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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제13시집 평설>
윤리적 실존으로 사물 보기와 현실 인식의 시학
- 전민 시인의 제13시집 『소원의 종』의 특성
양 왕 용(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이사장, 부산대 명예교수)
전민 시인의 시에는 그가 평생 종사한 교육자로서의 삶에서 나온 그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그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을 윤리적으로 바라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의 용어로 표현하면 윤리적 실존이다. 그는 인간의 실존의 3단계를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그리고 종교적 실존이라고 보았다. 이 단계를 시인들에게 적용해 보면 많은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사물을 미적으로 파악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전 시인처럼 모든 사물에서 윤리적 진리를 발견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 종교적 실존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윤리적 실존으로 시를 형상화 할 경우 시 속에서 비유나 이미지의 현란함에서 맛볼 수 있는 미적 즐거움은 많지 않다. 대신 자연이나 사물 심지어 현실에 대한 시인의 윤리적 판단을 찾을 수 있고 그것에 공감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자칫하면 도덕적이고 관념적이 되어 시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전 시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면보다 사물과 현실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공감과 평소의 전 시인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후하고도 따뜻한 인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시집에서 그러한 면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집은 4부로 나누어져 있으나 각 부마다 일정한 경향으로 편집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필자 나름으로 시집 전체에서 몇 가지 특성을 찾아보았다.
우선 전 시인의 이번 시집에 8편이나 제목으로 노출되어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살펴 볼 수 있는 시를 찾아보았다.
고속도로에는
오름과 내림 차선이 있다
생명선인 차선의 경계는
냉정하고 확실할수록 좋다
도로에 진입한 차들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야 한다
삶의 현장인 가정에도
부부간의 길 점선이 있다
쌍방통행인 부부의 길에는
경계선보다는 조심선이 있다
부부의 길도 한 방향을 향하여
동감하며 동행함이 정도(正道)다
-「부부의 길」 전문
인용한 「부부의 길」(제1부)에서 전 시인은 부부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 하는가를 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부부간의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첫째 연에서 ‘고속도로’라는 사물을 등장시키고 ‘차량들’도 등장 시킨다. 이 부분 때문에 독자들은 시적 사유를 할 수 있다. 부부간의 관계를 고속도로의 차량에 비유한 시인들은 많지 않다. 부부간에도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주는 시라고 볼 수 있다.
팔십 줄에 들어서면서
치매기가 조금씩 나타나
자식과 피붙이들을 만나도
그 누구시냐 묻는 어머니는
본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으셨을 때의 엄마는
그 어느 친구의 엄마보다도
정이 많으시어 자식 걱정
손주들 사랑, 이웃과도
사이좋게 어울려셨는데
정월 명절이 지난 어느 날부터
맏며느리 노릇 너무 힘드시다며
교회로 피신해 출근하신 후부터
동네 교회 권사 직책도 맡으시고
성경책도 간간이 읽으시면서도
집안의 큰 행사인 기제사는
빼놓지 않고 정성껏 챙기시다
치매 양로원에 입원하신 후부터는
자식과 손주들, 이웃까지도
영육과 물질까지 모두 다
기억 속에서 빼어 팽개치시고
하늘나라로 이민 가버리신
무소유의 우리 엄마가 그립다
-「엄마가 그립다」 전문
인용한 시 「엄마가 그립다」(제1부)에서는 전 시인의 가정사가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전 시인의 어머니는 80을 넘긴 후 치매요양원에서 돌아가신 것을 이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시의 시적 묘미는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엄마’라는 시어를 사용한 점이다. 시어 ‘엄마‘ 때문에 훨씬 친근감이 드는 상태에서 전 시인의 어머니의 생애를 알게 하는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전 시인의 어머니는 젊은 날에는 인정 많고 자식과 손주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다. 그러나 치매가 들고 나서는 가족들을 못 알아 보셨다. 이러한 현실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나 전 시인은 안타까움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생애에 들어 있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시인은 이 시의 끝부분에서 치매라는 안타까움을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는 무소유의 행위라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젊은 날에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주고 늙어서는 무소유의 상태로 돌아가신 것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하늘나라로 이민 갔다고 표현하여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시적 형상화로서 성공한 부분은 마지막 두 행인 ‘하늘나라로 이민 가 버리신/무소유의 우리 엄마 그립다’라는 부분이다.
전 시인의 이러한 기독교세계관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가톨릭 신앙과 관계가 있다. 전 시인이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짐작 되는 시는 이 시집의 제목이면서 제1부의 일곱 번째로 편집된 「소원의 종」과 역시 제1부의 마지막 작품인 「신부님의 답」이다. 「소원의 종」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관광지이기도 한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성에 있는 ‘소원의 종’을 세 번 친 것이 시적 제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전 시인 아내의 영세명인 ‘안나’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 그 첫 번째 이고, 「신부의 답」에서는 흡연 청년들이 신부에게 담배를 피우면서 고해성사 여부를 신부에게 묻는 장면과 그에 대한 신부의 답이 나오고 있는 점이 두 번째이다.
전 시인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80에 접근한 노년기 인생에서 더욱 그리워하고 있는 점을 다음의 시에서 알 수 있다.
팔순 가까이 까지는 건강하시더니
무릎 아파 침대에 누어지낸 8년여
고통과 무기력한 노년시대 보다 더
한참 꿈도 많았을 청장년 시절에는
향유할 자유도 일제 치하에 빼앗겨
징용으로 징집된 군노무자로 사셨다
그래도 아버지 일생 중 최 전성기는
황무지에 옥토 몇 평 손으로 개간해
아들 딸 낳아 기르시며 손주도 보고
밭에다 수박과 딸기 심어 돈 모아
자식들 학비와 용돈도 마련하시던
40대 70대까지가 전성기이셨다
나도 이제 80에 접근한 노년기 인생
아버지의 일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아버지의 일생」 전문
인용한 시 「아버지의 일생」(3부)에서 전 시인의 아버지의 일생을 짐작할 수 있다. 전 시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징집되어 군노무자 생활을 했으며 40대부터 70대까지는 개척적인 농부로 사셨다.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자행한 제2차 세계대전의 징용 노무자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아버지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시절의 젊은이 가운데 특히 피해를 많이 본 아버지인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가 해방 이후에도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삶은 희생되고 만다. 그러나 이 시절이 전 시인의 판단에는 아버지의 가장 최전성기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삭막했던 삶을 80을 눈앞에 둔 지금에야 아들 전 시인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전 시인의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회한悔恨은 아버지의 삶이 어떠하든지 아들로서는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시인의 경우 아버지의 젊은 날과 장년과 노년기 특히 8년 동안 농사지은 후유증으로 8년을 누어계셨으니 그 회한의 정도가 남달랐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절제된 감정으로 드러내는 이 시에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전 시인의 작품 가운데 빈번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제재로 한 시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이치인데
감씨 묻은 곳에
고욤나무 태어나고
본가에 감나무 생가지 양자 보내야
혈손 닮은 자손, 감이 열린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사람다운 인간이 다 되는 건 아니다
생가지를 칼로 베어 뽑은 핏줄로
접붙이는 아픔을 겪으며 환생한
감나무에서 인간도 배워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간다
「감나무」 전문
전 시인이 시적 제재로 삼은 감나무는 씨로 심으면 열리는 것은 감이 아니라 고욤이 된다는 속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나무 묘목은 씨로 성장한 것보다 접을 붙이는 바탕이 되는 대목臺木에다 접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즉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단감나무를 접붙이는 경우도 있고 돌감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대봉감 나무를 접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씨를 심으면 먹은 감이 아니라 대목의 감 즉, 고욤이나 돌감이 열린다고 한다. 이러한 식물재배의 원리에서 감나무 심으면 고욤 열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전 시인은 이러한 속설을 바탕으로 인용한 시 「감나무」(제1부)에서 전 시인 나름의 윤리적 인식을 한다. 즉 다른 식물들인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진리에 반하여 감씨를 심으면 감이 아니라 고욤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을 열거 하고 결국 씨로 수확하기보다 다른 감의 생가지를 양자로 보내야 온전한 감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그런 후 둘째 연에서 전 시인 자신의 윤리적 의미를 감나무의 접붙이는 것을 비유로 하여 살핀다. 인간을 태어난 그대로 두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육을 통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고 살아온 과정의 우여곡절에서 점점 쓸모 있는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감나무’의 속성을 시적 제재로 삼은 전 시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
논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차지할 자리를 가리지 못해서
뻗어 나갈 내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하늘 바라보다가
잡초가 돼 뽑혀 버려진 인간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무명초도 소중한 인간이 된다.
산삼도 태생은 잡초
애초에 잡초는 없었듯
뽑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태양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우리는 산삼보다도 더 귀하고
태양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
나만의 타고난 자질을 맘껏 펼쳐
지상에 풀꽃 향기롭게 피어나듯
-「잡초」전문
인용한 시 「잡초」(제1부)의 경우는 특정한 잡초를 시적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다. 잡초를 전 시인 나름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태어날 곳이 아닌 곳에 태어나면 벼나 산삼도 잡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첫째 연부터 전 시인 나름의 윤리적 실존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성이다.
인간들 가운데는 뻗어 나갈 자리가 아닌 곳에서 허황한 꿈을 꾸다가 잡초가 되어 퇴출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적성이나 분수를 잘 파악하여 능력을 발휘하면 누구나 그 나름의 소중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첫째 연부터 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애초에는 잡초도 없고 뽑혀 나갈 사람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전 시인의 휴머니즘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 즉 ‘나’ 한 사람 한 사람은 산삼보다 귀하고 태양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직설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타고난 자질을 마음껏 펼치면 풀꽃도 향기를 피우듯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다음의 경우는 전 시인의 이러한 태도가 극대화 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이나 죽어야
배추는 김치로 환생한다
밭에서 팽 당하며 죽고
뱃살에 칼날이 갈라 치면서 또 죽고
잘린 몸통에 소금을 뿌려 다시 죽고
고춧가루와 젓갈에 범벅돼 또 죽고
장독에 담긴 시체로
땅에 묻히거나 김치통에 갇힌 채
냉장고에 수장되어 죽은 듯 살아나야
양반 본래의 김치맛을 낸다
우리 인간의 생애도
배추의 일생과 비슷하다
맛깔난 김치처럼 숙성된 삶을 위해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죽여야 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챙기는
허망한 욕망도 죽여야 하고
자신만 손해 본다는 생각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도 죽여야 한다
수시로 욕망의 분출구를 닫아야 산다
「배추」 전문
인용한 시 「배추」(제3부)의 경우는 배추가 밭에서부터 김치가 되기 위하여 변신하는 과정을 배추의 죽음이라고 인식하는데서 시적 사유는 출발한다. 첫째 연에서 배추는 밭에서 팽 당하면서 죽기 시작하여 칼로 갈라짐, 소금뿌림, 고춧가루와 젓갈로 범벅, 장독대에 담긴 시체가 땅이나 김치 통에 갇힘 등을 모두 죽는 과정이라고 보아 다섯 번이나 죽어야 맛깔스러운 김치로 변신한다고 보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우리 인간도 배추처럼 죽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죽음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결점은 외고집, 고정관념,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싶은 욕망, 자기만의 피해의식,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 등이다. 이러한 결점을 버리는 단계를 거쳐 인간은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인간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배추의 김치 되는 과정과 대비시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 시인의 지극히 도덕적인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며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배추’를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 시인이 인식하는 사물과 현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도덕적이었다. 그러나 그라고 해서 그의 앞에서 전개되는 부조리까지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현실을 비극적이고 풍자적으로 보는 작품들도 많이 있다
할인 상품이 아니요
헐값으로 팔지 마시오
가판대 위에 내어놓고
국민이 원한다면 하면서
간 빼놓고 할인 행사하는
정치인들, 시위대 무리들
국민은 땡처리로 가볍게
함부로 세일 물품이 아니요
이제 특상품이 장사치들을
교체 떨이 할 작정이라오
-「국민」전문
요즈음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니 국민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리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시위를 하면서 국민을 빙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풍조는 비판한 시가 바로 「국민」(제3부)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비판하지 않고 상점들의 할인 행사를 가져와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실감나게 읽히고 있다. 마지막 셋째 연의 끝부분 ‘이제 특상품이 장사치들을/교체 떨이 할 작정이라오’하는 부분에서 국민들을 특상품으로 정치인들을 장사치로 비유하여 선거를 통하여 심판해야 된다는 당위성도 밝히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겨울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지면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고
밖에서 들여다보는 안채도
안갯속에 먼지 없는 세상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
손쉽게 풀고 뛰쳐 나와도 좋고
꿈꾸다 산타할아버지도 만나는
혹한에 또 제설 주의보
잠시도 버티기 힘든 빙판길
하루벌이 일용 노동자
고시 텔의 독거노인들
지하 단칸방의 신혼부부
대출 이자만 눈처럼 쌓이는 상공인
미끄러지면 낭떠러지 힘든 세상
매일 TV는 사람 잡는 영상뿐
「한파주의보」 전문
앞의 작품「국민」이 현실비판의식을 풍자적 비유로 극명하게 드러낸 반면에 인용한 「한파주의보」((제2부)는 시적화자이기도 한 전 시인의 현실 비판의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장면만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현실비판의식을 전혀 감지할 수 없지는 않다. 이러한 풍자의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은 「신기한 나라」(제4부)이다. 「신기한 나라」 는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온갖 사물들만 열거하고 있으나 제목 속에 이미 풍자의 정신이 드러나고 잇다. 그러나 인용한 「한파주의보」는 첫 연과 둘째 연의 대조적인 두 장면을 제시하면서 현실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은 비록 겨울이라 눈이 펑펑 쏟아지지만 다소 환상적이고 행복한 풍경이다. 그러나 둘째 연의 경우 그러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용 노동자. 고시 텔의 독거노인, 지하 단간 방의 신혼부부 은행대출이자가 눈처럼 쌓이는 소상공인. 게다가 TV에는 살인 사건만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비극적 풍경이 청산돼야한다는 신념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마지막으로는 전 시인의 인생론을 펼치고 있는 단시 두 편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가) 웃는 사람 보며 울지 않았고
우는 사람 향해 웃지 않았다
너 안에 내가 있어 행복했던
한 번도 배반하지 않은 친구
-「거울」 전문
(나)인생 팔십 가까이 살다보니
사는 거 참 별거 아니더라
돈과 인연 없는 시나 쓰다가
끼니 챙기며 사는 게 다더라
-「늦은 성찰省察」전문
(가)「거울』(제1부)의 경우 이 시집 첫 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거울’이라는 사물은 한국 현대시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이다. 그리고 기존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내면성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전 시인의 경우 내면성보다 거울의 정직하게 보여주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이 점은 전 시인 나름의 삶이나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이고 이면에 감춘 것이 없는 순수성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늦은 성찰」(제4부)의 경우는 이 시집의 가장 마지막에 편집된 작품이다. 평생 돈 안 되는 ‘시’만 쓴 노시인의 독백이자 인생에 대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삶 자체에 대한 가벼움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돈과 명예 등으로부터 초월한 무소유로서의 인생에 대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전 시인의 시작 태도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리적 실존으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달리 표현하면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문학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관념적이면서 도덕적인 문학관은 자칫하면 시인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강요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전 시인의 경우 자연과 다른 사물들을 비유적 표현의 보조관념으로 가져와 원관념인 도덕적인 태도를 역동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그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시작행위에서 했다는 증거이자 그 나름의 시적 성과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