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째...
중국 땅을 그렇게 헤매고 다녔지만 왠지 홍콩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아니... 홍콩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대륙의 싼 물가에 이미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홍콩은 중국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비행기 탈 수 있는 회사에 와서 싼값으로 비행기 탈 수 있고, 매일 뼈빠지게 일하지만 그래도 달콤한 휴가 때엔 그냥 외국으로 훌쩍 나갈 수 있으니... 매달 한번씩 중국에 나가리라는 나의 야무진 꿈은 이미 깨졌지만 적어도 두 달에 한번씩은 떠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비행기 삯이 아무리 싸다 해도 한탕의 해외여행질은 금전적인 손실을 가져 다 준다. 특히나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가진 내가 내 호주머니 단속도 잘 못하는데... 비록 싸구리 배낭여행을 추구하는 거지근성으로 중국을 밟아왔지만 그 비용은 만만치 않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저질러 보기로 하고 그 첫 대상으로 홍콩을 잡았다. 가장 만만하고... 게다가 중국 냄새가 나기 때문에....(참... 예전엔 중국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가기 싫더니 이젠 세계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웬 지 홍콩이 친근해 보인다.)
중국을 다 뜯어 보려면 홍콩도 봐야 한다는 구차한 변명을 안은 체 홍콩으로 향했다.
회사친구... 승우랑 은경이와 함께...
저녁 7시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콩까진 약 3시간 반정도 걸리나... 홍콩과 우리는 1시간 시차... 비행기 안에서 밥한 끼 먹고 음료수 몇잔 마시니 창밖으로 화려한 불빛들이 보인다. 당연히 저건 홍콩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홍콩의 문턱 앞에서도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괜히 홍콩 주위만 맴돌았었는데... 사실 홍콩을 무척 가고 싶어 했었나 보다.
비행기는 홍콩을 한바퀴 휙 도는가 싶더니 책랍콕에 내린다. 아주 훤하고도 아주 큰.... 그리고 김포에서는 보기 힘든 여러 무늬의 비행기들이 램프에 쭉 늘어져 있다. 드디어 홍콩 땅에 닿았다. 공항의 긴긴 입국장 길을 한참을 걸어가다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국심사장에 도착.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홍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감감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어 무작정 뛰어들어간 홍콩이다. 물론 중국의 사막 땅을 헤매고 다녔던 나이지만 오랜만에 떠나온 여행은 왼지 좀 설레임과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안내데스크에서 한 두 마디 주어들은 정보로 일단은 시내로 향하기로 했다.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후텁지근한 공기가 그냥 팍 몰려온다. 홍콩의 5월은 이리도 더운 모양이다. 대강 이리저리 눈치를 살핀 다음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세계적인 도시라 그런지 공항에서 나가는 교통 편들이 무지 편리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바로 이어지는 고속전철도 있고, 후텁지근한 날씨에 만큼이나 빵빵 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편안한 이층버스가 여러 대 기다리고 있다. 일단 안내 카운터에서 얻은 지도 한 장과 버스 노선표 한 장을 가지고 무작정 시내로 향하기로 하였다.
책랍콕에서 홍콩의 시내까지 오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편리한 것은 공항에서 바로 연결된 고속전철을 타는 것이다. 입국장을 바로 빠져 나와 공항 대합실쪽으로 나오면 바로 전철역을 볼 수 있다. 깔끔한 전철의 모습을 보면 한번 타고 싶어진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싸다. 구룡까진 60$-약 9000원, 홍콩섬까지는 70$ 11000원 정도이다.) 그리고, 또하나의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 그리고 또하나는 좌석버스를 타는 것이다. 노선표가 상세하게 잘 나와있어 노선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 어디든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일단 몇번 들어 봤던 침사츄이라는 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공항좌석버스(A21번-33$)에 올랐다. 2층버스의 꼭대기에 올라 홍콩의 밤거리 구경을 하려고 맘 먹었다. 지도를 보니 책랍콕은 구룡반도와 홍콩섬의 서쪽의 좀 떨어진 섬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는 가로등만 반짝이는 공항로를 열심히 달린다. 별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차창밖을 바라보니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정신이 없을 뿐이다.
한참을 내달으니 드디어 이 섬을 벗어나 구룡반도로 향하는 모양이다. 늘씬하게 쭉 뻗은 칭이(靑依)대교를 건너간다. 눈앞에는 휘황찬란한 불빛과 항구에 죽 늘어서 있는 컨테이너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홍콩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버스가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아 고가도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홍콩의 건물들. 총질을 해대던 홍콩영화속에서 많이 봤던 허름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정말 홍콩다움을 느낀다. 언제가 광동성의 광조우에서 보았던 집들. 저 집들을 광동성답다라고 불러야 할지, 홍콩답다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그집들은 홍콩답다라고 불러야 옳을 듯 하다. 저런 집들은 역시 홍콩영화속에 등장했던 그런 집들이다.
그런 집들을 뒤로한 체 드디어 휘황찬란한 불빛속으로 들어간다. 좁은 길, 빽빽한 차량들, 늘어선 건물들, 복잡한 사람들, 그리고 눈을 어지럽히는 네온사인 불빛들이 또하나의 홍콩다움을 보여준다. 몽콕(王角), 야우마테이(油麻地)를 거쳐 구룡의 중심부인 죠단(左敦)가에 이르렀다. 몇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만 홍콩 다움에 흠뻑 젖어버렸다. 대륙과 사뭇 다른, 내가 광조우에서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홍콩다움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붉고 푸른 빛으로 그려진 한자들과 알파벳들이 보기좋게 잘 어우러져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고, 내가 타고 있는 이층버스는 이 간판들과 부딪힐 듯 살짝 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10시가 넘은 홍콩의 밤은 우리의 번화가처럼 그리 복잡하고 시끄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활력을 가지고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더운밤 잠을 못이루고 산보를 하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면 이곳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쫙 달라붙는 옷에 오색찬란한 머리와 잘 빠진 몸매를 보여주는 아가씨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그런 집들을 뒤로한 체 드디어 휘황찬란한 불빛속으로 들어간다. 좁은 길, 빽빽한 차량들, 늘어선 건물들, 복잡한 사람들, 그리고 눈을 어지럽히는 네온사인 불빛들이 또하나의 홍콩다움을 보여준다. 몽콕(王角), 야우마테이(油麻地)를 거쳐 구룡의 중심부인 죠단(左敦)가에 이르렀다. 몇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만 홍콩 다움에 흠뻑 젖어버렸다. 대륙과 사뭇 다른, 내가 광조우에서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홍콩다움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붉고 푸른 빛으로 그려진 한자들과 알파벳들이 보기좋게 잘 어우러져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고, 내가 타고 있는 이층버스는 이 간판들과 부딪힐 듯 살짝 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10시가 넘은 홍콩의 밤은 우리의 번화가처럼 그리 복잡하고 시끄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활력을 가지고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더운밤 잠을 못이루고 산보를 하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면 이곳은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쫙 달라붙는 옷에 오색찬란한 머리와 잘 빠진 몸매를 보여주는 아가씨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정신없이 홍콩의 밤거리를 구경하다보니 그만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렸다. 맘 같아서는 홍콩의 밤거리에 그냥 묻혀있고 싶지만. 나는 아직 이곳을 잘 모르는 이방인일 뿐이다.
일단 침사츄이로 추정되는 곳에서 차를 내려 무작정 숙소를 찾기로 했다. 이미 11시가 넘어버린 시간. 다행히 그리 시끄럽지도 않고, 그리 적막하지도 않은 홍콩의 밤거리가 맘을 그리 조급하지 않게 만든다. 차를 내려 이곳 저곳 둘러봐도 별로 묵을 만 한 곳은 없다. 다행히 몇몇 한국식당들이 눈에 띄어 그곳으로 들어가 길을 물었다. 묵을만한 곳이 있는지. 별 소득 없이 다시 거리로 나와 무작정 여관이라 적힌 건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허름한 건물마다 항상 입구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문을 두드리면 할아버지 한명이 나와 우리의 행색을 보고는 손을 가로 젓는다. 다시 여관이라 적힌 건물로 들어가는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며 이곳에 숙소가 있는지 물으니. 다들 영어도 북경어도 능통하지 못하다. 몇마디 광동어로 말해대는 폼이 이곳에 방이 없다는 것 같다.
헤매기를 한참. 호텔한곳을 발견하여 가격흥정을 해보려고 하는데 방도 없을 뿐더러 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기만 하다. 방하나에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니. 다시 홍콩의 밤거리를 헤맨다. 거리 곳곳에는 동남아, 아랍계, 흑인들이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다. 몇몇은 이미 술이 올라있고, 몇몇은 사람 눈치를 보는게 뭔가 팔려고 하는게 분명하다. 침사츄이전철역 부근에서 안경을 낀 삐끼한명을 만났다. 영어로 몇마디 건네다 북경어로 몇마디 걸었더니 다행히 의사소통이 된다. 중요한건 방을 직접 두눈으로 보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다. 정방형으로 생긴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무려 15층까지 오른 다음 다시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가기를 한참. 결국은 좁은 방에 셋이서 웅크리고 자기로 하였다. 가격은 조금 만족한 수준으로.(3명에 200$)
짐을 풀고 에어컨 바람에 잠시 잊었던 더위를 식힌다. 배도 고프다. 시원한 물에 땀을 씻어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 숙소의 건물은 참 이상하다. 17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인데 가운데가 뻥 뚫려 있다. 크기도 엄청 크다. 보아하니 1-2층은 상가로 사용되고 3층부터 아파트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집은 재봉공장으로 사용되고 어떤 집은 세탁소로 어떤집은 이런 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대다수는 가정집같아 보인다. 여하튼 이 괴이한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찾기도 힘이든다. 마치 미로같기도 하다.
정신차리고 내려온 홍콩의 밤거리. 12시가 넘어가는 홍콩의 밤거리도 이젠 좀 조용해지려고 한다. 편의점과 야식가게 그리고 불법체류자처럼 보이는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묵는 건물아래(알고보니 우리가 묵는 건물은 홍콩에서 베낭여행객의 숙소로 잘알려진 미라도-美麗都 빌딩이었다.) 자그마한 식당에서 밥을 해결하였다. 요리값이 비싸다는 것과 좀 깨끗하다는 것과 술은 맥주밖에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광조우의 어느 식당과 다를바가 없다. 지치고 배도 고프고. 단숨에 밥과 맥주를 해치우니 피로보다도 술기운이 먼저 온다. 홍콩에서의 첫날밤 무언가를 봐야겠다.
밤참을 때우고서 구룡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나단로(彌敦路)를 따라 남으로 내려갔다. 구룡의 남쪽 끝으로 가면 당연히 바다를 만날 것이다. 다행히 한 10분 정도의 걸음으로 가볍게 구룡의 남쪽 끝 침사츄이에 도착하였다. 저 물건너서 홍콩섬의 야경이 보인다. 잠시 여기가 상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푸쟝(甫江)의 서편에서 바라본 푸쟝의 서편. 쭉쭉 뻗은 고층건물과 간판들이 저 멀리에 펼쳐져 있다. 그것도 좁다란 물길을 사이에 두고서.저 멀리 홍콩섬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한잔 들이킨다. 매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맥주를 팔고선 문을 닫아 버린다. 침사츄이의 가로등불 아래에서 홍콩의 젊은 친구들은 열심히 스케이트 보드 타기 연습을 하고 있다. 몸을 날려가며 넘어져가며.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벤치에는 검둥이 아저씨 한명이 애처롭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전혀 음도 맞지 않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지나가던 홍콩의 노(老) 부부가 그에게 다가가 바이올린 줄을 맞춰주고 한 곡 시범을 보여준다. 검둥이 친구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연주를 해 댄다. 그 친구의 얼굴이 너무 착해 보인다. 미친 녀석으로 보이던 그 친구에게 괜히 친근감이 느껴진다.
슬슬 달아오른 술기운으로 잠을 청한다. 너무나 피곤하여 윙윙거리는 에어컨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2일째...
한참을 뒹굴다 뒹굴다 눈을 뜨니 10시쯤 되었다. 바깥엔 햇볕이 쨍쨍하다. 하지만, 잘돌아가는 에어컨 덕분에 아직 더운 줄은 모른다. 홍콩쯤은 아무런 계획이 없이 가도 다 어찌 되겠지 생각한 나의 무대포정신이 친구들에게 불안감 혹은 불쾌감을 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내질러 놓고 꾸역꾸역 넘어가는 나의 여행스타일을 버리기도 싫고 친구들에게 꼭 나의 길을 고집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모두들 머리를 식히러 온건 마찬가지니깐.
지도를 펴 놓고 한참을 생각하다 오늘은 홍콩섬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어젯밤에 거닐었던 나단로를 따라 침사츄이 바닷가로 나간다. 여기서 홍콩섬의 낮풍경을 좀 즐긴다음 배에 올랐다. 침사츄이 부근의 전시관과 극장을 뚫고 지나가면 빅토리아 만(灣) 건너편의 홍콩섬을 볼 수 있고, 조금만 눈을 서쪽으로 돌리면 홍콩섬과 구룡을 이어주는 배를 탈 수 있다. 구룡에서 홍콩으로 가는 방법은 세가지. 배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물밑을 통과하거나 아니면 해저터널로 빠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물론 배를 타는 것이 가장 편하기도 하고 가장 값이 싸다. (1.2$)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홍콩섬의 중심인 중완(中環)이다. 50층은 넘어보이는 고층빌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바로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이다. 아시아에서 유명한 금융회사들은 너나없이 여기에 하나씩 자신들의 건물들을 올려놓고 있다. 그 고층빌딩들 뒤로는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산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곳곳에 고층빌딩만큼이나 높아보이는 아파트들이 솟아 있다. 산 중턱에 몸을 온전히 기대지 못해 인공적으로 거대한 지반을 받친 이 아파트들은 지난 홍콩의 운명만큼이나 위태로와 보인다. 중완주위를 둘러보다가 홍콩 제일의 휴양지인 해양공원으로 향한다. 중완 전철역이나, 선착장에서 조금만 거리로 나오면 629번 버스를 타고 해양공원으로 바로 향한다.(12$) 고가도로를 타고서 홍콩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역시 홍콩영화의 한장면에서 보았던 홍콩의 무덤들과 홍콩의 경마장, 그리고 홍콩섬의 산을 뚫는 터널. 저멀리 다시 바다가 보이면서 해양공원에 다다랐다.
해양공원을 들어가려면 일단 돈을 좀 투자해야한다. 1인당 140$나 하는 입장료, 하지만 이 표를 끊고 해양공원에 들어가면 일단 이 공원내의 모든 것을 다 이용할 수 있다. 구석구석 볼거리로 가득찬 해양공원. 특히 산을 넘어 저편 해안가로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홍콩의 경치를 구경하면 숨통이 그만 탁. 트인다. 해양공원에서 여러가지 놀이기구도 타고 엄청나게 큰 수족관에서 온갖 열대어를 구경할 수 있다. 돌고래 쇼는 기본이고 여러가지 중국 전통의 기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 해양공원을 천천히 둘러 볼 수도 있다. 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해양공원 안내 지도를 펼쳐놓고 이곳 저곳 찾아 가기만 하면 된다. 먹는 거나, 기념품을 빼고선 모두 공짜니깐.
해양공원 구경을 마치고서 다시 중완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홍콩섬의 산 뒤로 뉘엇뉘엇 넘어가는 태양빛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곳 홍콩에서 난 별로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이 홍콩이 친근해서 일까, 아니면 항상 혼자다니던 여행길을 친구들과 함께해서 일까.
중완에 도착하니 배가 출출하다. 홍콩섬의 소비구역인 완자이(灣柴)로 향하기 위해 전철을 탔다. 전철의 기본요금은 4$, 보통 두구역 정도 가는데 1$씩 더 붙는다. 역마다 Touch Screen형태의 표 자판기가 있어 편리하다. 완자이에 내리니 이곳 역시 영화속에서 보았던 홍콩의 또하나의 모습이다. 구룡의 죠단이나 침사츄이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느낌이 다르다. 특히 홍콩섬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달리는 궤도전차의 종소리는 화려한 홍콩섬의 밤거리 속에서 우리에게 친근감을 가져다 준다.
완자이의 사람사는 거리를 둘러보다가 시장통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인상좋은 아줌마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유로우면서도 정이 많은 홍콩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생선찜에 새우튀김 그리고 야채볶음과 공기밥으로 배를 채운 후 슬슬 홍콩의 밤거리를 거닌다.
딩딩. 울리는 궤도전차의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궤도전차는 일단 뒷문으로 탄 후 앞으로 내릴 때 2$를 요금 통에 넣으면 된다. 2층에 올라가면 홍콩거리를 한 눈에 훑어 볼 수 있다.
우리는 감종(金鐘)전철역 부근에서 내린 다음 길을 물어 물어 PEAK RAM을 타러 간다. PEAK RAM은 홍콩섬의 중앙에 우뚝 솟은 산정상으로 오르는 일종의 케이블 카이다.(편도 30$, 왕복 50$) 경사가 워낙 급해서 자체 동력으로 움직일 수 없고, 산정상에서 쇠 밧줄로 궤도 전차를 끌어 올린다. 골목 골목을 오르다 보니 승강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PEAK RAM을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객차에 몸을 실으니 엄청난 경사 때문에 몸이 뒤로 젖혀진다. 산중턱에 아슬아슬하게 걸터 있는 아파트들이 바로 옆에 있다. 왜 이다지도 모질게 건물을 지어놨을까? 홍콩 땅덩어리가 아무리 비좁다고는 하지만.
한 5분정도를 낑낑거리며 올라가던 차는 드디어 정상의 승강장에 도착한다. 승강장을 빠져 나오니 홍콩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륙을 제대로 밟지도 못하고서 항상 홍콩만을 고집하던 친구녀석이 항상 하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홍콩의 야경은 아편과도 같다고. 정상의 근사한 전망대에서 빅토리아만과 구룡반도를 바라보면서 홍콩의 고층빌딩들이 밝히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을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차린 후 저 야경을 담고 싶은 생각에 고정대도 없는 나의 카메라를 들고 샷터질을 해댄다. 흔들리지 않고 저 광경들을 담고 싶은 생각에 숨을 꾹 참고 온몸에 힘을 주고 난 일동(一動)도 하지 않는다. 비스듬한 산을 따라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들은 은은한 노란 빛을 내고 있고, 중완부근의 고층빌딩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색깔들을 뿜고 있다. 빅토리아 만에 점점이 떠다니는 배들 건너편엔 침사츄이로부터 시작되는 구룡반도의 야경이 펼쳐진다. 구룡반도쪽의 환한 불빛들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검은 하늘 속에 숨으려고 하는 구름들을 비춘다.
10시가 넘어서야 정상에서 내려왔다. 홍콩의 야경을 머리 속에 다 담았지만 그래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홍콩은 자주 올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계속 하였다.
홍콩섬을 뒤로 하고서 다시 이번엔 전철을 타고 빅토리아 만을 넘어간다. 다시 구룡의 밤거리로 돌아온 것이다. 천천히 나단로를 남에서 북으로 거스러 올라가면서 구룡의 밤을 구석구석 본다. 죠단부근에 펼쳐진 홍콩의 야시장. 온갖 잡다한 물건들은 다 있다. 옷은 기본이고 시계에 장난감 먹거리까지. 없는 것이 없다. 이 야시장을 돌아다니는 홍콩사람들, 흰사람들, 검은 사람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방인들.
야시장 한 가운데 있는 식당에서 맥주를 몇 병 시켰다. 싱싱한 새우찜을 안주로 맥주를 들이키면서 시장을 보니 허.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온갖 다양한 것들이 다 있다. 바로 이곳은 중국인 것이다. 항상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항상 다양한 것들을 포함 하고 있는, 하지만 언제나 소리없이 굴러가고 있는.
오늘은 술기운 보다 피곤함이 더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