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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대상 4: 9-10> 김흥규 목사
미국 애틀랜타의 복음주의자인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 목사가 쓴 야베스의 기도: 축복받은 삶으로 나아가기(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가 출판된 지 3개월 만에 410만부 이상이 팔려서 USA 투데이,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습니다. 윌킨슨 박사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한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께 축복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축복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축복을 간구할 경우 미신적이고 샤머니즘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비판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본래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시는 데 있으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구하지 못해서 큰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장 근처 서점에 달려가 이 책을 사서 조심스럽게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저는 야베스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또 윌킨슨의 주장대로 우리의 정욕이나 죄와 관련되지 않은 축복에 대한 간구는 성경적이며 좋은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윌킨슨은 실제로 달라스에서 신학대학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야베스의 기도'--즉,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하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기도--에 대하여 배운 뒤 이 기도를 30년 동안 매일 드려온 결과 자신이 창립한 'Walk Thru the Bible Ministries'가 전세계 40개국으로 팽창한 것이 이 기도의 효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윌킨슨의 책은 거의가 개인적인 간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우화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존스(Jones)라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천국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는데 한 이상하게 생긴 건물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거대한 창고(warehouse) 같은 곳이 있는데 이 건물은 창문은 하나도 없고 오직 문 하나만 달랑 있었습니다.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지나가자고 하였습니다. 보게 되면 크게 후회하게 될 테니 그냥 지나가자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간청을 해서 존스는 겨우 이 창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창고 안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는데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이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자들은 모두 앞에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존스는 자기 이름이 쓰여진 상자를 열심히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할 수 있으면 존스가 자기 상자를 열어보지 않기를 바랬지만 존스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를 즉시 찾아 열게 되었습니다. 존스가 이 하얀 상자를 여는 동안 베드로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불쌍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존스가 열어 본 상자 안에는 그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했던 수없이 많은 복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존스는 한번도 그 복을 구한 적이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윌킨슨은 이 예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태 7: 7)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위에 사는 동안 마땅히 누려야할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야베스는 누구이며 그가 올린 기도는 어떤 내용의 기도였습니까? 먼저 야베스는 성경에서 가장 지루한 책으로 유명한 역대기 상에 등장합니다. 특히 역대상 1-9장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말로 연결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보로서 아담에서 이스라엘 12지파까지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에는 오백명 이상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야베스는 다윗왕의 혈통인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별로 뼈대있는 집안이 아니었던지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하고 4장에 비로소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9절 후반의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고 한 구절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게 하다" 혹은 "슬프게 하다"의 뜻을 가지는데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컨대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빼앗는 자'(grabber)인데 이름 그대로 그는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나오미가 그 두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말론은 '병약한'(puny)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룐은 '수척해지다'(pining)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 이름대로 두 사람 모두 젊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룻기 1: 1-5 참조). 또한 솔로몬의 뜻은 '평화'(peace)인데 그는 이름처럼 전쟁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첫 번째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의 뜻이 한 사람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야베스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는 사실에서 유복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베스'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혹 난산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그 자신이 불구자로 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야베스가 태어남으로서 어떻게 먹여 살릴까 경제적인 문제로 근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적어도 그의 이름 뜻으로 보면 어머니로 하여금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태어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슬픈 출생과 과거를 지닌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케 되었다고 합니다. 야베스가 불행과 슬픔의 과거를 딛고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의 담대한 기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렸기에 그가 축복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첫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여서 기왕이면 더 잘살고 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살고 성공하고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잠언 10: 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축복을 어떻게 누리며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정욕만 위하여 축복을 구한다면 그런 축복은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은 우리가 반드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자기가 어떤 축복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받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채 그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해야 하는 자기의 책임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 7: 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은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채워주시길 원하시는 분인 까닭에 열심히 구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더욱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살던 시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 골고루 땅의 지분을 나누어 주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땅 한 조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건 전쟁을 수없이 치러야 했으며 땅을 넓힌다는 것은 무한히 생육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이기적인 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을 달라고 하는 비전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윌킨슨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할 때 흔히 다음과 같은 인간적인 계산방식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즉 "내 능력 + 내 경험 + 내 인격과 외모 + 내 과거 + 다른 사람들의 기대 = 나에게 할당된 지경"이라는 계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윌킨슨은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계산 방식을 말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약점 + 하나님의 의지와 초자연적 능력 = 나의 지경을 넓혀나감." 우리의 부족함과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간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순전히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과 물자와 지혜를 허락하셔서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달라고 간구한 뒤 그 목적을 향하여 열심히 나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이 하나 둘 출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한 축복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기적적인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한 뒤 어려운 장애물들을 잘 통과한 뒤에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능력을 상징합니다(여호수아 4: 24과 이사야 59: 1 참조). 또한 사도행전 11: 21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함으로서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나가는데 있어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환난과 시련이 때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수없이 많은 근심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우리의 지경이 크게 넓어져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실수해서 죄악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실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뒤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저버림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축복이 근심 없는 축복,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축복이 되어야지 추한 이기심으로 일그러진 축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을 경우 빼앗아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윌킨슨은 야베스가 드렸던 이 기도 부분을 다음과 같은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윌킨슨이 몇 년 전에 아주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을 때였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강연의 강행군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찾아 왔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야베스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주님, 이제 제가 죄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봉사하느라고 저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저는 유혹과 싸울 힘이 없답니다. 오늘 죄악으로부터 저를 멀리 있게 하옵소서." 기도를 드린 후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에 탑승해서 좌석 중간에 앉게 되었는데 왼쪽에 앉은 남자가 가방에서 포르노 잡지를 꺼내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윌킨슨은 신분이 목사였기 때문에 한숨을 짓고 고개를 얼른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오른쪽에 앉아 있는 청년이 가방을 주섬주섬 열더니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나체 사진들이 들어 있는 도색잡지를 또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오른쪽도 볼 수 없고 왼쪽으로도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제발 악을 저에게서 멀리 치워 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드린 후 갑자기 오른쪽에 앉아있던 청년이 도색잡지를 접어서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왼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 청년이 하는 짓을 보더니만 자기도 역시 포르노 잡지를 치웠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 일어나서 비행기 상공에서 윌킨슨은 큰 소리로 걷잡을 수 없이 웃어댔습니다. 옆에 있던 두 사나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웃어댑니까 하고 묻자 윌킨슨은 "신사 양반들, 내가 대답을 해도 당신들은 이 일을 믿지 않을 걸세!"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환난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우리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아름답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사람이 되어서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셔서 여러분의 지경이 넓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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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드려야 할 기도,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9-10)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가 하루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무슨 책을 읽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대답하기를 ‘이 책은 너무 나열식이고, 읽기에 지루하고, 구성도 엉망이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책인가 확인을 해 보니 전화번호부 책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신 분은 한번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펴면 마태복음 1장에 계속 되는 예수님의 족보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성경을 읽으려고 구약을 보니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약을 펼쳤어요. 마태복음 1장을 읽는데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그래서 "아, 성경은 산부인과 책이구나!" 더 이상 읽지 못 했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역대상을 읽어보시면 1장부터 9장까지 계속 족보가 나옵니다. 500명이 넘는 생소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성경 본문은 읽어도 별로 은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지루해서 건너뜁니다.
그런데 유다지파의 6대손으로 46명의 이름이 계속되다가 중간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이 등장 합니다. 나열식으로 이름을 죽 부르시다가 갑자기 ‘아 야베스,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그에 대해서 유일하게 설명을 하십니다. 야베스 라는 인물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도 1980년도에 어느 선교사님의 설교를 듣고 야베스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외국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저 분은 특이한 설교를 하시는구나. 야베스 같은 사람도 있었네. 야베스는 참 훌륭한 기도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야베스의 기도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부르스 윌킨스 (Bruce Wilkinson) 목사님이 지은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라는 책이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발행되자마자 500만부 이상 팔렸습니다. 기독교 서적이 일반서적을 제치고 판매부수 1위를 기록한 놀라운 책입니다. 요즘 긍정의 힘처럼 많이 읽힌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사람 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그 결과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저자인 윌킨스 목사님은 30년이 넘도록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과 가정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 발행하는 열 가지 잡지가 무려 1억 부의 출판 부수를 돌파 했습니다.
1998년 1월에 시작한 ""World Teach""라는 사역은 15년 계획으로 한 사람당 5만 명을 맡아 성경을 가르칠 교사 12만 명을 양육하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 사역이 계획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한권의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책에는 이런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입니다.
오늘 야베스가 드린 기도 가운데 우리 인생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야베스'는 사람 이름입니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딱 한번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야베스라는 낯선 이름이 이토록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까요? 본문 9절을 보면 야베스는 태어날 때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야베스의 뜻은 '고통'‘수고’입니다. 이름치고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Mr. Pain’이라 불렀습니다. 아마 오늘날 같으면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을 것입니다. ‘야 고통아,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이름입니까?
그런데 야베스는 현실의 고통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야베스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는 짧은 한 문장의 기도를 드렸지만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은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로 불려집니다. 그는 기도함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자가 되었습니다.
야베스가 기도함으로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면 오늘 우리도 야베스의 기도를 드릴 때 운명이 바뀌는 역사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 새해에 우리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들을 간증하는 역사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야베스가 드린 기도는 4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말에는 '좋다 - 더 좋다 - 정말 좋다'(끝내준다?)로 표현합니다. 영어도 'Good - Better - Best' 이런 식으로 비교급과 최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그런 표현이 없기 때문에 단어를 반복해서 최상급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복에 복을 더하사' 이것은 ‘하나님 나에게 최상의 복을 주십시오’입니다. 하늘의 보고를 여시고 최고의 복을 나에게 충만 충만하게 채워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는 그의 평생에 걸쳐 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들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구하는 복이 정말 올바른 기도냐 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안에 기복주의 신앙이 팽배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번영 신학’‘성공 신학’에 익숙한 한국교회에 야베스의 기도가 오히려 기복주의적인 면을 강화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에 보면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속에도 얼마든지 풍성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축복만 주장하는 것도 바른 것은 아닙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교회 내에 ‘복’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복'이라는 개념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존재해 있었습니다. 샤머니즘에도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복 받기 위해 지성을 드렸습니다. 집을 짓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를 놓고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샤머니즘에서 비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은 근본이 다릅니다. 샤머니즘적인 복의 핵심은 ‘자기 소원 성취’입니다. 그것은 인위적이요 인간적이요 이기적인 복입니다. 복의 주체가 '나'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극정성을 드려서 신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으로 만족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복은 내가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믿습니까?
애 3: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그런데 문제는 축복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조급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조급함 때문에 축복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보고를 여시고 항상 주의 자녀들에게 복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항상 무언가를 주기를 원합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부족할수록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고, 더 선한 것으로 복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합니다. 만약 자녀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구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린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강이 필요한 분은 건강의 복을 구하십시오. 재물이 부족하신 분은 재물의 복을 구하십시오. 직장을 구하는 분은 좋은 직장을 구하십시오. 사업이 힘드신 분은 사업의 형통을 구하십시오. 내 삶에 있는 모든 고통과 수고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십시오. 갑절의 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복주셨을 때 교만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해주십시오. 설령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내하게 하시고, 더 선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이 기도는 내 삶의 영향력을 확대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지경'이란 땅의 경계입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깊은 뜻은 “나의 삶이 하나님을 위하여 더 많이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 받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더 많은 부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게 해 달라는 귀한 기도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사업을 키워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일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목사님들이 기도를 가르칠 때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하셨는데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망설여지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 말씀은 땅의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해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이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직장 생활 하시는 분은 승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사업하시는 분들은 더욱 창대케 해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에게 진학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주어진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최선의 경주를 하십시오.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합니다. 잠깐 왔다가 한번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기왕에 예수 믿었으면, 여러분의 영향력을 높이높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러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시고,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십시오!
이 기도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과 지경을 내 힘으로, 내 경험으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도우셔서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왜 이 기도가 필요합니까?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복을 받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종종 실패하거나 추락하는 모습을 봅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됐습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다 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 교만이 싹틉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어느 날 그 확장된 사업, 그 높아진 지위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손을 구하셔야 합니다. “주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권능의 손입니다.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 손은 높으시니이다”(시 89:13).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21).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고 하십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옵니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실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 노라 팰릭스라는 교회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관원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산 속에로 들어가 어느 굴속에 숨었습니다. 관원들은 그를 뒤 좇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굴속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을 받아주옵소서.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굴 앞에 당도한 수색대원들이 왔다 갔다만 하고 굴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그들이 다 철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가 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거미 몇 마리가 쏜살같이 그 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입니다. 수색대원들은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이 굴속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돌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이 철문보다 강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주여, 저를 도우소서! 새해에도 나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주님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오니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해야 드려야 할 기도인 줄로 믿습니다.
넷째로, 하나님,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것은 삶의 성숙을 위한 기도입니다. 환난이란 야베스의 삶의 변화 다음에 올 수 있는 사단의 유혹이나 시험을 의미합니다. 근심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마음이 나누어짐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승리적인 삶 뒤에 자신을 다시 무너뜨리고,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삶을 복 되게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있는 위기와 유혹이 다가올 수 있음을 미리 예견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바울의 가르침을 미리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단의 속임수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신 8:12-14 “12.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많은 사람들이 승리 바로 다음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승리 다음에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공격해 오는 사단에게 쉽게 무너져 내리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성공 다음에 하나님의 테스트에 종종 떨어지는 신앙인 들이 있습니다. 다윗도 복된 승리 다음에 찾아온 정욕의 유혹에 힘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감격적인 승리를 경험한 엘리야는 바로 조금 전에 그를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도 망각한 체 살겠다고 줄행랑을 쳤다가 기진맥진하게 되자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다 이런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미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주신 승리를 오래 간직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도 중요하지만 그 은혜를 오래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야베스는 온전한 기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가르쳐 줍니다. 사탄이 누구를 공격 목표로 삼을까요? 성공한 사람을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 영적으로 많이 성장 한 사람을 사탄이 공격합니다. 기도해서 운명이 바뀌어 지고, 하나님 앞에 지경이 넓어져서 삶에 큰 영향력이 있는 그 때, 비로소 사탄은 여러분을 공격합니다.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일을 많이 하는 사회의 유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달라고 하면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하면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고,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잊지 않고 기도해야 할 제목이 "아버지 하나님,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말씀 드리면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떤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응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려야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한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18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브닌나를 둘째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는 아들을 잘 낳아 주었습니다. 한나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나는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아주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하나님께서 이런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18년만이었습니다.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오랫동안 응답이 막혀 있는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그날 밤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줄꼬?" 라고 물으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입을 열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입니다. "주여, 나를 복 주시옵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주의 손으로 도와주옵소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새해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뒤돌아보지 마시고, 나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펼쳐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이 한 해 동안 야베스의 기도를 드림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날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더니 이렇게 놀랍도록 채우셨노라”고 간증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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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대상 4:9-10) - 조성노 목사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히시고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욥기에 나오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신자들의 사업장이나 가정에 많이 붙어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출간된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만 1000만 권이 팔렸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책입니다. 이 책이 쓰나미처럼 한국 교회를 쓸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그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 뜻은 고통, 가난, 괴로움, 불행을 가리킵니다. 아마 어머니가 그를 출산할 때 난산했거나, 당시 환경이 가난했거나, 그가 유복자로 태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의 이름을 지으며 야베스의 모친은 제 아들 이름을 불행이라고 지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나중에는 이렇게 됩니다. 9절 상반절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자신의 운명에서 온 불행이나 형편과 처지에서 온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큰 비전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귀중한 자는 더 존경받고, 부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성공 비결이었던 그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기도는 절절하기도 하지만 그의 기도 내용이 오늘 우리의 소원이고 바람이라는 데서 우리는 공감하게 됩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지역을 넓혀 달라는 기도부터 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불행했습니다만, 그가 기도를 드릴 당시도 그의 처지가 궁색하고 협착했던 것 같습니다. 지역을 넓혀달라는 것은 그가 운신할 무대나 땅이 좁다는 반증입니다. 그게 집이든 땅이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영역이든 그 반경을 좀 더 넓혀 달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넓은 집, 사업 확장, 내 꿈을 펼칠 무대나 시장을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갈렙 같은 사람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10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이 야베스의 기도를 들었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길르앗 야베스라는 지역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이곳이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워싱턴은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자 미국 수도의 이름입니다. 야베스도 원래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사 길르앗에 있는 땅을 주셔서 훗날 그 땅을 길르앗 야베스로 부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올해 자신의 지경을 넓히기를 바라는 분이 계십니까? 지난주에 제가 치과에 갔더니 로비 탁자에 이 기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소망이 있으시면, 꼭 야베스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으십시오. 우리 교회처럼 지경을 옮겨 주시기를 원하거나, 지금의 지경을 처분하기를 바라거나, 지금보다 더 유리한 환경과 공간을 원하시는 분은 야베스의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하나님이 올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사 각자가 원하는대로 해주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복잡하고 난감하고 난제라 생각되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계산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쓰시면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응답을 체험하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환난은 지금 겪는 고난과 고통을 가리킵니다. 야베스도 기도할 당시 현실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삶에 환난을 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늘 겸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무능을 인식하고 늘 당신께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게 하시려고 환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환난이 없으면 금방 잘난 체 합니다. 환난이 없으면 우리 가운데 누가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기도원에 가보면 멀쩡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환난 가운데 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천국을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환난이 닥치면 그것을 근신하며 기도하라는 주님의 계시로 믿고 야베스처럼 기도하며 엎드립시다. 시편 50:15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야베스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내 모든 어려움에 손을 대시면 그 순간 환난에서 벗어납니다. 환난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현실적인 환난을 주님이 평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경제적이든 인간관계의 갈등이든 자녀문제든 사업상의 어려운 문제든 무엇이든 주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근심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면 그래도 살만합니다.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이 나를 짓누르면 못 삽니다. 자살하는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돈이 없습니까? 명예가 없습니까? 인기가 없습니까? 그들에게 단 하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많은 복을 받아야 하겠지만, 특별히 필요한 게 마음의 평안입니다. 근심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오추비>는 걱정보다는 불안, 허무에 가까운 뜻입니다. 솔로몬은 시편 127편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불안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얼마나 우리에게 절실합니까? 하나님이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하셨다는 응답을 우리도 받아야겠습니다. 10절 상반절에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합니다. 아뢰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카라>입니다. 간절히 절절히 부르짖어 호소했다는 뜻입니다. 올해 우리도 야베스처럼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복까지 누리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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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대상4:9-10)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존귀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새해에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여러분들의 소원들이 응답받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연휴를 맞아 여행갈 수도 있고 친구나 친척을 만나 놀 수도 있는데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 앞에 나아온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더욱 사랑이 넘치고 하시는 일에 복에 복을 더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믿음 생활을 조금이라도 열심히 하신 분들이라면 여러 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대부분 들어보셨겠지만, 오늘 처음 들어보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베스는 모세나 다윗, 베드로나 사도 바울과 같은 유명한 이름은 아닙니다.
역대상의 이스라엘 유다지파의 족보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한 이름입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 정복과 땅 분배가 있었던 여호수아 시대 사람이라고 추정합니다. 이름의 의미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우리말로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대상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좋은 뜻의 이름으로 짓지, 고통, 고생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어렵게 태어났으며, 특히 어머니 입장에서 야베스를 낳을 때, 큰 어려움이나 불행한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야베스는 고통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베스는 그의 가족들 중에서 또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귀중한 사람’은 다른 표현으로는 ‘존경을 받는 사람’, 또는 ‘존귀한 사람’으로 신앙적인 면에서, 또는 인격적인 면에서 아주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베스는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면서 태어난 사람인데, 성경 기자가 기억할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가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야베스는 흙수저 출신이었습니다. 어렵게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 어렵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가문의 영광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1)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와 기도응답으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 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 점이 가장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그냥 구하였다고 되어있지만, 원문으로 보면 ‘부르짖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냥 하나님께 구한 것이 아니라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르짖는 기도는 꼭 “주여, 주여, 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했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 응답될 때까지 기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야가 손바닥만한 구름으로 기도 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최소한 한 가지만이라도 결단했으면 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약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설교마친 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분명한 기도제목을 정하고 야베스가 부르짖어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새해에 복 주시길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간절히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특징을 살펴보면 아주 솔직하고, 평범한 기도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이런 기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닌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고상하거나 아름다워야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솔직하고 진실하고 마음이 담긴 평범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이 있는 기도입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믿음으로 지속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네 가지 기도의 간구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1) 첫 번째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해 주세요”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복을 달라는 기도는 너무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복을 세속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복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무조건적인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축복을 받으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입양해서 양육하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 가장 마음 아픈 것은 필요한 무엇이 있어도 당당히 나아와서 요구하지 않고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든지 와서 요구하면 해 줄 수 있는데, 부모를 두려워하고 부모의 눈치를 볼 때, 양부모의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서 복과 은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새해에도 저에게 복에 복을 더해 주세요”라고 간구합시다.
브루스 윌킨슨가 쓴 유명한 책,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존(John)이라는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안내자는 베드로(Peter) 사도였습니다. 천국의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의 모습이 그대로였습니다. 존은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건물에 이르렀을 때는 베드로는 존에게 보여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존에게 보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존은 그 건물을 꼭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리본이 달려 있는, 아름답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들이 즐비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보내주려고 준비해 두었던 선물들인데, 구하지 않아서 보내주지 못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존은 자기의 이름이 적혀있는 선물들도 보고 놀랐습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복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구합시다.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들어주실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주여, 내 지역을 넓혀 주세요”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옛날 농경문화에서는 문자적으로 넓은 땅을 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넓은 땅에서 더 많은 농사를 짓고, 더 많은 양과 소를 목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기도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역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들어간 기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 목사님은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일했을 때,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고아들을 먹이며 돌보았습니다. 인도 선교의 기초를 놓은 선교사 윌리엄 케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라고 도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더 넓은 지경을 주시길 축복합니다. 진로의 복, 만남의 복, 건강의 복, 자손의 복, 승진의 복, 사업의 복, 재정의 기름 부으심의 복, 더 나아가 사역의 지경을 하나님께서 넓혀 주시는 복이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3) 세 번째로 “주의 손으로 도와주세요.”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한 번 같이 기도해 볼까요. “주의 손으로 도와주세요.”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시고,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실 때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의 손길로 도와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의 손은 사람의 손과 다른 하나님의 능력을 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편 89: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주의 손은 창조의 손이요, 인도의 손이요, 보호의 손이요, 도움의 손이요, 위로의 손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행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코로나 펜데믹 이후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의 손으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합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도 주의 손으로 인도해 주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2024년에는 야베스처럼 “내게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나의 지경을 넓혀 주세요,” 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경을 넓혀 주시고, 꿈을 이뤄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될 때에, 내 힘만으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손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처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도와주세요.” 새해를 맞이하면서, 소원도 아뢰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꿈도 품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내 힘과 지혜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의 손으로 도우셔서,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해 주세요, 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로,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주세요’ 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새 번역에서는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야베스는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태어날 때, 어머니에게 고통을 안겨 준 것을 기억하면서 그와 같은 고통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에 대해 오해하면, 어떤 어려움도, 어떤 고난도 없는 편안한 삶을 구하는 기도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본래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파괴적 결과를 낳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주님께서 환난에서 지켜 주시고, 근심이 없게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마지막 간구로써,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구한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기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이 누군가에겐 가장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습니다. 방심하다가 악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기도한 것처럼,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이 벼랑 끝에 선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주의하지 않을 때가 위험한 것이다.” 성공했을 때, 방심하면 더 큰 위험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베드로 사도는 영적 전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만하고 주님의 권면을 무시했다가 마귀의 공격에 넘어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준비하실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베드로는 기도로 준비하지 못하고 잠을 자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실 때에 칼을 휘둘렀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엔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로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 라고 경고하였고 야고보 사도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경고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도 악한 마귀는 여전히 여러분들을 시험하고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서 엡 6:10-18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마귀는 떠나가고 승리하는 기도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럴 때 어떤 시험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권면)
1. 새해에도 어려움이 닥쳐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존귀한자로 복을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구할 때,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구합시다.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복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뻐하는 선물입니다. 복 주시길 좋아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복을 구할 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3. 새해에는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지경을 넓혀 주시도록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로의 복, 만남의 복, 건강의 복, 자손의 복, 승진의 복, 사업의 복, 재정의 기름 부으심의 복의 지경을 넓혀주시길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꿈이 성취되어 사역의 지경을 넓혀 주시는 복이 임하여 복음전파의 길이 넓혀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게 길 바랍니다.
4.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경이 넓어질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을 맡겨주실 때에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고 주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악한 마귀의 시험, 환난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승리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기에 승리하여 근심이 없는 복을 달라고 다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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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로 바라본 야베스의 기도 (대상 4:9-10)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1인칭 시점으로 관찰하게 되면 주인공이신 하나님보다 그분을 바라보는 독자중심의 관점으로 이기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성경을 볼 때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전지적 시점으로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역대기는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돌아왔을 때 에스라가 모세 율법을 재확립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 체제의 재건을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기술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을 이해하려고 할 때 독자인 나의 관점보다 성경의 원저자인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야베스의 기도’가 새롭게 해석되어짐을 보게 될 것이다.
* 본문 배경
성도의 참된 기도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라는 기도의 대명제를 늘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빌 2:13)
따라서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야베스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를 해석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야베스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먼저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야베스의 기도를 기복주의 신앙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야베스라는 개인 인물에 초점을 두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오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기도응답 받은 야베스보다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며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역대상 4장 10절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는 그가 존재하고 있었을 당시의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야베스가 살고 있었던 시대 상황은 성경 속에서 확실하게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증거는 있다. 그것은 역대상 4장 1절 이하의 말씀 속에는 유다 지파의 족보가 나오고 있는데, 그 족보 내용 속에서 유다의 후손들을 써 내려가는 도중에 9절과 10절 사이에 야베스와 관련된 기록과 함께 그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가 나온다. 그 족보에 나와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대를 측정해 보면 성경학자들은 대체로 야베스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시기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측정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주의 깊게 상고해 보면 감지할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만, 부분적으로는 완전한 정복을 이룬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한 것으로 보고,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땅을 제비 뽑아 분할하여 각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수 14:2).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여호수아는 당시에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가운데서 가나안 땅 전체를 도면상으로만 분할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미리 나누어 주었을까? 여호수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하기를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믿음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것이므로 이미 가나안 땅은 정복되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배분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분할할 때에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기를 자기네 지파만큼은 제비를 뽑지 않고 자기들이 거할 땅을 지명할 테니, 지명한 그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달라고 지명한 땅이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이었는데(수 14:12), 이렇게 갈렙은 자신이 지명한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해석함에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머물 때 모세는 가데스바데아에서 12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10명은 그들이 탐지한 땅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과 자기들을 비교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아서 패배할 것이고, 자기들로서는 절대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시를, 모세와 온 이스라엘에게 보고할 때에, 온 이스라엘 백성은 울부짖으며 모세와 아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다(민 13:32~14:3).
그러나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그들이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더불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정탐 보고를 하였던 것이다(민 14:6~10). 하나님은 이러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특히 갈렙에게는 장차 그가 정탐하고 돌아온 땅, 곧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주셨다(민 14:24).
따라서 훗날, 갈렙은 옛일을 회상하면서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기를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만큼은 제비를 뽑지 않고 옛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 곧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는 헤브론 땅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달라고 하였던 것이다(수 14:12). 그래서 여호수아는 당연히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이 헤브론 땅이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하지 않은 땅이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갈렙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은 꼭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장차 아낙 자손들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의심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 믿고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갈렙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장차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갈렙의 신앙을 염두에 두고 야베스의 기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도 갈렙의 신앙과 다를 바 없는 개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다.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기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고 있는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던 시기임을 서두에 이미 밝혔지만 특히 야베스의 기도가 실린, 역대상 4장 1절 이하의 내용은 갈렙이 속한 유다 지파의 족보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야베스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야베스는 유다 지파에 소속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야베스는 자기 지파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헤브론 땅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싸워서 지경을 자꾸 넓혀 나가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기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정당한 기도임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지체들과 싸워서 지경을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환난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베스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나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환난을 제거하기 위한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허락하신 것이지, 야베스가 무조건 자기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야베스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3~6) 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성실히 수행해 나가는 과정 속에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졌고(왕상 4:25),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장차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창 15:7~21)의 성취를 통해서도 이미 드러났음을 이해하면, 야베스의 기도가 순전히 개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간파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 뜻과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사업이 번창하고 자기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욕망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위한 기도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야베스의 기도
브루스 윌킨슨 지음/마영례 옮김, 도서출판 디모데
1. 짧은 기도, 엄청난 상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이야기는 노란색 선반들이 달려 있는 부엌에서 시작된다. 굵은 빗줄기가 바깥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던 그때, 나는 달라스에 있는 신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는 아내 달린과 함께 졸업 후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일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어디에 나의 에너지와 열정과 훈련받은 것들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부엌에 서서 우리 신학교 교목인 리차드 슘 박사를 통해 들었던 도전적인 메시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있었다. "보다 원대한 비전을 갖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일을 기대하고 더 많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라." 슘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이나 기대되는 것 이상을 하는 사람이다. 가구 만드는 일을 예로 들자면, 가구의 가치와 품위를 좀더 높이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장식을 덧붙이며 마감질을 하는 것과 같다. 슘 박사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전기 가운데 가장 간단한 내용을 설교 본문으로 삼았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대상4:9). 야베스는 하나님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그 구절을 마지막으로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창 밖으로 세차게 내리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주님, 저는 주님을 위해 더 큰 일을 기대하고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베스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보다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야베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까지 성경에 포함시킨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창틀로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나의 생각이 9절 말씀을 지나 그 다음 절로 내려갔다. 성경을 펴서 10절을 읽었다. 야베스의 기도였다. 어쩌면 그 기도 속에서 내가 가진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그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노란 선반으로 의자를 당겨 앉은 후, 몸을 굽혀 그 기도를 읽고 또 읽으며, 나같은 평범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미래를 찾고자 온 마음을 다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야베스의 기도를 글자 그대로 나의 기도가 되게 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차이가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야베스는 모세나 다윗과 같이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나, 세상을 뒤엎는 초대 그리스도 인들처럼 사도행전을 빛나게 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삶 속에 나타난 작은 차이가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는 성경에서 가장 잘 읽혀지지 않는 책,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읽혀지지 않는 부분 속에 마치 숨어 있듯이 들어 있다. 역대상의 처음 9장은 아담에서 시작해 수천 년을 지나 이스라엘의 귀환에 이르는, 히브리 지파들에 관한 공식적인 계보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다. 무려 500개가 넘는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들이 나열된 목록은 마음먹고 성경을 공부하려고 머리를 싸맨 용감한 학생마저도 외면하게 만든다.
4장을 보자.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라."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아후매, 이스마, 잇바스, 하술렐보니, 아눕..." 당신이 갑자기 이 책을 접고 TV리모콘을 집으려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용서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보자. 44명의 이름이 죽 나오다가 갑자기 이야기 하나가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다.
‘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9-10)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다음 절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다 지파의 이름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글룹, 수하, 므힐..."
이 사람 야베스에 관한 무엇인가가 사관으로 하여금 그 단조로운 어조를 잠시 멈추고,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돌연 분위기를 바꾸게 만들었다. 마치 "참, 잠깐만요!"라고 불쑥 말을 내뱉고는, "이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하고는 달랐거든요!"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야베스의 명성이 지속되는 비밀은 무엇인가? 나처럼 당신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보고 나서 짧은 두 구절 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던 한 무명인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 그 사람은 흔히 볼 수 없는 한 문장으로 된 짧은 기도를 했다.
* 그리고 모든 일이 이상하리만치 잘 끝났다.
분명, 그 나타난 결과는 그의 기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 직접 그리고 짧게 드려진 야베스의 기도는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이스라엘 역사책에 영원히 그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언뜻 보기에 이 네 개의 간구는 진실되고, 상식적이며, 고상하기는 하지만, 특별하게 뛰어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각각의 기도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거대한 진리가 담겨 있다. 이제부터 야베스의 간구가 얼마나 극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기적적인 요소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가장 최근에 일하셨던 때는 언제인가? 당신의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가장 최근에 경험한 때는 언제였는가? 그 동안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신은 아마도 그런 경험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혹은 구해도 되는지조차 의아해할 것이다.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하나님의 능하신 사역에 당신의 삶을 열어 놓으라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달라스에서 9,00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야베스가 누린 복에 관한 강의를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15년 전에도 야베스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듣고 난 이후 저는 그 기도를 계속해 오고 있어요. 너무나 놀라운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어서 그 기도를 멈출 수가 없거든요." 식탁 반대편에서 또 한 사람이 그도 지난 10년 동안 야베스의 짧은 기도를 따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동의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또 한 사람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온 심장 전문의였는데 5년 동안 그 기도를 해왔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저는 제가 살아온 세월의 반 이상을 야베스처럼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분명 당신도 하나님을 위해 '좀더 영광스러운' 삶에 도달하고 싶은 심정은 나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온전한 복만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언젠가 지나온 삶을 회계하기 위해 그분 앞에 서게 될 때 당신은 당신의 소원처럼, "잘 하였도다!"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은 당신이 요청하지 않아서 주지 못하는, 그래서 당신이 요청하기만을 기다리는 엄청난 복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오늘날처럼 이기적인 세대에서는 오히려 난처할 정도로 수상쩍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위해 복을 갖고 계시면서 당신에게 변화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중요한 다짐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확신과 기대를 안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라. 강가에 서서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물 한 컵씩을 요구하는 대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커다란 상이 주어지는 짧은 기도를 하고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실은 사랑의 물결에 당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이 당신을 감싸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2. 그렇다면 왜 구하지 않는가? -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히브리 말로 야베스는 ‘고통’을 의미한다. 보다 문자적 의미로는 ‘그가 고통을 불러오다.’라는 뜻이다. 당신의 이름 역시 또 하나의 고통과 수고와 어려운 환경 때문에 주어진 유산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자신은 복을 받을 수 있는 후보자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전에 한 번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복은 당신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이미 예정된 대로 부슬비처럼 내려지는 그런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은 장부를 기록하며 관리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소유한 복 장부에는 입금란과 지출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근래에 유난히 친절을 베푸셨으니까 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되며 조금만 구해서 장부상에 남은 것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죄요, 올무다! 하나님의 본성에는 그 선하심이 너무나 풍성해서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그 선하심이 흘러 넘치게 하신다. 하나님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의 그 사고 방식을 바꾸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평생 구하겠다고 그리고 더 많이 복 주시기를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해 보라.
하나님의 풍성하심은 하나님의 자원이나 능력이나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자신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다. 야베스는 그 어떤 장애도, 그 어떤 사람도 혹은 그 어떤 주장도 하나님의 본성보다 더 크게 확대해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3. 하나님을 위한 원대한 삶의 경험 -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지경을 넓혀달라는 야베스의 기도의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넓혀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기독교 대학에서 일주일 동안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더 많은 복과 더 많은 영향력을 구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하도록 했다. 2,000명으로 구성된 학생회에 학교의 명예에 걸맞은 사역 목표를 세워볼 것을 제안했다. “세계 지도를 보고 한 섬을 정하면 어떻겠는가? 그 섬을 정하고 나면 팀을 구성하고, 비행기를 한 대 전세 내서 하나님을 위해 그 섬을 취하러 가라.”고 제안해 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큰 소리로 웃었고, 어떤 학생들은 혹시 내가 정신 나간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의아해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듣고 있었다. 나는 계속했다. 나는 전에 트리니다드라는 섬에 가보았고 거기서 그 필요성을 느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트리니다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DC-10도 한 대 구하라”고 말했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도전은 학생들 사이에서 활기 찬 대화를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과 시간을 가지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며, 단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는 기술과 돈, 용기 혹은 기회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그 말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 한 주 내내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당신이 매 순간 그분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리고 천국이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라는 걸 아신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곳에 남겨 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내가 성경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지경을 넓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나서 나는 워렌이라는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는 친구 데이브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지경을 넓혀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그 주말에 정치인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워렌의 승용차에 침낭을 던져 넣고 둘은 400마일을 여행하며 주유소에서 일하던 두 사람에게 그리고 경비원 네 명과 ... 주지사의 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지사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크게 하실 때 감사를 드리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그리고 몇 달 동안 더 넓은 지경에 대한 꿈이 캠퍼스를 휩쓸었다. 가을이 되었을 때 워렌과 데이브가 인도하는 학생 팀이 ‘야베스 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해 여름 선교 활동을 준비했다. 그들의 목표는 자비량 학생 선교 팀을 조직하고 제트 비행기를 전세 내어 여름 사역을 위해 트리니다드 섬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126명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 일에 동참했다. 꽉 찬 제트 비행기가 로스앤젤레스를 이륙했을 때 야베스 작전 팀은 이미 드라마와 건축, 여름 성경학교와 찬양 그리고 가정방문 등의 사역을 위해 훈련을 받은 팀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 대학의 학장은 야베스 작전을 학교 역사상 처음 벌어진 학생들에 의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했다.
두 학생이 그들의 지경을 넓혀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짧은 기도가 경계선을 다시 그려놓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4. 위대한 접촉 -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그동안 쌓아온 삶의 터전들을 이제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확장된 사역을 용감하게 구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점에서 이렇게 주저앉아 버린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복을 받았으며 영향을 미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그들의 지경을 넓혀 주시는 하나님을 보았으나 갑자기 날개가 접히고 무기력하게 추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종들을 위한 그분의 계획이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최고의 예배라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야망이라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구하는 것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위대한 일들이 유지되고 계속되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인 선택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손을 ‘위대한 접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던 일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기회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위대해지신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를 구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여서 몇 시간 혹은 며칠씩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 공동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 즉 절박한 실패를 기적으로 바꾸어주고, 엄청난 과업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진 신선한 ‘영적 충만함(성령)’을 간절히 사모했다.
5. 물려받은 것 안전하게 지키기 -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복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우리가 드릴 간구는 우리를 억누르려는 사단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복은 가장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복이 때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민한 신뢰를 둔하게 만들고, 우리를 무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거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이 보호에 관한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영적인 통찰력이나 특별한 능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대결해서 싸우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하늘의 모든 군대를 지휘할 수 있으셨던 예수님께서도 보호해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그분의 모든 영적인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의 유혹적인 제안에 길게 얘기하는 것조차 거절하셨다.
기적적인 영역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경험을 하면서 죄와의 전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은 유혹에 맞서 불필요하게 싸우는 일이 없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렇게 되도록 그분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허락해주실 것이다. 이처럼 야베스의 기도의 네 번째 부분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삼게 되면 우리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영광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는 복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주식 투자와는 달리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안전한 투자가 가장 놀라운 수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존귀한 자의 명부에 오른 자 -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좀더 존귀한 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교만이나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이 아니다. ‘좀더 존귀한’이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묘사하는 용어이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칭찬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려고 할 때는 인간적인 충동에 말려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할 때는 성령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복의 순환 주기가 반복되면서 복과 영향력의 범위가 꾸준히 넓어져가고, 하나님을 위해 당신의 삶이 나선형을 만들며 점점 더 위를 향해 그리고 점점 더 밖을 향해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압도되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날들이 반복해서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깊은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풍성한 삶의 이 주기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죄뿐이다. 죄는 하나님의 능력의 흐름을 끊어놓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피닉스에 있는 당신의 집에 연결된 전기선이 끊어지면 후버 댐에 있는 거대한 발전소와 단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댐의 터빈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잠재력을 사용할 수 없고, 전선을 보수해 다시 연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서둘러 돌아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시작하신 기적을 단 일 분이라도 탕진하지 말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좋은 것들이 여전히 당신과 가족들 앞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7. 야베스의 것을 나의 것으로 -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나는 하나님께서 담대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다. 믿음의 가장 단순한 빛이 당신에게 비췰 때, 하나님의 진리의 따스함이 당신을 녹일 때, 당신은 즉각적으로 “하나님, ... 제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비록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미약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기대’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따라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는 기도의 능력과 기도의 실체에 대한 새로워진 확신을 가지게 되며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게 된다.
의심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 목적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작정해두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온 마음을 다해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 당신의 삶 속에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당신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