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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이 너무 속상하다고 한다면(1999.2019.11.24)
시143:1-12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에게 회개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의 시작은 진정한 ‘회개’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고난에 대한 반응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그는 고난 중에 사람 탓, 환경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죄를 살폈습니다. 시 143편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였을 때, 이런 일이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났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드렸던 간절한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다윗은 솔직히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고난이 없고 근심 걱정이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눈만 뜨면 근심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고통,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괴로움, 태산 같은 근심 걱정, 한가지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은데 해결된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들, 마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쉴새 없이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밀려오는 게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평탄한 길같이 보였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뒤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니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학생들의 입시, 사업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 가장들이 받는 긴장, 가정 주부들이 만나는 허무감, 아무도 인생의 고민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속상하는 일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병든 것보다 건강한 것이 좋고, 가난한 것보다 부유한 것이 좋고, 자녀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고, 자녀가 말썽 부리지 않고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살다가 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도 있고 고난과 핍박도 있고 괴로움과 슬픔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속이 너무 상해서 한숨을 쉬며 사는 삶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돌아보며 잘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나에게 무엇인가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시나 하고 이겨내는 성도가 있고, 어젯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재수없다라고 여기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벌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음생활 잘하고, 십일조잘하고, 주일성수 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도 옵니다. 누구든지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 가정이 누구보다도 평안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래서 오직 가정들이 평안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가정이 되기를 바라고 가정속에 속상하고 고민스러운 상처가 있던지 치료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는 혹시 남모르는 속상한 일이 많으신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마음의 속상함을 분명하게 치료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 그 누구도 상처를 받고 속상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이 속상함을 치료받기를 원하고 그 속상한 것이 빨리 치료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상처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당하신 상처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상한 일들은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나가 다 속상한 일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분 속을 다 들여다 보면 속상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가정생활의 파탄으로, 정신적인 고통으로, 영혼의 번민으로, 내면적 상처로, 현대인들이 모르는 깊은 상처로 인하여 굉장히 속이 상해져 있습니다. 이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마음속에 있는 속상함을 치료를 받습니다.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고민스러워 하는 것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은총으로 그들의 속상함을 해결해주시고 싸매주고 위로해주고 치유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치유의 사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오직 자신이 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고백한 약함은 그의 몸에 있는 가시입니다. 찔리는 가시가 있어서 그의 마음은 평생토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그의 약점과 상처를 부끄러워 하지않고 도리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그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다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속이 상하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십니까? 이 속상한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병이 듭니다. 속이 상한 것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해결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십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 나오는 시인의 대답이 우리들이 어떻게 인생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을 바라보고 거기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474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내 주 예수 날 건져 주시 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 찾아 나와 우리의 사정을 아뢸 때에 참 평안과 위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4절에 보면 다윗은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상할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상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는 우리에게 그런 문제의 해답을 주님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시인 다윗은 자신이 처한 형편과 심정을 여호와께 토하는데 원수의 박해 때문에 영적상태와 고난중에서 행한 그의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다윗은 속이 상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내 원한을 풀어주옵소서’라고 소리높여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소망중에 응답이 오고 위로가 옵니다. 시143:4‘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속상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울는 오후예배 전에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그 부르는 찬송가가 여러분에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도 쳐지는 찬송은 하지말고 힘이나고 용기가 나는 찬송을 불러가며 몸찬양을 하고 춤을추며 찬양을 합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속상한 것을 어디가서 풀 수 있겠습니까?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마음이 속상할 때에 해결방법을 찾으시며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남이 나를 속상하게 할때에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임을 먼저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다 자신의 부족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부족을 먼저 시인 할 때에 억울함이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속 상한 일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속상하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는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내게만 생기는 것일까? 억울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속상한 일에 더 속이 상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통은 마땅히 당해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너무 속이 상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고난이 너무 극심하기 대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속히 고통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고 자기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는 행한대로만 보응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143:1절‘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진실과 의로 판단하시더라도 자기에게는 아무 하자가 없는 것처럼 매우 당당하게보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나님이 판단하신다면 아무도 그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다윗의 일생도 완벽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로 말하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정확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을 버리지 않았기에 당당하게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시143:2절‘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했습니다. 1절에서는 당당하게 기도했는데 이것은 행위에 대한 것이기에 행위로 말하면 누구하나 심팜을 면할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고 자기도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이 고통을 당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억울하다고 기분 나빠하고 속상해 하면 더욱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요즘 모 탤런트가 사업을 하다 엄청난 손해를 보고 견디지 못하고 차안에서 연탄불을 켜서 가스를 마시고 스스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여자 연예인은 자신을 비방하는 누머와 심리적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을 뒤로한 채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손해를 보았다고 속이 상한다고 괴롭다고 이런 식으로 일을 벌리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커녕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남은 가족들까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원한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문제를 이런 막가파식으로 해결하려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자들의 행위로 심판하지 않으시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행위로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되 하나도 남김이 없이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빠진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회개치 않은 입술을 통하여 나오는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너무 속상한 것을 마음에 두지말고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시143:3절‘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바른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정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속상한 것을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솔직하게 고백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른기도에 하나님은 응답을 하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속이 상할 때가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 속상한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혼자만의 고민입니다. 혼자만의 울화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달래야 합니다. 누구나가 다 상처를 받는데 그중에서 내가 조금더 받은 것 뿐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너무 속상해 하지말고 이 속상한 것을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받지 못하면 우리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폭팔을 합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를 만나는 것입니다.
빌4:6절‘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염려’는 ‘걱정, 슬픔’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갖지 않고 불신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면서도 지나치게 쓸데없는 것까지 부풀려서 근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돌보시고, 축복하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믿으며 결코 염려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행16:25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죄수들이 그 소리를 들었고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졌다고 했습니다. 비록 감옥 안에 갇혔을지라도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벧전5:7절‘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십니다. 능력도 없고, 자기 힘으로 할 수도 없으면서, 걱정 근심하며 앉아 있는다고해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도하면 마음이 편하고 찬송하면 기쁨이 넘쳐나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다 맡아주십니다.
어려울 때 기도합시다. 기도하되 자세히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몸 아프다는 말을 하게 되고, 속이 상한 사람은 속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걸 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니 사람에게 하듯 하나님께 하자는 것입니다.
내 속 상한 이야기를 속에 두고 참으면 병이 됩니다. 복음 송에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오’기도할 때에 위로와 사랑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어 여러분 심령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영의 사람입니다. 심리적으로, 상담학적으로도 좋겠지만 우리는 영적인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치유해 주십니다.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속이 상했을 때에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시는 의사중의 의사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세하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남에게 속상하게 하지말고 주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남을 속상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에게 말로 상처를 주면서도 아무런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도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폭발하면서 ‘나는 이래도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하고 그것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뒤끝이 없다고 말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뒤끝이 남아 있습니다. 별 의미 없이 행하는 눈짓하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때로는 남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행동 하나 하나가 무심히 내 뱉은 말 한 마디가 남의 가슴에 날카롭게 꽂혀진다면 그 상처로 인해 아파하는 고통이 큽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윗은 친구의 배반으로 속상했습니다. 그 때에도 시143:5절‘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했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일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행사를 기억하면서 묵상하면서 내 상한 마음과 곤경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속상할 때에 폭음하고 설치지 않고 ‘묵상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이 참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용납할 수 없으시며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넘길 수 없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죄로 심판하신다면 같은 죄로 두 번 벌하시는 것이 됩니다. 진실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결코 그렇게 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의로우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5절에서 지난 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깊이 생각합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면서 사자와 곰과 싸웠을 때도 골리앗과 싸웠을 때, 사울 왕에게 쫓길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하던 죄로 인하여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살았습니다. 그 회개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시 51:17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다시 일으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확신 때문에 다윗은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님을 갈망합니다.
출14장에는 애굽에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에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쳐들어옵니다. 당황한 이스라엘 백성이 술렁거리며 자기들을 이끌고 온 모세에게 원망하며 집단행동을 할 자세입니다.
출14:10-12절‘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합니다. 그때 모세는 그들에게 출14:13-14절‘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사람들이 함부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잠29:18절‘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우리가 많은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보물섬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가지 않으면 결코 보물은 찾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면 약속이 무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겸손히 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으며 그 약속의 자리, 복된 자리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줄로 믿고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다면 늘 말씀을 묵상하고 말슴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셔서 치유받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속이 상할 때면 침묵을 하며 주님의 행사를 묵상했습니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주님을 생각하고 그 행하신 능력을 묵상한 것입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공했을 때에나 실패했을 때 기쁠때나 속상할 때 그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상한 영혼이 치유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나에게 상처를 받아 속상할 때에도 주를 향하여 손을 펴야 합니다.
속이 상할 때에 주를 향하여 두손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시143:6절‘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내 두 손을 펴 들고 기도합니다. 메마른 땅처럼 목마른 내 영혼이 주님을 그리워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다급한 처지에서도 다윗이 진정 원했던 것은 아침마다 주님의 사랑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서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내적 행동이고 정신적인 태도라면 6절에서 손을 폈다는 것은 외적행동이고 결단을 의미합니다. 손을 폈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과 무소유를 의미합니다. 즉‘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는 힘이 없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못난 척하고 사는사람, 없는체 하고 사는 사람, 모르는체 하는 사람보다는 잘난척 하고 있는체하고 아는체 하는 사람이 10배이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 나는 믿음이 좀 모자라’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보다는 ‘나는 믿음이 좋아, 내 신앙이 제일이야’하는 사람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하여 자신의 손을 표 보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왜 손을 폈습니다. 거지들을 보면 한국거지이든, 미국거지이든, 영국거지이든지 간에 다 손을 편다는 것입니다. 달라고 할 때 손을 펴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를 향하여 손을 편 그의 마음에는 주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상한 내 마음을 위로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 끝에 시인이 손을 펴는 마음이 있는데 ‘주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속상한 사람들, 참담한 아픔으로 한숨짓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 그뿐 아니라 체면과 자존심 대문에 자시느이 아픔이나 상한 감정을 노출시키지 못한채 가슴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어떤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누구를 향하여 손을 펴보이시겠습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의 행하신 것을 묵상하고 주를 향해서 손을 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고 항상 주를 사모합니다라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해결자입니다. 사단권세를 결박하는 열쇠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손을 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주를 향하여 손을 펴서 속이 상한 마음들을 위로받고 힘과 용기를 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손을 편다는 것은 절박한 심정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거지가 손을 벌릴때에 절박한 심정으로 그리고 참으로 용기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다윗은 자비를 호소했습니다. 시143:7절‘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다윗은 지금 자기의 속상한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기도자의 절박한 호소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리고는 시143:8절‘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해서 참 믿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곧 의지입니다. 그져 입술로만 ‘주여 의지합니다’가 아니라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을 내가 운영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묵묵히 살다가 보면 이런 속상한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쁨을 되찾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예 자기를 하나님께 봉헌을 합니다. 시143:12절‘나는 주의 종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종의 신분은 비천합니다. 자유가 유보당하고 마음대로 호라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룩하고 다윗은 자신의 속상한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종으로 자원을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종이 되게 하시고 이후로 예수그리스도가 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역시 우리도 종이 되기를 자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소망도 미래도 온전히 주께 맡기고 주의 이름으로 살기로 작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응답을 기다리면 됩니다. 시143:8절‘아침에 나도 주의 인자하심을 듣게 하소서’라고 자비하심을 속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궁휼히 여겨주시며 주의 백성으로 살도록 부족함이 없도록 응답을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상한 것을 마음속에 자꾸 담아두지 말고 해결할 수 있도록 솔직하게 주님앞에 고백을 하시고, 늘 주님이 행하셨던 것들을 묵상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께 손을 내미셔서 시143:9-12절‘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한 것처럼 내적, 외적 고통에서 구원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실패하고 수렁에 빠져 속상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살 길은 진정한 ‘회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회개할 것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이에 가로막힌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흐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반드시 주님은 구원해 주십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그 보증입니다. 10번 실패하면 11번 일으키시고, 100번 실패하면 101번 다시 시작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회개를 해도 담대하게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입니다.
히10:19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큰 죄를 지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가서야 자신의 진짜 죄를 발견하지 않도록 지금 성령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은혜의 삶, 정결한 삶, 구원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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