은 교사는, 마음이 뛰고 설렜습니다. ‘아동부 예배시간마다, 그런 말썽꾸러기가 없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 예수님 잘 믿고 죽었다니!’ 그 교사는, 곧바로 교회로 달려가 담임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교회학교 교사를 수년간 계속해 왔으나, 보람도 못 느끼고, 부흥도 안돼서, 지난 주일 아동부 교사 그만 두겠다고 했는데 그 사표를 취소하겠습니다. 내가 가르쳤던 아무개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 잘 믿고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아동부 교사를 계속하겠습니다.”
이것이 교회학교 교사의 보람이요, 교사가 받을 상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예수님의 제자(弟子)를 길러내는, 보람과 상급입니다.
엘리야 뒤에는 엘리사가 있었고, 예수님 뒤에는 베드로가 있었으며, 바울 뒤에는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제자가 나왔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판사보다 낫다. 그 이유는, 판사는 이미 죄를 지은 사람에게 판결할 뿐이지만, 교회학교 교사는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교육시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희대학교 유전공학과를 졸업하고, 500:1의 경쟁을 뚫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제일약품에 취업한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제일약품에 1년을 다니다보니, 평생 직장이 아니다 싶어 사표를 냈습니다. 그리고 분당에 있는, 당시 토마토상호신용저축은행에 도전했습니다. 30명 뽑는데, 8만 5천명이 지원했습니다. 2천 8백대 1의 경쟁률이었습니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차 면접시험 때입니다. 이 여자 청년은, 회사에서 시킨 일도 없었는데, “내가 왜 이 저축은행에 필요한지, 그 이유 100가지”를 A4 용지에 기록하여, 면접 담당관에게 제출했습니다. 이 여자 청년은, 면접 1등으로, 2천 8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취업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자 여자 청년은, 과천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에서 모범생, 우등생이었습니다. 중등부에서도, 고등부에 올라와 고 3때, 그렇게 진학에 여염이 없을 때도, 고등부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얼마나 장한 딸입니까? 교회학교에서 길러낸 딸입니다. 할렐루야! 이 학생을 가르친 교회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큰 보람을 느꼈겠습니까?
미국의 니띡스 목사님은 간증했습니다. 청년 시절에, 9년 동안 교회학교 교사를 했는데, 9년 동안 단 네 명의 학생밖에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니띡스가 목사님이 된 어느 해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축하카드 네 장이 도착했습니다. 한 장은 대법원 판사에게서, 한 장은 어느 회사 사장에게서, 한 장은 미국 부통령에게서, 한 장은 워싱턴중앙교회 담임 목사님에게서 왔습니다. 이 네 사람이 9년 동안 유일하게 가르쳤던 아동부 학생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학교 교사의 보람이요, 교사가 받을 상급입니다. 이런 은혜, 이런 간증이 오늘 영성 세미나에 참석한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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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부끄러운 모습들도 많았었는데 하나님의 일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늦지만 반드시 열매를 맺을 거라는 확신에 안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