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후기를 쓰라신다. 학점을 가르는 최종평가라는 생각에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아부를 떨어야할까?, 논리적으로 교수님을 비판해볼까?, 참신한 맛집후기처럼 꿀강후기를 남겨볼까? 잘 모르겠다. 그냥 손 가는대로 써야겠다.
글 잘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 “박근혜 급이다.”, “생각을 하고 쓰는건가?”"다중인격인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수강신청을했다. 못 쓴 글을 보여야한다는 쪽팔림 반. 그래도 글이 좀 나아질거라는 기대감 반. 첫 수업부터 이상한 글쓰면 혼날 각오 하라신다. 글 쓰고 욕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만 먹고싶다. 그럼 잘 쓸 생각을 하면 될 걸, 꾸중들을 생각밖에 안 난다. 손이 굳는다.
바로 글을 쓰진 않았다. 글쓰기에 중요한 것부터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글을 제출했다. 카페에 올린 순으로 교정을 봤다. 내 글을 보기 전 강의였다. 마치기 전, "지각한 사람 와서 체크 해라, 아! 다음 강의는 이승현 글을 한다. 이것도 개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어” 얼마나 못 썻길래, 수업끝날 때 콕 찝어 말씀하셨을까. 다음 수업에 내 글만 보는 것도 아니다. 자괴감, 실망감에 하루 종일 우울했다.
다음 강의에서 무지하게 발렸다. 최초였다. 제목을 고친 사람은. 반복되는 말이 많았다. 쓸 때는 인과관계가 분명했는데, 수업 중 보니 엉터리 투성이다. <공범자들>을 이야기하려고 <택시운전사>와 <박하사탕>을 끌어 들였다. 그러나 매끄럽지 못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 했다. 느닷없이 뉴스 잘 하는 방송국을 공격했다. 전체적인 논리가 안 맞으니, 맞춤법 띄어쓰기는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 어떡하면 잘 쓰지? 몇 년 전,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포기한 질문이었다. 이 책 저 책 뒤졌다. 결론이 나왔다.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잘 읽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이런 과목이 있다. 읽기 쓰기, 쓰기를 잘 하려면 읽기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말하기 듣기, 말하기를 잘 하려면 듣기를 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독해를 제대로 못 한다고? 글 잘 쓰는 사람은 한글을 다르게 읽나? 생각이 막혔다. 질문 그 다음으로 나가지 못 했다.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모두가 똑같이 글의 주제를 파악하고 요약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능 언어영역을 보는데도 문제가 없었고 모르는 문제, 틀린 문제는 해답을 보면 이해할 정도의 독해력은 된다. 그런데, 얼마나 더 잘 읽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나이 24에 한글을 다시 공부해야하는가? 기운이 쭉 빠졌다. 답 찾기를 포기했다. 이걸 다시 생각하려니 기운빠진다. 생각은 막혔는데, 과제를 하면서 실마리가 잡혔다.
두 번째 쓰면서 느꼈는데, 글은 많이 고치면 조금 나아진다. 나같이 둔한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 확실하다. 물론 교수님이 강의 초반에 해주신 말씀이다. 한비야가 글쓰는 법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강의를 들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가 글을 고치면서 깨달았다.
<공범자들을 보고>는 탈탈 털렷지만 두 번째 글부턴 처음보다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여름 글은 귀찮아서 1번 고쳤다. 기쁨 글은 대충 10번은 고친 것 같다. 하루에 한 번정도 고쳤다. 끊임없이 어색한점이 보였다. 긍정적인 생각이 솟았다. 나도 많이 고치면 볼만하게는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매력적인 글을 쓴 나를 상상하자, 뇌가 설랬다. 계속 고칠 것이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기대된다. 마치 복권 산 날처럼, 물론 당첨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