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이 아닌 짧은 소설이므로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재미 있기 바랍니다.
울산 바다 밑에 뭐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인규
울산 남부 경찰서 형사 2과 강력팀에 제보가 온 건 공교롭게 그가 팀장으로 부임하던 날이었다. 그가 서장에게 신고하고 인사차 여러 부서를 돌다, 사무실에 도착한 건 오후 두어 시 무렵이었다. 관례대로라면 그때부터 팀원들과 간단한 업무보고로 일과를 진행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게 그날따라 바쁜 업무가 있다고 즉, 강력계는 명절에도 사건·사고가 터지는 곳이니 그런 줄 알았다. 과연 서랍을 정리하면서 언뜻 보니, 팀원들은 외부로부터 전화 받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뭐요? 처용암 근처에서 괴상한 문어요?”
“낚시하다 봤다고요? 아니, 아직도 그곳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옛 세죽 마을에 에일리언이! 선생님 혹시 영화 보시다가 전화하는 게 아닙니까?”
그때 그는 낯익은 마을 지명에 귀가 번쩍 뜨였다.
‘세죽 마을?’
그제야 그는 잊고 있던 고향을 마지못해 떠올렸다. 고조, 증조할아버지가 살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았던 그곳 세죽 마을을 떠나온 건 그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싱싱한 양식장의 김과 굴이었다. 아버지는 양식장에서 일하였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어패류는 어린 그에게도 좋은 놀이이자, 간식이었다. 여름철, 동네 형들과 미역을 감고 돌아오는 길에 조개를 잡아 해안가에서 구워 먹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러던 한날, 마을에 공단이 들어선다고 했다. 공무원과 경찰 그리고 업자들이 수시로 마을에 들이닥치자, 어머니는 짐을 꾸렸다. 하지만 평생 어부였던 아버지는 달랐다. 조상의 혼이 깃든 그 땅을 떠날 수 없다며 마을 몇 분과 항거하다 그만 돌아가셨다. 이후 어머니와 그는 남편과 아버지를 삼켜버린 그 마을엔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타지로 떠났다.
그는 그 전화를 받은 형사에게 그게 무슨 내용이냐고 당장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어차피 퇴근 후에 부서 환영 회식이 있고, 그보다 이 경찰서의 대략적인 분위기 파악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그는 차석과 함께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이미 다수의 팀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어 폭탄주가 몇 번 돌자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참에 그는 아까 문어니 에일리언이니 하는 제보가 궁금하여 팀원에게 물었다.
“탐장님은 에일리언을 아십니까?”
“뭐요? 에일리언? 영화에서나 나오는 그 괴물 말하는 거요?”
질문을 던진 팀원도 머쓱한지 머리를 긁었다.
“물론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아까 제가 제보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에 의하면 문어이긴 한데, 일반 문어보다 훨씬 크고 다리 끝에 촉수가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징어나 갑오징어완 달리 문어는 팔만 있고 촉수가 없잖아요.”
“네, 그래서 더욱 이상합니다. 낚시꾼의 말로는 문어가 촉수를 이용하여 낚시 바구니에 있던 고기들을 정확하게 식별하고 빼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석유화학단지와 가까워 물고기들이 거의 살지 않는데, 어떻게 해서 문어가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문득 그 문어의 촉수도 영화처럼 재생될 수 있고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내일 직접 가보지. 그 낚시꾼도 오라고 하세요.”
몇십 년 만에 찾은 고향 앞은 신문과 방송사 기자, 해양생물학자, 환경운동가, 일반 시민 등으로 북적거렸다. 섬처럼 떠 있는 처용암 바위 위에 어제 그 괴물이 촉수를 나불거리고 있었고, 인근 석유화학단지에서 뿜어대는 매연은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매우 매캐했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마을로 눈길을 돌렸다. 어릴 때 갯가에서 붕장어를 회 처먹고 구워 먹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구순이 넘은 노쇠한 어머니가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올 초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고향에서 임종을 맞겠다고 우겼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의 마지막 근무지를 이곳으로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낚시꾼은 처용암이 잘 보이는 곳에서 어제 본, 지금 보이는 기이한 문어와의 만남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대뜸 한 신문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난다고 보십니까?”
그러자 그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간단하지 않소? 저 석유화학단지에서 나오는 오·폐수로 놈이 오염된 거잖소. 그래서 저리 괴물처럼 변형되었단 말이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알 터.”
낚시꾼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발의 대가는 인간들 삶의 부분적인 편의와 부를 갖다 주지만, 그로 인한 여러 폐해, 실향민 발생과 환경오염 나아가 이상 생물체 출현 등은 필수적이란 걸 진작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바다란 인간에게 유익한 먹거리와 삶을 터전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바다를 잘 못 사용하면 멸망할 수도 있다, 하는 어떤 환경학자의 말이 떠올렸다.
이번에는 방송사 기자가 낚시꾼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 문제의 해결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낚시꾼은 매우 들떴는지 이번엔 처용을 인용했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은 분노하기보다 그를 용서하는 의연함으로 대처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그간의 개발은 울산을 최고의 공업 도시로 성장시킨 동력임을 인정하는 한편, 그 대신 생태계 복원과 더불어 이 지역에서 더 이상의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낚시꾼의 말에 모두 동의할 수 없지만, 복원이란 말엔 찬성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울산 바다 밑에 어떤 괴물이 사는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처용암을 바라보니, 그가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첫댓글 ....어떤 환경학자의 말이 '떠올렸다'->떠올랐다.겠지요?
오늘에야 찬찬히 살핍니다. 양곡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잘못 표기하였네요. 역시!
어떤 환경학자의 말을 떠올렸다, 하고 쓰거나, 떠올랐다, 하는 말이 표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