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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맑음, 뜨겁다. 영상 8℃~25℃
*걷기- 33째 날, 마지막 날
*페드로우소(Pedrouzo) ~ 산티아고(Santiago)
*이동거리 : 20.5km.
*누적거리 : 802.5km.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를 걷는 마지막 날이다. 4월 11일 처음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높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의 바람과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며 걸었던 길, 비바람의 극한 상황에서도 찬송하며 걸었다.
고집스럽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이다. 맘을 단단히 먹는다. 마지막 단계의 첫 구간은 높이 솟은 유칼립투스 숲을 통과하는 것이다.
숲이 자아내는 그늘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라.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숲은 사라지고 아스팔트와 인파가 그 자리를 메운다. 고소(Gozo) 산을 오르는 긴 여정에 대비하라.
어마어마한 수의 순례자들이 모여들 것이다. 하루 일정으로 이 도시만을 둘러보는 단체 여행객과 수많은 버스 인파가 이곳으로 온다는 가이드북의 안내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한다. 주택 담장 밑에 핀 장미가 우리를 반긴다. 오른쪽 길로 돌아선다. 삼거리에서 콘세요 거리를 따라오
면 축구경기장 앞에 있는 곳에서 왼쪽 숲길로 들어간다.
산티아고 19.136km. 숲속 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 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산 안톤 마을이다.
숲속 길로 이어진다.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평화로운 농촌 길로 가다보니 산티아고 17.571km 표지석이 반갑다. 벌판에는 들꽃들이 가득 피어있다. 한참 봄이다. 숲길은 상쾌하다.
숲 내음을 맡으며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예쁜 나무 조경 숲이 질서가 있어 보인다. 산티아고 16.968km, 오 아메날(O Amenal) 마을 초입에서 순례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산티아고 16.592km. 표지석이 자주 나온다. 숲 아래 아메날 강을 지나는 조그만 다리가 놓여있다. 포장 도로 앞에 마을이 보인다. 마을 두 갈레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로 간다. 15km 카페가 나온다.
터널이 있는데 좁다. 주택가다. 유칼립투스 숲길이 이어진다. 잡목 숲길이 길다. 언덕을 오른다. 표지석(Mojón entrada a Santiago de Compostela)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구 표지석이다. 산티아고 상과 조개문양이 보인다.
돌, 사진 등이 함께 있다. 주도로 왼편 숲길로 간다. 공항 시설물이 보인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공항(Aeropuerto de Santiago)이다.
비행장을 끼고 걸어간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젊어진다. 잡목 숲길을 간다. 산 파이오(San Paio) 마을 입구다. 먼저 성당(Capela de Santa Lucía)이 나타난다. 초록색 잔디밭에 둘러싸인 오래된 성당이다.
도장을 받았다. 맞은편에 Casa Quian 1822라는 주택이 보이고 바로 붙어서 있는 포르타 데 산티아고(Porta de Santiago 산티아고의 관문) 카페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카페에 사람들이 많다. 12k라는 글씨가 보인다. 빵에 치즈와 햄을 넣고 커피와 함께 먹는다. 4.5유로다. 돌로 지어진 주택의 담장 밑에 하얀 들꽃들이 가득 피어있다.
포장된 도로를 걷는다. 고속도로 밑을 통과한다. 라바꼬야(A Lavacolla)마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국제공항 근처의 작은 마을이다.
산 파이오 데 사부게이라 성당(Igrexa de San Paio de Sabugueira)을 만난다. 1840년에 지어진 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이다. 산티아고 10.350km 표지석이다.
이 마을은 인근에 있는 아름다운 떡갈나무 숲에 산 로케(Capela de San Roque) 성당과 깨끗한 시내가 있어서 여름에는 이곳에서 밤을 보내려는 순례자들이 많단다.
칼릭스티누스 사본은 라바코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숲이 우거진 마을에 시내가 흐르는데, 프랑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사도 야고보를 만나기 위해 옷을 벗고 손발과 더러워진 몸을 모두 씻는다.
” 피카우드는 악의적인 농담이었던 듯 이 마을을 ‘라바멘툴라’(Lavamentula; 라틴어로 멘툴라는 남성의 성기)’라고 불렀으며, ‘라바’(Lava; 씻다) ‘콜라’(Cola; 꼬리)’라는 마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이 시내에서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 좀 더 우아한 모습으로 도착하기 위해 ‘코야스’(Collas; 중세에 사용하던 칼라)를 세탁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런 순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좀처럼 지워 지지 않는 냄새가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 대향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가끔 대향로 강복의식을 한다. 이런 경우 8명의 수사들이 힘을 다해 흔드는 황금빛 대향로가 대성당의 천장을 크게 비행하는 감동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순례자들끼리 많이 하는 농담 중에 ‘파리는 순례자의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한 달이 넘게 땀에 찌든 단 몇 벌의 옷만을 가지고 보도 여행을 하는 순례자에게는 항상 냄새가 나기 마련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인 것이다.
중세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라바코야에서 아무리 깨끗이 몸을 씻었다고 하더라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모여든 순례자의 몸에서는 냄새가 풍겼을 것이다.
포타푸메이로는 미사 도중 순례자들에게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순례자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향로를 피웠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미노를 걷다보면 마을 소개할 때 칼릭스티누스 사본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1123년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 프랑스 사제 에임리 피코 덕분에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중세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좀 더 가까이로는 교황 요한 23세가 따라갔던 여정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피코는 자신의 경험을 다섯 권의 책으로 써냈는데, 이는 사도 야고보의 신봉자인 교황 갈릭스토 2세의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훗날 '칼릭스티누스 사본' 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학자들은 콤포스텔라에 보관된 필사 원고가 1138년부터 1173년 사이에 엮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된 기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완벽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교황 칼릭스티누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칼릭스티누스 고사본’(Codex Calixtinus), 또는 이 고사본이 보관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콤포스텔라누스’(Compostellanus)라고도 한다.
칼리스티누스 코덱스 내용은 중세 산티아고 순례기, 순례모습 기록. 5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성인과 관련된 전례 – 기도문, 성가, 전례문 등 수록’ 2권: 스페인과 그 외 나라에서 발생한 성인과 관련된 22가지 기적이 담겨있는 내용. 3권: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신 야고보의 시신이 어떻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모셔왔는지의 내용. 4권: 롤랑의 연대기에 관련된 기록. 5권: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 길을 13 단원으로 구분, 구체적으로 수록. 12세기에 어떻게 순례가 이루어졌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을 기록. 순례길을 따라 걸어가며 알아볼 수 있는 자연의 표지들과 도중에 있는 샘, 숙박을 할 수 있는 수도원, 피신처와 도시들을 열거해 놓았다.
피코의 주해에 기반을 둔 성 야고보의 친구들 수도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자연 지표들을 보존하여 순례자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Vila Maior 2 라는 표지판과 산티아고 10.140km 표지석이 같이 서있다.
주도로를 걷는다. 산티아고 9.950km 표지석에는 신발 한 켤레가 올려져 있다. 포장된 농촌길을 걷는다. 노란색으로 칠한 조개 문양과 화살표가 환하게 빛난다.
언덕을 오른다. 빌라 마이오르(Vila Maior) 마을이다. 주택가다. 담 위에 개 한 마리가 순례자들을 구경하고 있다. 넓은 고목나무 숲길을 간다.
곧게 솟은 삼나무 숲에는 검은 말 서너 마리가 보인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울타리 같은 문(제주도 정낭 같다)에는 나무 3개가 걸려있다. 곧게 뻗은 도로를 간다.
하늘로 솟은 나무들이 멋지다.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축사와 함께 이어진다. 갈라시아 TV 방송국(Galicia TV Station)이 나타난다. 숲이 있는 공원에 캠핑장(Camping Peregrino San Marcos)이 보인다.
승마학교 (Club Hípica La Lagunita)도 있다. 곧게 뻗은 길로 언덕을 넘어간다. 초원 언덕이다. 몬테 도 고소 입구다. 고소산을 오르며 밀려드는 환희를 경험한다.
스스로 뿌듯하게 여긴다. 각자가 창조하는 경험은 제각각이겠지만, 산을 오르면 유쾌한 고독이 주위를 감싼다. 산티아고 5.630km. 몬떼 도 고소(Monte do Gozo)다.
갈리시아 주정부는 몬테 도 고소를 다국적 순례자들의 숙박 시설로 제공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즐거움과 환희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언덕의 정상에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마침내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비가오지 않을 때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탑들이 보인다. ‘gozo’는 갈리시아어로 ‘기쁨’을 뜻한다. 이곳은 몬쇼이(Monxoy)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이 언덕 위에 도착한 프랑스 순례자들이 언덕의 정상에서 대성당의 탑을 내려다보며 기쁨에 겨워서 프랑스어로 “몬 쇼이!”(Mon Joie; 나의 기쁨이여)라고 외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까지 말을 타고 온 순례자들은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여기부터 산티아고까지는 말을 끌고 걸어서 갔단다. 언덕 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는 기념비(1982년 방문)와 조각가 아꾸냐의 작품인 두 순례자 조각상이 있다.
순례의 왕 (Rey de la Peregrinación)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 순례의 길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카미노에서 순례자들은 무리를 지어 가게 마련이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된 순례자들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산 마르코스부터 몬테 도 고소 산꼭대기까지 누가 가장 빨리 도착하는지를 겨루곤 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순례자를 ‘순례의 왕’이라고 부르며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받는 순례증명서 뒷면에 동료들이 ‘순례의 왕’이라고 써준다고 하는 이야기다.
산 마르코 예배당(Capela de San Marcos)이 있다. 복음서를 쓴 마르코의 유해가 있다고 한다. 이름만 로맨틱한 이곳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마태복음, 누가복음과 더불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마르코)의 유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마르코의 유해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에 있다고 들었다.
언덕 아래로 사람들이 간다. 이제 내리막 길이다. 산티아고 4.790km. 왼쪽에 거대한 알베르게가 나타난다. 몬테 도 고소 알베르게다.
산 자체를 불도저로 깎아 길 아래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참 형태의 숙소를 만들었다. 유유히 자리잡은 도미토리 겸 레크레이션 건물들은 한없이 높아만 가는 숙박시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각 건물의 방마다 8개의 침대가 놓여있다. 현대식 시설을 갖춘 것이다. 바 겸 식당은 물론이고 은행, 기념품 가게, 약국 그리고 중앙 휴게실에는 널찍한 간이 오락장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총 30개 동, 한 동에176개 침대가 있단다. 흰색 동백꽃이 예쁘다. 언덕을 내려가는 숲길을 지난다. 고소산 아래로 곧장 내려가 루아도 페레그리노의 계단을 내려오면 고속도로와 철로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도로에 접어든다.
십자가 석상과 유적들이 모아져 있는 곳을 지난다. 신발 모양도 있고 동물 형상도 보인다.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도로위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간다.
왼쪽은 인도로 구별해 놓았다. 템플 기사 순례자 조형물(Escultura do Templario Peregrino)을 만났다. 그리고 산티아고 여행의 문(Porta Itineris Sancti Iacobi)을 지난다.
현대적인 커다란 대문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라는 글씨 조형물도 함께 있다. 길 건너편에는 박물관(Museo Pedagógico de Galicia) 건물도 보인다.
캐논 회사 간판이 보이는데 문을 닫았다. 보도에는 조개 문양이 만들어져 있다. 해발 258미터의 산티아고 도심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산 라사로 지역을 거친다.
이곳은 의회 건물과 전시장, 다용도 경기장, 주정부 건물, 갈리시아 지방과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관한 여러 종류의 상설 전시장 등이 있다.
건물 대부분은 최신 건물이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나병환자 요양소,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산 라사로 소성당(Capilla de San Lazaro)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제일 큰 상업지구 중 하나인 폰티냐스의 주거지역을 지나면 오스 콘체이로스(Os Concheiros)라는 오래된 구역을 지나게 된다.
중세에 이곳에는 도착한 순례자들에게 콘차(Conchas; 조개껍질)를 팔던 곳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콘체이로스’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산 라사로 산티아고(Parroquia de San Lázaro) 성당이 보인다. 12세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나병원과 함께 작은 예배당이다. 전염병이 번지지않도록 중세의 도시 방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로터리에서 현대식 조형물을 확인한다. 공원에는 잘 전지된 나무들이 보인다. 조용하고 작은 공원(do Monte dos Postes Park)을 만났다.
공원에는 특이한 조각상이 있다. 강인한 인상을 한 대머리 흉상(Escultura de Ramón Conde)이 있고 벌린 입에서는 물이 흘러나온다.
공원 건너편에도 공원(Parque do Cotaredo)이 있다. 이 마을의 시장정도 되는 것 같은 사람의 흉상도 만들어져 있다. 광장길을 건너간다.
보행자 도로로 걸어간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알베르게(Albergue SIXTOs no Caminho)건물을 마주한다. 사람들의 흐름에 밀려가다가 카페(Café Bar Rey)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야외 탁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모두 활기차게 밝은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좁은 골목길 끝에 산 페드로 거리 초입에 섰다.
성 페테르 십자가(Cruceiro de San Pedro)가 있다. 우리가 드디어 옛 도시로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대성당의 첨탑들이 눈앞에 확실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루아 산 페드로의 자갈길을 걸어 산 페드로 광장에 다다른다.
작은 성당(Capela de San Pedro)도 보인다. 산티아고의 역사적인 구시가지는 전설이 담긴 십자가상이 세워진 산 페드로 광장(Plaza de San Pedro)에서부터 시작한다.
산 페드로 거리를 내려오다 보면 포르타 도 카미노 길 오른쪽으로 포보 갈레고 박물관(Museo do Pobo Galego)인 산토 도밍고스 데 보나발 수도원(Convento de San Domingos de Bonaval) 건물이 있다.
옛 수도원 건물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유일한 고딕 양식 성당이 있는데 이곳은 현재 저명인사들의 판테온으로 쓰이고 있다.
또 다른 건물은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로 시사가 지은 갈리시아 현대미술관(Centro Galego de Arte Contemporanea; CGAC)이다.
현재 스페인 현대미술 작품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좀더 골목길로 걸어간다. 포르타 도 카미노를 지나면 카미노는 여러 거리와 광장이 있는 마지막 구간을 지난다.
처음 만나게 되는 거리는 카사스 레아이스 거리로, 옛날에 환전상 길드가 있던 곳이었다. 이 길의 왼쪽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 노사 세뇨라 도 카미노 성당(Iglesia de Nosa Senora do Camino)이 있다.
부근의 아스 아니마스 소성당(Capilla de As Animas)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세워진 이 성당은 인상적인 종교 소장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입구 양편에 이오니아 양식의 두 기둥이 세워져 있다. 9명의 인물상이 보인다. 지붕에는 천사상 둘이 있고 그 가운데 십자가가 있다.
또한 대성당에 들어서기 전전 길로 가면 세르반테스 광장(Plaza de Cervantes)을 만나게 된다. 광장 중앙에는 세르반테스의 대리석 기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광장에는 18세기 후반까지 산티아고 시청이 있었다. 지금은 의회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역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18세기에 만들어진 산 비에이토 도 캄포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Bieito do Campo)은 이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한 마지막 카미노다. 아시베체리아 거리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17세기에 만들어진 산 마르띠뇨 피나리오 수도원(Monasterial San Martino Pinario)의 웅장한 정문이 있다.
이어서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회랑을 만나게 되고, 대성당의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국의 문을 만난다. 이 문은 오늘날 아 아시베체리아라고 불리는데 18세기 후반 바로크 양식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산티아고의 성스러운 해가 되면 순례자들은 대성당으로 들어갈 때 아 퀸타나 광장(Plaza de A Quintana)의 푸에르타 산타 (Puerta Santa; 성스러운 문)를 통해 들어가곤 했다.
그 이유는 성스러운 해에만 이 문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루아다 아사바체리아를 걷다보면 인마쿨라다 광장(아사바체리아 광장으로도 불린다.)에 닿는다.
요한 바오로 2세(Beato Juan Pablo II) 흉상이 있는 광장에 섰다. 이 광장에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본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수도원과 성당의 규모가 궁전 같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있다. 종류가 다양하다. 대성당의 북쪽 터널 아래를 지난다. 백 파이프 연주의 소리가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울린다.
고대하고 기대했던 유명한 대성당이 나타난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품고 있는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들어선 것이다.
놀라움과 감격적이다.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한 것이다. 화려하고 규모가 큰 대성당을 바라본다. 현재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시초는 820년,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지키던 수사들이 주거지에서 시작했다.
중세의 눈부신 발전을 뒤로 하고,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산티아고는 역동성을 잃고, 역사에서도 쇠락해 갔다. 순례의 중요성을 상실했을지라도 대학이 생기고, 종교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산티아고는 가톨릭 문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도시의 중심지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계속 새로워졌고, 이는 수많은 건물들에 생생하게 새겨졌다. 이런 의미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은 예술적인 면과 순례길이 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건물로 손꼽힐 수 있었다.
우리가 선 오브라도이로 광장(Praza do Obradoiro)은 정말 사람들이 많다. 대성당은 1078년에 디에고 페라에스 주교에 의해 착공되어 1128년 무렵 미완성인 상태로 헌당식을 가졌다.
또한 외부는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거대한 둥근 지붕은 15세기에 만든 것이며, 16세기에는 회랑이 완성되었다.
대성당이 세워지자 주변에 차츰 집과 궁전이 들어서게 되었다. 대성당은 갈리시아 지방의 화강암으로 지어졌는데, 좌우에 있는 두 개 탑의 높이는 각각 74미터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탑에서 울리는 소리는 사방 20킬로까지 들린다고 한다. 오브라도이로 광장과 대성당, 그저 도착하는데만 시간을 투자하란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감회는 저마다 다르다. 엄청난 만족감과 실망까지 천차만별이다. 개인적인 감회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여라.
무사히 도착했다는데 감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주눅이 든다면 좀 더 안정감을 느끼는 때, 그리고 조용히 물러나 그늘진 회랑 아래 앉아서 그저 대성당을 바라본다.
도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이도 있다. 반려견을 데리고 도착한 이도 있다. 혼자 오는 사람은 드물고 모두 단체를 이루어 모여서 환호를 한다.
햇살도 가득한 광장에는 엄청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33일을 조금씩 걸어서 800km의 여정을 끝낸 것이다. 그저 감사하고 기쁠 뿐 아무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