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福宮)은 왕위(王位)를 찬탈(簒奪)한 세조(世祖)가 창덕궁(昌德宮)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경복궁(景福宮)은 모두 불타 270여 년간 폐허로 있었다.
이때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렸다.
경복궁(景福宮)이 길(吉)하지 못하다고 하여 결국 경복궁(景福宮)대신에 창덕궁(昌德宮)을 재건 했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景福宮)에서 단종(端宗)이 쫓겨나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고
중종(中宗)때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思政殿)앞에서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景福宮城)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경복궁(景福宮)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약 270년이 지난 1867년(高宗 2년)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뜻으로 다른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경복궁(景福宮)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처소를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긴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던 때였다.
1895년에는 경복궁(景福宮)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또 다시 경복궁(景福宮)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말았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 창덕궁(昌德宮)의 내전(內殿)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景福宮)의 교태전(交泰殿), 강녕전(康寧殿), 동행각(東行閣),
서행각(西行閣), 연길당(延吉堂),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 인지당(麟趾堂), 흠경각(欽敬閣), 함원전(含元殿), 만경전(萬慶殿),
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昌德宮)의 대조전(大造殿), 희정당(熙政堂)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 집옥재(集玉齋), 경회루(慶會樓) 등과
근정문(勤政門), 홍례문(弘禮門), 신무문(神武門), 동십자각(東十字閣) 등이 남게 되었으며 광화문(光化門)도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조정(朝廷) 박석(薄石)에는 행사때 비나 햇빛을 막아주는 차일(遮日)을 설치하는 고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위치가 정2품(正二品)과 종2품(從二品)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상 하 월대(月臺) 중앙에 임금의 가마가 올라가는 "답도"에는 아름다운 봉황문(鳳凰紋)양이 새겨져 있다.
이 석수(石獸)는 아마도 경복궁(景福宮) 복원 전부터 있었던 물건인듯 하다.
상 하월대(月臺)를 빙 둘러 난간석(欄干石)이 둘러쳐 있다.
난간석의 양 끝과 중간을 받쳐주는 하엽석(荷葉石)이 아름답다.
하월대(下月臺)의 난간석(欄干石)과 하엽석(荷葉石)
하엽석(荷葉石)
상,하월대(上,下月臺)의 네 방향 계단 난간 양쪽에는 여러 석수(石獸)가 앉아있다.
상월대(上月臺) 에는 사방신(四方神)이, 하월대(下月臺) 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자리하고 있다.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가리키는 4령(四靈), 사신(四神), 사수(四獸)라 불리우는 석상(石像)이다.
하월대(下月臺) 난간에 장식된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중 원숭이상.
특이한 점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은 순서대로 배열돼 있지 않으며 게다가 개(戌), 돼지(亥)는 없다.
상, 하월대(上, 下月臺)의 동서(東西) 양모서리에는 성스러운 동물인 "가족서수"(家族瑞獸)가 자리하고 있다.
암컷에는 새끼가 붙어있다.
이는 "대(代)를 이어 근정전(勤政殿)을 수호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근정전(勤政殿) 가운데에는 임금의 어좌(御座)가 남면(南面)으로 자리하고
뒤에는 "삼절곡병"(三折曲屛)과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이 있으며
위쪽에는 화려한 "닫집"(당가 : 唐家)이 설치되어 있다.
근정전(勤政殿)은 외부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시원하게 뚫린 통층의 모습이다.
근정전(勤政殿)의 천정(天井)은 정(井)자 모습의 우물천정이고
중심에는 오방색 중 하나인 황색(黃色)으로 황제를 상징하는 발톱을 7개 가진 "칠조룡"(七爪龍)이 장식되어 있다.
"칠조룡"(七爪龍)
근정전(勤政殿) 지붕위의 잡상(雜像)들.
토수(吐首)
토수(吐首)는 목조 건물 지붕의 추녀 끝에 끼워 비바람에 목재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 부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