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과 2분의 1(Ott e Mezzo 1963) : 내면의 혼란과 불확실성 담은 독백
줄거리;
영화감독 로이드는 어느 날 자신의 몸이 공중에서 추락하는 꿈을 꾼다. 현실의 일상에서 지쳐 있던 그는 요양을 핑계로 온천에 간다. 그러나 그는 온천에서도 생활과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온천에서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 속에 자신이 있다는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는 아내와도 애인과도 모두 지쳐 있는 상태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구원은 마음속에 나타나는 창부 같은 성녀 클라우디아였다. 로이드는 소년 시절의 추억에 잠기는 동안 오래도록 잊고 있던 것을 생각해낸다.
해설;
이탈리아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네오리얼리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8과 2분의 1>은 <무방비 도시>를 비롯하여 네오리얼리즘의 걸작 대본을 도맡아 쓴 페데리코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과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펠리니의 “8편 반째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크리스티앙 메츠)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에서 로마의 퇴폐적이고 나태한 부자들의 생활을 보도하는 기자로 나온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인공이다. 그는 신경 쇠약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장에 온 유명한 영화감독 ‘구이도’로 출연했다.
구이도는 우주로 도피하려는 제3차 대전 생존자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는 항상 동업자들과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그에게 영화에 대한 의견과 생각을 쉴 새 없이 요구하고 질문을 해대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침내 그는 현실을 인식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인류를 위한 메시지를 담은 거창한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며, 그 대신 자신의 혼란, 불확실성, 타협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깨닫고 나서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8과 2분의 1>은 흔히 모더니스트의 전통에 놓인 ‘의식의 흐름’ 혹은 내적 독백의 영화로 분류되는데, 여기서 펠리니는 주, 객관적 시각을 교차시켜가며 관점의 복잡한 변화를 아주 기술적으로 구사한다. 구이도의 백일몽과 플래시백, 악몽을 돋보이게 하는 건 ‘객관적’ 장면들이다.
예를 들어 앞뒤로 꽉 막힌 상태를 암시하는 시작 부분의 교통마비 장면은 구이도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그가 느끼는 폐쇄공포증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그가 자동차에서 탈출하여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 그의 발이 밧줄에 매달려 땅으로 당겨지는 장면을 통해 자유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것 또한 구이도의 악몽임이 드러난다.
현실세계에 구이도가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성적 무능과 여성관계에서 드러난다. 그는 두 가지 여성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라 사라기나는 성욕과 순진함, 악마와 강력하고 두려운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의 뮤즈, 클라우디아는 환상 속에서 항상 그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이상적 여성이며 영원한 어머니 마돈나와 같다. 그리고 현실의 그는 자신의 정부를 창녀처럼 분장시키려는 욕구를 느낄 정도로 억압되어 있다.
<8과 2분의 1>의 135분(시중에는 두 개의 비디오테이프로 나와 있다) 동안 관객들이 보는 것은 구이도가 만들려고 하는, 또는 만들어놓은 영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담은 영화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구이도는 “정말 예술가로 불릴 가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창조적 생활에서 한 가지 것, 침묵에 대한 헌신을 맹세해야 한다”는 말에서 힘을 얻어 원무를 연출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아이디어의 고갈에 대한 작가의 두려움을 이 영화를 통해 그린 펠리니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후 그가 스펙터클과 기억의 환상에 더욱 매달렸고, 단순한 배경과 향수로 격하된 역사의 묘사와 자전적 표현주의 양식에 너무 깊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의 삶과 상상력의 산물에는 예술가의 영감이 서려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낭만주의로 회귀하였다.
ㅡ변재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